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 속 찢겨진 종이 한장…‘하얏트 조폭’ 돌연 순해졌다
2023 조폭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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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어느 봄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별관 5층 복도에 건장한 남성 13명이 줄을 지어 섰다.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인 남성들은 굳은 표정을 한 채 말이 없었다. 지루함과 답답함이 뒤섞인 한숨 소리만 가끔 들렸다.
목포 폭력조직 '수노아파'가 지리산 모처에서 단합대회를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는 수노아파 합숙소 압수수색과 단합대회가 열린 지리산 펜션을 탐문해 단합대회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해당 사진을 입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달 6월 30일 2020년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폭력조직 ‘수노아파’ 39명을 기소했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자백할 사람 이쪽 방으로!
검찰 수사관 한 명이 나타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어색한 적막을 깼다. 검찰청 복도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남성들을 주눅들게 했다. 순순히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거란 설명은 필요없었다.
남성들은 ‘순한 양’이 됐다. 경조사 등 각종 모임과 자리에서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도열하는 게 버릇이 된 이들답게 민첩하게 줄을 만들었다. 줄 맨 앞엔 수사관이 지목한 ‘진실의 방’이 있었다. 그렇게 이들은 자백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남성들은 2020년 10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난동을 피운 ‘수노아파’ 조직원들이다. 수노아파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폭력집단이다. 이들은 투자 피해에 대한 항의를 명분으로 배상윤(56, 해외 도피 중) KH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 호텔에서 난동을 피우며 다른 손님들을 위협했다. 당시 그랜드하얏트의 소유권은 KH그룹에 있었다.
형사의 강력사건 수사를 다룬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형사 마석도(배우 마동석)의 명대사 "진실의 방으로"는 범죄도시의 대표적인 명대사가 됐다. 사진 에이비오 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검찰이 수노아파 수사에 들어간 건 지난해 7월.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은 최근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 한복판, 그것도 내로라하는 고급 호텔에서 조폭들이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깰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고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봤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