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 인과응보의 법칙에 대한 이해♥☎
업보라는 것은 하나님(우주의 원리)의 법이 아니다.
그것을 믿는 자들의 법이다.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신조를 믿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딱하게도 완성이라는 허황한 깨침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고 한 생에서 무엇인가를 하면 다음 생에 다시 와서 그것을 보상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항상 “업보” 탓으로 돌린다.
이것은 삶에 대한 아주 형편없는 설명이다.
삶은 그것보다 훨신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오직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만 하나의 현실이 된다.
☎실재하는 유일한 법은 당신이 효력을 갖도록 당신이 허용한 것들이다.
☎법을 만드는 실체는 개개인이다.
각자는 나름대로 진실을 받아들이는 에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하든 어떤 것을 법으로 창조하든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믿음이라는 왜곡된 이해를 통해 법칙과 이상을 만들어 간다.
☎업보를 믿는 다면 당신은 그 지배를 받을 것이다.
당신이 그 믿음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보다 완성의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더 위험하다♥☎
★이러한 것들은 성취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본래 완성이라는 한계는 없다. 발전만이 있을 따름이다.
★업보의 해결을 통하여 완성을 얻고자 한다면 원하는 바를 결코 이룰 수가 없다.
★하나의 업보를 갚는 동안에 다른 업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번 생을 반복해도 있음의 상태 하나님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성 따위는 없다. 완전한 깨달음이란 없다.
☎오로지 있음만이 있다.
☎생명의 있음 안에서
★모든 것은 변화하고
★매 순간 진화한다.
☎그러므로 완성의 상태, 완전한 깨달음 같은 것은 결코 확립될 수 없는 것이다.
☎업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으나 원함은 실재한다.
☎원할 때 언제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중에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