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이 왔네 / 이남옥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마트에 가서 반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무얼 해야 선물답고 모두가 좋아할지 고민되어 이것도 들춰 보고 저것도 들춰 본다. 가성비 좋은 것까지 따지다 보니 결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다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커다란 장난감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게 보였다. ‘이거 사서 둘이 함께 사이좋게 가지고 놀래, 아니면 저거 사서 각자 가지고 놀래?’ 두 아이는 남매였다. 누나가 예닐곱 살로 보이고 둘째는 카트에 타고 있었는데 네댓 살로 보인다. 커다란 장난감은 조립하면 자동차로 변신하는 거였다. 아마도 비싼 것일 게다. 큰아이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한창 망설이고 있었다. 어린 소녀는 동생과 사이좋게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학습되었을 것이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거리면 될 일이지만 엄마·아빠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겨 본 아이로서 선물을 함께 나누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만의 장난감, 아무래도 여자아이니까 인형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선물을 기대했을 터였다. 말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아이 마음이 읽히자 마음이 짠해졌다. 그리고 한 아이가 떠올랐다. 머나 먼 나라에서 4학년이 되었을 텐데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쯤 되어갈 때 서툰 한국어로 내 이름이 쓰인 카드를 받았다. 그것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는 연하장이었다. 전 근무지에서 반송되어 돌아 돌아서 거의 석 달 만에 내게로 왔다. 주소는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프레스였다. 혹시 지난 겨울방학에도 오지 않나 은근히 기다렸던 바로 그 아이 대신 편지가 왔나 보다. 1학년 꼬맹이들 가르치느라 소진되어가던 약골에 불끈 힘이 솟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정말 기뻤다. 카드 앞면에는 커다란 별, 반짝이는 구슬이 일곱 개 박혀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림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직접 만든 것처럼 촌스러운 느낌이 났다. 근하신년이란 뜻을 가진 인쇄된 영어가 아니었다면 직접 만든 카드일 거란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정성 들여 쓴 글씨가 보였다. 지난여름에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중간놀이 시간마다 피구를 하게 해주셔서 좋았노라고 쓰여 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글자 하나하나가 꼭 그 아이를 닮았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듯 세련되고 어리숙한 듯 진지해 보이던 딱 그 애였다.
지난해 6월, 2주간 자가격리가 끝나는 대로 청강생이 한 명, 3학년에 들어올 거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에서 사는 교포인데 여름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묘하게 떨렸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느라 조바심이 생겼다. 그 아이는 후줄근해 보이는 티셔츠와 빛바랜 반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첫 만남인데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홀쭉한 다리에 신발만큼은 새하얗고 앙증맞은 끈이 달린 실내화를 신었다. 새로 산 모양이었다. 교실로 들어서며 90도로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손을 들어 ‘하이’ 인사를 할 줄 알았는데 부모에게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함께 지내는 내내 그 아이만큼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고이언입니다. 미국에서는 고이엔이언이라고 부릅니다.’ 말도 똑똑했다. 하는 짓은 더 예뻤다.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당시에 우리 반은 남학생 일곱 명에 여학생 한 명 있었다. 달랑 혼자였던 그 애는 짓궂은 남학생 틈바구니에서 잘 견뎌내긴 했지만, 여학생이 한 명이라도 전학 오는 것이 소원이었다. 기도가 통했는지 삼 년이 되어 가는 즈음에 바랐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해도 천사 같은 아이가 나타났다. 모든 면에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은 채 묘하게 중심을 잡으며 반 아이들을 더 진하게 이어 주었다. 친구들이 장난삼아 콕콕 찌르면 ‘네가 가시인 줄 알겠어.’라고 했다. 등에 올라타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할 때도 ‘난 그렇게 강하지 않아.’라며 슬쩍 넘어가 주었다. 장마철이라 놀 곳이 교실밖에 없었으므로 앉은뱅이 피구를 하려면 바닥 먼지를 닦아내야 했다. 엄마가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두 어린 남동생 뒤치다꺼리를 다 해내는 우리 반 유일한 공주를 따라 걸레질까지 야무지게 했다. 발로 슬슬 밀고 다니던 남학생들도 어느새 깨끗하게 교실을 청소했다. 이제 3학년인 아이가 저럴 수 있을까 놀랍기만 했다. 똑똑하지만 모나지 않고 한없이 퍼주는 것 같은데 절제하는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다. 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완전히 다른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썼을 아이를 생각하니 예쁘게 잘 자란 아이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우리 반 아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각박하게 따지길 잘했고 참을성 없이 자주 짜증을 냈다.
‘우리, 빗소리를 들어볼까? 비파 나뭇잎, 시멘트 바닥, 홈통, 유리창…….내리는 곳에 따라 소리가 달라.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는구나. 툭 투둑 투두둑 쏴아아. 이런 소리는 종일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어떤 지역은 물난리가 나서 삶터를 잃어버렸다는데 같은 비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니?’
그 아이가 있는 동안 내가 꿈꾸던 학급 운영은 계속되었다. 방학이 되어 헤어져야만 할 때까지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했다. 연하장을 다시 꺼내 본다.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선생님도 건강히 지내시라고 끝맺은 인사말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나도 답장을 보내야겠다. ‘나는 잘 있으니 너도 잘 지내렴.’
첫댓글 예쁜 아이가 다녀갔네요. 선생님으로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학교에도 청강생이 7개월이나 다녀갔는데 잊고 있었어요.
그 아이도 이쁜 아이였어요.
아마 제가 담임하면서 봤더라면 그 아이의 장점이 더 잘 보였겠지요.
아이들과의 그런 교감을 쌓을 수 없어서 아쉬워요. 이럴 때는요.
어쩌다 보는지라 아이의 피상적인 모습만 보게 되니까요.
예쁜 아이가 눈에 그려집니다. 어디서든 스며들어 잘 살기를 바라봅니다.
반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주시려고 고민하며 고르시는 선생님을 보며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참 아기자기하게 잘 챙기시는 것 같아요. 저도 배워 볼래요.
아이들의 장난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이언이도 아이들과 빗소리를 듣는 선생님도 감동이에요.
남옥 선생님과 생활했던 짧은 기간이 아이에게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겠네요. 먼 곳에서 잊지않고 연하장을 보낸 아이도 기특하구요.
아! 청강생 제도도 있군요. 이 글을 읽으니,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가 떠오르네요. 쇼코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방학 때 공부하러 온 아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