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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시간의 개념은 우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시간이 흘렀다’보다 ‘때가 찼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하나님 편에서는 하루처럼 짧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한 뒤 다가오는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 너무 답답해합니다. 하루속히 기도 응답이 오기를 바라며 조급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꾸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처럼 이럴 때 하나님은 마치 “숨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아무리 기도해도 벅찬 삶의 문제는 그대로이고, 우리에게서 숨어 버린 것처럼 잠잠하신 하나님 앞에서 때로는 믿음이 의심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이런 우리 마음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계획하신 때를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 때가 차 오르면 주저 없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진멸하려고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벼랑 끝에 선 것처럼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에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이스라엘 전체를 뒤덮습니다.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나왔느냐고 모세를 원망하며 소리칩니다. 사방이 가로막혀 있던 그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
홍해가 갈라진 것은 한순간이 아니라 밤새도록 일어난 일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났다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인지 제대로 분간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빨리 갈라지지 않는 바다를 보며 원망하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애굽의 군대를 진멸하기 위하여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셨습니다. 백성들의 속이 타들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대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의 군대가 동시에 지나게 하시어, 홍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하시고 애굽의 군대는 진멸하셨습니다. 홍해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도구로, 애굽에게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순간에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보여 주시며,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심을 열방에 드러내셨습니다. 백성들의 조급함과 불안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완벽한 때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저의 장모님에게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제 아내와 장모님은 장인어른의 핍박 속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론 교회 가는 것도 막을 정도로 장인어른의 마음은 강퍅했습니다. 그런 핍박 속에서도 장모님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25년이 넘도록 남편을 위해 기도하셨고, 주께 하듯 순종하며 섬기셨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하나님께서 장모님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제가 장인어른께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가서 인사드렸던 바로 다음 날입니다. 장인어른이 아침에 일어나셔서 장모님께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찾아오셨다”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딱딱하고 강퍅한 장인어른의 마음의 문을 직접 부서뜨리고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장모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명절이면 오랫동안 드려왔던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장인어른은 직접 입술로 하나님을 주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과 때를 신뢰하며 '인내하는 성도들의 기다림'을 믿음으로 여기십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기도,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드린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김영광(성현교회 전도사, <하나님을 찾아서> 저자)
도저히 예배드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일 때
저는 20대의 절반 이상을 선교지에서 보내며 하나님께 젊음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 왔는데, 저희 가정에 갑작스레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아버지의 실수로 억대의 빚을 지게 되면서 화목했던 가정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깨어지니 집에 들어가는 것이 고통이었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배드릴 때마다 저의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던 감정은, 하나님을 향한 ‘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내가 헌신한 결과로 주께서 보답하신 것이 고통과 아픔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속이 상하고 아팠습니다. 게다가 그런 감정을 가진 채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설교를 할 때면, 제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이사야의 고백처럼 마치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과 같이, 성도의 간절한 외침에 침묵하시고 우리를 고난 가운데 머물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맞으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고, 찬양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더욱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기쁨과 평안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송축하는 성도의 믿음을, 주님께서는 더욱 귀하게 보십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11년간 사울에게 쫒기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 때에, 그는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눈물이 나는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드렸습니다. 광야에서 드린 다윗의 예배를, 주님께서는 기뻐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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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공지보기▶아픈 마음을 붙들고 가정을 위해 기도하던 어느 날, 주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가정을 사랑한다. 내 목숨보다 더 너희 가정을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에, 제 마음에 있던 모든 원망과 분노는 한순간에 녹아내렸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사랑하신다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과 마주하게 되면, 어떤 고통도 감당할 만한 것이 되고 하나님의 은총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능력이지요.
그로부터 몇 년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 그 기간 동안 부모님께서 아침마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귀한 은혜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둑 선수들은 경기 후 자신들이 놓았던 수를 다시 맞추어 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수가 넘는 돌들을 순서도 틀리지 않고 복기한다고 합니다. 그 비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 한 수도 의미 없이 놓은 것이 없기에 모두 기억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것은 잊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도 인생에 의미 없이 행하시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도가 겪는 아픔과 고통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도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속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 중에도 더욱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광(성현교회 전도사, <하나님을 찾아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