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48, 마지막 설교
내가 맡은 세칭 동방교의 거점 '수원정'의 제2성전은 차츰 부흥이 되어서 '수원정'의 부속건물로는 수용이 어려워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용산 철도병원 뒤편의 어느 2층 건물을 전세내어 확장개업 하게 되었는데 용산교회라고 칭했다. '수원정'에서 아침 일찍 기상하여 연단선님 순회 세군데를 돌아와 보고를 끝내면 오후에는 이사를 나간 수원정 제2성전, 즉 용산교회로 가서 찾아오는 새로운 성민(신도)들을 맞이하고 저녁 무렵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두어번 인도하는 생활이 정착되었다.
그때 예배는 매일 되풀이 되었다. 기존 신도들이 새로운 신도들을 계속 연줄로 물고 들어오는 형태로 전도가 이어지니 매일 그들에게 ‘진리말씀’을 전해야 하는것이다. 진리말씀이란 인간의 타락과 그에 따른 심판, 그리고 구원에 관한 성경말씀과, 주역이며 정감록등 각종 예언서와 기타 잡동사니 개똥철학들을 주워모아 설교랍시고 해대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지만 세칭 동방교에서는 그것을 진리말씀이라 칭하고 있었다. 꽤 반응이 좋았고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을 연결시켜 할아버지(노광공교주)가 하나님이라는 것에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땅에 구세주로 오셨다는 것이다. 사이비 이단 종교집단의 전형이다.
그때 세칭 동방교의 '수원정' 제2성전, 즉 용산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은 주로 여고생, 여대생들이었는데 이화여대, 숙명여대에 다니는 멀쩡한 대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여대생들은 나이로는 대부분 나와 비슷한 내 또래들이었다.
그래도 당시의 그곳에서의 분위기는 ‘전도사님‘이라고 불리는 막강한 자리가 내 위치였다. 절대복종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구원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는듯 한, 감히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구름위의 자리인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전도사님의 말씀은 곧 진리인 것이고 설령 무슨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복종하는가 아니 하는가 시험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절대복종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때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원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의 한명에게 병원 직인이 찍힌 백지 진단서를 3장 가져오라고 말했다.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도 묻지 않고 이튿날 바로 가져왔다. 절대복종인 것이다. 거기에 내 이름을 적어넣고 영어로 된 무슨 이상한 병명을 적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도망을 위한 준비작업인 것이다.
당시에 나는 부모님들께 서울의 어느 신문사에 근무한다고 말을 해놓았기 때문에 근무중에 몸이 아파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할 참이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명분을 만든 것이었다. 잡비를 모아서 기차표 끊을 돈도 마련되었고 명분을 위한 진단서도 준비되었다.
그래도 오늘은 예배를 보고 내일 아침 순회나가는척 하면서 경부선 부산행 첫차를 타고 줄행랑을 쳐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비장했던 마지막 설교를 아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내용인즉 이런것이다. 훗날의 사명대사 유정은 스승이 될 서산대사를 찾아 가서 가르침을 청했더니 도는 가르치지 않고 물긷고 빨래하고 산에 올라가 땔감을 준비해서 밥짓는 일만 3년을 시키더란다. 도망갈까 어쩔까 수십번을 고민하면서도 꾹 참고 세월을 기다리니 어느날 드디어 서산대사께서 본격적인 가르침을 베푸시더란다.
그렇게 인내로 기다린 끝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사명대사는 도를 통하게 되었더란다, 여러분들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시험에 들지말고 무엇을 시키든지 절대복종하면서 변함없는 자세로 믿음에 정진하면 반드시 구원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두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아멘, 아멘 하는 소리가 홀을 가득 메운다.
세칭 동방교의 예배는 늘 그런식이었다. 내일 도망 갈 생각을 품고 있는 인사가 오늘 하는 설교치고는 가관이었다. 내일이면 갑자기 없어진 나를 이상히 여겨 수원정 제2성전(용산교회)의 신도(성민)들은 우리 전도사님이 어디가셨나 수군수군 할것이고 나의 순회코스에 들어있는 연단선님들은 하염없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후 사태파악을 한 윗사람들은 무슨 변명으로 수습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뒤통수가 간지럽지만 할 수 없다. 나는 내일 줄행랑을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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