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의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고난이 유익입니다.
11/11금(金) 시 119:65-72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시 119:65)
세상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고난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환경 안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좋은 환경도 나중에 심판이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유지되면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악자 때문에 분개하지도 말고 악인을 시기하지도 말아라. 행악자에게는 장래가 없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만다”(잠 24:19-20). 물론 우리의 잘못으로 오는 고난은 회개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은 지혜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마음을 겸손하게 합니다.
“오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내 명예를 훼손하였지만 나는 온 정성을 기울여서 주님의 법도를 지키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무뎌 분별력을 잃었으나 나는 주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시 119:69-71). 인간은 세상의 일이 잘되면 마음이 높아져 교만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져 결국 마귀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려고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야 겸손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겸손은 ‘프토코스’로 절대 가난을 뜻합니다. 인간의 심령은 세상의 절대 빈곤에서만 천국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
▣성도의 고난은 말씀을 배우게 합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세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배신당하고 고난을 통해 결국 하나님만 나의 도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시 121:1-2).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를 살리고 복되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성도의 고난은 말씀을 지키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배우면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게 됩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시 119:67). 요나는 자신의 뜻이 옳다고 믿었지만, 고난이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 후 하나님의 뜻이 최선이고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님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 한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쳤더니 주님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욘 2:1-2). 인간은 어리석어 고난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And...
사람들이 행복한 웃음을 웃을 때 하필 왜? 나만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늘 투정을 부렸습니다. 성경의 지식으로 고난이 유익임을 알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무릎 꿇는 시간이 길어지고, 차츰 한 가지씩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경험, 지식이 버려지게 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가슴 벅차오르는 감사가 솟아오릅니다. 하필 그 사람이 나였던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고난이 준 유익은 시간이 갈수록 세상 어느 것과는 바꿀 수 없는 보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고난은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새 언약의 신앙,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진리를 삶에 적용하여 날마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입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때는 고난 자체를 없애 달라는 기도에 몸부림을 쳤다면 지금은 고난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문제(현상)는 더는 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누리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파도가 넘실대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줄 수 있지만, 내적인 평강을 주십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였습니다. 날마다 그분의 통치하심을 구하는데 주님이 나를 통치하시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의 지식이 내 지식이 되었고, 그분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되었으며 그분의 의지가 나의 의지가 되니 가능하였습니다. 그분의 지식이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분의 일하심을 감정을 통해 느끼게 되니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다스림입니다. 이것은 내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울 때 주님으로 채워지는 다스림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 자체는 있지만, 그 고난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싸고 있기에 고난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비워지면서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말씀이 나를 붙드니 더는 현상에 속지 않습니다. 이번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더는 거짓 자아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자아에 속지 않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보고 그것들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은 응답되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시간은 그분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그분 존재를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하나님 존재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나를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세상의 소유는 더는 내게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필요한 하나님 자신이 내 안에 계신다면 더는 어느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준비할 것은 영원 세계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세상은 사라질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영원한 세계만 내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이 땅에서 그 세계를 준비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주인이신 주님 존재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자유함과 영원한 세계에서 살아갈 원동력이 고난을 통해 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영원 세계의 주인이신 주님 자신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옷자락 만지며
https://youtu.be/25C_dFKhl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