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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9주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주님이 내리신 명령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이 말씀을 명령으로 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이 명령에 근거하여 살아야 한다.
[성령을 더 많이 주소서]
그렇다면, 이 명령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또, 소수 기독교 교파에서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기도하면서, 성령을 더 달라고 한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내게 성령이 양적으로 부족하니, 더 부어주셔서, 영적인 능력도 더 채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여기는 문제가 있다.
나는 성령을 에너지로 삼고 있으니, 에너지를 더 부어달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성령충만의 개념을 완전히 빗나간 생각이다.
성령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령을 더 많이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동안 이런 오해를 하고 있었을지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성령이 역사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다면, 이에 연결된 많은 신앙이 잘못될 것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잘못 알고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이런 부분을 살펴서, 고칠 부분을 고쳐야 할 것이다.
지난주에는 술취하지 말라는 말씀을 나누었다.
이것은 당시 에베소에 살던 그리스도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주신 말씀이다.
당시 주변은 굉장히 술로 물들어 있었다.
이들에게 술은 뿌리깊게 이방종교와 연결되어 있었다.
술에 자기를 의존하여, 온갖 죄를 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너희가 속고 있는 것이니, 따라가지 말라.
그렇게 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사역은 오직 성령이 충만할 때만 가능]
신자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과 신자가 성령충만을 받는 것.
신자는 처음 믿을 때, 성령이 임하신다.
이것은 일생에 단 한번만 일어나는 일이다.
이 사건으로 그 신자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부터는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두가지는 분명히 구분된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역을 하고 계시다.
그의 사역은 오직 우리가 성령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만 진행된다.
우리가 성령의 통제하심에 자신을 내어서, 받아들일 때만 그의 사역이 진행된다.
그런 자에게만 주 예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이 성취된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놀라운 은혜를 통해, 그 나라까지 힘차게 이기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의 통제하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으면, 그런 약속은 하나도 성취되지 않는다.
주 예수께서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은혜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성령은 아무 때나 일하시지 않고,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임의로 일하지 않으신다.
적어도 우리 삶속에서 하시는 일들은 우리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은 무엇인가.
성령충만은 그분의 지배에 복종된 나의 마음자세다.
그분의 지배력이 내게서 형성되고, 활성화되도록 내가 내 마음을 복종시켜드리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란 무슨 뜻?]
그가 나를 지배하시도록, 복종하는 것이다.
원문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단어는 현재 수동 명령형이다.
현재시제,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충만한 상태가 계속 유지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의 인치심과는 다른 사건이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 받았다.
이것은 과거형이다.
이에 반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에게서 계속 받고 있어야 하는 상태다.
그리고, 수동태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성령충만을 당하는 것이다.
또 명령형은 성령충만은 하나님께서 주권자로서 명하시는 것이다.
명령하니까, 나는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그분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오직 순종하려는 마음과 결단으로 그 앞에 나가는 것이다.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기 원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가 성령충만을 하실 수 있도록, 그에게 나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를 그분이 강제로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 있다.
성령충만한 상태에 있기를 내가 거절할 수 있다.
내가 거절하면, 성령은 전혀 역사하실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주 예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여기가 시작점인데, 다른 모든 것들도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충만에 대한 여러 오해들]
[성령은 우리가 뜨거울 때마다 다시금 내려오신다?]
성령은 한번 오시지, 거듭 오시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또 오셔서, 갑자기 활력이 생기고, 영감이 높아지고, 눈이 열려서 비전도 보고, 능력도 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나중에 또 오시지 않는다.
또 성령충만은 내가 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물론 성령충만을 위해 내게 요구되는 역할은 있지만, 내가 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온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일이다.
[믿을 때 이미 임하셨다]
성령의 내주와 성령충만은 전혀 다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처음 믿을 때, 성령을 받게 된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신자라면,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있는 사람이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다.
성령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성령을 갖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도 갖지 않은 것이다.
믿는 자면, 그가 믿을 때, 내주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또 오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교인들이 대단히 속썩이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많이 야단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다가,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다고 한다.
이미 완료된 것이다.
이들이 속썩이는 것은 성령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 성령받은 것을 기정 사실로 여기고 말하고 있다.
이점은 오순절 성령이 오시기 전의 상황과는 대단히 다른 것이다.
옛날에는 성령이 극소수에게만 오셔서, 잠시 계셨다가 떠나시기도 했다.
삿16:20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그나마 잠깐 오셨으면, 영광스러운 체험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는 성령이 영구적으로 거하려고 오신다.
조금도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성령을 소멸하지 않는다면.
성령은 계시려고 오시는 것이다.
성령이 내 속에서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은 지금도 계속 아버지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최초에 임하실 때 이미 충만으로 임하셨음]
이것은 출처를 말하는 것이고, 지금도 새신자에게 임하시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이미 성령이 임재하신 신자들에게 하는 명령이다.
이전의 처음 임하심과는 별개의 것이다.
또, 성령을 다른 분량으로 나누어 받는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쿠팡에서 물건을 나누어 받는 것처럼 생각한다.
요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성령은 신자들에게 부분부분 오시는 것이 아니다.
한량없이, 성령 자체가 그 사람에게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여러 영어 번역성경을 봐도, 제한없이, 한계없이, 측량할 수 없이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충만은 성령침례와 다른 것이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침례는 우리 교회에서 한번도 안쓴 말 같다. 그러나, 이천년간 그리스도 교회는 다 사용해 왔다.
우리는 다 성령으로 침례 받았다.
성령침례 받으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다.
그래서, 한 성령을 함께 마시는 자가 된다.
성령침례 받을 때, 모두 성령의 임재를 완성시켰다.
성령침례는 물침례와는 다르다.
위의 구절은 성령을 나중에 개별적으로 또 받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임재하고 계심을 깜빡 잊고 소홀히 여기는 신자들]
처음 믿을 때, 그리스도에 의해 성령이 보내지고, 아버지로부터 나오시고, 교회에 배치된다.
성령침례는 그것을 말한다.
물침례는 우리에게 예수가 들어오시게 하는 것이고, 성령침례는 내가 예수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의 몸에 내가 배치되는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 영혼이 신자라면, 그 사람은 주의 몸에 배치된다.
등록의 여부와 상관없다.
성령은 그 이후로 그 사람의 삶에 영구적으로 거주하시게 된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대단히 미성숙하고, 죄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2장 전체를 보면, 그들이 성령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바울이 상기시키는 것이다.
너희는 성령을 받은 자들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혹시 그렇다면, 너희는 신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성령의 침례와 그리스도의 몸]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성령은 불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 들어가, 다른 신자들과 연결되게 하신다.
침례요한은 나는 물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성령과 불이라는 개념을 지우려고 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찬송가에도 성령과 불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다.
너무 확대해석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모세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도, 거기에는 불이 있었다.
물침례는 우리가 예수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 그가 부활하셨으니, 나도 그렇게 될 줄 믿는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완전히 낙인찍히는 것이다.
완전히 망할 것을 각오하고, 물침례받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성령으로도 침례 받아, 예수의 몸에 잠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주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엡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성령침례 받지 않은 신자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성령침례를 두번 받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처음 성령침례를 받아, 모두가 한몸이다.
똑같이 한 소망으로 부르심 받았다.
성령받은 것 자체가 우리가 고의로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성령받는다는 것은 그가 임하실 때, 내가 인정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성령임재와는 다른 것이다.
성령 받은 이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에게 복종하는 자세다.
이것이 성령충만이다.
행1: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들은 오순절까지 기다렸다.
성령이 오신 다음부터는 신약과 구약이 나뉘어진다고 봐야 한다.
이전에는 기다렸지만, 이후에는 새신자에게 성령이 오신다.
딛3:5-6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구원받을 때,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된다.
이것은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조건 아래 이루어진다.
골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그래서, 성령은 불러올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히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후에는 성령에게 자기를 내어드리는 복종과 신뢰가 필요하다.
부족해서, 더 메꿀 것이 아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신 상태에서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죄에서 떠나라고 한다.
이 사실이 죄를 더욱 나쁜 죄로 만든다.
성령이 거하고 계신데, 죄를 범하는 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다.
성령을 근심케 하고, 성령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다.
[인 맞는 것과도 다른 것]
인 맞는 것은 성령이 임하실 때, 성취된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충만은 플레로(πλήρης)라는 헬라어로 되어 있는데,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번역할 때, 성령으로 채워짐을 유지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충만이라고 하니까, 부족한 상태도 있다고 오해하게 된다.
[충만이란 용어가 가져오는 오해]
영어 번역은 be filled이다.
부족한 것을 메꾸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다.
성령께 복종하는 나의 드림이다.
나의 마음과 자세에서 그의 뜻과 의지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를 복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의식적으로 계속 하는 것이다.
복종을 내가 계속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
거절할 수 있지만, 명령이다.
네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맞추라.
[충만은 복종의 문제]
복종시킨 상태를 유지하라.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령충만함이 없으면, 그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이룰 수 없다.
모든 하나님의 일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성령께 순종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가.
첫단추가 잘못되니까, 나머지도 잘못된다.
성령이 임할 때는 이미 임하셨고, 더 주옵소서가 아니라, 내게 충만함을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한구절 말고는 부족한 성령의 양을 준다는 표현이 성경에 하나도 없다.
신자는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분은 아멘하라.
어떤 사람은 나는 신자니까, 무조건 천국간다고 한다
성령이 임하셨으니까 다 되었고, 죄를 범해도, 천국에서 작은 자라도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성령을 받았아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믿는 자니까 무조건 천국에 가게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주님되심에 순종해야 되고, 성령의 통제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순종해야 믿음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항상 온전할 수는 없다.
죄를 범하는 동안, 영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갈 수 없고, 빨리 돌아가야 한다.
그 사람은 새본성과 옛본성이 부딪힐 것이다.
누구든지 약점이 있다.
이 세상 지나가는 동안 서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
육신적으로 살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원수가 되는 행위다.
롬8:6-7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신앙에 있어서, 잘못될 수 있고, 영감없이 살 수 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그에게 많은 번뇌를 주고, 삶에서도 계속 좌절하고, 패배할 것이다.
그래서, 성령충만해야 한다.
매일 성령충만하자.
[매일 매순간 성령께 순종하는 상태]
주의 뜻이 내게 임하시옵소서. 매순간 복종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성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
복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