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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7일 성탄절 후 둘째, 신년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8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6:9-17절(신405)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
오늘이 2024년 신년 주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장로교 신학은 언약(계약)신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실 일에 대하여 예측(예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방의 신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약에 따라 우리에게 행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자이며(갈4:26), 아브라함 언약에 따라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갈4:28). 이는 우리를 대표하신 어린 양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구약에서 예언한 ‘여호와의 날(종말)’을 그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 강림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이미 성취하셨고,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여호와의 최후 심판’(12-17)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영원히 자유자가 되었고,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인 새 언약(복음)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을 매일 예언하시고,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항상 고백하시면서 2024년의 새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언약의 관점에서 처음 네 개의 인의 환상(6:1-8)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린 양이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창조(율법) 언약을 종말론적으로 성취하신 복음을 거절하는 세상, 즉 이미 하나님 심판 아래에 있는 세상(창3장)에 그의 최후 심판의 예표로 ‘네 마리 말과 그 기수’를 재림의 때까지 계속 보내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9-17)은 어린 양이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일어난 환상입니다. 앞의 네 인은 부분적이어서 피할 수도 있지만, 이것들은 관련된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다섯째 인은 하늘의 제단 아래에 있는 죽임당한 영혼들의 환상입니다. 그들의 기도 응답인 여섯째 인은 어린 양의 최후 심판의 환상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다섯째와 여섯째 인의 환상을 살펴보면서 그의 새 언약(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더욱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1. 다섯째 인입니다(9-11).
어린 양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광경입니다. 이번에는 네 생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여기서 ‘제단’은 희생 제사를 드리는 동으로 만든 제단(레4:18)이 아니라, 지성소에 가장 가까이 있는, 향을 피우는 금 제단일 것입니다(8:3).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제단입니다(9:13). 그러므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라는 것은 그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아직 부활의 몸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과 어린 양과 함께 하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실제로 죽임을 당한 사람(순교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도 가리킵니다. 이는 ‘죽임을 당한 영혼들’(9)이 ‘땅에 거하는 자들’(10)과 대조되며, ‘잠시 동안 쉬라’(11)는 하나님의 위로가 ‘그들’(9)만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죽은 자들’(14:13)인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베드로와 같이 실제 순교자들뿐만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이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를 포함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어린 양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미 최후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된 우리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롬8:1). 그러므로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자, 그리고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인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 병으로 아픈 것, 여러 사고를 경험하는 것, 심지어 죽는 것까지도 죽임당한 어린 양과 같이 의인으로서 소위 부당하게 당하는 것입니다(골1:24). 이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우리(정체성)의 모습(상징)은 사자가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 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린 양의 증인들’입니다. 행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들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증인(마르튀스)’은 그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라는 의미인데,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증인(마르튀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왜요?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6:2)가 아니라, ‘죽임(고난)당함’(9)을 인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의 증거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후4:7-12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처럼 우리의 고난(죽임당함)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납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그의 부활 생명(그의 증거)은 다른 사람 안에서 역사하여 믿음의 자녀를 낳게 합니다(사54:1). 이것이 새 언약의 현재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서 어린 양과 함께 고난과 죽임을 당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육체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그와 함께 죽임(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롬8:17-18).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9)이 큰 기도로 기도합니다(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여기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의 증거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핍박하는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그들의 기도에서 ‘거룩하고 참되신 이’는 ‘대주재(주님)’와 동격입니다. 이 이중 호칭은 그들의 기도에 새 언약에 따라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참되신 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사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악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그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 즉 그들의 억울한 고난과 죽임당함에 대하여 새 언약에 따라 영광의 면류관(구원)으로 신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2:7,10,17,26-28. 3:5,12, 21).
거룩하고 참되신 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첫째로 그분께서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응답하십니다(11a). 여기서 ‘흰 두루마기’는 그들 기도의 요구가 정당하며, 새 언약에 따라 기도 응답을 보증하는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이 각각 받은 의롭다 함(칭의)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그분께서 그들의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에 대답하십니다(11b).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여기 ‘잠시 동안’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짧은 시간이나 인간의 관점으로는 매우 긴 시간일 수 있습니다(벧후3:8-10). 그리고 ‘그 수가 차기까지(플레로도신)’는 수동태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순교자의 수’가 아니라 ‘구원을 받을 자의 수’(7:4, 9)가 ‘채워지기까지(완성되기까지)’입니다.
이것은 그들(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구원을 받은 자들의 수가 채워지기까지 하늘에서 잠시 쉬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교 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새 언약에 따라 어린 양의 부활 생명이 현재 죽임을 당하는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기를 기도하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한 최후 심판을 통하여 새 언약에 따른 영광의 구원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탄식하는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복음)대로 됩니다.
2. 여섯째 인입니다(12-17).
어린 양이 여섯째 인을 떼신 것은 ‘제단 아래에 있는 죽임당한 영혼들의 기도’(10)의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환상은 최후의 심판일 것입니다. 이것은 최후 심판의 현상(12-14)과 그 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15-17)로 나뉩니다.
먼저, 최후 심판의 현상입니다(12-14).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이것은 구약 예언인 ‘여호와의 날(종말)’(욜2:30-31, 암5:18, 사34:1-4, 겔32:6-8, 슥14:1 등등)의 성취에 대한 묘사입니다. 특징을 요약하면, 1) 큰 지진이 나며 2) 해가 검어지고 3) 달 전체가 핏빛으로 변하며 4)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5)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말려서 사라져 가고 6) 산들과 7) 섬들이 제자리에서 옮겨집니다. 즉 일곱 개의 피조물, 즉 모든 만물이 완전하게 받을 최후 심판의 현상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마24:29-30절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많은 모습(9:13-21, 11:15-19, 16:18-19, 19:17-21, 20:7-15, 21:1) 중에 하나의 묘사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이런 최후 심판의 환상들은 요한이 받은 순서대로 반복하여 기록한 것이지,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최후의 심판(여호와의 날)’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째 인의 환상이 어린 양의 죽음, 부활, 그리고 그의 성령 강림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동안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으며(12), 지진이 일어났습니다(12). 마27:45-51절입니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했을 때, 베드로와 열한 사도는 요엘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행2:15-20절입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구약의 ‘여호와의 날(종말)’의 최후 심판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성취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모든 피조물과 땅의 모든 사람에게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성취될 것입니다.
이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땅의 사람들 반응입니다(15-17)
그때 땅의 모든 사람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을 것입니다(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여기서도 땅의 일곱 계층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땅의 임금들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 이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의 권력이나 부나 지위는 최후의 심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큰 공포에서 기도할 것입니다(16-17).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왜냐하면)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나 어린 양이 아니라 우상으로 섬기는 산들과 바위들에게 기도합니다. 산들과 바위들이 그들 위에 떨어져 죽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에서 그들이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의 소원대로 죽었다고 해도 그들은 이 진노의 최후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죽은 그들이 부활하여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이 진노의 심판을 받아 불못(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20:11-15).
그때에야 그들은 그들에 대한 최후 심판을 알게 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17). “(왜냐하면) 그들의 진노의 큰 날(여호와의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기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 양(16)을 가리킵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그들의 부가 의문문은 아무도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의 최후 심판을 피할 수도 없다는 절망의 탄식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의 절망적인 질문과 탄식과 달리 그 심판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어린 양이 일곱째 인을 떼기 전에 나오는 7장의 두 막간의 장면에서 설명합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성도 여러분, 다섯째와 여섯째 인의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우리의 세상에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17)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 날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최후 심판의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영광의 구원, 최후 승리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날을 위해서 하늘의 성도들과 함께 새 언약에 따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 양과 함께 세상에서 고난과 죽임을 당할 때 그의 부활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기(고후4:7-12)를 새 언약에 따라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같이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10)는 새 언약의 축복을 불신의 세상에 강력하게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죽도록 우리 주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2:10). 이는 천지가 흔들려도 살아계신 어린 양이 그와 함께 있는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새 언약대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180장과 공동의회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