어제 아침은 날 참 행복하게 했다. 이제나 저제나 보고 싶었던 그 아이가 내 눈 앞에 뿅 하니 나타났으므로. 아무 이유도 예고도 없이.
동료와 이야기 중 갑자기 그 아이가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났다. 우린 과연 대화를 하며 어디를 보고 있었는가? 왜 그녀는 하늘에서 뚝 하니 떨어졌는가. 미자씨 손에 이끌려 뚝딱. 난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만 그녀를 안으려 들었다. 그러나 미자씨가 이 아저씨 갑자기 와 이라노? 하면서 본능적으로 나를 밀었다. 내가 밀리는 사이 그녀는 아이 손을 잡고 패드반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녀, 개구진 아이의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구나. 이젠 아줌마 티가 슬슬 나는구나.
한참만에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사직한 지 벌써 1년도 넘은 일이었다니. 재작년 연말 시무식 때 회사를 그만 둔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그녀에게 너 왜 살이 그리 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이라 그녀는 내말을 알아 듣지는 못 할 것이었다. 그러나 장담하기도 이르다. 내 입모양이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뉘앙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지도 모른다. 친하다고 해도 여자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집에서 살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그새 살이 좀 찐 거 같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다시 패드반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녀 같은 아이는 내 삶에서 하나의 등불이 된다. 내 삶의 보람이고 재미가 된다. 반 노인이 돼버린 내가 장난을 치고 짖굳은 농담을 해도 그걸 그녀는 받아주었으니까. 물론 그녀와 나는 직접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입장은 아니다. 말했듯 그녀가 듣지를 못하니까. 그녀와 대화를 잇는 매개는 핸드폰이다. 대화를 위해선 내 핸드폰에 글을 적어 보여줘야 한다. 아이도 자기 핸드폰을 꺼내 타자를 쳐서 내게 내민다.
한 달쯤 전 홈플러스 앞 경남은행에서 u턴하던 그녀의 차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뒷 트렁크엔 baby on board라 써 있다. 그리고 익숙한 suv, 익숙한 8로 시작하는 넘버!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다들 알잖은가, u턴 신호가 얼마나 하세월로 떨어지는지. u턴 신호는 일제36년보다 더 길었다. ㅋㅋㅋㅋ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도 몸이 굳어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정말로 당장 뛰어나가 그녀의 운전석 문을 두드려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난 내릴 수가 없었다. 그냥 미치도록 망설이기만 했다. 왜 얼어버렸을까? 왜? 게다가 난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거 완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구나..... 상황이 매우 흡사했다. 물론 단순비교는 불가다. 매디슨에선 인생을 다루는 망설임이므로 내가 잽이 안 된다.
내가 그 아일 좋아하는 이유는 해맑고 구김이 없어서다. 그리고 이뻐서다. 젊고 이쁜데다 무엇보다도 그녀 얼굴엔 호기심이 넘쳐난다. 매사 세상이 재미있는 일들로 넘쳐나 자길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상대의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아이는 과감한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이 아름다운 아이가 청각장애가 없었다면 세상은 이 아이의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미자씨 왈,
-그아 말을 못해서 그렇지, 똑똑하요. 부산대 xx과 나왔스요......
부산대.....
그러니까 재작년 그녀가 사직하기 전 우린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무슨 대화였는지는 모르지만 좌우간 그녀가 내게 '과거가 화려한데 고작 이런 데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며 내가 일하던 곳을 검색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이가 내 말에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럼 공무원은 화려한 과거니? 공무원이 뭔 벼슬임?ㅋㅋㅋ
오늘 작업자들이 모인 자리에 그녀에게 다가가 괜찮은 인스턴트 차를 두 개나 내밀었다. 갑자기 나타났으므로 그녀는 좀 어리둥절하게 내가 내민 믹스를 받아들었다.
-이보소, 자꾸 그 아 안을라 카고 그라지 마소. 자꾸 그라믄 성추행으로 경찰에 신고해뿐다.
친한 아줌마가 한 말이지만 약간 긴장도 되는 말이다.
-아이고 참내..... 내 딸 같아서 그래!
아이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눈이 뚱그레진 그녀! 내가 왜? 그런 표정이다.
-오빠 못 믿나?
-오빠? 아빠라믄서?
-오빠나 아빠나 그게 그거지.
오늘은 그냥 물러서지만 담엔 꼭 전화번호를 따야지.
첫댓글 건투를 빕니다!!
건투를? 불륜이라도 저질러란 건 아니겠죠? 아님 보쌈이라도? ㅋㅋ
@홍익 홍익님 바라는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