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동네는 읍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었다.
그래도 우리동네에는 지금은 폐교되어 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한학년 두학급씩 있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점심시간이면 매일 우르르 몰려나가 공차는 것도 재밌었지만
일요일마다 아침마다 새마을 청소가 끝나면 중학교 형들의 주도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편을 갈라 축구를 했다. 그저 공 따라 쫓아 다니는 게 전부였지만..... 점심때가 되도록 진팀이 그만 하자고 할때까지 계속 했다.
그때 형들 친구들 동생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희열이라는 형이 나보다 세네살 많았는데...
꼭 종갑이형처럼 둥실둥실 했는데.. 공도 잘 차고 대빵이었다.
내가 처음 축구라는 걸 안건 4학년 때 였던 것 같다. 체육선생 겸 5학년 2반 담임선생이 있었는데... 군대회에 나간다며 추구부원을 모집했다. 56학년 형들 사이에 나도 같이 끼여 연습을 했다. 그때는 키가 5학년이나 다름없어 공격으로 !
가을에 있었던 군대회 첫 상대는 군내 최강팀 함양읍에 있는 함양국민학교 !
우리는 신생팀 그러나 결과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나의 결승점 있었다.
왼쪽 윙이 엔드라인 까지 몰고 가서 센터링 낮게 들어 온걸
내가 왼발도 어기적 집어넣은 것이다. 다행히 파상적인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 우리가 부전승으로 결승전에 진출 했다.
상대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병곡국교...
1대 1로 승부차기 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만 찬 골이 왼쪽 포스트를 맞고 노골
결국 지고 말았다.
지금도 공을 차지만 그때의 희열과 그때의 아쉬움을 항상 가슴에 두고 있다.
재수를 해 대학에 들어갈때 좋았던 그 기분 이상이었다.
준우승 ! 그후로 우리국민학교는 더이상 결승전은 커녕 1회전 승리도 거둘 수 없었고
체육선생이 전근 가신후 육상이나 축구는 없어지고 학생수가 격감하면서 폐교로 이어졌다. 나는 6학년 때도 축구부도 하고 선생의 억지로 육상부도 같이 했는데.
육상 경기를 하느라 축구에는 참여하지 못해 그렇게 속이 많이 상했었다. 지금도 좀 분하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에도 우리는 그 너덜너덜한 비닐 공으로 하루해가 가는 줄도 몰랐고
가을바람 시원한 그날들도.... 하얀눈이 온천지를 뒤덮은 찬 바람속에도 우리는 운동장에 있었다. 그때는 축구화가 따로 없어 맨발로 차기도 했고 발목을 삐기도 일수여서 한참 절뚝거리고 다니기도 했다. 아버지가 큰맘먹고 하나 사준 가죽공을 너무 아껴 바람이 빠져 못쓰게 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어 똘똘한 아들에게 멋진 축구화와 공을 사주고 싶다. 얼른 아들하나 나야 될 텐데....
첫댓글 영화 스토리 같네요... ^^; 형... 함양 출신이세요..?? 새롭네... 전 거창입니다. 눈이 네려와~~여... 이번 주 축구할수 있을까..??
나도 고등학교는 거창 대성고 나왔다. 22기. 복현이 너는 ? 우리집이 안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