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사의 독서경영 - <그때 장자를 만났다>
<그때 장자를 만났다>에서 배우는 독서경영
저자 : 강상구, 출판사 : 흐름출판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장자》를 통해 나답게 사는 법과 자유롭게 사는 그리고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자》를 많은 사람들이 무위자연의 사상으로 ‘신선이 될 수 있는 책’ 쯤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자신만의 해석을 해 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답답한 세상에서 인위적인 틀에 사람들을 가두는 공자의 《논어》보다 자유로운 《장자》를 만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오늘날의 시사점을 서양의 고전과 비교를 해주고 있어서 흥미를 더하고 있는 책이다.
《장자》를 보면 집요하리만치 ‘공자 바보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仁)’과 ‘예(禮)’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꿈꾸는 공자를 두고 장자는 ‘되지도 않을 짓을 하느라 평생을 낭비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장자》가 공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장자》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무위’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단순히 산 속에 들어가 신선이 되라는 것으로 여기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개인의 변화”에 대하여 ‘내 안의 나 찾기’, ‘마음 비우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파도타기’ 등의 소주제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관계의 변화”에 대하여 ‘차이 존중하기’, ‘말 아닌 것으로 말하기’, ‘거울 되기’, ‘마음 주기’ 등의 소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3부에서는 “사회의 변화”라는 대주제로 ‘인정하고 공존하기’, ‘버림으로써 되찾기’. ‘세상에서 노닐기’라는 소주제를 통해 『장자』를 만나고 있다.
물 한 바가지를 붓는다고 바닷물이 넘치지 않는다.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억지로 바꾸려 든다고 바뀌지 않는다. 본성이 그렇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산속으로 들어가 도 닦고 신선 되라는 말이 아니다. 본성을 되찾자는 주장이다.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말이다. 억지로 상대를 바꾸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내 시선을 바꿔야 한다. 내 자리만 옮긴다면 머리카락만 뒤덮인 뒷모습 대신 눈부신 앞모습도 볼 수 있다. 내 시선을 바꾸는 노력, 내 자리를 옮기는 수고, 그게 오해를 풀고 편견을 깨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자의 가르침은 산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 <시작하며_헛똑똑이 인생, 장자를 만나다> 중에서
진실은 가까이에 잇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마치 발에 너무 잘 맞는 신발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미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 자꾸만 더 멋진 남의 신발만 탐을 낸다. 그게 더 눈에 잘 띄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면 내 발에 이미 너무나도 잘 맞는 신발이 신겨져 있다. 중요한 건 내 신발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 <마음 비우기_신발이 맞으면 발을 잊는다> 중에서
장자가 말하는 무위는 이런 한 쩨쩨한 통치술이 아니다. 상황을 통제하겠다는 마음마저 버리고, 결과를 예단하는 마음도 버리고, 그냥 상황에 얽힌 사람들을 믿고, 그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게 무위가. “이미 그러고도 그렇게 딘 것마저 알지 못하는 것이 도(已而不知其 然謂之道_재물론)”라고 했다. 결과는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 <파도타기_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중에서
금과옥조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들을 준비가안 돼 있으면 말장 헛일이다. 발 없는 사람에게 선물이랍시고 신발을 건네는 건, 잘 지내보자는 뜻인지 원수지자는 뜻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박사학위자가 대학 강의를 하는 건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만큼, 그러면서 상대가 필요한 만큼,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줘야 한다.
내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내 마음이 이미 차있으니 상대의 말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내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내 말을 전할 수 있다. 대화의 시작은 재주가 아니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 <말 아닌 것으로 말하기_말은 들어야 완성된다> 중에서
흔히 진정한 우정을 말할 때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아가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소리에서 산을 느꼈고, 강을 생각하며 타면 강을 느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 이상 자기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며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
복에 겨운 백아가 기고만장했다. 종자기가 좋은 친구인 이유는 백아의 소리를 그저 그대로 들어준 때문이다. 산을 느끼고 강을 느끼고는 다음 문제다. 산과 강은커녕 거문고 소리가 그저 소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들어주는 것, 그게 친구의 역할이다.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인내심일지 모른다. - <마음 주기_우정에 대하여> 중에서
장자가 산중을 지나다가큰 나무를 봤다. 마침 나무꾼도 지나갔지만 그 나무를 본테만체했다. 어째서 베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쓸모가 없다’고 답했다. 장자는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년을 마치는구나.”
산에서 내려와 어느 집에서 묵었다. 주인은 장자를 대접하겠다며 하인에게 닭을 잡게 했다. “잘 우는 놈을 잡을까요, 잘 못 우는 놈을 잡을까요?” 주인이 말했다. “잘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제자들이 장자에게물었다. “나무는 슬모가없어 천년을 살았고, 닭은 쓸모가 없어서 일찍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장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중간에나 처해볼까? 하지만 중간이라는 건, 그럴 듯해 보이지만 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無肯專爲). 어찌 언제나 일정할 수 있겠느냐?” - <버림으로써 되찾기_중간에나 처해볼까>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전국시대 사람인 장자는 전쟁이 일상이던 세상을 살았다. ‘죽음’을 현실로 살면서 ‘행복’을 꿈꿨다. 그런 장자가 말한 “무위”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단순히 산속에 들어가 도 닦고 신선 되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 그러하듯,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동시에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즉,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함께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흔히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한다. ‘이분법’ 또는 ‘흑백논리’가 그 중심이다. 이런 게 하나의 폭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만 옳다’는 폭력으로 가득 판 세상이 바로 오늘날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만 옳다면,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틀린 게 되고 만다. 과연 다른 사람이 가는 길 틀린 것일까?
절대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절대 악에 빠지기 쉽다. 절대 선은 절대 악을 잉태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우리는 2500여 년 전의 사상들을 통해 우리 자신, 아니 나 자신의 모습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사상에서 얻을 것이 있고, 장자의 사상에서 역시 얻을 것이 있는 것이다. 물론 노자를 비롯한 다른 선현들의 사상에서도 많을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시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철학을 오늘 장자에서 만나보면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