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宋代) ‘루 관요(汝官窯)’ 붓씻는 접시
매우 귀중하고 지극히 드문 북송시대(北宋代) ‘루 관요(汝官窯)’에서 만든 붓씻는 접시가
홍콩의 소더비경매에서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며 판매되었다.
LOT SOLD. 294,287,500 HKD (425억원) 2017.10.03 0:20 AM HKT HONG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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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Description: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굽이 낮은 접시로 빛이나고 투명한 청록색 유약이 두텁게 퍼지며
빙렬이 고르게 퍼져있고, 테두리와 굽으로 가면서 유약이 얇아지면서 바탕색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깊은 곳에는 유약이 조금 고이며 진한 유약의 색상이 더욱 깊은 느낌을
주고있다. 바닥에는 참깨 모양의 격조있게 만들어진 받침모양이 있다.
루 관요(汝官窯)
루관요(汝窯)는 중국황실에서 운영한 첫번째 관요로서, 황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도기를 굽는
가마이다. 북송(960-1127)시대 말기 1086~1186년 사이에 20여년간 운영되었고, 현대사학자들이
중국 5대 가마 중 한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질좋은 그릇을 만들기로 유명한 요장이다. 현재
헤난성의의 바오펭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중국역사에서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에서
만든 그릇은 중국의 역사라고 간주되는 데, 중국의 철학을 상징하고, 중국의 미학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이 작은 그릇 하나가 중국도자기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데, 여기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예술품 중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과
찬사를 모두 받고 있는 데, 이곳에서 만든 그릇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루관요는 설립 후 20여년간 운영되다가 이 지역이 침략군에 함락되면서 1120년경 요장도 없어졌다.
북송시대 요장의 유적지에서 발굴한 조각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태토가 잿빛에 가까운 회색이라서
물의 흡수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 유약으로 그릇을 모두 덮지않으면 물을 흡수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루관요 그릇은 고온에서 소성된 자기가 아니라서, 토기나 석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 말고도 다양한 청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최근에 발굴된 것에서는 현대의 청자와
같은 모습을 가진 것도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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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13cm, ca.1086-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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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접시를 보면서 일반인들은 몇 천원짜리다, 고려청자보다 못하다, 보통 청자와 무엇이
다른가? 등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천년 전에 만든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필자가 보는 것은 빙렬의 균일성, 유약의 두께, 색상, 그리고 유약이 칠해진 기술이다.
宋代의 청자는 빙렬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과 같이 균일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이 접시의 빙렬은, 사실 루관요(汝窯) 청자의 빙렬은 대부분 이렇게 깊고 균일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유약을 여러번 시유해서 두께가 두껍고, 유약안에 있는 장석의 크기가
균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이유로 균일하고 두꺼운 빙렬은 일본의 현대
청자도예가들이 만들고 있는 데, 루관요(汝窯)에서는 천년전에 이미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자의 색상은 다양하지만 매우 산뜻한 blue-green 을 보이는 것은 태토가
붉은색이 아니고 회색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치 요즘에 많이 만드는 세이하쿠지(청백자)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유약을 칠하는 기술도 균일하게 잘 칠해진 매우 수준높은 작품이다.
중국에는 수많은 도자기가 있지만, 그 품질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데, 천년전에 만든 것이
이런 높은 수준을 가졌다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이다.
고려청자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지만, 고려청자의 비색은 과문형화병의 모양에만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전제되어 있다. 고려청자의 짙은 옥색을 이런 접시에 칠하면 매우 칙칙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기에, 고려청자 비색은 칭찬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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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대宋代 청자의 색상과 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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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세기 송대 청자접시 11세기 송대 청자 컵
송나라시대 청자는 일반적으로 빙렬이 일정하지 않고, 깊이도 깊지않다.
유약속의 장석의 크기를 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루관요(汝窯)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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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국립박물관 소장 루관요 청자접시, 10월3일에 경매된 접시와 비슷하지만
흠집이 조금 더 보이고, 빙렬의 깊이가 조금 얕아보인다. 아마도 위의 것과 다른
공방에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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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국립박물관 소장 루관요 청자접시, 위에 경매된 루관요 접시
우측의 접시와 색상이 같지만, 빙렬없이 만든 접시로, 이것을 보면
천년 전에 이미빙렬을 완전히 조절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영국 Victoria & Albert Museum 소장 루관요(汝窯)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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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tish Museum 소장 루관요(汝窯)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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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이렇게 세계각국의 가치있고 진귀한 유물들은 모아서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중국은 이런 찬란한 역사와 많은 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에 대영박물관에서 중국관의
비중은 가장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당연, 투자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런 귀한 것도
많이 있다. 고려청자 하나가 한국 도자기를 중국과 똑같은 레벨에 올려 놓는다는 것은
한국의 우물안 개구리식 억지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