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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강 창세기 26:1~33 내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54.24
26.10.20(화)
이삭을 어떤 원칙으로 결혼시켰는지 우리가 살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내게 있어서 결혼을 원칙이 무엇인가 우리가 함께 묵상해 봤구요.
창세기 25장을 통해서는 이제 죽음을 앞둔 아브라함이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 매듭짓는지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또 결혼한 이삭과 리브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갖게 되는가 어떤 마음속으로 뱃속에 있는 자식을 키웠는가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또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지 우리 행위의 결과가 이스마엘처럼 본류를 벗어난 행동을 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우리 살폈습니다.
창세기 26장은요.
창세기 한 장 한 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마는 이 26장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장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부모의 삶은 자식에게 100%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100%의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지금 아브라함이 없기 때문에 이삭의 경우만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이삭의 삶속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 보십시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을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아브라함 때에도 흉년이 있었는데 아들 이삭 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 흉년 흉년 두 번 두 번 다 우리 공표를 해 두십시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흉년은 있습니다. 인생의 폭풍은 있습니다.
우리나라 며칠 전에도 비가 많이 왔다고 그래요.
그래서 또 비 때문에 피해가 많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다 아시겠습니다마는 해마다 우리나라 우기 6월부터 7월 말 8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데 그 비가 올 때마다 피해가 납니다.
그런데 비 때문에 일어나는 피해 액수는 그 집중호우 때문에 얻는 이득의 100분의 1도 안 된다는 거죠. 돈으로 따지면 그때 비가 집중적으로 와야 1년째를 통해서 전기도 나오지요. 농사도 지을 수 있지요. 식수 해결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살아할 때 우리에게 분명히 인생의 폭풍도 있고 흉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하면 그 흉년과 폭풍이 있을 때에 내가 현실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이 하나라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백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죠.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근데 이 흉년이 들었을 때에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행동을 하는 것이 믿는 사람인데 이 흉년이 들었을 때의 이삭이 어떻게 했는가? 1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이삭은 단 한 번도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 흉년인가 내가 이 흉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냥 그랄로 가버렸습니다.
그랄이라고 하는 곳은 블레셋의 수도여요
블레셋 땅으로 가버렸습니다.
2절 말씀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 땅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이야기는 이삭이 어디를 목표로 하고 지금 내려가고 있는거영 애굽 애굽을 목표로 가고 있습니다.
흉년이 들었다 하니까 생각지도 않고 그냥 애굽으로 향해서 가는 거여요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아버지가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에 갔는데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지독한 흉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받고 간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있다는 애굽으로 무조건 내려갔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애굽의 의미가 뭐예요. 어둠의 도상 죽음의 장소 세상 온갖 불의와 세상의 모든 거짓이 있는
곳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우리의 목 삶을 목표여야 하는데 이삭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당부해서 조금도 고민 없이 세상에 불의 부정 거짓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흉내에 애굽으로 가려고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한대로 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해라 지시하는 땅이 어딥니까? 가나안 본래 네가 있어야 될 땅에 있어라 애굽으로 가지 마라
그랬는데 6절 보니까?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지를 않고 그랄에 그냥 있었습니다.
왜 그랄에 그냥 눌러주저 앉습니까?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창세기 20장 아시죠.
여기가 지중해요. 이게 애집트 시내반도 사우디 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이거는 갈릴리 이거는 염해 우리가 사해라고 부르는 염해입니다.
자 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내려온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이르러서 제일 먼저 단을 쌓고 정착을 했던 자가 벧엘이에요.
바로 그 밑에 헤브론이라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과 교제를 했던 곳입니다 그 밑에 브엘세바가 있고 여기가 애굽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악의 도성 죽음의 도성 불의와 거짓의 도성이어요
그랄이 어디냐 애굽과 가나안의 경계선이어요
애굽과 가나안의 딱 경계선에 가서 살고 있는 것이어요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라 그랬는데 이 경계선에 가서 양다리를 딱 걸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날을 뜻이 뭐라 그랬죠. 기복의 땅이라 그랬습니다. 기복의 땅 내가 양다리를 걸치고는 내 삶에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랄 여기는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 그 지역이지죠.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는데도 그랄에 거하는가 아버지가 한 대로 하더라는 거예요.
아버지가 한다는 것이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자기 눈으로 본
아버지는 가까이 계셨던 거예요.
그 아버지 한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기복의 땅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때에 그게 바른 삶이 되겠는가
여러분 우리가 신앙에서 말이죠. 얘기할 때 뭘 결단한다. 이런 얘기 하잖아요. 결단 결단한다고 하는 거 한자로 즐겨 쓰잖아요. 결단은 무슨 결이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끓을 결이어요 단은 무엇인가 끓을 단이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결단하는 건 뭔가 끊어내는 겁니다.
근데 못 끊었습니다. 왜 아버지 한 대로 그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까 끊어야 할 걸 못 끊는 것이어요
그러면 끊어야 할 걸 못 끊고 그랄어 있을때에 문제가 안 생기겠는가? 당연히 생기겠죠. 그죠.
7절 말씀볼게요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음에 그가 말하기를 그냥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움으로 그것 백성을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
내 아내가 예쁘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빼앗아 가지 않을까 겁이 나서 자기 누이라고 속였어요.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아내를 빼앗으려고 합니까? 아니에요. 죽이려고 합니까? 아니에요.
지래 겁이 나서 속였습니다.
왜 그런 거짓말이 나오죠.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아버지가 두 번 그랬습니다.
10:01
애집트에서 한번 그랄에서 한번 그러니까 지역이 있다면 끊어내어야 할 지역의 땅을 끊어내지 못하고 거기에서 양다리 걸치고 서 있으니까? 걱정 안해도 될 온갖 걱정이 생기는거여요
결과는 뭔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한 그대로 하더라는 거예요.
8~11절
8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자 이삭이 말입니다.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잖아요. 그리고 그 속인 그 거짓말한 그 상황으로부터 이삭은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자 여러분 내가 속였습니다. 미안합니다. 사실은 내 아내입니다 이렇게 자력으로 하지를 못했습니다.
타력으로 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에 의해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를 결국 보호해줌으로 내 아내가 내 누이라고 속였던 그 창피스러운 상황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어요.
왜 아버지도 그랬거든요 아버지도 거짓말하고 나서 이걸 거짓말이다라고 자기 자력으로 자기의 상황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타력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이어요
여기 아비멜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브라함 때도 그랄에 아비멜렉이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이게 동일 인물이 아니라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근데 그 파라오는 죽어도 또 세운것인데 또 파라오잖아요.
마찬가지로 블레셋으로 하면 아비멜렉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은 예전 왕이고 지금이 상태는 그 자식때 왕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삶이 자식의 삶 속에서 불현듯이이 결정적일 때마다 툭툭 튀어 나옵니다
결정적일 때 아버지의 모습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여기까지만 성경이 기록하고 끝났으면 우리는 이 절망이죠.
어떻게 자식을 낳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계속이 됩니다.
12~18절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이 그곳에서 살면서 재산이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랬더니 그랄 원주민들이 이게 이 민족이 하나 들어와서 잘 사는게 배가 아파서 못 보겠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던 그 우물을 흙으로 메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때 가장 큰 재산이라는게 뭡니까?
첫째 자식 수 두 번째로 우물 세 번째로 짐승 수 이렇게
되는거여요
그런데 생명은 우물이 나오니까
흙으로 메꾸어져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나는 일이죠.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비가 안올 때에 농부들끼리 물길을 좀 이렇게 돌려놓으면 낫을들고 서로 찍고 싸우지 않습니까?
생명하고 연관이 된 것이니까 그런데 이삭이 어떻게 해요. 안 싸웠습니다. 아비멜렉을 불러서 탓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죠.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아버지가 아비멜렉에서 살 때 아비멜렉 군사들이 우물을 빼앗고 탈취하고 오만 못된 짓을 다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꼭 참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비멜렉이 왔을 때에 말을 했을 뿐이지 싸우지 않았어요. 다 당해 줬습니다.
이삭이 아버지가 했던 그 넓은 마음을 이삭이 고스란히 지금 받고 있는 거예요. 한번입니까? 아닙니다.
19~20절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팠는데 물이 나오니까 그랄 사람들이 와서 또 시비를 걸어요,또 포기하고 갔습니다. 그걸로 끝인가 아닙니다. 21절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세 번째 팠는데 외서 또 시비를 걸어요.
이삭은 아버지 한 모습 그대로 하지요
아버지가 롯하고 서로 같은 땅에서 살기 때문에 가축이 심히 많아져서 노비들끼리 서로 싸워요.
그때 어떻게 해요. 아버지가 자기 기득권을 다 포기했습니다. 이삭이 지금 아버지 그 모습대로 합니다 세번씩 다 포기해 주었습니다
22절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네 번째에 파고 나서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제 이것을 나에게 주시는 것이로다. 감사하면서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해요. 르호봇인데 장소를 넓게 했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의 표어하고 똑같지요. 지경을 넓히소서
어떻게 지경이 밝혀집니까?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뢰하는 삶을 삶으로 세상의 것으로 일희일비 하지 않는 삶으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법칙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이삭이 만약에 아브라함의 아들로 안 태어났더라면
그랄의 군사들이 와서 세 번씩 이렇게 나쁜 짓을 할 때에 지금 여기 보셔요.
이게 무슨 국가가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아니면 부족국가 이래 그러면 이삭도 자기 노비들을 데리고 얼마든지 싸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요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롯이 잡혀서 갔을 때요. 자기 집에서 길른 자 318명을 데리고 가서 다 데리고 오지 않습니까
이 방식은 그럴 때란 말이죠.
그런데 싸우지 않고 아버지가 했던 대로 했습니다.
또 23~25절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5절에 그곳에 단을 쌓아 공표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확인이 될 때마다. 딘을 쌓는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어디 가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기억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은혜라고 확인될 때 아브라함은 단을 쌓던 사람입니다 단을 쌓았습니다
25절 뒤에보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거기다 공표를 한번 해 보십시다.
우물을 팠더라 공표를 해놓고 뒤에 가서 우리 그 의미를 보기로 하십시다.
26절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아비멜렉이 이삭을 쫓았던 사람이죠
네 너무 잘 산다. 우리도 모두 살지 말고 좀 가주라 하고 쫓았는데 아비멜렉이 자기 옆에 있는 신하들을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이삭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까? 너 정말 하나님은 살아있다. 너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나하고 화친 해야 되겠다.
이삭이 왜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습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거든요
27~30절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20:01
자 누가 잔치를 베풀어줘야 해요.
아비멜렉이 잔치를 베풀어 줘야해요.
왜 자기 군사들이 이삭의 우물을 세 번씩이나 해고지했거든요.
그리고 아비멜렉 자기가 쫓아냈습니다.
자기가 쫓아내고 자기 신하들이 우물을 메꾸는 그런 해고지를 한 상대를 찾아가서 화친하자라고 하려면 자기가 예물을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은 거기에서 그래 네가 나한테 머리 숙이고 항복해라 이게 아니라 자기의 소유로 전부 잔치를 베풀어줬습니다.
왜 그래요.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아버지가 못된 짓 하던 아비멜렉 그 군사의 그 말씀대로 전부 따지지 않고 아버지가 다 대접을 해줬습니다.
이삭의 아버지가 하신 대로 하는 겁니다.
31절 말씀 보면요.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평안이 갔더라 이 히브리 원문은 그들이 행복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이삭이 해주었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자기에게 해코지 한 자가 잘못했다고 머리 숙이고 올 때에 머리를 한번 꿀밤주고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섬겨서 행복하게 만들어 줬어요. 그리고 돌려보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 본받고 아버지가 그대로 있거든
32절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물을 얻었나이에다에 공표를 하고
25절에 아까 우물을 팠더라하고 연결을 해 봅시다.
이삭이 토 새로운 우물을 팠는데 언제 물 근원을 봤는가
언제 물이 터지기 시작했는가?
내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머리 숙이고 올 때 그럴 행복하게 섬겨지고 났더니 그 즉시로 물이 터졌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줘도 또 사람 성길테니까 자기 혼자 안 할테니까 그날 밤에 터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구절 이런 부분들을 잘 보고 줄로 연결시켜가면 참 성경이 놀라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책임지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책임지신 속에 있을 수 있는지 성전은 그 원칙을 다 가르쳐 주고 있단 말이죠.
물이 터졌습니다.
33절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브엘세바가 뭡니까? 맹세의 우물이라는 말입니다.
우물이 터지니까 이거는 맹세의 우물이다
결국 그게 뭐예요.
나는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맹세하는 사람이다.
난 하나님 뜻대로 살 것을 맹세한다. 왜 브엘세바라고 지어요 아버지가 그 이름을 아버지요
아버지가 우물을 파고 브엘세바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그대로 하는 겁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26장 개괄적인 것들을 지금 살폈는데 아브라함을 한 평생 중에서 장점 단점 고스란히 이삭을 통해서 다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세 있습니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부모는 오늘 내 자식의 위기를 사는 거라는 겁니다.
내가 사는 것 나 혼자 사는 것 아니에요. 나 살고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 자식의 내일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게 뭔가 우리 깊이 깊이 생각해야 되는 거죠. 우리가 정말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얼마나 다루어 진지하게 가꾸어야 되는가 깊이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는 그 술을 제 스스로는 술을 못 먹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뭐 친구들하고 술 좌석에 가도 먹으면 뭐 이게 도대체 받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저는 술을 못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외국인 회사의 취직을 했는데 2월 달에 졸업인데 그 전에 이제 12월 1일부터 근무하거든요. 그런데이 외국인 회사가 12월 24일까지 12월 1일 날 입사를 했는데 12월 24일까지 밤마다 파티를 했어요.
12월 1일은 신입사원 환영회 파티부터 시작해서
매일 술을 주는데 그 24일 동안의 이 술 은사가 개발이 되버린 것입니다.
술을 먹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데 이미 빠진 독이 됩니다. 24일 만에 저희 아버님이 그랬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밑빠진 독입니다. 얼마나 술을 많이 드셨는지요. 그러니까 제가 그때 술을 먹을 때에 무슨 뭐 사교하면서 한두 잔 먹고 무슨 뭐 유럽에서 식사할 때 먹는 포도주 한 두잔 그게 아니라 해도 꼭지가 돌 때까지 먹으니까 그렇게 술을 먹을 때에 저한테 뭘 참게 내 그리스도인으로 이렇게 막 이렇게 방탕하면 안 되는데 이러면서 제 마음속에 두 부분이 있는 거예요.
하나는 우리 아버지 자식인데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드셨는데 뭐 그렇게 제 생활을 술을 정당화시키는 한 부분이 있는 겁니다.
또 한 부분에 갈등이 있어요. 아버님께서 그렇게 사시다가 제가 국민학교 5학년 되는 해에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하루아침에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내 아버지 자식이니까 이렇게 술 먹을 수밖에 없어 이 마음이 하나 있는가 하면 또 한 면으로는 우리 아버지는 다 끊으셨 건데 그러셨는데
난 이거 참 아버지 자식으로 부끄럽다.
그러니까 매번 그렇게 술 먹고 취하고 방탕하게 놀아도 한 번도 마음이 안 편하지요 왜 난 아버지 자식인데 우리 아버지 말년을 안 그랬단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아버지께서 그렇게 딱 끊는 그런 삶을 모습을 저한테 보여주시지 못하셨으면 아마 제가 오늘 여기서 있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내가 오늘 사는 것은 내일을 위해 내 자식을 사는 겁니다. 여러분들 자식도 보면 아시죠. 여러분들 무섭게 다루는 것 아시죠.
그러면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내가 하는 거는 그저 나의 나쁜 습관 나의 품성 여러 가지 뭐 사고 이런 것만 지식이 닮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성 세대로서이 사회에서 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내 자식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여기까지 우리는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 보셔요.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사회를 정말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우리 기성 세대가 내 분야에서부터 끊을 것을 끊고 만들어 가지 아니하면 우리 자식들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계속 거짓말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탈세하고 그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부정한 돈이 오고가고 그렇게 우리 자식도 클 거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나한테 맡겨주신 자식이 내가 만들어낸 사회에서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 간다. 끔찍한 일이죠.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내 개인을 삶을 바로잡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천만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면이 일천만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그 일터 그 장소에서부터 정말 정의를 구현해 가야된다 그것이 우리 자식들에게 가장 바른 삶을 살게 해주는 선물이 되는 거죠.
30:03
두 번째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첫 번째 뭐라고 말씀드렸느냐 하면 부모인 나는 오늘 내 자식의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죠.
그런데 두 번째에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은 그 자식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도 닮고 태어난다는 것이어요
보세요. 이삭이 흉년이 들자마자 애굽으로 가려고 가방 들고 나왔죠. 그리고 그랄에 주저앉았죠. 그랄에 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죠.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하더라는 겁니다. 그대로 하더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그 짓을 할 때는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중에 결혼하는 분들 계시는데 난 뭐 결혼하면서부터 바르게 살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을 나중에 자식들이 다 그대로 타고 나는 겁니다. 지금 여기 성경이 그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9절로 10절 보면요.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십일조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또한 10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 10분의 일을 바쳐라 그래서 레위 지파가 10분의 1을 받는데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10분의 1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을 허리에 있었음이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자기 조카가 잡혀갔을 때 가서 다 이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소돔과 고모라 임금이 이 재산 다 네것해라
난 안한다 난 네가 나를 부자 만들어줬다고 해서 하나님 영광 가릴까봐 안 한다 그 대신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친다.
그리고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도 태어나지 않았어요.
손자 야곱은 물론 없습니다. 증손자 레위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레위도 증손자인 레위도아브라함의 허리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으면서 같이 바쳤다
여러분 생물학적으로 얘기하면 아이가 어떻게 태어 납니까? 내가 결혼하면 어떻게 돼요. 남자의 정충 여자의 난자와 만나서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혼자 살 때 결혼하기 전에 우리의 삶을 정말 바르게 가꾸어야 할 것은 그 삶도 자식이 타고 나더라
제가 예전에 청년 때에 그 무슨 행동을 하면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늘 이런 소리 많이 하시거든요. 너 꼭 네 아버지하고 똑 같다
그때 저는 태어나기도 전인데 태어나기 전에 제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안 봤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하고 똑같이 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럴 때 이것을 우리가 안다고 하면 여러분들의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때문에 어떻게 시켜야 되겠는가 우리 한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게 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가령 뭐 우리 아이가 10살라고 하십시다 그 아이는 나 10살을 못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10살때 제가 갖고 있던 나쁜 습관이나 나쁜 행동을 이 아이가 나를 닮은 것을 압니다
그 때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기에게로부터 닮기 원치 않는 것을 자식이 원할 때 분노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더 막 다릅니다
야단치고 매로 가르치는 겁니다.
고쳐십니까? 안 고쳐집니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의 죄성을 갖고 자식이 태어났을 때는 회개해야 되는 겁니다.
그 자식을 삶을 보고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저 자식이 주님을 섬기는 한 중심을 닮아가도록 책임져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에게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이때 지금 아브라함은 죽고 없습니다.
근데 만약 이때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삭을 불러다 놓고 이놈 너 애비 닮지 말 라는 것은 다 닮고 하고 야단쳤겠습니까
아마 분명히 아브라함은 회개하고 이삭에게도 회개했을 것입니다. 왜 그것이 성경의 원칙입니다. 나중에 우리 구역 성경 공부할 때 빌레몬서에 가서 보면 아시겠습니다마는 빌레몬서라고 딱 한장이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데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은 빌레몬의 종이어요
그런데 주인의 돈을 훔쳐서 도망온 겁니다.
그 당시에 로마에는 노예 제도가 있던 사회이기 때문에 노예가 도망가면 무조건 사형입니다 사형 안 시키면 노예 제도 자체가 유지가 안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오네시모가 도망을 전전하다가 다른 죄목으로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다가 사도 바울을 그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자기의 비밀을 고백한 거예요.
나는 본래 빌레몬 집에 노예였는데 도망한 사람입니다. 그것만 해도 위대한 것 아닙니까? 그죠.
바울에게 고백했다고 하는 것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거잖아요.
그럼 우리 같으편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 잘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뭐라고하는가 네가 빌레몬을 찾아가라 네 주인을 빌레몬에게 가서 회개해라 아무도 안 보는 곳에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는 것 의미없다 네가 가야 된다.
네가 가서 그 사람 앞에 회개해야 네가 그런 짓 또 안 한다. 빌레몬에게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요
이 오네시모가 죽음을 각오하고 너한테 회개하러 간다.
너도 그리스도인으로 용서해 줘라 이게 빌레몬서입니다
중국에 엡지만이라고 하는 복음주의자가 있습니다
그분을 비 정통인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유교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접한 분이시기 때문에 이 복음을 한 부분만을 전체적인 양 잘못 받아드린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엡지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주님에 대한 열정이랄까 그분이 그 순수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했던 그 중심은 굉장히 높이 평가받아야 될 분이에요.
엡지만이가 전통적으로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외래 선교사는 전부 다 제국주의 앞자리로 보던 시절에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그 어머니가 어느 날 선교사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성경을 어느날 읽다가 엡지만을 불러놓고 엡지만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으니 네 용서를 받아야되겠다 너의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겠다
엡지만은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의 감동이죠.
내가 정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람 앞에 회개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 이걸 믿음으로 우리가 하는 거거든요.
바울이 오네시모한테 빌레몬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에 하는 것이고요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중국 같은 전통 사회에서 부모는 잘못해도 자식한테 항상 잘한 거야
그런데 도대체 예수는 누구길래 우리 어머니로 하여금 나한테 무릎을 꿇리고 나에게 잘못한 것을 사과하게 하시는구나!
이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래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 잘못할 때 우리 회개하죠. 그리고 그 사람 손을 잡고 참 그때 참 유치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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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유독 자식에게는 온갖 나쁜 것만 다 줘놓고 자식에게 회개할 생각을 안해 문제 있는 것이지요
저희 집에 아이들이 내 명이 있지 않습니까?
가끔씩 한 아이가 밥을 먹다가 뭐 저금통에 돈이 없어졌답니다. 또 없다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간수를 잘 못하니까? 그렇지 근데 가만히 좀 날이 지나고 보니까? 이게 그런 착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 네명을 부러놓고 너희중에 누구든지
다른 형제들의 돈을 가져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도둑질이다 얘기해라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자 그랬더니 한 아이가 다 가져갔다고 얘기해요 딱 맞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아이에게 죄 의식이 없는 거여요
남의것을 가져갔고도 도둑질을 했다고 이것이 크면 정말 도둑놈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뭐가 제 앞에 스크린으로 떠 오르느냐하면 제가 어릴 때 제 누님들의 돈을 쉽게 훔쳤습니다
저하고 같은 세대를 사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때 시골에서는 말입니다. 가게에 가면 머스마들이 사탕 몇 개를 훔쳐오는 것은 자랑거려요.
매일 훔쳤습니다 죄 의식 없이 훔쳤습니다
내가 위해서는 도둑질하고 사탕 도둑질 할 때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렇게 한 죄성을 내 자식이 타고난 겁니다.
그 자식을 내가 야단친다고 고치겠습니까
제가 아이한테 매를 주고 저를 때리라고 했습니다. 못 때리죠. 때려야합니다 때려야 해겔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엉엉 울면서 때렸습니다
아빠 나 이런 짓 안 할 텐데 나쁜 줄 알았으니까 아빠만 안 때리게 해달라는 겁니다. 때려야 됩니다. 네가 때려야 된다 아빠 잘못이니까 때려야된다
제가 맞고 나서 정말 웨치만 어머니처럼 제 자식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애야 내가 너한테 바쁜 것 줬었다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도 회개하고 내 나쁜 걸 타고난 자식인 네 앞에서도 회개한다
아빠 용서해주라 그러면서 용서한다. 그랬죠. 제가
지금 이렇게 얘기하지만 저도 울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요. 그 아이의 중심을 그 순간 잡아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이들을 훨씬 더 컸죠.
무슨 아이들 무슨 뭐 돈 이런 것 없어지는 것 없습니다. 그냥 다른 아이들도 여러분 정말 우리 자식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나의 모든 죄성들 다 담고 나옵니다.
내가 옛날에 저질렀던 그 나쁜 짓들을 내 자식이 하는 것들을 볼 때에 내 멋대로 고친다 안 고쳐집니다
회개로 회개를 통한 성령의 역사로 그들은 바뀌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뭐여요
부모는 신앙으로 자식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부모의 신앙으로 자식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4절부터 볼까요.
이는 아브라함이 네 자손을 하늘을 결과 같이 번성케 하며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 이삭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주는데 이유는 네가 잘할 수가 아니라 네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내 말대로 살았기 때문에 네 아버지를 보고 내가 너를 복을 주겠다는 거여요
또 23절부터 24절 한번 보십시다.
23절부터 24절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을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공표해 주십시다.
내가 함께 해주겠는데 이유는 네 아버지 때문에 네가 어디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책임져 줄게
네 아버지하고 한 약속 때문에 여러분 솔로몬이 참 예루살렘 성전도 짓고 멋지게 살다가 말년에 얼마나 타락합니까? 그렇죠. 처첩이 천명이었습니다.
천명의 여자를 놓고 주지육림에 빠진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그 전도서라고 라는 글이 없으면 솔로몬 과연 구원을 받았겠는가 우리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전도서가 보면 다 솔로몬의 회개문이거든요
자기 잘못한 것의 회개문입니다
정말 말년에 솔로몬이 하나님 앞으로 회개하고 바른 삶을 삶으로 잠언서도 마무리 짓고 참 그 인생이 아름답게 끝나는데 그 솔로몬이 잘못하면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치면서 다시 세우시는 이유가 뭐예요.
너 때문이 아니라 네 아버지 다윗 때문에 내가 너를 다시 세운다는 거예요. 여러분 유다 왕국의 20명의 왕이 있는데 그 왕들은 다윗의 피를 이어가는 다윗의 후손들입니다.
그 왕들이 잘못할 때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강조되는 말이 뭡니까? 너는 참 형편없는 인간인데 네 조상 다윗 때문에 네 할아버지 다윗 때문에 내가 너를 도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분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살고 내 중심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나를 위해서 우리 자식들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자녀들로 세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우리 어머니 기도 덕분이라고 우리 아버지 기도 덕분이라고 저도 똑같은 고백합니다.
저희 어머님과 아버님의 기도 그분들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아니면 저는 절대 이런 목사 못합니다.
제가 무슨 뭐 37살에 신학교를 갈 때까지 목사를 제가 하겠다고 준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제 스스로를 훈련시킨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죠.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면서 들어가서 이제 뭐 새벽기도 다니고 이렇게 기도를 할 때 제 마음속에 궁금한게 하나 있었습니다. .
저희 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에 세 번씩 새벽에 1시간 낮에 1시간 밤에 1시간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변함이 없으셨어요.
집에서 기도하실 때는 딱 한복 입으시고 버선까지 다 신으시고 띠 메시고 무릎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형상이 늘 나에게 남아있죠
아버지 하면 그 형상으로 우리 자식들은 다 말년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말년에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할 때 도대체 외아들인 나를 위해서는 멀기도 하셨겠는가 하는 거예요.
제가 나이 40을 바라보고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들어갔는데 내가 정말 아버지의 예배는 뭐였는지 그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었던 아들로서 그 아버지의 염원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그래서 한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뭐라고 기도하겠습니다만 좀 알게 해 주십시오
제가 37년이라는 인생을 버렸는데 지금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한테 얼마나 지혜를 주실는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내 삶 속에서 이루어야 되지 않겠느냐 좀 가르쳐 달라고
그날도 새벽에 기도를 드리다가 제가 깜빡 졸았습니다. 근데 제가 부산에서 살던 그 2층 방에 서제에 아버지가 뭘 기도하시는 그 방에 제가 가 있는 거예요.
아버지의 기도의 내용이 뭔가?
하나님 아버지 내가 평생을 헛된 살다가 내놓으면 나를 이렇게 바로 세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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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내 여생을 다. 바쳐서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으ㄴ데 나는.이 정도면 좋습니다. 내 자식을 목사 시켜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의 덕분으로 제가 매일매일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불과 10 몇년전까지 형편없는 인간이었던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한테 이러고 설 수 있겠어요.
여러분의 삶으로 여러분들을 믿음으로 여러분의 자식들은 하나님의 신뢰와 하나님을 은총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여러분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자식의 내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여러분들이 자식을 사랑하신다면 자식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해답은 나온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자식들은 삶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된 삶을 살았던 그 모든 모습들이 자식을 통하여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신다면 우리 절망 가운데에서 어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자식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중심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가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원천을 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잘못된 삶으로 인해서 우리 자식들을 삶을 한 부분을 왜곡된 것 내 자식을 가리키려 하면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회개하므로 성령님의 은총 속에서 자식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참으로 많은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장점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많은 장점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 속에서 버려져야 할 것들 성령께서 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주님의 향한 은혜의 중심에 자식들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자리를 기도를 인하여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고백으로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게 도와주시고 우리의 역시 우리 자식들 앞에 그러면 믿음의 부모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친히 부르시고 너는 될 것 아니지만 너희 아버지 때문에 너희 아버지를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 있는 기도로 인하여 우리를 자식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신뢰받는 종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는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버지 되어 주심을 우리를 만나는 삶속에 우리 자식들을 삶 속에 우리의 가정 속에
하늘로부터 비롯되는 말할 수 없는 소망으로 이 시간 채워주시는 것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그 소망 안고 돌아가게 도와주시고 주님의 품속에서 살아가게 도와주시고
내일부터 주님과 더불어 멋진 삶을 꾸려 나아가게 도와주시고
그 삶을 우리 자식들을 삶 속에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은혜를 페풀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도드리며 이제 우리 모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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