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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가 어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생명 주시는 영 살려주는 영에 대한 말씀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육체가 되신 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은 믿는 이들 곧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을 넣어주기 위한 일 때문에 주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자가 되신 주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에 사실상 신성한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신 그 영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을 사신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만 실상은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분은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은 생명주시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서 새 창조의 발아를 가지고 오기 위한 바로 그 일 때문에 주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그러한 변형된 영으로 주님께서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옛 창조 안에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 창조는 하늘과 땅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첫째 사람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옛 창조 안에 있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옛 창조 물 안에 있는 자들 속에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부활이란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주를 영접한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것입니다. 육적인 몸을 가지신 그분께서 영의 몸을 지니신 그 생명주는 영으로서의 그 영으로
변형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새 피조물이 되도록 함으로 말미암아 옛 창조 안에 있는 자들을 새 창조 안에
있는 자들로 변화를 시켜주기 위한 일들 때문에 그 변형되신 영께서 생명의 싹틈인 신성한 생명의 발아를 위하여
믿는 자들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한 일 때문에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옛 창조는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모두가 옛 창조 안에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 위에 으뜸가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그만 옛 창조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새 창조는 그 하늘과 땅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들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선택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만을 포함한 것이 새 창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 창조 안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모든 옛 창조물 가운데 겹겹이 에워싸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무수히 옛 창조물로 인하여 부대끼고 가로막히는 온갖 방해되는 것들로 인하여 삶의 모든 것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새 피조물이라는 이 특별한 용어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사도바울 선생님에 의하여 친히 말씀으로 기록되어졌는데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원래 하나님께
선택받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속된 하나님의 사람은 전에 첫째 사람인 아담의 의하여 옛 창조 안에 있던 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옛 창조 안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 하나님으로 발아되어
곧 싹틈으로 말미암아 새 창조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는 자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한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위해서 부활의 과정을 거치신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제가 어제 이웃집에 방문을 해서 뽕나무 잎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여 흰나방으로 변형되어진 그
조그마한 애벌레가 20일 동안에 자신의 먹이인 뽕나무 잎을 갈가 먹은 후에 새끼를 산출할 수 있는 장성한 애벌레로
자라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20일이 지난 후에 장성한 애벌레를 누에라고 그러죠.
그 애벌레를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집 안에 가두어 놓습니다.
그 하나의 그 사각 틀로 된 그 누에의 인위적으로 만든 집은 수백 개 한 300개에서 400개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상자에 한 3cm에서 4cm 되는 그 틀 가운데 20일 동안 생명의 먹이인 뽕나무 잎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장성하게 된
그 누에를 넣고 2~ 3일 지나게 되면 아주 끊어지지 않고 단단하고도 질긴 하얀 그러한 누에 고치의 실을 통해서 동그랗게
자신을 감싼 누에의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 애벌레로서 자란 그 누에가 20일 동안의 생명의 먹이를 통하여 장성하게 된 후에 자신의 집 거처를 건축하고 그 자신이
건축한 그 집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통하여 애벌레를 5마리 내지 7개의 알을 부화시켜서 새끼를 배출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씨는 그 고치의 실을 뚫고 나와 하얀 누에의 나방으로 변형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부활을 통하여 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시는 것은
마치 누에가 새끼를 낳고 자신이 변형되어져서 전혀 다른 차원의 모습을 가진 그러한 바로 이 나방이 되어서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께 선택받고 사랑받음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된 믿는 이들 안으로 신성한 생명을 주입시키기
위하여 새 창조의 발아와 싹 틈을 위해서 주님께서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 변형되시고 새 창조의 발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 께서는 또한 재산출인 교회를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한 그분의 증가와 번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번째로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안에 신성한 생명을
주입시켜주는 새 창조의 발아를 가지고 옴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똑같은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배출함으로 말미암아
재산출인 교회를 세상에 등장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분이 이러한 변형과 새 창조의 발아와 증가와 번식의 일련의 일들을 통하여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믿는 자들 안에 사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생명주는 변형을 가지신 이유이고 그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안에 새 창조의 싹틈인 발아를 가지고 오게 하여서 거듭나게 하고 이 거듭난 자들을 통하여 재산출인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을 세상 가운데 산출하기 위하여 증가시키고 번식시키는 일을 부활을 통하여 하셨던 것입니다.
마치 뽕나무 잎을 통하여 살았던 그 누에가 변형되어져서 자신의 집을 건축하고 그 집 안에서 자신과 똑같은 애벌레를
5에서 많으면 일곱 여덟까지 생명을 산출하기 위해서 낳고 그리고 자신은 흰나방으로 변형되어서 세상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매우 일치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옛 피조물이었던 우리를 새 피조물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일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옛 창조인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을 발아시킴으로 말미암아 옛 창조 안에 있는 우리를 새 창조물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신성한 생명의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 하나님으로 우리를 싹트게 하여
발아시킴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새 창조물 곧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곧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의 과정을 거치신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영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으로 하나님께 선택받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된 믿는 자들
안에 이 신성한 생명을 발아시켜 싹트게 하시는 일들은 바로 신성한 생명의 영으로 변형되신 신성한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를 싹 트게 하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발아시켜서 우리를 싹트게 하기 위해서 신성한 생명을 주입시켜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재탄생의
기회를 갖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아버지와 그 아들과 영 하나님이 바로 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영이신 그리스도로
우리를 신성한 생명으로 발아시킨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하고도 영원한 그 하늘의 생명으로 인하여 기인된 것이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믿는 자들 모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가 다시 싹트게 되어
옛 창조물에서 새 창조물 새 피조물이 된 것을 기억할 때 우리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새 생명으로 싹트게 되어 발아됨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되었다라고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1:3 〔산 소망〕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래서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22절 사이에 그 영으로 오시어 믿는 이들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안에 바로 제자들이죠.
생명주는 영이신 변형되신 영으로 오셔서 믿는 이들 곧 제자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장면을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22절 사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육의 몸을 가지셨지만 영의 몸을 가지셔서 이제는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20:19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마 28:16-20; 막 16:14-18; 눅 24:36-4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주의 부활 그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이 있던 곳에 문을 꼭 닫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안이 있기를 이제 진정한 평안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전에는 동거하고 동행하였을 뿐이지만 육체적인 몸을 가진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있을 수만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제자들 안으로 예수님께서 들어가 제자들과 예수님이 하나 되어 사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평안이 있기를 이라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성령님을 받으십시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안으로 성령님을 불어넣으신 것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19절에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인데 이것은 내가 살므로 여러분도
살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이렇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성령님을 받으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자신의 생명과 그 모든 것을
제자들 안에 나눠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또 제자들의 생활을 위하여 생명으로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제자들 안에 불어 넣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신 온전하신
그 사역의 일들을 행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러한 일들을 행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육체에서 그 영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육체적인 몸을 지니셨던 그분이 이제는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육체 안에서 첫째 사람이
타락하여 사망 가운데 처한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아담이신 곧 둘째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시고 거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라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 안으로 불어넣어주신 그 숨은 바로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영을 우리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죽음과 부활을 거치셔서 제자들에게 돌아오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제자들의 또
다른 보혜사로서 제자들 안에 들어가셔서 거하시기 시작하신 것도 사실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 영이라고
요한복음 14장 16절, 17절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원래 주님은 요한복음 1장 1절에 기록한 것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주님께서는 본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분은 성육신이라는
또 다른 단계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육체가 되시는 단계를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입으신 사람이 되셨다라고 요한복음 1장 14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먼저 육체를 입으신 사람이 되셨고 사람을 위하여 구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것을 우리가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먼저는 육체가 되신 단계를 취하시고 사람의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고 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육체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셨던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육체가 되시는 단계를 취하시고 어린 양이 되시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제3일날에 부활의 단계를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함을 입은 자들 안에 생명과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바로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시기 위한 죽음과
부활의 단계를 가지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래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신 그분이 육체가 되시고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하셨고,
또 33년 반이라는 이 기간을 지난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제3일날에 부활을 가지심으로 인하여
그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처소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고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믿는 그 주님은 부활 안에 계시는 그 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기간을 사신 그리스도를 뛰어넘어
이제는 부활 안에 계시는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영이 오늘날 우리가 섬기고 믿는 그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고 죽음 안에 계시는 생명이시며 또한 가장 중요한 부활 안에 계시는
그 영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에 기록한 것처럼 제자들 안으로 자신의 호흡 자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부활 안에 계신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섬기고 자신을 따르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제한적으로 그들과 함께 거하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제자들 앞에 부활의 날 바로 그날 저녁에 나타나신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사도행전 1장 14절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그 기도를 10일 동안 꾸준히 계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10일 동안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를 꾸준히 계속한 결과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라고 기록되어져 있는데요
120명의 그리스도와 똑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재탄생 되었던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부터 15절 말씀의 기록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유일하게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통해서 사역을 행하시는 그리스도만을 보게 되지만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22절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 안으로 생명의 호흡이신 생명 주는 영을 불어 넣으신 후부터 사도행전 1장 말씀을 통하여 120명의 그리스도와
똑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재 출산 되어져서 세상에 나타나진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는 12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서 오순절 날에
또 다른 보혜사이신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곧 보혜사 성령님이 임함으로 또 다른
3천 명이 싹트게 되었다라고 사도행전 2장 41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는데 그날에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더해졌습니다.
베드로가 선포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날 침례를 받고
약 3천 명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이 세상 가운데 산출되어진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이 네개의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나타나신 유일하신 한 분 그리스도이신 그 한 분 그리스도께서
사도행전을 통하여 120명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이 세상 가운데 산출되었고, 그 후에 베드로의 복음을 통하여
3천 명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산출시키신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로 산출되어진 일들은 발아와 싹틈을 가지고 오게 한 바로 신성한 생명을 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영에 의하여 이 발아되는 일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이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발아는 부활 안에 계신 영이신 그리스도의 재산출인 것입니다.
이 재산출된 것이 증가와 증대를 이루어서 오늘날 수많은 교회를 이루게 된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복음서에 오직 유일하게 한 분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그 역사가 이제 이 사도행전을 통하여 3천 120명이라는
그분의 몸이요 그분의 지체들 속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살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들 안에 한몸을 이루고 하나 되어 살고
계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로 바로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그들과 함께 하나 되어 사는 삶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나 되어 사는 삶의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리스도의 재 산출 되어진 일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 네개의 복음서에 기록되어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교제를 통하여 나누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고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부활의 실제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생명주는 영이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그 자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을 통하여 나는 부활이요라고
말씀하신 이 부활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주는 영은 부활의 실제이고 생명주는 영 안에 우리가 있을 때 사실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주는
영으로 부활하신 부활 안에 있다는 것을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지신 그 또 다른 보혜사로 나타난 그 성령님 안에 있지 않게 되면 사실상 우리는
부활 안에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절부터 20절까지에서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이 장면에 대해서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영 곧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셔서 그 영으로 실제화되심으로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장면에 대한 말씀입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6절에 보면 또 다른 보혜사라고 언급되고 있는데요 또 다른 보혜사는 그전에 첫 번째 보혜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 보혜사가 바로 30년 동안의 인생의 삶과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사역을 통해서 제자들과 믿는 자들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변호하시고 모든 것을 함께 하시기 위한 첫째 보혜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보혜사이신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을 가지신 그 영을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실 것이고 그분은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17절에서 그분께서는 진리의 영 곧 실제 영이십니다.세상은 그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6절에 의하면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을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왜 또 다른 보혜사를 말씀하셨습니까? 이미 성육신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함께하셨던 그 아들은
사실상 첫째 보혜사였기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통해서 또 다른 보혜사를 여러분들에게
전혀 다른 보혜사가 아니라 같은 보혜사이지만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지심으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차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또 다른 보혜사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첫째 보혜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지신 또 다른 보혜사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계속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러분을 고아처럼 결코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돌아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아니 어떻게 그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17절에 기록되어진 진리의 영이시요 실제의 영이신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실제의 영이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바로 주님 자신이 실제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또 아버지께 간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 또 다른 보혜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다른 보혜사가 아니라 똑같은 보혜사라는 것을
우리가 14장 17절 18절 말씀을 통해서 암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부활하시기 전에는 주님께서 제한적인 몸을 지닌 육체의 몸을 가지신 분이셨으나 부활을 통하여
제한받지 아니하는 영적인 몸을 가지신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셨기 때문에 부활 후에 주님께서 진리의 영 실제의 영이
되셨다라는 것을 이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부활의 날을 언급하고 나서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는 부활의 날을 먼저 언급하신 후에
그리고 자신 말하는 바로 1인칭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날에는 그날이 뭐죠? 부활한 후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20절에 이 결론의 말씀인데요. 부활한 후에는 부활을 통하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이 실제 영으로 진리의 영으로
또 다른 보혜사이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이 생명주시는 영으로 변형되신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대다수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0절 말씀을 통하여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내가 또한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라는 것을 선제적으로 먼저 말씀하시고 나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바로 주님께서 믿는 자들 안으로 들어오실 때 사실은
아버지께서 함께 들어오신다 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라는 말씀하기 전에 이 요한복음 20장 서두에 그날에는
부활의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 주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믿는 자들 안에 들어갈 때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믿는 자들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을
요한복음 14장 20절 말씀을 통해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또한 내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또한 내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 안에 들어갈 때 사실상 내 안에 계신 아버지 또한 너희 안에
계신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결론의 말씀을 바로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
이 하반절에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우리가 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동시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저에게 와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속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함께 거처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거처를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20절에 나오는 바로 내가 너희 안에라는 표현과
똑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너희가 내 안에 라고 기록하고 있죠.
그리고 내가 너희 안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먼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그리고 하반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있다 라는 이 표현이 바로 23절 하반절에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 그것은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입니다라는 내가 라는 그 말씀은
우리가 라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그 믿는 자들 안에 계셔서 거처를 정할 것이라는 것을
요한복음 14장 20절 말씀과 23절 말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20절 하반절에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제자들은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대표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내가 믿는 자들,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라는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이라는 나라는 뜻은 단지
아들 혼자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하는 아들이라는 것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시는 나는 단지 아들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아들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그 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을 추가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신 성령님,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보혜사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첫째 보혜사가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셔서 또 다른 보혜사로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14장 26절에 주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또 다른
보혜사이신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님 곧 보혜사 성령님이 곧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이해하면 모든 것을 여러분이 계시로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라고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자신이 있었으므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0장 30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들 이신 주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한 분이시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43절에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임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것처럼 그 영과 아들은 또한 하나입니다.
그 영이신 세 분, 하나님의 최종 표현이신 분이 바로 또 다른 보혜사로 나타나신 그 영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신 그 영은 세 분 셋이면서 한 분이신 그 하나님의 최종 표현이 바로 그 영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시기 전에는 아직 그 영이 나타난 바 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침례를 받기까지 답답함이 얼마나 크겠느냐 라고 계속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시는 것이 영광스럽게 되는 일인데 영광이란 변형되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변화선상에서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서 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형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 죽음과 부활이라는 과정을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주는 영으로의 변형을 가지고 오시기 위하여
먼저는 말씀이셨던 신성한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육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제 3일날 부활하신
것 같은 이러한 모든 복잡하고도 여러 과정을 끝마치신 후에 그분께서는 드디어 비로소 생명주는 영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생명주는 영이 되셔야 그 새 창조의 발아와 싹틈을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여서 그들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과 똑같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일 수가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들을 거치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것처럼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기록된 영과
아들이 또한 하나이기 때문에 그 영은 누구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았습니까? 아들의 이름으로 그럼 그 예수님은 누구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왜?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그 영이 그 영과 아들이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이기 때문에 그 영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셋이면서 한 분이신 셋이면서 하나이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최종 표현인 그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으로 변형되어 지신 그 보혜사 성령님 그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그 영을
우리에게 주입시키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또 다른 보혜사로 칭하고 있는 그 보혜사 성령님이 오실 때
사실상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오신다라는 것을 우리가 계시록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안에 계신 분은 결코 단순한 주 예수님이 아니시며 단순한 보혜사 성령님이 아니십니다.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통하여 최종 완성되어져서 표현되어진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또 다른 보혜사로 세상에 왔지만
그 안에 바로 아들의 이름으로 온 그 보혜사 또 다른 성령님은 바로 아들이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계신 아들이고 또한
그 영과 함께 오시는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계시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활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가 모셨다라는 이 일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바로 그 영으로 오신 그분은 사실상 아들로 오셨지만 그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신 아들이고 또한 영과 함께 오시는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과 아들이 또한 하나이기 때문에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기록되어진 내가 너희 안에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는 그 나라는
표현 안에는 바로 그 아들 한 분의 이름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계신 아들이고 또한 그 영과 함께 오시는
아들이기 때문에 세 분 하나님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 일은 세 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경악스러운 일입니다.할렐루야~ 정말 부활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믿는 자들 안에 사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바로 그 영과 함께 오신 아들이었고 바로 그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신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일상적으로 칭할 때 주님이라고 칭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심으로 이제 그분을 보게 되는 일이 요한복음 14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면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인데 이것은 내가 삶으로 여러분들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19절의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기서 내가 삶으로 너희들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난 후에 아직까지도 땅속에 갇혀져 있다면 무덤 가운데 아직 남아 계셨더라면
그분은 결코 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제 3일 만에 부활하지 않으시고 무덤 안에 계신 주님이라면 제자들과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분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라는 이 주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영원히 사시는 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살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분이 우리 안에 사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는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을 살게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인 것인데 이 말씀을 자칫 다른 뜻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 예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바로 주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은 주 예수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말을 할 때 보통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이 주님께서 이 모든 세상에 하늘과 땅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우리가 믿게 됩니다 라고 보통적으로 말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정말 거룩하고도 신성한 삶을 사는 특별한 믿는 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통해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라고 말씀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그분께서 우리 안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을 본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살게 하려고 우리 안에 사심으로 우리가 산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봅니까? 주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되고 그 주님을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셔서 함께 사시는 주님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친히 사시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을 모시고 삽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살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우리가 살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주님께서 친히 사신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을 볼 수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사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제한적인 삶을 사셨던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동거하였을 때 주님께서 자신들의 곁에는 계셨지만
자신들 속에 거하실 수는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시고 동행하셨던 주님께서 이제 친히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지셔서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으로 발아시켜 거듭나게 하심을 통하여 우리 안에 친히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친히 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분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믿는 자들 속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믿지 아니하는 세상 가운데 있는 불신자들이 너 예수님이 살아있는 걸 어떻게 알아 예수님을 너 본 적이 있어
라고 수많은 허다한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대답하기가 굉장히 난해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때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분께서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주셔서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주님을 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선생님과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와 같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 사시고 늘 매 순간
그리스도를 보고 있는 삶이 하나 되어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물어볼 때 야~ 사도 베드로 당신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어디 계시냐 우리에게 한번
보여줘봐 라고 말을 할 때 사도 베드로 선생님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주는 영으로 또 다른 보혜사로 우리 안에
내 안에 계시는데 너희는 그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분을 볼 수 있다.
나를 보는 것은 곧 너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 20절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닫힌 문을 통과 하여 들어오셔서 그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씀하신 후에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시니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여기 24절에 보면 12 제자 중에 한 명인 도마라 하는 제자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아까 요한복음 20장 20절에 제자들이 의문과 의혹을 가지고 나타나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 자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친히 보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기뻐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마라는 제자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친히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25절에서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님을 친히 보았다 라고 말을 할 때 내가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지 않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지 않고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으면 결코 내가 믿지 못하겠다 라고
요한복음 10장 25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로 주님께서 뭐라고 얘기하십니까? 요한복음 20장 29절
말씀입니다.그대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습니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었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사실상 베드로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베드로가 전하는
그 복음은 사실상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이었던 것입니다.이것을 아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을 갖는 일이 아주 필요합니다.
영이신 그리스도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시는 일은 실제적인 체험적인 일들이기 때문에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체험을 가진 자들만이 그 영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하여 생명주는 영으로서 변형되어 주셔서 또 다른 보혜사로 우리 안에 함께 사시고 있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임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보혜사 성령님이신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까?
우리 안에 사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까? 아니면 두 분이십니까 라는 이러한 질문을 우리가 간혹 받게 되는데요.
사실상 우리 안에 사시는 분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변형되어 주셔서 또 다른 보혜사로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 분이시지만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우리에게 임하셔서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영 하나님 이 세 분 하나님이 동시에 우리 안에 거하여 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모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은 바로 이와 같이 놀라운 복합적인 여러 과정들과 단계들을
거치셔서 우리에게 임하신 생명주는 영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임하신 이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오늘날 부활 안에 계신
바로 생명주는 영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 보면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라 라는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는데요.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안 자들만이 그리스도께서
부활이시고 그리고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생명주는 영으로서 부활 그 자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바로 부활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또 다른 보혜사이시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생명주는 그 영이신 그 그리스도는 부활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이러한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쫓아 행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갈라디아서 5장 16절과 25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5: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그 영을 따라 사는 자는 그 영을 따라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영을 따라 살고 영을 쫓아 행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영을 쫓아 행하여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온전히 사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온전히 사실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생명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의 씨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질그릇과 같은
바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담기 위한 그릇인 껍질이고 그분은
그 껍질 안에 주 내용물이며 주재이시며, 생명이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껍질 안에 있는 그러한 실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는 껍질이고 하나님은 그 껍질 안에 존재하는 실제이며 생명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껍질 안에 있는 주 내용물이요 주재인 생명이 온전히 살기 위해서는 껍질이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죠.
12: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죽을 때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살게하기 위하여 죽어야만 하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수가 있는 것은 하늘에 속한 아주 귀한 영적인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온전히 사시는 것 또한 부활의 문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려하여 라고 말씀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어 주신 부활 그 자체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부활의 권능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는 곧 생명주는 영이라는 것을 여러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주는 그 영이 부활의 실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과 영이신 그리스도와 생명주는 영은 실상은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간접적으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이신 그리스도와 생명주는 영은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만 부활이라는 것까지도 포함한
것이 하나라는 것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25절에 나는 부활이요 라고 마리아에게 말씀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리스도가 곧 부활입니다.
이 부활이 곧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변형되신 그분이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으로 나타나신 그 영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이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그 영, 그 영 안에는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다 함께 계십니다.
그 영이 부활의 실제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영을 쫓아 살고 그 영을 쫓아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영을 쫓아 행할 때 우리는 부활 안에서 행할 수가 있는데 바로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삶, 우리가 죽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우리 안에 사실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명주는 영으로 변형되신 생명주는 영이신 그 영으로 말미암아 행할 때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아계신 이 그리스도, 살아계신 이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것처럼
요한복음 5장 43절 말씀이죠.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영과 아들은 또한 한 분이십니다.
3:17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그래서 바로 영과 아들이 또한 한 분 하나임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 바로 또 다른
보혜사로 칭한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모든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정말 스무고개 하듯이 어렵고 난해한 말씀입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말씀만 제게 은헤가 됩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주님께서 부활의 영이 되셔서 지금 내안에 사시고 계신다는 것 나는 껍질이요 아무것도 아니며
주님께서 생명으로 내안에 주 내용물이 되셔야만 내가 무엇이 될수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안에서 나는 죽고 주님께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