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
날씨만큼 변화무쌍한 중년의 마음을 보듬다
나이 드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
중년의 계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갈팡질팡…
위태위태…
불안과 모호함 속에서도
더 단단한 일상을 산다!
사려 깊은 언어 감수성으로
나이 듦의 풍경을 그린,
인문학자 한귀은의 ‘중년 에세이’
1부. 이 나이에도 여전히 미숙하고 꾸준히 실수한다
몸과 마음에 찾아온 난데없는 변화
느닷없이 저지른 일의 진짜 이유
청춘이 사라진 자리에 필요한 것
주부로 20년을 살고 보니
2부. 고장 난 마음을 어떻게 다시 수리할 것인가
마음 공정, 온갖 마음을 다 겪는 것
중년 이후, 시간이 없어, 라는 조바심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위층에 골칫거리가 산다
‘잘 사는 것’에 대한 흔한 착각
3부. 매듭짓지 못한 관계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법
삶의 미결 서사들
마흔 이후에 떠올리는 짝사랑은
직면해야 할 때는 직면할 것
마흔 이후부터는 잃는 친구가 더 많은 법
응원한다, 과거의 나든 오늘의 타인이든
4부. 마흔, 나다운 삶을 모색해도 늦지 않은 나이
덜 읽고 더 살기로 했다
늙어가는 딸이 늙어버린 아버지에게
아이에게 바랐던 건 결국 내 욕심
미지의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
자기 삶에 대한 질문을 발명하기
5부. 인생은 의외로 길고 사랑 역시 그렇다
나의 외모, 노화, 우울과도 사이좋게 지낸다
노년의 사랑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끌릴 수 있는 힘이 사랑이다
결혼, 그리고 살림이라는 그 짠한 말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마흔,
나다운 삶을 모색하는 데 가장 알맞은 나이
불안해서 서둘러 균형을 잡으려는
40대에게 전하는 위로와 공감
나이 듦의 징후는 몸도 몸이지만
무엇보다 급격하게 줄어든 자신감,
즉 심리적 위축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제 겨우 40대인데 매스컴은 떠들썩하게
‘100세 시대’를 말한다.
남은 50~60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불안은 성급히 어떤 결론을 내라고 독촉한다.
저자 한귀은은
그녀 자신이 겪고 들은 일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들려줌으로써
서둘러 잡는 균형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느 날 아침,
인터넷 동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셀프커팅하고는
엉망이 된 머리를 사후처치하러 미용실을 찾은 일,
중년 이후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 때문에
휴가 때마다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4050들의 짠한 강박,
별일도 아닌 일에 불쑥 터지는 히스테리와 짜증,
점점 예민해지는 오감과
관계 속에서 쌓이는 섭섭한 감정들,
TV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의 예찬론자가 된 사연부터
이제는 눈물도 생리 현상의 일부로 느껴진다는
애잔한 고백까지 그야말로
차마 드러내놓지는 못했지만
구구절절 내 얘기 같은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이 무수한 경험을 통해
저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
불안해서 서둘러 균형을 잡지는 말 것.
서둘러 균형을 잡기보다
자신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더 흔들리며,
삐거덕거리는 마음을
다시 공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마흔 이후야말로
나다운 삶을 모색하는 데
가장 알맞은 나이다.
마음 편히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자 한귀은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통찰
그럼에도 나이 듦은 어쩔 수 없이 서글프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행복해지고 단단해질 거라는
긍정적 자신감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느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이가 쌓이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을까?
저자는 나이도 노화도 지금까지의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의 쇄신과 갱신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자신을 방치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되
자신에게 내재된 미(美)를 발견해내고,
그 나이에 맞는 고유한 매력을 하나하나 찾아간다면,
나이 듦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또한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는 유머라며,
청춘이 사라진 자리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유머일 거라고 말한다.
느닷없이 찾아온 노화의 징후들이
두려워질 때 유머로,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유연히 살아가라고 말한다
행복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할 때
불쑥 찾아온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다행이다’ 싶은 게 행복이다.
덜 추워서 다행이다, 덜 더워서 다행이다,
덜 피곤해서 다행이다, 덜 아파서 다행이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놓고
그것을 피하면 행복하다고 해석하는 거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해석’에서 온다.
몸의 통증도,
마음의 통증도 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잘 해석해야 할 대상이다.
통증을 해석하고 나니
통증에 대한 두려움도 좀 사라진다.
통증에 대해 알게 된 셈이다.
무릇 아는 것만큼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중에서
청춘과 성욕이 사라진 자리에
유머가 생겼으면 좋겠다.
유머는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다.
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오고,
죽음에 더 가까워지면 두렵고
상처 또한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유머로 잘 극복하면 좋겠다.
비록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세상에 대해서 어떤 현명한 발언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 개인으로서의 윤리를 견지하고
소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청춘이 진짜 사라지는 순간」중에서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이 낯설어진다.
우리 집 거울 속의 ‘나’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다른 곳에서 무심코 본
거울 속의 여자는 너무 이상하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스캔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나마 아직 덜 늙은 증거다).
저 모습으로 집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머리카락, 윤기가 없다.
몸, 긴장감이 없다.
얼굴, 어둡고 칙칙하다.
자신감, 없어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문제는 그 놀람도 잠깐이라는 것이다.
놀람이 유지되었다면
미용에 좀 관심을 가졌겠지.
그러나 아줌마는 금방 잊는다.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금방 다시 ‘주부’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다.
「갱년기」중에서
이 나이쯤 되면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순간 반짝이는 빛을 발견할 줄 알게 된다.
그 빛이 사라지더라도
또 다른 빛이 오리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삶이란
그 빛을 기다리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삶’도 중요하지만
‘생명’ 그 자체가
더 눈부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산다는 건 빛을 기다리는 과정」중에서
어렸을 때 어른들이 “너 많이 컸구나” 하면
그게 굉장한 칭찬으로 느껴졌었다.
다만 시간이 지난 것뿐인데…….
지금은 어떤 얘기가 칭찬으로 여겨지는가.
“너 아직도 노안이 안 왔구나”나
“너 아직 머리숱이 많구나”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흐른 것 때문에 칭찬받고,
나이 들어서는 시간을 비껴간 것 때문에
칭찬 비슷한 것을 듣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듬성듬성해진 머리,
오르기 시작한 뱃살,
거칠어져가는 피부,
그런 것들과 함께 사랑을 해야 한다.
환상이 작동하기 참 힘든 조건이다.
「환상과 환멸은 멀지 않다」중에서
인생의 쇄신과 갱신은
바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일어나게 돼 있다.
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
정말 어찌할 수 없어서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마음만 동동거릴 경우,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
어쩌지 못하는 일에 마음만 분주하고
그 일에 질질 끌려 다닌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고,
‘나’를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는 아예 박탈당한다.
애초에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으니
물질적인 것 따위는 좀 잃어도 괜찮다.
‘나’에 대한 앎과 믿음이 인생의 또 다른 일에 대한
현명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중에서
주사를 맞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정이입은 된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나이 들어서 나이 들어 보이는 건 괜찮은데
우울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좀 속상하다.
우울해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을 진하게 하면
사나워 보인다.
역시 딜레마다.
딜레마를 가까스로 피하는 방법은
그냥 ‘나’로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나를 그냥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자신에게 내재된 미(美)라고 할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하여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
「얼굴, 주사로 가능할까」중에서
늙으면 피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노년의 사랑」중에서
치매가 있으면 치매가 있는 대로
치매 있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뇌는 고령에도
지속적으로 가소성을 유지한단다.
가소성이란,
말 그대로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의미다.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가 오더라도
뇌를 계속해서 쓰면
병변이 없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 되어서
그 병의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사랑은 뇌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랑은 뇌의 가소성을 증강시킬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신은 고약하게 늙어가는 인간을 위해
‘사랑’을 선물하신 거다.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