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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한자만 나오면 ‘자아분열 (1)
출처 : 한겨레21, 「박노자의 동아시아 근현대 탐험 」 631호( 2006.10.20)
한글만이 공식언어인 국가의 한쪽에서 한문이 문화 자본으로 대물림되는 현실… 해방 후 이승만·박정희의 한글 전용 밀어붙이기는 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나
▣ 박노자(朴露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이며 대표적인 진보학자로서 한국사회 관련 십여권의 저서가 있다. 편집자가 그의 책과 글을 볼 때 그는 한국사회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급진적이면서도 냉철하게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한글전용을 주창해온
진보주의자들이야말로 이 글을 새겨보아야 한다.
약 10년 전에 필자의 한 지인이 자신의 갓난아이에게 순 한글 이름을 지어준 일이 있었다. 그에게 “한자 이름을 지을까, 순 한글 이름을 지을까 고민을 많이 하셨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한자 이름? 요즘 그런 이름을 아이에게 주면 매국노 소리밖에 들을 것 또 있나?” 그 자신도 일본어를 필요로 하는 업무상 한자를 잘 알았고, 또 지금은 순 한글 이름을 가진 아들에게 사적으로 한자를 가르치게 하고 있기도 하다.
<사진 설명 : 방과후 교실에서든 방학 때 각종 문화센터에서든 한자를 배우려는 초등생들은 많다. 학부모의 70~80%가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교과목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
말하자면, 현실상 한자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당위적으로 ‘중국글’에 대해서 적당한 배타심 역시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한자를 보는 우리의 이율배반적 시각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순한문투의 ‘순 우리말 신문’
한편으로는 1998~2005년에 한자검정능력시험의 응시자 수가 3만5천 명에서 100만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한국 상류층과 중상층 상부에게 요즘 한자란 영어와 마찬가지로 자녀 조기교육의 필수항목이 됐다. 또 한편으로는 원칙상 여전히 ‘국문’이 한글 전용을 뜻하는 것이고, 공교육 체계에서 한문 교육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돼 있다.
<사진설명 : 방학이면 각종 문화센터는 한자를 배우려는 초등학생들로 넘쳐난다. 서울 강서문화예술회관의 ‘청소년 한문, 예절 교실’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강사로부터 한자를 배우고 있다. (사진/ 연합 하사헌 기자)>
우리에게 한글날이 있지만, 원효부터 20세기의 다석 유영모(1890~1981)까지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의 철학 사상이 한문 없이 이해될 수 없음에도 ‘한문 문화의 날’을 제정하자는 제안을 내놓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아 분열이라 할까? 한국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자녀만큼은 당연히 돈을 들여 한문 솜씨라는 문화 자본이 대물림되게끔 하지만, 공식 담론상으로는 오로지 ‘국문’만이 국민 공동체의 공식 언어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피지배자들의 공교육을 통한 충분한 한문 익히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당시 조선 평민들은 <독립신문>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서재필(위쪽)은 말과 글이 같은 미국의 신문에서 <독립신문>의 시사점을 얻었다.
한문 문제에서는 근대 한국 지배자들의 선언과 그들도 잘 알고 있던 언어생활의 현실은 늘 달랐다. 우리가 통상
<독립신문>을 ‘최초의 순 우리말 신문’이라고 보지 않는가? 말과 글이 서로 같은 미국의 신문에서 시사점을 얻은 서재필이 언문일치의 당위대로 <독립신문>에서 한자를 배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신문이 한문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예문을 감상해보시기를.
“강한 군사 되는 근본은 첫째는 죽는 것을 두려워 아니하고 쇄골분신되더라도 도적들에게 쫓겨 (…) 도망질 아니하는 것이라 (…) 만일 한 동관이 경계 없는 일을 행하거든 이 동관을 조용히 불러 이치를 따져 말을 하여 효유해주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상관에게 말하여 군중 법률로 다스리게 하는 것이 옳다.”(‘논설’, 1896년 7월9일)
‘쇄골분신’(碎骨粉身·자진해 자신을 희생시킴), ‘효유’(曉諭·깨닫도록 일러줌)와 같은 구식 한문 표현들이나, 일본 계통의 ‘동관’(同官), ‘법률’과 같은 단어들을 순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그 구성 한자의 의미를 몰랐던 다수의 조선 평민들이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재필이 희망했던 언문일치를 그 당시의 조선에서 제대로 실현하자면, 조선인 다수에게 생소했던 한문 계통의 단어를 좀더 친숙한 순 조선어 단어로 바꿔서 쓰거나, 65% 이상의 아이들이 소학교에 다니고 있던 당시의 일본처럼 다수의 조선인에게 기초 한자를 익히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일만큼의 교육 발달도 당장 이루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자 계통의 고등 어휘를 ‘순 조선화’할 수도 없었던 서재필과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국문’을 외쳐봐야 결국 한자어를 한글로 적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한자 폐지안, 일본에선 좌절되다
재미있게도, 대한제국 시기 초기의 <독립신문>보다 1907~10년 <대한매일신보>의 국문판이 훨씬 더 한문투에 옭매여 있었다. 물론 한글 전용 신문의 출현이 새로운 문명의 도입과 시민 공동체 만들기에 하나의 디딤돌이 됐지만, 그 신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문 지식이 어차피 절실히 필요했기에 개화기·식민지 시기 동안 한문 서당에 다니는 인구는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언문일치의 이념만 가지고는, 전통 사회의 고등 어휘를 담당했던 한자가 근대적 개념의 동아시아적 소화의 기능을 맡게 되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었다.
당시 조선 평민들은 <독립신문>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서재필은 말과 글이 같은 미국의 신문에서 <독립신문>의 시사점을 얻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봉건적이며 비과학적인’ 한자의 씨를 한·일 양국에서 말리겠다는 미국인들이 남한을 통치하게 됐다.
미 군정청의 학무국은 최현배(1894~1970) 선생과 같은 기독교 계통의 한글 전용론자를 상당수 기용해 그들에게 언어정책을 맡겼다. 미군정 시기에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먼저 발표된 뒤 이승만 정권이 1948년 10월9일 한글날에 ‘한글 전용법’을 공포해 미군정의 조치를 재확인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군의 점령하에 있던 일본에서도 추진됐다가 지식인의 저항에 부딪쳐 좌절된 ‘한자 폐지안’이 남한에서는 성공한 셈이다.
문제는 역시 이념에 복종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1950년대 내내 이승만 정권의 내각에서 한글 전용에 관한 각종 실천요강들을 채택해 공포했지만 1950년대 말에도 신문 지상 전체 문자의 약 38%에 달하는 한자 사용 빈도는 실제로는 식민지 말기에 비해 전혀 줄지도 않았다. 원칙상은 모두 쉬운 한글을 쓰는 평등한 ‘국민’이 됐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화생활을 영위하려는 이들은 각급 학교의 필수 한자 교육 이상의 한문 교육을 사적으로 받아야 했다.
1970년부터 호적과 민원서류를 한글화하고 한자 간판에 대해서까지 단속을 벌이는 등 병영국가 지향의 박정희 정권이 이승만에 비해 ‘언어 국민화’ 정책을 더 강경하게 밀고 나갔지만,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박정희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충효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라도 한자의 이해가 필요했던데다 ‘경제 기적’의 비결 중 하나가 대일 수출입과 기술제휴였기에 일본어 학습을 위해서도 한자가 절실했다.
결국 학교에서 일본어가 제2외국어로 등장한 1972~73년부터 필수과목으로서의 한문교과가 국어과목에서 독립되어 신설됐다. ‘국적이 있는 교육’에 대한 열이 식어 한문이 영어 등에 밀려 선택과목이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지만, 모든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엘리트 전문가 집단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적으로라도 한자 실력을 닦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글 전용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동안 일본을 통해 수입해온 한자 어휘를 다 없앨 수 없지 않는가?
한문 교육 의무화가 낫지 않나
어떤 특정 이념이 국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추진하는 일관적인 정책에 뒷받침되면 현실의 일부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1970년대 이후 국가의 한글 전용 정책과 한글 전용을 지향했던 민주화 운동의 노력의 결과는, 신문 등 매체의 언어는 일반적 학력의 소유자가 한자 없이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만큼 한글 전용 형태로 정형화됐다. 그런데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자 교육에 대한 넓은 의미의 사회적 필요성은 오히려 증대했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주의적 이념의 허상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이 필요성을 솔직히 인정해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을 필수화하고 대폭 강화하는 공교육 내실화 정책을 통해 빈부격차가 한자 실력의 차이로 연결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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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허만길, <한국 현대 국어 정책 연구>, 국학자료원, 1994.
2. 최현배, <한글만 쓰기의 주장>, 정음사, 1970.
3. 히다 요시후미(飛田良文), ‘일본에서의 한자 문제’, <새 국어생활> 제1권 제4호, 88~102쪽, 1991.
4. 채백, <한국 근대신문 형성과정에 있어서의 일본의 역할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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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포기할 수 있을까 (2)
출처 : 한겨레21, 630호( 2006.10.13)
한자는 유럽 언어들에서 보기 드문 언어의 압축력을 만들어내는 ‘지혜의 건전지’…
언어는 ‘섞임’의 토양서 자라는 것, 순 우리말 고집은 ‘대인기피증’ 같아
몇 년 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관련의 한 학회에서 한자를 “서양인 등 한자문화권 외부인들의 한국어 학습의 장벽 중 하나”로 꼽은 한 국내 학자의 발표를 들은 일이 있었다. 이 의견이 국내 학계에서 거의 통설인 듯한데, 내 경험으로 봐서는 그렇게만 보기 힘들다. 이것이 외국어 학습의 변증법이라 할까?
최악의 걸림돌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좋은 학습 방법을 쓰면 바로 최고의 디딤돌이 된다는 법. 한국어를 전공하지 않는 학습자들에게 한자 학습이 추가 부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한자를 배울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진 전공자 같으면, 초기의 진입장벽, 즉 어려운 습자 과정이라는 산맥만 넘으면 그야말로 시원한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진다.
‘표적수사’를 러시아어로 바꾸면?
많은 한자어들이 유럽 언어들에서 보기 드문 의미의 압축성을 과시한다. 예컨대 ‘일조권’(日照權)과 같은 의미의 표현을 영어로 지어보시라. 직역하자면 ‘햇빛을 누릴 권리’ 같은 설명식의 표현이 되는데, 한국어 능통자가 긴 설명 없이 이 의미를 석 자의 한자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누가 봐도 부러운 일이 아닌가?
내 모국어인 러시아어 같으면, ‘일조권’을 의역하는 데 적어도 4~5개의 단어가 필요하다. ‘일조권’과 같은 의미의 표현은 유럽 언어들에서도 하나의 관용구가 될 수 있지만, ‘표적 수사’나 ‘친인척 비리’ 정도면 아예 따로 문장을 지어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표적 수사’의 러어 의역을 한국어로 다시 직역해보면 ‘수사의 주체 내지 감독자가 특별히 경계하거나 혐오하는 대상자가 표적이 되어 불공평하게 진행되는 수사’쯤 될 것인가?
어쨌든 학생 때 나는 이런 압축적 표현력을 가진 한겵?일의 언어가 끝없이 부럽기만 했다. 약 7년 전 국내의 한 전문 번역자 양성기관에 출강했을 때 ‘지식기반 사회’의 러어 번역어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영어 같으면 준비된 번역어가 있지만, 이 간단한 여섯 글자의 한자 표현을 러어로 좀 어색하고 장황한 문어로 의역해야 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한자어들을 익히면서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정리할 수도 있구나!” 하고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학생으로서 나의 진정한 사랑은 고사성어였다. 나에게 넉 자짜리의 고사성어는 거의 한 권의 책과 맞바꿀 수 있는 지혜의 무게를 지니는 것 같았다.
예컨대 지금도 동아시아 종교사 수업 때면 불교의 방편론을 설명하려고 늘 칠판에 쓰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을 들어보자. 이 간단한 표현 하나를 머리에 떠올려 계속 반추하고 명상을 해보면,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면서도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는 처세법을 다 터득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세서를 사느라 돈 쓸 일도 없이. 나는 이 표현을 접하면 꼭 남의 말에 잘 응대해 이 고사의 유래가 된 제나라 재상 안평중(晏平仲)에게서 개인적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고마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일일삼성(一日三省), 하루에 세 번 자신을 재점검하는 것이 좋다는 가르침대로 하루에 몇 번씩 각종 고사성어를 떠올리면서 내가 이 부류에 해당되지 않는지 생각해본다. 눈이 높아봤자 재주가 따르지 않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안고수비(眼高手卑) 아닌가, 자신의 밭에 물을 대듯이 이미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논증 과정을 편의적으로 하는 아전인수 (我田引水) 격이 아닌가?
러시어에도 어떤 유럽 언어에도 없는 이 ‘지혜의 건전지’ 없이 내가 과연 살 수 있었을까 가끔 궁금하기도 하고. 물론 고사성어를 모르고 사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럭저럭 살아갔겠지만, ‘임기응변’의 의미를 한 번도 고심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왠지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한글 통해 한자·한문·일본어까지 익혀
하이퍼텍스트인 인터넷에서는 한 사이트의 가치가 다른 사이트와 링크가 얼마나 잘되는지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언어 공부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습 대상으로서 특정 언어의 가치는, 그 언어가 다른 언어의 연속 학습의 디딤돌이 어느 정도 돼줄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돼 있다. 나에게 한글의 가치는 한글 공부 그 자체에도 있었지만, 한글을 통해 한자, 한문 그리고- ‘한자 코드’를 통해- 초급 일본어까지 익힐 수 있는 데에 있었다.
말하자면 한자 문화권 바깥에서 이 한자 문화권 안으로 틈입한 자인 나로서는 배우기 쉬운 과학적·체계적기호 체계로서의 한글이란 바로 난삽한 한문·일본식 국한문 혼용 표기 세계로 가는 첩경이기도 하다.
△ 사진설명 : “한자는 ‘남의 글’일 뿐일까?” 지난 8월 충북 충주 탄금호에서 열린 호수축제 기간 동안 도내 대표 서예가 125명이 천자문 합작 휘호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 박일 기자)
나는 지금도 중국의 고전 한시까지 습관적으로 한글로 표기해 한국식 발음으로 읊고, 현재 체류하고 있는 후쿠오카의 간판이나 식당 메뉴판들까지도 한국어 한자어 지식을 총동원해 어렵게 판독하다시피 한다. 나는 한국어 속의 한자어를 익혔기에 일본어를 따로 배울 일도 없이 “요야쿠가 무료데스”를 들으면 예약이 무료인 줄로 당장 눈치챌 수 있다.
과연 ‘토종 한국인’들도 한자를 ‘국어 속의 이질적인 요소’ ‘남의 글’로 배척하기만 해야 하는가? 대중적인 글에서 한자를 남용할 일은 없지만, 국내 인구보다 30배나 많은 이웃 나라들의 인구에게 통하는 ‘코드’가 이미 우리 언어 속에 내재돼 있다는 것을 굳이 나쁘게만 볼 일인가?
메이지 시대 초기의 마에지마 히소카(前島密)처럼 한자를 아예 폐기처분해 ‘언문일치’의 완전을 기하자는 일본의 근대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나, 그들 후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판단되는 한국의 외솔 최현배 선생 등 언어 국수주의자들이 한자를 ‘남의 글’로 규정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의 경우 아마도 이미 고조선 시기에 이용됐을 법한 한자를 ‘남의 글’로 본다는 것은, 불교를 ‘외래 종교’라 규정해 1868~72년 불교 사찰을 파괴하고 승려를 강제 환속시켰던 메이지 시대 초기의 신도(神道) 국수주의자들의 사유 방법이나, 기독교를 “독일 민족에 이질적인 유대인들의 종교”로 생각했던 히틀러의 사고방식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이두도 아닌 순수 한문만 쓴데다 그 저술에서 ‘신라’라는 자신의 국가 명칭을 겨우 몇 번만 썼을 뿐 주로 ‘국적이 없는’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했던 원효를 ‘우리’ 지성사에서 빼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진정한 ‘남의 말’이라 하더라도, 그 사용을 굳이 그렇게까지 꺼릴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우리에게는 예컨대 일본어나 영어에서 온 차용어들이 제국주의 침략과 연상돼서 불쾌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언어 제국주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단어들에 과연 꼭 명확한 ‘국적’이 있는가?
△사진설명 : 한글날을 맞아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외국인 한글 백일장에 참가한 이들이 글쓰기에 한창이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자는 최대의 걸림돌이자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사진/ 연합)
한 유명한 국수주의적 언어학자가 ‘커피’라는 ‘외국말’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하여 ‘미국 차’라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역시 ‘순 우리말’이 아닌- 표현을 써왔다고 하는데, ‘커피’에다 과연 ‘미국’이라는 꼬리표를 꼭 달아야 하는가? 커피 원두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은 에티오피아고, 그 원두가 잘 자라는 한 계곡의 이름이 나중에 아랍어 ‘Qah’wa ’(중독성이 있는 음료)의 유래가 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 언어의 ‘커피’와 같은 단어는, 터키어를 매개로 하여 그 아랍어 단어를 기반으로 한다. 그 정도의 계보를 가진 단어라면 ‘미제 침략의 언어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공유해도 좋을 세계사의 일부분이 아닌가? ‘남의 말’이 만약 모두 ‘침투’라면 바깥 세계에서도 ‘태권도’와 같은 한국어 차용어를 서둘러 그쪽의 ‘순 우리말’로 ‘순화’해야 하는가?
단어들에 꼭 명확한 국적이 있는가
음과 양의 합침이 우주 만물을 만들고 두 사람의 합침이 가족을 만들고 수많은 방언과 영향들의 합침과 스며듦이 언어를 만들어 발전시킨다. 사람이 외부인들과의 ‘소통’ 속에서 성장하듯 언어도 외부와의 ‘섞임’을 토양 삼아 자란다. 외부와의 접촉을 지나치게 꺼리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대인기피증’이라고 진단한다. 솔직히 말하면, ‘순 우리말’을 고집하시는 분들을 보면 꼭 떠오르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