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택배
변상구
오전에 방바닥을 긁어내고 오후에는 고려엉겅퀴를 꺾었다. 고려엉겅퀴는 곤드레나물을 말한다. 산나물이 지천인 강원도에는 표준어가 아니 비표준어를 쓴다. 이것 또한 아이러니다. 술 취해 곤드레만드레할 때나 쓰는 곤드레와 글자의 조합이 같다. 혹여, 조탁의 변용일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집수리로 그럴만한 시간도 없거니와 예정에도 없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고, 하루의 일정표도 소용이 없는 게 산중생활이다. 험한 산길에서 바위 언덕을 만난 것처럼 이 일을 하다가도 저 일을 해야 하고,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것들로 하루를 보낸다.
가령 방구들을 걷어내려 장갑을 찾다가 괭이를 메고 있다던가,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려다가 처마 밑에 풀을 보면 그것부터 뽑아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습기가 많은 창고에 녹슬고 있는 공구나 물건들이 보이면 그것도 닦고 말리는 게 우선이다. 혼자 살림에 우선순위는 무의미하다. 부지런함이 최선이라 여긴다.
눈앞에 할 일이 쌓여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보이면 해야 하고 하고나면 깨끗하다. 잠깐이면 될 것 같은 일들이 몇 시간 혹은 종일이 되기도 한다. 도시도 그렇지만 시골은 손이 안 가면 안 되는 것들이다. 그날그날 일에 파묻혀 있다 보면 해는 지고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인다. 혼자 손이라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족족, 급한 것부터 그때그때 하는 것도 시골 생활의 재미다.
어제는 광복절 대체공휴일이다. 산간벽지에서 대체공휴일은 무의미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큰 동생이 왔다. 가끔씩 들려 일손을 도와준다. 형제들은 일찍이 부모님 품에서 독립했다. 다들 도시로 나가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 다시 산골로 돌아왔다. 순리에 역행하는 바람처럼.
지금은 폐가 수준이지만 그때는 가족들의 보금자리다. 볼품없이 망가지긴 했어도 내가 태어난 집이고 고향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나의 집이기에 돌아와야 했다. 결정 단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장남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겼다.
내가 부산을 떠나올 때 누님과 통화했다. 같은 도시의 같은 시민으로서 마지막 통화였다. 산골 아이가 도시의 시민이 되기까지 도움을 받고 힘이 되었던 누님이다. 낯선 환경에서 정착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하루 부딪히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했고, 지금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었다.
이삿날 새벽이다. 휴대폰이 울려서 받고 보니 누님이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전화였다. 새벽까지 짐을 챙긴 나는 막 잠이 들었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 시간까지 잠들지 않았는지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동생의 귀향을 걱정하고 계셨다. 나는 이삿짐 차에다가 마지막 짐을 실어놓고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 누님 쪽에서 울먹이는 음성이 들렸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통화를 이어갔다. 부산에 정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지난 오월은 그렇게 내 인생의 변화였다. 회오리바람처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회색빛 빌딩과 아스팔트길에서 가시덩굴이 난무한 산중으로의 귀촌을 선택했다. 수십 년간 비워놓은 초막은 은둔 생활과 마찬가지다.
지붕은 쓸 만해도 내부는 썩고 기울고 흙벽은 흘러내렸다. 포장된 이삿짐을 박스째 내려놓고 두 계절이 되었다. 오자마자 집수리를 생각했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다. 몸은 험한 돌밭에 가 있고 마음은 집수리에 몰두한다. 워낙 오지여서 자재 구입이 쉽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내 집 앞마당에 전주가 세워졌고 인터넷이 연결됐다.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깨밭을 정리하고 깻잎을 땄다. 깻잎을 따서 모은 양이 제법이다. 한 잎 한 잎 가려서 묶음으로 만들었다. 반찬으로 쓰기 위해 소금물에 절였다. 그것 부산에 있는 누님께 보내려고 한다. 도시민으로 살아온 동생이 귀촌해서 갓 지은 농산물이다. 거기에다 산나물도 꺾었다. 산 들머리에 곤드레나물 재배지가 있다. 말은 재배지라 하지만 씨만 뿌려놓고 가꾸지 못한 언덕진 밭이다. 누가 보면 자연산 나물로 착각할 정도로 풀이 많다.
뜨거운 햇살에도 나물을 꺾는다. 비 온 뒤라 잎이 싱싱하고 대궁이가 탐스럽게 굵다. 채취한 나물과 호박잎, 토종 오이도 따 넣었다. 굵은 풋고추와 대파도 넣었더니 박스로 한가득이다. 택배 마감은 오후 4시까지다. 그 시간까지 우체국에 도달해야 한다. 우체국은 차로 십여 분 가야하는 시골 우체국이다. 커다란 트럭에 채소가 담긴 박스를 싣는다. 덜덜거리는 험로를 따라 우체국에 도착했다. 두 명의 직원뿐인 우체국 저울에다 박스를 올려놓고 요금을 지불한다.
이제 택배는 끝이 났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받아볼 수 있다.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을 꺼낸다. 부산을 떠나올 때 그때처럼 울먹임은 없다. 종이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땀 흘린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