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두셀라는 어떻게 죽었을까?
(How Did Methuselah Die?) | John Morris |
구약성경 중에서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는 969세 라는 가장 오랜 수명을 가졌던 므두셀라(Methuselah)이다 (창 5:27).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walked with God)’고 말해지는 에녹(Enoch)이다 (창 5:24). 에녹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노아(Noah)를 낳고 홍수 나기 수년 전에 777세의 나이로 죽는다 (창 5:31). 므두셀라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였던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를 가진 ‘므두셀라’로 지었다. 그는 아마도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므두셀라는 하나님이 노아의 대홍수로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셨던 바로 그 해에 죽었다. 노아 홍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많은 것들은 단지 추측해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노아는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120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창 6:3). 그리고 노아는 방주를 건조하는 동안에도 “의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벧후 2:5). 그러나 단지 여덟 명만이 구원을 받았다 (벧전 3:20). 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었는가? 마른 땅 위에 거대한 방주를 건조하는 그의 신앙적 순종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죄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라멕과 므두셀라도 노아의 일을 지지하고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같은 가족인 8명만이 방주에 들어갔다. 므두셀라가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기 때문에, 혹자는 그가 믿음이 없어서 홍수 물로 인해서 죽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단지 므두셀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에녹의 아들이었다는 것과, 노아의 출생 시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언을 했던 라멕이(창 5:29) 그의 아들이었다는 것뿐이다. 여기에 몇 가지 더 숙고해 보아야할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은 장차 여자의 후손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 3:15). 그리고 그 이후로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창 4:7, 6:2). 더군다나 사람의 생각은 항상 악했고(창 6:5), 땅에는 사람들로 인한 강포(violence)가 가득하였다 (창 6:13). 제지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조만간 여자의 후손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확실히 강포는 많은 생물들에게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동물들은 사나워지고, 피에 굶주리게 되었다. 사람의 죄악 된 본성이 가득해지면서, 전쟁은 맹렬해졌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강포와 환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닥쳐왔을 것이다. 아마도 노아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남겨진 사람이 8명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므두셀라에게 일어났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 순교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살해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내는 끝났던 것이다. 인류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장차 구속주가 오시게 될 여자의 후손을 남겨놓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는 마침내 촉발되었던 것이다.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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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의 수명 :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 수명의 원인은? (Living for 900 years) | Carl Wieland |
소수의 사람들만이 120년 정도까지 산다. 우리가 (수명에 관하여) 더 많이 알아가고 있지만, 과연 새로운 연구를 통하여 우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노화에 관한 놀라운 새로운 정보는 대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long lifespans)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 창세기는 오늘날의 경험에 비추어 말도 안 되는 긴 인간의 수명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담은 930 년(아래 그래프 참조)을 살았고 ,노아는 더 긴 950 년을 살았다. 이 긴 수명은 아무렇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노아의 홍수 전에는 길었고 홍수 이후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홍수이전 족장들에서부터 (출생년도에 따라 표시) 성경기록에 나타난 수명을 살펴보면, 홍수 후에 수명이 급격히 짧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극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된다.
성경은 이러한 긴 수명이 그 당시의 시대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긴 수명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쉽게 비웃는다. 모든 치명적인 질병을 피한다고 해도, 오늘날의 인간은 일반적으로 100세를 얼마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도 120세를 많이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노화(aging)에 관한 증거에 의하면, 오늘날 평균 수명의 상한선은 사람이나 다른 다세포 생물의 예에서 보듯이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한 어떤 것 때문은 아님을 제시하고 있다, 질병, 음식, 부상과 여러 환경 요인들은 물론 우리의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의 저변에는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 어떻게든 기록되어 있는 유전정보가 수명의 상한선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정말로 놀라운 것이 아님은, 우리들은 어떤 가계는 대부분이 고령까지 살며, 또 어떤 가계는 그 반대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비록 평균 수명의 상한선이 각 종마다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종 실험은 이 한계가 바뀔 수 있음을, 심지어 극적으로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초파리(fruitflies)와 벌레(worms)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이 개체군에 수명연장을 발현시킬 수 있기도 하고 제거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로 같은 종류의 초파리 군에서 한 개체군이 다른 개체군보다 평균 몇 배나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수명과 관련되는 유전자 스위치(genetic switch)가 벌레의 한 종에서 확인되었다. 우리는 왜 노쇠해 가는가?
왜 모든 다세포 생물은 (인간처럼) 결국 노쇠하여 죽게 되는가? 모든 고정된 구조들은 결국 마모되어 없어진다는 물리법칙을 단순히 인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생물학적 조직체는 그 자체를 스스로 수리하는 능력인 내재된 지능(DNA에 정해진 대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박테리아와 같은 단세포 동물들은 노쇠로 죽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단지 2개의 복제품으로 분화되고 각각이 다시 두개로 분화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간과 같은 생물체에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조직기관이 있다 (예: 간, 콩팥 등). 이 세포들은 왜 계속 나누어지고, 수리하여, 영원히 그 장기를 새롭게 하지 않는가? 만일 노쇠한 세포를 새 세포로 교체하여 새로운 조직기관이 만들어진다면, 인간의 신체도 노쇠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넘어지는 나무에 깔려죽거나 감염으로 죽을 수는 있겠지만, 늙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고, 우리의 각 기관은 노쇠하게 된다. 기관 내의 세포들은 일정기간 동안은 증식하지만 영원히 계속하지는 않는다. 몇 번의 분화(dividing)를 거친 후에, 이 세포들은 분화를 멈춘다. 보통 인간의 세포는 단지 약 80–90 회 분화를 하면, 그 이상은 분화하지 않는다. 우리 염색체들 각각의 끝에는 텔로미어(telomere)라고 불리는 구조가 있다. 이것은 끝에 많은 구슬(beads)이 달린 계수장치(counting device)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포가 둘로 나뉘어 질 때마다 구슬 하나가 잘라져 나가서 텔로미어(아래의 그림 참조)가 짧아진다 [1]. 구슬이 모두 없어지면 세포 분열이 더 이상 발생할 수 없다. 그때부터는 각 세포는 쇠약해지더라도 새 세포로 교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당신이 치명적인 사고나 질병을 피하더라도, 결국은 어느 기관의 고장으로 죽게 된다. 세포가 나누어지는 작용은 DNA에 기록되어 있는 유전정보의 지시에 의해 통제된다. 그래서 노화를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리 정해진 유전적 한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만일 그 유전적 한계가 다른 수명을 정해두었다면, 900년 이상의 수명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할 어떠한 알려진 생물학적 이유도 없다. 그리고 이 유전적 수명한계에 정말로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초파리에서 육종 선택을 통하여 유전자 순서를 뒤섞어서 그들의 수명을 현저하게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진짜 문제는 홍수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는가’이다. 노아의 새로운 환경
홍수 이후 수명 감소를 보면서, 그것이 현저하게 변화된 세계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화석 기록의 증거는 홍수이전 세계에서 탄산가스 (아마 산소도) 농도가 더 높았음을 시사한다. 많은 학자들이 대기의 수증기층이 홍수이전 세계를 우주방사선(cosmic radiation)으로부터 보호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로 인해 노화가 크게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홍수 후의 환경이 엄청나게 유해하게 변화되어 수명이 800년이나 줄어들어 1/9로 되었다고 보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에 그는 벌써 600 세가 넘었다. 그러나 훨씬 유해한 환경으로 인해 그가 빠르게 노화하여 20-30 년 만에 죽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350 년을 더 살아 심지어 그의 조상 아담보다도 오래 살았다. 우리는 환경적 요인들이 인간 삶의 발달 단계에서만 문제를 초래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노아가 여전히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하나의 쉬운 설명은 노아의 유전적 구성상태가 그에게 긴 수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홍수 이전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정해진 수명보다 매우 긴 수명을 가지도록 미리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나? 전 세계의 인구가 단지 몇 사람으로 줄어버린 점을 상기해 보자. 긴 수명을 결정하는 정보가 포함되었을지 모르는 특정 유전자가 (대립형질(alleles)로 알려짐) 인류가 사실상 8명만 남고 멸절되는 과정(병목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제거되어졌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래글 참조) 다른 요인들
비록 그런 유전정보의 손실이 수명감소의 원인이었다 할지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지도 모른다. 유해한 돌연변이가 더 많이 발생한 것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돌연변이의 일부는 텔로미어 길이의 손실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홍수 이후에는 음식물로 사용 가능한 식물군이 급격히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시점에서 사람에게 고기를 먹도록 허락한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열렬한 건강식품 예찬론자라도 우리가 단순히 음식을 바꿈으로서 오늘날 다시 950년이나 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이 다른 요인들 일부는 수세기 동안 계속되는 지속적인 수명감소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고, 모세는 120세, 다윗왕은 단지 71세까지 살았다. 흥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는 환경요인으로 인해 수명이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아의 수명에 가깝게 살기 위해서는 그의 유전적 인자들의 일부가 있어야 될 것이다. 물론, 모든 노화와 죽음의 궁극적인 이유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저주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아담은 영적으로는 즉시 죽었고, 육적으로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바로 그날부터 죽어가기 시작했다. 현대의 유전학 연구는 우리 모두가 노쇠와 죽음의 필연성을 타고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로 우리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을 볼 때, 신성한 하나님의 눈에 우리의 죄가 참으로 무거움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정죄함으로부터의 피할 길을 주셨음을 한없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수명의 차이 사고나 질병에 의한 사망을 무시하면, 여러 생물들은 상이한 평균수명을 가지도록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정된 수명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점점 축적되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생물에서는 선택적인 육종이 평균 수명을 크게 늘렸다. ----------------------------------------------------------- 가진 것 이상으로 사는 방법 약 30 년 전에, 프랑스의 어느 중년 변호사는 90대의 여성 고객과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이 변호사는 그녀에게 상당한 월급을 주기로 하고, 그녀의 아파트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그녀는 그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지 않고 평생 살수 있도록 합의가 되었다. 이 합의는 명백히 양쪽에게 다 유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나이가 워낙 많았으므로 그 변호사는 아파트를 매우 싼값에 사는 셈이었고, 고객은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여생을 충분한 수입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는 아주 불운하게도 그의 고객 칼멘트(Jeanne Calment)는 현대 역사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 되었다. 1997년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는 122세 하고도 164일을 살았다. 그녀의 변호사는 그녀가 죽기 훨씬 이전에 노환으로 죽었다. 그는 결국 그녀에게 아파트의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하게 되었다. 최근 두 명의 프랑스 학자가 칼멘트의 양쪽 가계 5 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사를 했다. 그녀의 조상들은 모두 같은 지역 사람들의 평균 수명에 비하여 무려 10.5 년을 더 오래 살았다. 그 학자들은 그녀의 생활양식이나 음식물은 장수에 큰 요인이 아니었으며, 희귀한 장수 유전자들의 집합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그녀는 더 일찍 죽음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다른 불운도 겪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수명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우리의 논제와 일치한다. 홍수 이전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 장수하는 유전적 요인이 있었던 것이 그들이 장수한 이유였고, 그 이후 이들 유전요인을 잃어버린 것이 수명감소의 원인일 수도 있다. --------------------------------------------------------- 홍수 이후의 유전적 손실이 수명 감소의 원인? 여러 형태의 유전자들(대립 형질로서 여러 특질을 나타내는 DNA 정보 사슬)이 소수의 개체군에서는 소멸되어지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이라고 알려진 단순한 현상이 있다. 유전자들은 쌍으로 존재하며,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또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다. 위의 그림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전자의 G 형태는 아버지에게 있고 어머니에게는 없다. 그들의 아이들은 각각 G 형태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반반이다. 그러므로 후손의 누구도 이 유전자를 계승하지 않을 가능성은 그렇게 낮은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이 단지 3명의 자녀를 가졌다면, 확률은 1/8이다). 전체 인류가 노아와 그의 3명의 아들과 3명의 며느리로 감소되어졌던 상황에서, 노아의 유전자 중 일부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지금 노화가 대부분 유전적 요인인 것으로 보이므로, 장수 유전자들의 일부 손실이 홍수 이후 수명감소의 이유일 수 있다. 아마 그 이후의 개체군 분리가(바벨에서) 이 유전자 제거에 더 한층 기여했을 것이다.[2]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적 조합의 가능성
----------------------------------------------------------- 죽음으로의 초읽기 각 염색체(텔로미어(telomere)로 불리는)의 끝에 있는 ‘덮개(capping)’는 운동화 끈의 끝에 있는 덮개처럼 말단이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한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될 때마다 짧아지다가 한계에 이르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제한된 수명이 결정되는 단지 하나의 방법이다. 만일 사람들이 적절한 유전적 구성(genetic makeup)을 가진다면, 그들이 현재보다 훨씬 오래 살지 못할 어떤 생물학적 이유도 없다. 인간의 세포 중에서 영원히 분열을 계속할 수 있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암세포이다. 이들에게는 분열을 멈추게 명령하는 스위치가 없는 것 같다. 그러한 까닭으로 인간의 세포를 필요로 하는 의학 실험실은 어느 불행한 암환자의 암세포에서 키운 세포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 (이것을 헬라 세포(HeLa cells)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세포가 바로 Henrietta Lacks라는 여성의 암세포이기 때문이다). 헬라 세포는 실질적으로 영생한다 (기존의 헬라 세포를 전부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최근, 텔로미어의 복제와 관련된 효소에 의한 실험 결과는 많은 흥분을 초래했다.[3] 인간의 세포라인을 변화시켜 그들의 한계보다 많은 횟수로 분열하게 만들었다. 일부는 그런 조작에 의해 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는 한 매우 오래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화라는 것은 분명 이러한 기초적인 결과로 단순화한 논의보다는 훨씬 복잡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증거로 보아 유전적 요인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음이 강력히 제시되고 있다. ------------------------------------------------------------ Bibliography/further reading ▷ New Scientist: November 22, 1997, p. 7; January 3, 1998, p. 6; February 7, 1998, p. 14; February 28, 1998, p. 23. ▷ ‘Can science beat the body clock?’ Sunday Times (London) January 18, 1998, p. 15. ▷ ‘Extraordinary lifespans in ants: a test of evolutionary theories of aging’, Nature 389:958–960, 1997. ▷ ‘Why do we age?’ U.S. News & World Report, August 18–25, 1997, pp. 55–57. ▷ ‘Genetics of Aging’ Science 278(5337):407–411, 1997. References and notes
1. Simplified for brevity — there is a fluctuation in length, with a net shortening. In our brain cells, the telomere does not shorten. 2. This assumes that there was probably considerable variation in lifespans in the pre-Flood world, with some only programmed to live a maximum of say, 400 to 500 years. This may be why Noah’s sons failed to match his great age. 3. This enzyme, called telomerase, was discovered in 1980 by the winner of the 1998 Australia Prize, Prof. Elizabeth Blackburn. Without telomerase, cells cannot copy their ‘caps’.
*참조 : 동물의 노화 늦추는 새로운 유전자 발견 (2007. 11. 5. 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articleview.asp?id=414501 조상들과의 만남 : 창세기 연대기의 정확성과 족장들의 긴 수명 (Meeting the ancestors) | Russell Grigg |
당신은 노아의 아버지 라멕(Lamech)이[1] 아담(Adam)과 대화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당신이 에덴 동산에서 금지된 과일을 먹기 전에 하나님과 지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연대기에 의하면, 아담은 라멕이 56살 되던 때까지 죽지 않았다. [2] (아래 표를 보라). 아브라함이 셈(Shem)과 말하는 것을 어떨까? “저에게 당신과 당신의 형제였던 함, 야벳, 그리고 당신의 아버지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이 당신들께로 보내신 모든 동물들과 방주 안에서 1년여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하나의 상상의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도 또한 일어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연대기에 의하면 셈은 아브라함의 시대까지 살아있었다. [3, 4] 성경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족장들의 나이에 대해서 세심하게 기록하여 놓았다. 메시야/언약 가계에 있는 각 인물들이 아이를 낳았을 당시 몇 세였는지, 그들이 몇 세를 살다가 죽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죽을 때에 아들의 나이는 몇 세였는지를 기록해 놓고 있다. [5, 6] 그러므로 간단한 산술에 의해서, 각 족장들은 세계가 시작된 해(the Year of the World, 라틴어로 Anno Mundi, 약자로 ‘AM’으로 표시함)로부터 몇 년에 태어나고, 몇 년을 살다가, 몇 년에 죽었다는 것이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계산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창세기 목록으로부터 어떠한 ‘간격(gap)’이 있을 가능성은 제거되어진다. 따라서 최초의 해(first year) 제 6 일에 창조된 아담은 AM 930 년에 죽었고, AM 874 년에 태어난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시기까지 그의 후손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아들인 셈은 AM 1558 년에 태어나서 AM 2158 년에 죽었기 때문에, AM 2008 년에 태어난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때까지의 여러 후손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3] 마찬가지로, 창조 후의 노아 홍수가 일어난 날짜도 정확하게 정해질 수 있다. 창세기 7:6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아래의 표로부터 우리는 노아가 AM 1056 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홍수는 600 년 후인 AM 1656 년에 발생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AM 2008년) 352 년 전이다. 셈(AM 2158 년에 죽음)과 에벨(Eber, 셈의 증손자, AM 2187 년에 죽음)은 둘 다 아브라함 시대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 당시 족장 시대에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Israelites)이 셈족(Semites, 셈의 이름을 따라), 또는 히브리족(Hebrews, 에벨의 이름을 따라)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어떤 간격이 있는가?
선의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들 연대기에 간격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성서적 시간 틀을 잡아 늘려서 부분적으로 세속적 지질학과 고고학과 화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창세기의 연대기에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 그것들은 물샐 틈 없이 기록되어져 있는 것이다! 기록은 정확한가?
창세기를 읽다보면 “...계보(대략, 사적, 후예)는 이러하니라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 히브리어로 toledoth = origins, ’history,’ 또는 ‘family history’) 라는 구절이 11번이나 나온다 (KJV) [7]. 이들 문장들은 모두 그들이 기술했던 사건들 다음에 오고 있다. 그리고 각 구분되어 기록된 사건들은 모두 거명된 개인들의 죽음 이후 보다는 죽음 이전에 발생했던 일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문장 앞에 또는 머리말로 쓰여졌다기 보다는, 문장 뒤에 글을 마치는 서명으로 더 잘 어울린다. 만약 이것이 그렇게 쓰여졌다면, 이것들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아담, 노아, 셈 등의 사람들 각자가 그들의 생애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점토판들에 기록했을 수 있다 [8]. 그리고 그것들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담, 셋, 노아, 셈.....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계보를 경유하여 물려주었다. 모세는 성령의 인도하심 하에, 이것들을 선택하고, 자신의 주석을 넣어 편집하여, 오늘날 우리가 창세기(Genesis)라고 알려진 책으로 편찬하였다 [9]. 조상대대로 물려온 많은 중첩된 사실들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은,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어떠한 구두적인 설명(oral accounts) 보다는 훨씬 정확하게 기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단지 2명의 중개자, 즉 므두셀라(또는 아마도 라멕)와 셈만이 필요했다. 초기 족장들의 연대기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성경에 세 번 기록되어 있다. 즉, 창세기 5장과 11장, 역대상 1장, 그리고 누가복음 3장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계보에 대한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10, 11, 12]. 유다서 1:14절에는 특별히 에녹은 아담의 칠세 손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연대기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정확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재강조해주고 있으며, 연대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13]. ----------------------------------------------------------- References and notes 1. Not to be confused with another Lamech, son of Methusael and descendant of Cain (Genesis 4:17–18). 2. Adapted from McIntosh, A.C., Genesis for Today—Showing the relevance of the creation/evolution debate to today’s society, 2nd edition, Day One Publications, Epsom, UK, pp. 44–47, 2001. Note that Genesis for Today discusses other options for the dates of Abraham. 3. Abram, mentioned first in Genesis 11:26, was the most important of the three sons born to Terah; he might or might not have been the first born, cf. Shem, Note 6. Abram left Haran at the age of 75 (Genesis 12:4), after the death of Terah (Acts 7:4) who died at age 205 (Genesis 11:32). This would mean that Abram was born when Terah was 130, i.e. in AM 2008. 4. Abram’s name, which means ‘exalted father,’ was changed by God to Abraham, meaning ‘father of many,’ when Abram was 99 years old (Genesis 17:1,5). 5. E.g. Genesis 5:3–6: ‘And Adam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a son in his own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And the days of Adam after he had begotten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that Adam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 … ’. 6. Of Noah’s three sons, born after Noah turned 500 (Genesis 5:32), although Shem (the son in the covenant line) is mentioned first, Japheth is described as the elder (Genesis 10:21), so presumably Japheth was born when Noah was 500; Ham is called the younger (Genesis 9:24). Genesis 11:10 says, ‘Shem was one hundred years old, and begat Arphaxad two years after the flood’; i.e. Shem was 100 in AM 1658, and so would have been born AM 1558, when Noah was 502. 7. Genesis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8. Most of the events of Creation Week in Genesis 1 occurred before Adam was created, so must have been revealed by God, probably to Adam. 9. The Lord Jesus Himself and the Gospel writers said that the Law was given by Moses (Mark 10:3; Luke 24:27; John 1:17), and the uniform tradition of the Jewish scribes and early Christian fathers, and the conclusion of conservative scholars to the present day, is that Moses wrote Genesis. See Grigg, R.,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Creation 20(4):43–46, 1998. 10. Cf. the importance of repetition of incident in Genesis 41:32 and Acts 10:9–16; 11:10. 11. For a discussion of the mention of Cainan in Luke 3:36, see Cainan: How do you explain the difference between Luke 3:36 and Gen. 11:12~ 12. For a discussion on how many people there were pre- and post-Flood, see Batten, D., Where are all the people? Creation 23(3):52–55, 2001. 13. The key to understanding any portion of the Bible is to ascertain the purpose of the writer of that part. A straightforward reading of these three records indicates that the writers intended to give a complete genealogical record from Adam to Abram/Abraham (and on to the kings of Judah in 1 Chronicles, and on to the Lord Jesus Christ in Luke 3). See Biblical genealogies. --------------------------------------------------------
그들의 긴 수명(long lifespans)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 앞부분의 족장들의 긴 수명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 1) 그들이 역사적이지 않다고 제시할 만한 근거가 본문에 전혀 없다. 2) 그들 숫자의 자릿수는 수메르인의 기록에 의해서 지지 된다 [1]. 3) 숫자들을 기록하는(단어로 하는) 히브리인의 방법은 필사 오류로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 4) 한 해(year)가 실제는 한 달(month)을 의미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므두셀라는 80세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국한한 가정은 본문의 다른 곳에서 지지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일부 족장들은 어린이였을 때 아버지가 되어버린다. 5) 여러 내부적인 일관성이 있다. 죽을 때의 나이로부터, 므두셀라는 정확하게 홍수가 나던 해에 죽은 것으로 계산 되어진다 [2]. 그러나 만약 (오류가 있는) 70인역(Septuagint)을 사용한다면, 그의 죽음은 홍수 후 14 년이 되어진다. 그러나 므두셀라는 노아의 방주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내부적으로 모순이 된다. 극적인 수명 단축이 홍수 이후부터 시작되어진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격변적 영향과 인구수와 일치되어진다. 6) 긴 수명에 대한 어떠한 생물학적 장벽이 없다. 그리고 연속적인 수명 저하(decline)에 대한 유전적 설명(환경적인 요소들을 더하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중이다 [3]. References and notes 1. The ages of their pre-Flood kings seem astronomical. However, when one realizes that the Sumerians used a number base of sixty (not ten), presumably when transcribing from historical pre-Flood records, the ages come into good alignment with the patriarchal lifespans of Genesis. See López, R.,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CEN Tech. J. 12(3):347–357, 1998. 2. Some commentators argue that the name Methuselah comes from the roots muth (= death) and shalach (= bring or send forth), thus his name means ‘his death shall bring’—a prophetic reference to the Flood judgment. If so, then it is fitting that he was the longest-lived person in the Bible, a symbol of God’s immense patience and longsuffering. 3. Wieland, C., Living for 900 years?, Creation 20(4):10–13, 1998 and Decreased lifespans: have we been looking in the right place? CEN Tech. J. 8(2):138–141, 199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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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장과 11장의 수명변화에 나타난 생노병사 현상과 열역학 | 이강래 |
서론 첨단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성경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성도의 신앙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성경과 과학은 서로 배치되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인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과학과 신앙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학법칙들의 심오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자칫 맹목적인 신앙으로 치우쳐서 왜곡된 신앙관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완벽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논리적이며 합리적이다. 자연과학에서 보여주는 관찰과 실험에 의한 제반 법칙을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성경 내에서도 추구할 수가 있다. 성경의 과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가설로 출발하여 완벽한 검증 없이 지속적인 보완을 해나가고 있는 것에 반하여 성경은 자연과학에서 발견되는 법칙들과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이론과 예측이 신약에서 입증되며 완성되고 있지만, 성경전체를 본다면 창세기 1장의 대전제가 구약과 신약에서 더 분명하게 들어나고 적용되어진다. 본고에서는 우주물리과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열역학법칙들과 성경내의 말씀과의 관계를 통하여 성경과 과학의 상보적 개념을 밝히고 사이비 과학인 진화론 사상에 대비하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특히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수명변화의 연구를 통하여 열역학과 수명곡선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생노병사의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여, 과학기술우상화의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본론
1. 사이비 과학과 참 과학 대폭발 이론에 의하면 혼돈의 극한 상태인 빅뱅(Big Bang)의 순간부터 질서와 법칙들이 나타나 우주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우연한 과정들과 오랜 세월을 통하여 지구 생태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진화론의 주장은 오랜 시간과 우연의 연속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이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가설로 시작된다. 지구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주 간단한 유기물이 우연히 형성되어 더욱 복잡하고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하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화가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진화라는 시스템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현재 존재하는 우주와 생명 현상들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의 질서와 구조에 대한 원인은 추구하지도 않으며, 미적 감정도 개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타난 모든 것은 우연한 결과이며 약육강식의 존재 방식을 논리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모호하게 하고 성경을 왜곡시키는 불신앙을 조작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참 과학은 확고부동한 법칙들을 통하여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다. 과학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열역학은 전문적인 과학 분야라고 생각되어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게 되지만, 현대과학이론과 기술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여 우주와 지구를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법칙이 된다. 특히 이 열역학 법칙은 만물의 기원과 미래에 대하여 성경 말씀의 진실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조명해주고 있다. 2. 열역학 법칙(Thermodynamics1) law)
열역학 법칙이라 불리는 과학적 사실 혹은 과학법칙은 진화론에 대항할만한 가장 유력한 과학적 증거에 속한다. 두 가지의 열역학 법칙은 주후 1850년, 즉 대략 150여 년 전에 과학적으로 사실로 발견되고 입증되었다. 이러한 법칙은 모든 과학 분야 혹은 과학체계에서 기초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과학의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중요한 법칙이다. 과학에서의 이러한 두 가지 법칙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예외도 없는 보편적 법칙이다. (1) 열역학 제 1 법칙 제 1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질량을 에너지와는 다른 한 형태의 실체로 본다면 이 법칙은 ‘우주내의 에너지/질량의 총량은 보존 된다’는 뜻이 된다. 에너지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되기도 하고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결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알고 있는 한, 우주는 그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들이 항상 보존되지만, 절대로 다시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세계들로 이루어졌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 열역학 제 2 법칙2) 제 2 법칙을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우주가 계속하여 무질서한 상태를 향하여 진행한다는 뜻으로서 제 2 법칙과 관련하여 엔트로피3)(entropy)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 용어는 어떤 체계 내의 ‘무질서’나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수학적 함수로 정의할 수 있다. 제 2 법칙은 어떤 체계에서든 엔트로피는 증가하거나 증가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법칙이 시사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우주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은 보편적인 법칙들이지만, 왜 이 법칙들이 성립하는지, 또 이 법칙이 어디서든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아무도 모르며, 그 원인과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생물학의 진화론은 한 개체가 보다 복잡하고 더 발달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엄격하게 말하자면 진화론은 이 두 보편적인 법칙에 대하여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3. 열역학 법칙에 대한 성경적 이해
열역학 제 1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스스로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으나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죽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두 법칙이 함께 적용될 때 우주의 미래는 영원히 멸망당한다는 이상한 현상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을 열사상태(heat death)라고 한다. 이 열사상태는 우주 내에 존재하는 태양과 같은 별들의 고단위 에너지체들이 다 타버려서 온 우주 공간이 균등하게 온도가 낮은 상태로 퍼지게 되어 에너지가 소멸하지는 않지만 결코 일을 할 수가 없는 죽음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적인 면에서 이 두 법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우주가 영원 전부터 이런 상태로 작용해 왔다면, 이미 우주는 죽어 있어야만 한다. 아직 우주가 죽지 않았고, 시간 내에서 죽어 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출발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 2 법칙은 시간, 공간,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가 적어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려면 ‘시점(beginning)’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거하고 있다. 더욱이 제 1 법칙은 우주가 자기 스스로 시작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 2 법칙은 창조가 있었음을 말해 주지만, 제 1 법칙은 우주가 자신이 스스로 창조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은 참으로 과학적인 언급으로서, 우주의 모든 체계와 과정들을 한데 묶어 표현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교회 내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견지하는 과학자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수십억 년이나 질질 끌면서 우주가 쇠퇴하길 기다리셨다면, 그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시는데 있어 가장 낭비적이고 비효과적이고 잔인한 과정을 택하신 셈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이 참 과학을 조명할 때, 우주의 존재 원인과 현재와 미래의 상태가 분명하게 들어 나게 된다. 성경은 오래 전부터 두 법칙이 성립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고, 왜 그것들이 법칙이 되는지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시148:6). [말씀]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시148:6). (1) 제 1 법칙에 대한 성경의 조명 현재 새 에너지가 창조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창2:2-3)”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주에서 아무 것도 소멸되지 않는 이유는 창조주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기(히1:3)”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치셨을 때 온 우주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창1:31)”었다. 더 이상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첫 안식일에 그의 보존의 법칙을 입법하시고, 우주의 모든 과정이 그 이후 영원토록 이 법칙에 순응하도록 하셨다. (2) 제 2 법칙에 대한 성경의 조명
현재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으나, 원초의 창조 때는 엔트로피도 에너지처럼 보존되어 전체 세계 내의 엔트로피는 항상 일정했을 것이다. 심지어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력 때문에 소모되는 열에너지도 온전히 생산에 사용되어 “낭비되거나 늙어지는” 경우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본래 “땅의 티끌”로부터 엄청나게 복잡한 두뇌를 가진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창조된 생물적 실체들은 육체적인 죽음이 없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제 2 법칙에 급격한 수정이 가해졌으며, 현재 만물들은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여 먼지로 되돌아가고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성경은 이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저주로 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죽게 되리라고 경고하셨다 (창2:16-17).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단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세상에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이 말씀은 타락 이후의 제 2 법칙에 대한 정식 선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과 이 법칙을 함께 생각해보면, 열역학 제 2 법칙이 적어도 오늘날의 형태로 성립된 시기는 아담이 죄를 지은 비극의 날, 곧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고전 15:21)”라고 한 그 날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이 저주는 훈도적일 뿐 아니라 종말적이다. 이 저주는 비록 미래에 있을 우주의 열사상태를 예시하고 있지만, 한편 사려 깊은 하나님께서 결코 우주를 죽게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준다 (롬8:20, 21).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0-21). “다시는 저주가 없을(계22:3)” 그 위대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에덴 이후 지금까지는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있다 (롬8:22). 4. 과학이 조명하는 성경의 창조와 보존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시작에 관하여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주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 분의 초자연적인 능력인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소위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에 대한 원인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와 참됨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생명체가 복잡하고도 난해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전능자의 지적설계의 개입이 없이는 생명현상들이 저절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은 창조와 타락과 구속으로 요약될 수가 있다. 창조는 완벽하고 선하고 아름다웠다(창1:31). [말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6일 동안에 온 우주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도록 설계되었고 아름다웠다 (전3:11). [말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11). 오늘날 우주물리과학은 우주가 시간, 공간, 물질의 삼위일체로 구성된 연속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답고 질서가 있는 세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하는 것에 대하여는 물질은 물론이고 시간이나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무의 상태에서 한 질점으로부터 대폭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과학이 밝힌 절대 무의 세계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1) 빠라(bara)와 아사(asah)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선포하신 이 말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간/공간/물질로 된 우주의 모든 체계와 과정들을 한데 묶어 표현하는 참으로 과학적인 언급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창조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뜻하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가장 심오한 가설인 대폭발 이론(Big Bang theory)은 결국 창세기 1장 1절을 규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세기 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잘 이해하는 데는 1장에서 사용된 히브리 언어 ‘빠라(bara)’와 ‘아사(asah)’의 두 가지 동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빠라(bara)’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하며, ‘아사(asah)’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이용하여 만든다는 뜻이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와 유에서 유에로의 지으시고 만드시는 두 가지로 구별된다. (2) 무로부터의 세 가지 창조와 완전한 창조 창세기 1장에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뜻하는 고대 히브리동사 ‘빠라(bara)'는 모두 세 군대에 기록되어 있는데, ‘빠라(bara)'된 세 가지는 물질적인 우주(창1:1), 생명의 우주(창1:21), 하나님 형상의 우주(창1:27)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살아가야 하는 환경적 우주와 생명의 원리들의 실체인 생명체들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창조(빠라)하셨다. 창세기 1장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현대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열역학 제1, 2법칙으로 창조의 완료(열역학 제1법칙)와 창조의 시점(열역학 제2법칙)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미 논하였지만 현재의 우주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cosmos(질서)의 상태에서 chaos(혼돈)의 상태로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가 완료되었을 때, 그 창조는 완벽하고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이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모두 6번씩이나 기록하고 있다. (3) 인간의 위상 창세기 1장 28절은 인간이 피조세계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말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모든 동물들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곧 이 우주 만물이 인간을 위하여 만드셨다는 것이며, 인간에게 위임되고 상속됨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곧 법이며, 질서이다. 인간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는 땅과 다스려지지 않는 동물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게 되므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며, 도리어 인간을 해롭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은 창조주가 부여하신 존재 가치가 인간에 의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다른 피조물 속에 감추어진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관계를 통하여 복의 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5. 세 가지 창조에 대한 저주
창조 시의 아름답고 완벽한 피조세계는 오늘날 참 과학이 밝히고 있듯이 고통을 동반한 죽음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이상한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창조의 중심에 있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결과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저주를 받게 된다(창3:19). 하나님 앞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려야할 인간이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였으므로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던 우주 환경도 저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으며(창3:17-18), 모든 생물들도 저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창3:14). 로마서 8장 20절 ~ 22절의 말씀에서 이러한 비참한 피조세계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0~22)”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이 인간의 불순종으로 붕괴되어갈 때 나타나는 현상은 끝없는 고통과 어둠을 상징하는 생노병사의 세상으로 표현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생노병사는 범신론적인 윤회의 현상이 아닌 일회적이나 종말적인 역사의 반복으로 나타났다. 6. 성경에 나타난 생노병사의 구체적 현상들
열역학 제 2 법칙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가 쇠퇴하게 되면서 열사상태에 이르는 생노병사의 현상을 말한다. 그것의 대상이 물리학적이든, 생물학적이든, 사회학적4)이든 이 법칙은 모든 과정에 적용되고 있다. 성경은 나타난 모든 피조세계가 죽어 가는 현상을 과학보다 먼저 예견하고 있다. 여기서 제 2 법칙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 대하여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데 유전적인 질환인 노화 현상이 병이라는 고통스런 동반자와 함께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1) 우주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달리 성경은 우주에 관한 열역학 제 2 법칙의 심각한 현상을 깨닫게 하는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오직 창조주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한다. [말씀]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룰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5-27). [말씀]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 51:6)” [말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0-22)” (2) 인간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
시편 90편 9, 10절의 말씀은 인간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이다. [말씀]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의 변화를 살펴본다면 노아홍수를 전후하여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엄청난 수명의 차이가 나고 있다. 이것은 대홍수 전의 장수 현상이 완벽한 지구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방사선의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궁창 위의 물에 대한 환경적 역할이 입증5)되기도 하였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아는 502세에 셈을 낳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생각하는 노화현상의 심각성은 홍수 전에는 별로 없었다고 보여 진다. 홍수가 끝났을 때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고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6)는 예언의 말씀대로 환경의 변화가 극심하므로 이에 따른 생명의 단축 현상과 노화, 병드는 현상이 심각해져 갔다 (그림2). 창세기 11장을 분석하면 아르박삿과 셀라는 조상 셈보다도 먼저 사망을 하였으며, 벨렉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후손들이 셈과 아르박삿, 셀라, 에벨 등의 조상보다도 먼저 사망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홍수 후에 생노병사에 대한 극단적인 이상 현상이 발현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생물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진다. 조심스럽게는 이때부터 방주에서 나온 많은 종의 생물들이 멸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림1) 창세기 5장과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변화에 관한 그림
1. (그림1)의 위의 변화선은 각 사람의 수명을 나타내며, 아래 변화선은 족보상에 이어지는 아들을 낳을 때의 나이를 나타낸다. 2. 대홍수 이전의 조상들이 900년 이상을 살았던 사실은 현실적으로는 믿기 어려우나,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홍수전의 기록은 아들을 낳은 나이가 100세 전후로 나타나는 것에 반하여, 홍수 이후의 후손들은 기록상으로 30세를 전후하여 아들을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홍수를 중심으로 달라진 환경으로 인하여 장수에서 단명으로 변화하는 수명감소의 타당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1~24)”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승천한 에녹의 후손들이 다수 있었지만, 구원의 방주에는 오직 노아의 가족만이 들어갔다. 이것은 당시의 좋은 환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등한시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병적인 현상의 일반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땅(창1:10)이 대홍수로 멸망을 당하고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진 환경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들과 생태계에 고통과 고난을 주었을 것이다. 홍수 후에 수명의 급격한 감소 현상이 나타나면서 생로병사에 대한 슬픈 징조가 여러 곳에서 기록되어 있으며 그 징조는 점차 확산되어 갔다. [말씀] 나홀은 이십 구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 십구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11:24, 25) 홍수 후 200년이 지나기 전에 태어난 나홀은 조상이신 노아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망하는데 당시에 수명이 200년 이상을 사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명은 148년에 지나지 않았다. 나흘의 사망원인은 사고사가 아니었다면 병사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는데 오늘날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장수였지만, 남편인 아브라함의 향년 175세에 비하면 단명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없이는 자녀도 낳지 못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라의 인체에 이미 병적인 현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0세까지 장수한 이삭은 아들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 약 130세였는데, 에서와 야곱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노안이 빨리(?) 왔다. 그는 거의 50년의 여생을 장님으로 보내야만 했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27:23, 24)” 아브라함으로부터 4, 5대에 걸친 후손들이 애굽으로 해방되었을 때, 이미 그들에게는 온갖 질병의 가능성이 있었다. [말씀]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신7:15). [말씀]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료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치시리니 (신28:26, 27) 더욱이 레위기에 문둥병의 기록이 있다는 것은 홍수 후에 급속한 수명 단축 현상이 나타나면서 대부분의 질병들이 인간사와 함께 동반된 것으로 보여 진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친구 나사로의 병들어 죽은 것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셨고 온갖 종류의 병자를 위한 치료봉사에 힘을 쏟으셨다. 이러한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도 가슴 아파 하셨던 것이다. (4) 급속한 수명변화의 기록 속에 나타난 숨겨진 사실들에 대한 고찰 (그림2) 천지창조이후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조상들의 출생, 사망연도에 관한 그림
1) 그림2에는 두 가지의 선들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의 점선은 창세기 5장과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이 천지창조 이후 언제 태어났는가를 나타내며, 위의 실선은 그 분들이 돌아가신 해를 나타낸다. 이러한 곡선을 연구, 분석하면 성경전체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셋’은 천지창조 후 130년에 태어나, 912년 동안 살다가 천지창조 후 1042년에 사망하였다. ‘에노스’는 천지창조 후 235년에 태어나, 905년 동안 살다가 천지창조 후 1140년에 사망하였다. 2)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은 천지창조 후 622년에 태어나, 987년에 승천하였다. 에녹이 태어나서 승천할 때까지 1대이신 아담을 비롯한 모든 조상이 다 살아 있었으니, 그가 아담과 다른 조상들을 만나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실낙원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의 승천 시기는 아담과 셋의 사망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3대 후손인 노아가 만든 방주에는 그의 다른 후손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3)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대홍수 5년 전에 사망하였고, 969세로 최고로 장수하였던 조부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사망하였다. 므두셀라의 이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첫째는 ‘창을 던지는 자’란 뜻으로 마을을 대표하는 최고의 창잡이가 결투로 죽으면 마을이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죽으면 세상 끝 날이 오리라’로 해석되어 진다. 둘째는 ‘무트(죽다)’ + ‘솰라흐(보내다)’로 분석하여 '그가 죽으면 홍수 심판을 보내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두 주장 모두가 므두셀라가 돌아가신 이후에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였다고 설명된다.(노아는 1056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600세가 되던 해 2월 17일, 즉 1656년 2월 17일에 홍수가 발생하였는데 이 해가 바로 므두셀라가 사망하는 해였다) 4)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사셨는데, 기록상으로는 그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시기를 벨렉이 태어난 해로 본다면, 노아홍수 이후 겨우 100년 정도가 지났을 따름이다. 겨우 3, 4세대가 지났을 따름인데 니므롯과 같은 영적 대역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부모나 조상의 신앙과 관계없이 그 마음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타락은 항상 신속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셈의 아들 아르박삿과 손자 에벨이 조상인 셈보다 먼저 사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그림에서 작은 원)를 들어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셈과 아르박삿과 에벨 모두는 그 후손들인 벨렉, 르우, 스룩, 나흘, 데라 등이 죽은 후에도 살아 계셨다는 이야기(그림에서 큰 원)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림에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6) 홍수 직후의 후손들에게 나타난 생로병사 현상의 심각성들은 바로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지은 심각한 죄의 그림자는 생태계 전체에 나타났을 것이며, 지금은 화석에만 존재하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비록 방주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건강한 처음 몇 세대를 제외한 그 후손들은 이 이상한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7) 이 그림에서 나타난 중요한 한 가지 해석은 ‘멜기세덱’에 관한 정보이다. 아브라함은 노아 사망 2년 후인 2008년(2183년 사망)에 태어났는데, 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갈 때(75세, 2083년) 노아의 아들인 셈(2158년 사망)과 셈의 증손자 에벨(2187년 사망)이 살아 있었다. 노아 홍수의 산 증인이며, 후손들과는 달리 장수하였던 그들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많은 제사장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멜기세덱도 그러한 제사장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건한 제사장이었으며, 가나안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멜기세덱의 축복은 아브라함을 그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적인 선포로서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인 것이었다. (5) 생로병사를 허락하신 이유 하나님의 말씀인 질서에서 멀어질 때,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자연과 생태계의 재앙으로 나타나는 영적 법칙에 따라 영적인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어 가는 무질서가 인류 역사에 나타나게 되었다. 홍수전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 완벽한 환경이 오히려 믿음에 대한 걸림돌이 되어 성령을 거역하는 강포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천년 가까이 살 수 있는 그러한 완벽한 생태계의 환경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심령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그 완벽한 환경을 멸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계속하여 죄를 짓게 됨에 따라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면서 인생이 병들고 연약하게 되도록 하셨다. 그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노아 홍수전의 세상이 꿈같도록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와 구세주를 갈망하도록 하셨으며, 마지막 날까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학수고대하는 신앙을 갖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모든 기도교인들은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의 말씀과 같이 항상 주 예수의 재림에 관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다. [말씀]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결론 완벽한 하나님의 창조에 나타난 처음 세상은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는 아름답고 선한 세상이었다. 인간은 창조의 중심에 있었으나, 피조세계인 환경적 우주와 생명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상속자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불순종의 길을 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 가지에 대하여 모두 저주하시므로 오늘날까지 만물이 고통 하는 가운데 있게 하셨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과학은 열역학 법칙을 통하여 성경을 조명하고 있다. 참 과학은 우주의 영원성과 유한성을 발견하였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서 참 과학과 성경은 서로 상보적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때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만물보다 선재하심과 인간의 불순종에 기인한 우주의 종말이 필연적이라는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저주는 종말적이지만 훈도적이다. 이 저주는 비록 미래에 있을 우주의 열사 상태를 예시하고 있지만, 한편 사려 깊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고 계신다. 노아 홍수 이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수명의 감축현상과 함께 심각한 돌연변이적 유전질환으로 인한 질병 현상이 극심하여 생로병사가 인간의 영원한 과제가 되었다. 열역학 제 1, 2 법칙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가 쇠퇴하게 되면서 열사상태에 이르는 생로병사의 현상을 모든 방향에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창조신앙을 회복하고, 잠깐 동안의 안개와 같은 세상에 애착을 두는 것보다는 다시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저주가 없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소망을 이루어 주실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권명상 외, 자연과학. 생능, 2000. 2. 마이클 베히, 김창환 외 15인 역, 다윈의 블랙박스. 풀빛. 1979. 3. 모리스 헨리 M., 이현모, 최치남 역, 현대과학의 성서적 기초, 요단출판사, 1988. 4.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CUP.1996. 5. 임번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상), (하), 두란노, 2002. 6. 창조과학회편, 기원과학, 두란노, 2000 7. Bowden, Malcolm. The Rise of the Evolution Fraud. San Diego: Creation-Life, 1982. 227 pp. 8. Sire, James W. The Universe Next door. Dower's Grove, Ill.: Inter-Varsity, 1976. 238 pp. 9. Wilson, Clifford, and Weldon, John. Occult Shock and Psychic Forces. San Diego: Creation-Life, 1980. 482 pp. 10. Wood, Nathan R. The Trinity in the Universe. Grand Rapids: Kregel, 1978. 220pp. 주 석 1) 그리스어인 ‘Thermo’는 열을 의미한다. ‘Dynamis’는 에너지 혹은 힘을 의미한다. 열역학(Thermodynamics)은 열이 있는 에너지와 힘을 취급하는 학문이다. 2) 열역학 제2법칙은 카노트(Carnot), 클라우시우스(Clausius) 그리고 캘빈(Kelvin)이 1850년에 발전시킨 법칙이다. 그것의 기본 골격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을 당시에 형성되었다. 19세기 말경에는 점차 이해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진화론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이 갖는 광범위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3) 월드 북 백과사전에서 엔트로피의 뜻을 살펴보면, “열역학 제2법칙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기계에너지가 열로 완전히 전환될 수 있지만, 열이 기계에너지로 완전히 전환될 수 없다. 엔트로피는 일할 수 없거나 기계에너지로 변화될 수 없는 무용한 열에너지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할 것이고,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4) 사회이론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 새로운 세계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들(통화팽창, 실업문제, 새로운 질병, 환경오염, 성적 문제, 관료주의, 자원의 고갈 등등)은 엔트로피의 증가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윤리 분야에서 모든 일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심지어 몰락하고 있는 것도 이 법칙에 기인한다고 본다. 5) 방사선의학의 발전 6)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은 땅의 황폐화로 인하여 포도즙으로 음료수를 대용하는 일이 시급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홍수 전후의 생태계에 나타난 극심한 변화를 깊이 숙고하지 않으면 당대의 의인인 노아가 술 취한 기록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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