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서회 봉정삼족당(書懷 奉呈三足堂)」 지난날 회포를 쓰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支’ 운목의 오언배율(五言排律) 「서회 봉정삼족당(書懷 奉呈三足堂) 1555년(乙卯)」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이 을묘년(1555년)에 선배 학자인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1479~1551)에게 지난날을 회고하며 삼가 받들어 올린(奉呈) 글이다. 또 이 작품은 정황 선생이 거제도 고현동 귀양살이 중에 지었으며,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목의 '서회(書懷)'는 '마음속 품은 생각이나 회포를 써 내려가다'라는 뜻으로, 옛 문인들이 자신의 처지나 감정을 표현할 때 시의 제목으로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이 글은 당시 을묘년(1555년)에는 이미 김대유가 별세했지만, 지난 편지를 보고 감격하여 지은 서정시다. 정황 선생이 을묘왜변(1555년 5월~7월) 무렵, 남쪽 변방 거제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과 멀어져 고독하게 늙어가는 귀양살이 처지를 한탄하는 동시에, 이미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존경하는 선배 ‘삼족당’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그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되새긴, 깊이 있고 비장한 시(詩)편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저자 정황이 사화(士禍)와 유배라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황폐해진 와중에, 존경하는 선배 김대유로부터 지난날 받았던 편지(쌍리)를 뜻밖에 찾아내 읽고 북받치는 감정을 쏟아낸 작품이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서울 주자동 시절의 추억과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벗들을 생각하는 슬픔(향수의 피리, 양담의 시)을 노래했고, 중반부에서는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며 요순의 도를 실천했던 삼족당의 고결한 인품을 상찬(賞讚)했다. 후반부에서는 유배지(거제도 바다 한구석)에서 충성과 효도를 다 하지 못해 괴물(魑魅)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자책하면서도, 예전에 보내준 편지 덕분에 '겨우 남은 숨(殘喘)'을 이어가며 서로의 굳은 의리를 확인하는 비장미로 마무리하고 있다. 조선 선비들의 끈끈한 학문적 유대와 유배 가사의 절절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명시(名詩)다.
○ [오언배율(五言排律)] 오언배률은 한 시(詩)의 한 구(句)가 다섯 글자(五言)로 이루어져 있으며, 행수(줄수)의 제한 없이 길게 정형화된 율시(律詩)다. 보통 절구는 4구, 율시는 8구로 끝나는 반면, 배률은 최소 10구(5연) 이상이어야 하며, 10구에서 100구가 넘는 긴 시도 있다. 첫 연(수련)과 마지막 연(미련)을 제외한 가운데 모든 연은 반드시 대구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엄격한 대구(對句) 외에도 압운(押韻) 등, 규칙이 매우 까다롭다. 특히 오언배율은 근체시(정형시)로 글자마다 평성·측성의 규칙(평측보)을 엄격히 조절된다. 반면 오언고시(五言古詩)는 고체시(자유시)로 대구를 맞출 필요가 없고 압운자도 약간 자유로우며 평측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아, 다채롭고 자유로워 감정이나 서사를 풀기에 적합하다.
**「서회 봉정삼족당(書懷 奉呈三足堂) 1555년(乙卯)」** / 정황(丁熿 1512~1560)
吾生百年內 내 백 년도 못 되는 인생 속에서
一紀他鄕思 일기(12년) 동안이나 타향에서 그리움에 젖었네.
回首追陳跡 고개 돌려(지난날) 옛 자취를 쫓으며
熱中訪舊知 타오르는 마음으로 옛 벗들을 찾아보네.
凄涼鑄字洞 처량하구나 주자동(옛 한양의 동네)이여~
寂寞扶桑陲 적막하구나 해 돋는 동쪽 변방(유배지)이여.
幾下之幽泣 속으로 숨어 운 것이 몇 번이던가
空持不受危 위태로움을 피하려 부질없이 몸을 가다듬었네.
丈人君擧度 어르신(삼족당)은 군거(君擧) 같은 도량을 지니셨고
豪士挺然儀 호걸다운 선비로서 빼어난 풍모를 갖추셨네.
在古無多得 옛날에도 그리 흔치 않았거늘
于今豈可期 오늘날에 어찌 다시 기대할 수 있으리오.
靑雲容易散 청운(높은 관직이나 젊은 날의 꿈)은 쉽게 흩어지고
白日庶幾隨 태양(임금의 은혜)을 따르고자 갈망하네.
已矣故歡斬 다 끝났구나 옛 즐거움은 끊어졌고
終焉脩夜遲 마침내 긴긴 밤은 더디게만 흘러가네.
巷無人也住 마을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仁孰與之爲 인(仁)을 누구와 더불어 행하리오.
向秀自聞笛 향수(向秀)는 홀로 이웃의 피리 소리를 듣고
羊曇曾誦詩 양담(羊曇)은 일찍이 슬픈 시를 읊었네.
餘人僅壹貳 남은 사람은 겨우 하나둘뿐이요,
逝者悼尊卑 떠나간 이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애도하노라.
我洞殆如彼 우리 동네가 거의 저 모양이 되었으니
他方或占玆 다른 곳인들 혹 이곳과 다르겠는가.
隙駒非得繫 달리는 말 같은 세월(문틈으로 보는 백마)은 묶어둘 수 없고
薤露是相悲 부초의 이슬(薤露, 인생의 무상함)에 서로 슬퍼하네.
小子日勤仰 소자는 날마다 부지런히 우러러보는데
鉅公天憗遺 하늘이 다행히도 거공(큰 어른)을 남겨 두셨네.
實叨親炙素 실로 평소에 친히 가르침을 입었고
兼受歲寒規 아울러 추운 시절(역경)을 견디는 법도(歲寒規)를 배웠네.
同里殊閑慢 같은 마을에 살 때는 참으로 한가롭고 유유자적했으나
窮途共渴飢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함께했네.
慰吾遠遊地 멀리 유배 온 땅에서 나를 위로해 주며
資爾周道砥 숫돌처럼 평탄한 대도(周道)를 가도록 든든한 바탕이 되어 주셨네.
雅業先王典 우아한 학업은 선왕의 경전이요,
幽懷向日葵 그윽한 마음은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임금에 대한 충성)로다.
坦夷揮賈筆 평탄하고도 거침없이 가의(賈誼)처럼 붓을 휘두르고
尤怨薄嚴詞 원망하는 마음을 씻어내듯 준엄한 말을 엷게 하네.
堯舜羹墻帝 요순임금을 우러러 밥국과 담장에서도 보고
孔顔坐臥師 공자와 안자를 앉으나 누우나 스승으로 모시네.
一堂具爾樂 한 집(삼족당)에서 그대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고
雙壟四時祠 부모님의 무덤(雙壟)에는 사시철 제사를 받드네.
室內蒸梨穩 방 안에서는 배를 찌는 서늘하고 아늑함이 있고
膝邊汗血奇 무릎 곁에는 한혈마(훌륭한 자식)처럼 기이한 인재가 자라네.
展才由必也 재능을 펼치는 것은 반드시 때에 달린 것이니
隨地點便之 머무는 땅에 따라 편안히 여길 뿐이네.
夫子是甘分 부자(삼족당)께서는 이를 달게 분수로 여기시니
其心無外馳 그 마음이 바깥으로 치닫지 않으시네.
得君非不願 임금을 만나 쓰이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나
有命敢容私 천명이 있으니 감히 사사로운 욕심을 품으리오.
父母所安魄 부모님의 혼백이 편안히 쉬시는 곳이요,
園廬敢托衰 옛 집터와 정원에 감히 이 쇠잔한 몸을 기탁하려네.
彼泉彭澤水 저 샘물은 도연명의 팽택(彭澤) 물이요,
某樹巨源枝 저 나무는 산거원(山巨源)의 나뭇가지로다.
誠我樂留此 진실로 내가 이곳에 머물기를 즐거워하니
復誰能動台 다시 그 누가 나를 움직일 수 있으리오.
有時向木覓 때로는 목멱산(한양 남산) 쪽을 바라보지만
無地伸愁眉 시름겨운 눈썹을 펼 수 있는 땅이 없구나.
零落故人盡 옛 벗들은 다 시들어 사라졌고
蕭條餘宅欹 쓸쓸히 남은 옛집만 기우뚱 기울어져 있네.
不如堅我所 차라리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굳게 지켜
庶以竟年怡 남은 한 해를 기쁘게 마치는 편이 나으리라.
如我遭尤甚 나처럼 유독 심한 불행을 만났으니
是懷扣處誰 이 품은 감회를 누구에게 두드려 물어보리오.
不忠又不孝 충성스럽지도 못하고 효도하지도 못했으니
爲魅而爲魑 도깨비나 리매(산속의 괴물) 같은 신세가 되었구나.
孤陋乖斤正 외롭고 누추하여 도끼로 바로잡듯 올바른 소리를 내지 못했으니
蔽蒙竚霧披 어두운 안개가 걷히기만을 우두커니 기다리네.
靑年違怙恃 젊은 날에 부모님의 사랑(怙恃)을 잃었고
白首陷蠻夷 머리가 세어서는 변방의 오랑캐 땅(유배지)에 빠졌구나.
矮屋海偏曲 바다 한구석 구부러진 곳의 나지막한 오두막집에 살고
荒塋天極涯 부모님의 거친 무덤은 하늘 저 끝 변방에 멀리 떨어져 있네.
陰誅悔無日 마음속의 가책(陰誅)으로 후회하지 않는 날이 없고
天屬哭連時 혈육(天屬)을 잃은 슬픔에 연달아 울음 짓네.
半死形枯木 반쯤 죽어 형상은 마른 나무 같고
餘生酒滿卮 남은 인생은 술잔에 가득 채운 술로 달래네.
心猶閑自守 마음은 오히려 한가로이 스스로 지키고 있으나
食或至無辭 먹을 것은 간혹 떨어져 사양할 겨를조차 없네.
久擬重泉下 오래전부터 황천(죽음) 아래로 갈 생각만 했는데
何圖雙鯉貽 어찌 뜻했으랴 그대(삼족당)가 쌍리(편지)를 보내주실 줄을.
病身驚復在 병든 몸이 깜짝 놀랍게도 아직 살아있고
殘喘喜猶支 끊어질 듯한 숨틀이 기쁘게도 아직 지탱하고 있구려.
浩浩山川阻 넓고 넓은 산천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니
同歌古扊扅 옛날의 문빗장 노래(扊扅歌, 가난 속의 부부나 벗의 연대)를 함께 부르노라.
[주1] 삼족당(三足堂) 김대유(1479~1551) : 김일손(金馹孫)의 조카로, 청도 출신의 명망 높은 학자다. 현량과에 급제했으나 기묘사화로 화를 입고 은거했다. "지위가 낮아도 만족하고, 재물이 없어도 만족하고, 나이가 늙어도 만족한다"는 뜻의 '삼족당'을 당호로 썼다. 저자인 정황은 그를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으로 존경했다.
[주2] 일기(一紀) : 12년. 정황이 오랜 세월 타향살이와 유배생활 고난의 시간 상징.
[주3] 향수자문적(向秀自聞笛) : 위진시대 '죽림칠현' 중 한 명인 향수가 친구인 혜강과 여안이 처형당한 후, 옛집을 지나다 이웃이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었던 고사다. 죽어간 벗들을 생각하는 슬픔을 뜻한다.
[주4] 양담증송시(羊曇曾誦詩) : 동진의 장군 양담이 자신이 존경하던 사안(謝安)이 죽은 후, 사안이 생전에 좋아하던 시를 읊으며 통곡하고 다시는 그 문을 지나지 않았다는 고사다. 스승이나 선배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징이다.
[주5] 극구(隙駒)와 해로(薤露) : '극구(隙駒)'는 문틈으로 달리는 백마를 보듯 세월이 덧없이 빠름을 뜻하고, '해로(薤露)'는 부초에 맺힌 이슬처럼 인간의 목숨이 무상함을 뜻하는 상가(喪歌)의 이름이다.
[주6] 팽택수(彭澤水)와 거원지(巨源枝) : '팽택'은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해 은거했던 곳이며, '거원'은 죽림칠현의 산도(산거원)를 뜻한다. 산도(산거원)'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인물인 산도(山濤)와 그의 자(字)인 거원(巨源)을 합쳐서 부른 말이다. 삼족당의 청고하고 은거하는 선비로서의 삶을 중국의 대가들에 비유해 극찬한 것이다.
[주7] 호시(怙恃) : 『시경』에 나오는 말로 아버지는 호(怙), 어머니는 시(恃)라 하여 '부모님의 사랑과 의지처'를 뜻한다. 정황은 젊은 나이에 사화 등으로 부모를 여위었던 슬픔을 표현했다.
[주8] 쌍리(雙鯉) : 물고기 두 마리라는 뜻, 옛날에 편지를 나무 물고기 통에 넣어 전했던 것에서 유래하여 '편지'를 뜻하는 고상한 표현이다.
[주9] 염이가(扊扅歌) : 춘추시대 백리해(百里奚)가 가난하여 처를 이별할 때, 처가 문빗장(扊扅)을 때며 불렀던 노래다. 훗날 백리해가 출세한 후 이 노래를 통해 아내를 다시 알아보았다. 여기서는 '비록 가난하고 멀리 떨어져 고생할지라도 서로의 깊은 신의와 마음을 알아준다'는 뜻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