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사역자 정경주 사모 간증- "기도만 했는데 주신 직장"
삶의 고비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덕에 멋지게 승리한 드라마 같은 정경주 사모의 인생이야기다.
1996년 4월 미국에서 신학대학원 졸업을 한 달 쯤 앞두고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국제전화를 받았다.
"정경주 사모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저는 숙명여자대학교 이경숙 총장입니다."
나는 전화 받을 당시만해도 '이경숙'이란 이름 석자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내 귓가를 울리는 음성은 따뜻했고, 기대 이상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정경주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세벽기도를 할 때마다 이상하게 '정경주'란 이름 석자가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 이 사람 잘 알지 못하는데 왜 자꾸 생각나게 하세요하고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정경주 사모를 숙명여대에 불러 학원사역에 동참시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경숙 총장님은 숙명여대가 기독교학교는 아닐지라도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기 한 몸을 산제사로 드리려고 총장으로 온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정경주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을 함부러 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어요. 영어를 잘하셔서 미국 법원에서 지정 통역사로 일하신다고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사모님을 영문과로 모셔서 영어도 가르치고 복음도 전하면 좋겠다는 확신을 주셔서 전화했어요."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 두고 있던 내게는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있었다.
그 무렵 한국인 목사님들과 학교에서 마주할 기회가 더러 있었다.
"정 전도사님, 졸업하시면 뭐하실 겁니까."
"한국에 나가 사역할 생각이에요."
"무슨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계획은 없어요. 그저 기도만 하고 있을 따름이죠.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있는데 그 각각의 항목이 전부 파란불이면 저는 어디라도 갈 생각이에요."
"아이고 참, 정 전도사님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요. 한국에는 지금 외국 석박사가 발에 차일 정도로 넘쳐요. 교회로 학교로 사역자리 구하려고 이력서 쓰기 바쁜 박사가 넘친다고요. 자리가 없어 노동판에 가서 막노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도사님 너무 태만한 것 아닙니까."
내가 믿고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었다.
나를 만드시고 내 인생에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을. 그 분께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기도제목은 이랬다.
1. 한국에 돌아가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역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2. 저의 은사에 맞는 사역과 여태까지 경험했던 일과 무관하지 않은 사역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3. 두 아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제 품을 떠나기까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4. 교통문제로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집에서 가까운 사역지를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그 목사님들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저보다 앞서가서 제 앞길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에게 꼭 적합한 사역지를 마련하고 기다리실 줄 믿습니다."
그날 나는 목사님들께 세상 물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맹꽁이 같은 여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이경숙 총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네 가지 기도제목도 다 파란불이었다.
1980년 결혼 후 늘 여성사역을 해왔던 나는 여성사역과 1대 1 전도에 은사가 있다고 확신했다.
학교에서 사역하게 되면 주말과 방학에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충분하고 남편 목사님이 사역하는 곳에서 제공하는 사택과 숙명여대는 큰 길 하나 사이의 5분 거리였다.
나는 알고 지내던 어느 사모님에게 기도가 응답됐다고 알렸다. 얼마 전 학교에서 나를 만났던, 나를 아직도 꿈을 먹고 사는 철없는 사춘기 소녀로 여기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목사님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목사님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다들 벌떡 일어났다.
"정 전도사님, 믿음도 좋고 배포가 상당히 큰 분이라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니 솔직히 세상을 너무 모르는 분인줄 알았는데 놀랍습니다. 축하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셨어요. 제가 늘 신뢰하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에요. 기도에 응답하셔서 졸업을 한 달 앞둔 저에게 큰 졸업선물을 안겨 주신거죠."
그 기쁨과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사 보내 구해주신 하나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자정무렵 명동대로변. 내 처절한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려주세요.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행인들은 그저 제갈길을 갈 뿐이었다.
비참했다.
나는 연세대학 음대 졸업반이던 가을 어느날.
대학생활 4년간 한 번도 지켜보지 못해 아쉬웠던 고려대와의 경기 '연고전'은 관중들 틈에 끼여 신나게 지켜봤다.
마지막 날 연세대 우승을 확인한 연세대생들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그날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친구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타기 위해 큰 길로 나왔다.
바로 그 때, 무시무시할 정도로 크고 검은 손이 내 왼쪽 손목을 사정없이 낚아챘다.
거무티티하고 험악하게 생긴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한쪽 뺨에는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청파동 청파동"
그 사내는 택시를 불러댔다.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주세요, 경찰을 불러주세요."
나는 미친여자 처럼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오히려 소리를 지를 수록 손목을 잡고 있던 사내의 손아귀 힘만 드세지고 있었다.
이 남자에게 납치돼 끌려가느니 지금 당장 찻길에 뛰어들어 달리는 차에 치여 죽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차도에 뛰어 들고 싶어도 꼼짝 못하도록 내 손목을 꽉 움켜쥐고 있는 남자의 손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천사를 보내주세요. 제발 빨리 저를 도울 천사를 보내주세요."
바로 그 때 큰 길 건너편에 빈택시 한 대가 달려와 멈춰섰다.
그런데 마침 나를 붙잡고 있던 사내 앞에도 빈 택시 한 대가 멈춰섰다.
남자는 나를 던져 넣기 위해 택시 뒷문을 열려고 잠깐 내 손목을 놓았다.
그 순간 나는 달리는 차에 부딪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눈을 꼭 감은 채 필사적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 건너편에 멈춰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그러나 나를 붙잡으려고 달려온 사내의 옷자락이 뒷문에 끼는 바람에 택시는 달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택시기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학생, 그만 울어요. 나는 하나님이 학생을 도와주라고 보낸 천사랍니다."
택시기사는 살며시 액셀을 밟고 천천히 달리다가 어느 순간 택시 문을 제빨리 연 뒤 닫았다. 옷자락이 문에 낀 채로 택시와 함께 달리던 그 사내를 따돌렸다.
그날 밤 그 택시는 우리집 대문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내가 밤이 늦었으니 여관에 쉬어 가라며 내민 여관비는 물론 택시비도 받지 않았다.
"나는 다만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택시기사는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택시기사의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학생, 그만 울어요. 나는 하나님이 학생을 도와주라고 보낸 천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