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오늘 말씀은 소위 성전청결이라 부르는 사건입니다. 나귀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가장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을 볼 때, 그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나라인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더니,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다 엎으셨습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엎으신 곳은 이방인의 뜰입니다. 성전에는 제사장들만 갈 수 있는 구역, 제사장을 포함해서 유대인 남자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 제사장과 유대인 남자를 포함해서 유대인 여자들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 그리고 나머지 이방인들도 갈 수 있는 구역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에 올라가도,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 이방인의 뜰에서 사람들이 동물을 팔고, 동전을 교환해줬습니다. 멀리서부터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동물을 멀쩡하게 성전까지 끌고 오는 게 너무 힘들었겠죠.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에 드릴 수 있는 깨끗한 동물을 팔았던 겁니다. 또, 20세 이상 남자 유대인들은 성전에 세금을 내야 했는데,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 지역의 동전을 들고 오면, 세금에 맞는 동전으로 바꿔주었습니다.
동물을 팔고, 동전을 교환해 주는 것.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상을 엎으신 것은 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물을 팔고, 동전을 교환하는 일이 이방인들이 예배드리는 장소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죠. 13절에서 예수님은 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지적하십니다.
성전에서 동물을 팔고, 동전을 교환하는 것은 유대 지도자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성전을 시장처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뜰에서 이런 일을 하니까, 이방인들은 예배드리고 기도할 장소를 빼앗긴 셈이죠. 시끌시끌한 시장에서 예배드린다고 생각해 보시죠. 불가능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14절부터 나오는 말씀과 요한복음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 오늘 말씀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 14절을 보시죠.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오니까, 고쳐주셨습니다. 여기 맹인과 저는 자들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전 안쪽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들을 고쳐주신 것은, 이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과 연약한 자들을 위해 열려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또, 15절 보시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막 화를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가 불쾌하고, 신성모독처럼 들렸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아이들의 소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답하십니다. 오히려, 지혜롭다고 착각하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답하고 계신 겁니다.
또, 17절부터 보시면 예수님께서 뜬금없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나무에는 잎사귀만 있고,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나무는 곧 말라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렇게 됐냐고 물어보니까, 21절, 22절에서, 믿고 기도하면 무엇이든 된다고 알려주십니다. 얼핏 이 말씀은 예수님처럼 제자들도 나무를 마르게 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즉, 지금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이 찾아오셨는데도 하나님의 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나무가 말라버린 것은, 그들이 곧 심판받게 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고 기도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해 주신 것이죠.
이 모든 이야기를 살펴보고,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 성전청결 사건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 집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면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하셨고,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그때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말씀해 주신 겁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단순히 제사를 잘 드리라거나, 전심으로 예배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제는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옛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옛 성전은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미리보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예배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참된 예배란,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 가르쳐 주십니다. 과거의 성전은 이방인과 아픈 자들을 멀리 밀어내는 성전이었다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맞아 주십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로 예배 자리로 나아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그 자리가 복입니다. 둘째로, 겉으로는 제사를 잘 드리는 것처럼 보이고, 겉으로는 푸르른 잎사귀가 가득한 무화과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참되게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신앙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이제 성전이라 불러 주십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을 버리고, 진실하고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시고,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