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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근원을 둔 향토적 상상력의
-김덕현의『한티재, 꽃 피다』의 세계
시조시인 이 정 환
(국어교육학박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1.
김덕현 시인이 마침내 첫 시조집『한티재, 꽃 피다』을 펴낸다. 실로 마침내, 라고 할만하다. 등단연도가 1998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시조집에서『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시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동국여지승람』은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의 지리서다. 그는 축소해서 한티재를 중심으로 한 고향의 풍광과 정서와 스토리를 엮고 있다. 말하자면 특별한 이야기다. 이 특별한 이야기가 개인적인 회고에 머물지 않고,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온고지신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알게 되는 계기다. 그것은 곧 미래를 다르게 열 수 있는 안목을 길러줄 것이다. 또한 새로운 힘의 충전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장해온 배경과 무관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시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깊은 울림을 가진 정서는 곧 그리움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울컥하게 하는 향수다. 그래서 그의 시조 세계를 “향수에 근원을 둔 향토적 상상력의 보고”라고 명명한다. 향토적 상상력에 기원을 둔 그의 시 세계는 그 누가 읽어도 공감할 것이다. “보고(寶庫)”라고 일컫게 된 것은 정경과 내면을 감칠맛 나게 버무리는 그의 기량 때문이다. 살갑고 다정하며, 열정적인 그의 언어는 내밀한 정서와 잘 결합되어 독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또한 그의 품성이 작품 곳곳에 배어들어 훈향 높은 미학적 직조를 이루는데 기여하면서 꽃향기와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한티재, 꽃 피다』는 소중한 시조집이다. 그나 그의 가족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개성적인 호흡과 정서와 사상과 감정이 오롯이 담겨 큰 파장을 일으키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책이 될 것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오늘이 있기까지 살갑게 붙들어준 고향에게 바치는 소담한 헌정시집이기도 하다.
2.
오래 전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한동안 세상을 떠돌았다. 그 말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렇다면 김덕현 시인은 이 사실을 이번 시조집『한티재, 꽃 피다』를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시조집 전편에서 토포필리아와 바이오필리아의 미묘한 융합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장소애와 생명애다. 우리가 종내 잊지 못하는 어떤 곳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곧 장소에 대한 사랑이다. 그때 그곳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던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생각은 곧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누구나 가슴속에 한티재 하나씩을 품고 살아가는 것을,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마주한 팍팍한 현실이 그 고개가 되기도 하고,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설렘의 공간이 한티재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한 그의 웅숭깊은 내면의 깊이가 헤아려진다. 그러니까 한티재는 하나의 상징체계로 독자들은 각자의 경험 안에서 변주하여 읽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시를 음미하는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이제 그가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 유년
추억들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
초록 기쁨
넘실거리는
꽃 피기 전 봄 능선처럼
뜀뛰는
가슴 있어라
한티재가 있어라
-「꿈꾸는 한티재」전문
고독한
귓불에 스민
입김인가 속삭임인가
사락사락
부르는 소리
너 일 듯, 너였으면 할 때
야심한
꿈길을 딛고
내 등 뒤에 눕는 숨결
고독한
설매실 마을
나를 찾은 그대여
눈 뜨면
내 온 머릿속
잊어질 사랑인데
하이얀
말줄임표만
쌓여가는 이 밤은
-「설매실 첫눈」전문
「꿈꾸는 한티재」는 이 시조집의 서시와 같다. 한티재는 “내 유년/ 추억들이/ 굽이치며 달려가는 곳”이다. 여기서 “굽이치며 달려가는”이라는 구절에서 애절한 정조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곳은 “초록 기쁨/ 넘실거리는” 곳이자 “꽃 피기 전 봄 능선처럼// 뜀뛰는/ 가슴”이 있는 터전이다. 시의 화자가 한시도 놓치지 않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자 그리움의 산실이다.
그런 점에서「설매실 첫눈」의 정서는 더욱 실감실정이다. “고독한/ 귓불에 스민/ 입김인가 속삭임인가”라고 먼저 묻는다. 중장 “사락사락/ 부르는 소리/ 너일 듯, 너였으면 할 때”라는 대목은 절절하다. 너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너였으면 할 때 “야심한/ 꿈길을 딛고/ 내 등 뒤에 눕는 숨결”을 느낀다. “고독한/ 설매실 마을/ 나를 찾은 그대”의 현현을 첫눈 통해 여실히 느끼건만 정작 그대는 어디에도 없고 “눈 뜨면/ 내 온 머릿속/ 사랑”으로만 남는다. 끝내 “하이얀/ 말줄임표만/ 쌓여가는” 밤은 깊어만 간다. 이처럼「설매실 첫눈」이 표출하는 정서는 가없다.
팔공산 골바람에
설매꽃이 녹을 무렵
전정가위 손맛 들여 사과 전지 한창이다
잘려진
가지 처치는
과수원집 맏아들 몫
가지마다 잎눈 꽃눈
남녘 봄을 기다리다
피우지 못할 꿈을 접고, 비장하게 잘리는 날
삶이란
수용이란 걸
그는 알고 있었을까
잘려나간 분신들이
묶여지는 쓸쓸한 봄
말 없는 가지 단을 안고 또 안으면서
참말로
품어야 할 것을
그는 정녕 알았을까
-「사과나무 전정」전문
방 아랫목 보금자리
생명의 씨, 누에 알 하나
꿈에서 깨자마자, 봄비처럼 사각사각
가만히, 살피어 가며
뽕잎 갉는 이른 아침
해거름 창문 너머
산 뽕잎이 짙은 날
이제는 승화의 시간, 이것은 나의 숙명
네 번째 꿈에서 나온
누에 다짐 들었지
청솔가지 꺾어 세운
제단 위에 몸을 뉘어
욕망의 실을 뱉어 고치솜을 지을 때 난
베갯잇, 씨앗을 안고
그렁그렁 뒤척였지
-「그날 밤 나는」전문
천상의 정령일까
연분홍 날개 나풀나풀
분분히 날린 그녀에게 꽃바람을 맞은 건지
난 이미, 복숭아밭에 사랑꾼이 되었지
온 밭은 도화 물결
탐스런 미소 띤 얼굴
붉히며 익어가는 도화살 맞은 살내음
네 숨결
닿기만 해도
흠씬 취하던 한낮 햇살
보송한 잔털이 곱던 칠월 어느 여름날
수밀도 가슴을 감싸 차편에 실어 보내고
몇 푼의 지폐를 챙겨
터덜터덜 돌아온 밤
그날 밤 난, 뜨겁게 욕망하는 내 살갗과
칠성시장 청과점 좌판에 앉을 그녀 생각에
온몸을
긁고 부비며
빈 술잔을 채웠었지
-「복숭아꽃 사랑」전문
「사과나무 전정」은 진정 품어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시편이다. “팔공산 골바람에/ 설매꽃이 녹을 무렵/ 전정가위 손맛 들여 사과 전지 한창”인데 “잘려진/ 가지 처치는/ 과수원집 맏아들 몫”이다.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그 일을 기꺼이 맡는다. “가지마다 잎눈 꽃눈/ 남녘 봄을 기다리다/ 피우지 못할 꿈을 접고, 비장하게 잘리는 날”에 “삶이란/ 수용이란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잘려나간 분신들이/ 묶여지는 쓸쓸한 봄”에 “말 없는 가지 단을 안으면서” 그는 “참말로/ 품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진정 그랬을 것이다. 끝없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서 이루어가는 역정이 인생인 것을 잘려 나간 가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을 터다. 전정은 과수원에서 세부적인 가지를 솎아주거나 잘라주는 일련의 행동을 의미하는데 이 일을 통해서 시의 화자는 새로운 자각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날 밤 나는」은 누에치기 농사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방 아랫목 보금자리/ 생명의 씨, 누에 알 하나/ 꿈에서 깨자마자, 봄비처럼 사각사각// 가만히, 살피어 가며/ 뽕잎 갉는 이른 아침”이라는 첫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할 만큼 세밀하고도 그윽한 묘사 일색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연출한 다음 둘째 수에서 “해거름 창문 너머/ 산 뽕잎이 짙은 날/ 이제는 승화의 시간, 이것은 나의 숙명”이라면서 “네 번째 꿈에서 나온/ 누에 다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실제 누에는 애벌레에서 네 번째 잠을 자고나면, 완전체로 탈바꿈하는 5령의 곤충이 된다. 이 시기 몸은 만 배의 실을 뽑을 수 있게 자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이러한 철저한 누에치기에 대한 체험과 관찰을 통해 시작에 임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셋째 수에서 “청솔가지 꺾어 세운/ 제단 위에 몸을 뉘어/ 욕망의 실을 뱉어 고치솜을 지을 때” 화자는 “베갯잇, 씨앗을 안고/ 그렁그렁 뒤척였”던 일을 상기한다. 누에는 오로지 뽕나무의 청정한 뽕잎만을 먹고 비단실을 뽑아낸다. 이처럼 누에치기를 통해 승화의 시간을 바라보는 일은 값지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시인의 번민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시적 현장에 한 단계 다가서게 하여 공감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다음으로「복숭아꽃 사랑」에서 스무 살 무렵 복숭아 농사에 대한 추억을 노정한다. “천상의 정령일까/ 연분홍 날개 나풀나풀/ 분분히 날린 그녀에게 꽃바람을 맞”아 “복숭아밭에 사랑꾼”이 된 것을 자백한다. 실로 봄날의 복사꽃은 천상의 정령 그 이상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황홀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온 밭은 도화 물결/ 탐스런 미소 띤 얼굴”이자 “붉히며 익어가는 도화살 맞은 살내음”이기에 “네 숨결/ 닿기만 해도/ 흠씬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 난, 뜨겁게 욕망하는 내 살갗과/ 칠성시장 청과점 좌판에 앉을 그녀 생각에/ 온몸을/ 긁고 부비며/ 빈 술잔을 채웠”던 것이다. 사과나무 전정이나 누에치기, 봉숭아 농사와 같은 일들이 화자에게는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알차게 여물게 하는 산 경험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옹골차게 살아온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된다.
「세월」은 아버지 제삿날 밤에 관한 시다. “한가윗날 자시에 그분께서/ 화안한 보름달을 원광처럼 등에 지고” 오셨다. “가만히, 도포 깃 털며/ 첫 밥상을 받던 밤”이었다. “현고처사 부군신위, 명분 법도 거드름에/ 제상 앞에 고개 숙인 귓등조차 민망하게// 쟈들 좀, 살펴 주시”라는 “가슴 터진 어매 기도”를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사의 시련을 ‘은은하게’ 승화해나가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함께 한 시간보다 이별이 더 긴 울 엄매/ 며느리 차린 제상 앞, 세월에 익은 그 음성”이 한데 어우러져서 “은은한 달무리처럼/ 살펴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세월」은 이렇듯 마음을 저미게 한다. 아버지와 이별을 슬픔에 묶어두지 않고 이를 세월의 흐름 속에 극복해 나가는 긍정적 모습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야말로 추억의 공간이 현재의 고통과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을 잘 입증해 보인다. 제각기 현실은 다르지만 어느 가정에서나 경험하게 되는 삶의 양상이기에 공감의 폭은 더욱 넓어지게 된다.
「한티숯골, 득명리」는 “구름도 쉬어가는 팔공산 하늘 아래/ 바람조차 숨 고르는 한티 고갯마루 턱/ 오롯이, 믿음을 데운/ 숯골마을”에 대한 보고서다. 또한 “사랑으로 곱게 빚은 질그릇 오지그릇/ 그을린 큰 입 벌린 가마에다 집어넣고/ 영생의 불씨를 당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곳은 “유민으로 왔다가 고이 잠든 순교 성지/ 어두운 곳 빛을 밝힌 득명리가 있었”고, “옹기에, 달빛 그렁한/ 은혜의 땅”이 있어서 불멸의 성지가 된 것이다. 실제 이 득명리 한티성지는 가톨릭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시인은 현재도 유효한 기억의 공간으로 한티성지를 상정하여 과거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신앙인들의 믿음을 형상화하였다.
동산리 우리 이모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말벗 되어 다가가면 어느새 한티재 마루
빛바랜, 유년의 슬픔이
봄꽃으로 피고 있다
꽃배 편지 띄워 놓고 한티쪽만 바라보다
창평지 퍼런 물에 빠져 죽은 순이 이모
진정코, 사랑했던 건
한티 하늘 아니었을까
스물 둘 연애 사연 불태우던 저녁노을
그녀가 돌아간 곳 한티 노을 아니었을까
절절한, 뻐꾸기 울음
들꽃 잎도 젖어든 봄
-「순이 이모」전문
저물녘
사청이 냇가
둑방길에 나간 오후
가다 쉬다
맴도는 물살
숨바꼭질 하다 문득
어디쯤
냇물의 근원
있을 듯만 했었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내 몸처럼 앓는 냇물
거스르던 달빛조차
어둠 속에 숨은 밤
터얼썩
물처럼 울다
길을 잃은 어린 사슴
환한 횃불
애탄 목소리
땀에 전 아버지 등짝
꿈결인 듯
낯 부빌 때
침묵 흐른 어깨너머
손끝에
아버지 가슴
떨고 있어 또 울었지
-「아버지」전문
감나무 가지 끝에
시려 떠는 정월 달빛
고양이로 움츠려 산촌에 숨어든 밤
고단한 아버진 벌써
큰댁 향해 앞서시고
까까머리 어린 난
발끝만 보고 뒤따를 때
고무신에 밟히는 바작바작 서릿발이
한티재 칼바람처럼
성그렇게 놀라는 밤
풀 먹인 도포 자락 버썩버썩 앞서 가다
장승처럼 우뚝 서서 돌아보던 아버지도
저만치, 모퉁이 돌아
타인처럼 가버렸지
유산처럼 남겨진
터잡이 할배의 손자
높디높은 담벼락 길, 주저앉고 싶을 때
텁텁한
부엉이 울음
큰댁 초롱 켜지던 밤
-「큰집 제삿날 밤」전문
서른한 송이 꽃들 중에
가장 먼저 별이 된 아이
가방끈 내려놓고
섬유공장에 간 명자는
봉긋한
단발머리에
두 볼 붉힌 우리 친구
그가 남긴 이름이
꽃이 되어 피고 있다
열여섯에 별이 되어
꽃받침도 못 갖추고
터질 듯
붉어진 두 볼
뜨거웁게 타고 있다
-「설매실 명자꽃」전문
「순이 이모」는 애절하다. “동산리 우리 이모/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말벗 되어 다가가면 어느새 한티재 마루”에 이르고야 만다. “빛바랜, 유년의 슬픔이/ 봄꽃으로 피고 있”는 곳이다. “꽃배 편지 띄워 놓고 한티쪽만 바라보다/ 창평지 퍼런 물에 빠져 죽은 순이 이모”가 “진정코, 사랑했던 건/ 한티 하늘 아니었을까”라고 회상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이모는 스스로 세상과 결별했다. 말 못할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스물 둘 연애 사연 불태우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화자는 “그녀가 돌아간 곳 한티 노을”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절절한, 뻐꾸기 울음/ 들꽃 잎도 젖어든 봄”에 순이 이모는 먼 길을 떠났다. 그래서 한티재에 올라 한티노을을 바라볼 적마다 순이 이모를 그린다. 꽃다운 나이에 꽃답지 못하게 하직한 이모는 화자의 가슴 속에 늘 깃들어 있어 그 애절함이 날이 갈수록 더하다. 이를 통해 그리움과 한의 정서를 독자에게 확장시키고 있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한 크고 작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아버지」도 그러한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저물녘/ 사청이 냇가/ 둑방길에 나간 오후// 가다 쉬다/ 맴도는 물살/ 숨바꼭질하다 문득// 어디쯤/ 냇물의 근원/ 있을 듯만 했”던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리고 “이어질 듯 끊어질 듯/ 내 몸처럼 앓는 냇물”을 살피다가 “거스르던 달빛조차/ 어둠 속에 숨은 밤”에 “터얼썩/ 물처럼 울다/ 길을 잃은 어린 사슴”이 되어버렸을 때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환한 횃불/ 애탄 목소리/ 땀에 전 아버지 등짝”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었다. “꿈결인 듯/ 낯 부빌 때/ 침묵 흐른 어깨너머”로 화자는 “손끝에/ 아버지 가슴/ 떨고 있어 또 울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냇물의 근원이 몹시도 궁금하여 자꾸만 나아가다가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그것은 내 몸처럼 앓는 냇물에 혹한 까닭이다. 다행하게도 횃불 든 아버지 덕분에 더 이상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병약한 그를 업고 달리는 아버지 모습, 심하게 뛰는 아버지의 심장을 감지하고 그가 어떻게 될까 크게 울어버린 어린 시골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련한 추억은 때로 적지 않은 힘이 될 수 있다. 정서적인 안정을 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큰집 제삿날 밤」에도 이어지고 있다. “감나무 가지 끝에/ 시려 떠는 정월 달빛/ 고양이로 움츠려 산촌에 숨어든 밤/고단한 아버진 벌써/ 큰댁 향해 앞서”간다. 아무리 따라가도 아버지 걸음을 좇기가 힘들다. 그래서 “까까머리 어린 난/ 발끝만 보고 뒤따”르는데 “고무신에 밟히는 바작바작 서릿발이/ 한티재 칼바람처럼/ 성그렇게” 놀란다. “풀 먹인 도포 자락 버썩버썩 앞서 가다/ 장승처럼 우뚝 서서 돌아보던 아버지도/ 저만치, 모퉁이 돌아/ 타인처럼 가버렸”던 것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무심한 듯 차가운 이러한 태도는 화자에게는 어떤 가르침과도 같은 것이다.유년시절 이러한 엄격한 교육은 그 이후 가족사의 아픔 속에서도 꿋꿋하게 헤처 나가는 에너지의 근원 역할을 했으리라고 믿어진다. “유산처럼 남겨진/ 터잡이 할배의 손자”로서 “높디높은 담벼락 길, 주저앉고 싶을 때/ 텁텁한/ 부엉이 울음/ 큰댁 초롱 켜지던 밤”의 추억으로, 생생한 추억의 힘으로 화자는 현재의 삶을 꿋꿋하게 영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런가 하면 무척 아픈 이야기가 있다.「설매실 명자꽃」이다. “서른한 송이 꽃들 중에/ 가장 먼저 별이 된 아이”다. “가방끈 내려놓고/ 섬유공장에 간 명자는// 봉긋한/ 단발머리에/ 두 볼 붉힌 우리 친구”였다. 그런데 그는 일찍 먼저 떠났다. 그리하여 해마다 “그가 남긴 이름이/ 꽃이 되어 피고 있”는 것이다. “열여섯에 별이 되어/ 꽃받침도 못 갖”춘 명자다. “터질 듯/ 붉어진 두 볼”이 아직도 뜨겁게 타고 있는 꽃, 명자꽃을 볼 때마다 명자를 마음 속 깊이 그린다. 그리움의 물결은 끝없다.
자신은 바보라며, 진정 둔한 바보라며
마음 밭에 고운 씨앗 뿌리신 분 계셨지
모두들
고맙습니다
감사하다 하시면서
자신은 옹기라며, 질박한 그릇이라며
우리에게 밥이 되어 함께 하신 분 계셨지
서로들
사랑하세요
노래처럼 읊으면서
머릿속에 사랑을 가슴까지 내리는데
고희 세월 걸렸다며, 고백하신 분 계셨지
사랑은
낮춤이라며
자기낮춤 보이시며
질곡의 긴 아픔을 너그럽게 품으시고
따스한 세상 위해 내미시던 당신 손길
큰 사랑
베풀고 가신
문득문득 그리운 님
-「그리운 님」전문
변치 않는 푸르름
한결같이 곧은 결
청청한 하늘 빛을
오롯이 품은 그대
솔솔솔
정갈한 자태
손끝마저 모은 채
비바람, 깊은 어둠
뿌리까지 흔들린 날
푸른 솔빛 숲이 되고
굽실한 몸 울이 되어
대지의
따스한 기운
넉넉히 나누는 그대
-「한밝솔 닮을 그대」전문
김수환 추기경 생가에서「그리운 님」을 그리고 있다. “자신은 바보라며, 진정 둔한 바보라며/ 마음 밭에 고운 씨앗 뿌리신 분”이었다. 그 분은 늘 “모두들/ 고맙습니다/ 감사하다 하”셨다. 또한 “자신은 옹기, 질박한 그릇이라며/ 우리에게 밥이 되어 함께 하신 분”이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머릿속에 사랑을 가슴까지 내리는데 고희 세월 걸렸다”는 고백을 하며 “자기낮춤”의 본을 보인 분이셨다. “질곡의 긴 아픔을 너그럽게 품”고 항시 세상을 위한 분이셨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립다. 그만한 분을 요즘 세상에서 찾기 힘들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밝솔닮을 그대」에서 한밝솔은 “밝은 햇살을 받는 청청한 기개를 가진 으뜸 소나무”를 가리킨다. 지역에서는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을 말할 때 “한밝솔을 닮은 분”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변치 않는 푸르름/ 한결같이 곧은 결// 청청한 하늘빛을/ 오롯이 품은 그대”는 “솔솔솔/ 정갈한 자태/ 손끝마저 모은 채”로 늘 서 있다. “비바람, 깊은 어둠/ 뿌리까지 흔들린 날”에도 “푸른 솔빛 숲이 되고/ 굽실한 몸 울이 되어// 대지의/ 따스한 기운/ 넉넉히 나”눈다. 그런 인물을 늘 지향하고 있는 화자도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한밝솔”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처럼.
가을볕
고샅길에
길게 드러누웠다
이끼 푸른 돌담벼락
힘겹게 오른 담쟁이
따스한
등짝 되어준
돌담 사랑 배운다
돌담길
담장 따라
수유향이 스몄다
뙤약볕에 우두커니
인고 품은 호박돌 하나
산수유
알알이 붉는
기다림을 배운다
-「가을 공부」전문
들리듯
끊어진 듯
오는 듯이 스쳐가고
문밖엔
솔바람 소리
물소리에 산새 소리만
정토가
따로 없어라
끓고 있는
다향 천리
-「압곡사 산방」전문
군위 한밤마을 돌담길에서「가을 공부」를 한다. “가을볕/ 고샅길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데 “이끼 푸른 돌담벼락/ 힘겹게 오른 담쟁이”를 본다. “따스한/ 등짝 되어준/ 돌담 사랑”을 그곳에서 배운다. “돌담길/ 담장 따라/ 수유향이 스몄”고, 뙤약볕에 우두커니/ 인고 품은 호박돌 하나”는 “산수유/ 알알이 붉는/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그 장면을 유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화자도 그 무언가를 배운 것이다. 인고의 자세다.
「압곡사 산방」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압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다. 676년(문무왕 16년)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즉 의상이 인각사를 창건한 뒤 부속암자를 짓기 위하여 자리를 물색하였으나 적당한 곳이 없어서 고심하던 중 나무오리를 만들어서 하늘을 향하여 던졌더니 오리가 날아가서 현재의 터에 내려앉았다. 의상은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오리가 앉은 자리라 하여 압곡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하여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이다. 오고가는 길이 험하고 운치가 있다.
“들리듯/ 끊어진 듯”한 곳이어서 “오는 듯이 스쳐”간다. “문밖엔/ 솔바람 소리// 물소리에 산새 소리만” 들리는 곳이기에 “정토가/ 따로 없”다. “끓고 있는/ 다향 천리”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산방 문(門)의 안과 밖을 경계로 ‘자연과 인간’,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청각과 후각’, ‘차가움과 따스함’을 대조적 부각하고 있다. 이 순간을 정토세계라고 말해 격조를 높인 다음, 다향천리(茶香千里)라며 마무리하는 기법 또한 시조의 유장한 맛을 살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흰 구름 살풋 벗고
차오르는 새 달 하나
월명스님 밤 피리에 가던 길을 멈추었지
둥그레
차오르는 배
새댁처럼 만지면서
이슥해진 신라의 밤
뉘 집에 왔나, 처용랑
휘영청 달빛 아래 덩실덩실 춤을 췄지
인간사
삼재팔난을
춤사위로 떨칠 듯이
또다시 천년 세월
다시 찾은 신라의 밤
월명스님 처용랑도 넘지 못한 그 천년을
한가득
달빛에 담는
동궁 앞 월지 호반
-「서라벌의 밤」전문
천 년의 바람결과 이끼 낀 시간들이
목섬 바위틈에서 속앓이 하고 있을 때
삼천포, 유년 추억을
그 분 불러 들었지
…어물전 간 어매를 문지방에서 기다린 밤
토닥이던 누이 두 눈 눈물 방울 굵어지면
비릿한 울 어매 체온 헌 양철문 밀쳤었지
문설주에 기대인 채 울다 잠든 동생 얼굴
달 그림자 등지고서 타인처럼 내려 보며
말 없던, 어매 속마음은 참말로 어땠을지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부뚜막에 놓으시고
고기 눈처럼…에서, 말을 잇지 못했던 그
까만 밤, 시인별 되어
어두운 밤길 밝히겠지
태곳적 밤물결은 자맥질을 아직하고
어시장 좌판 위 썰어지는 천 년 시간
천 년을 시에 찍었던
그가 지금 그리운 밤
-「천년의 바람」전문
그의 시선은 이제 고향 산자락을 벗어나 「서라벌의 밤」에 이르고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다. “흰 구름 살풋 벗고/ 차오르는 새 달 하나”가 “월명스님 밤 피리에 가던 길을 멈추었”고, “둥그레/ 차오르는 배/ 새댁처럼 만지”는 것을 본다. 아주 오래 전 “이슥해진 신라의 밤/ 뉘 집에 왔나, 처용랑”이라면서 처용을 등장시켜 “휘영청 달빛 아래 덩실덩실 춤을 췄”던 것을 떠올린다. “인간사/ 삼재팔난을/ 춤사위로 떨칠 듯”하던 춤이었다. “또다시 천년 세월/ 다시 찾은 신라의 밤”에 “월명스님 처용랑도 넘지 못한 그 천년을/ 한가득/ 달빛에 담는/ 동궁 앞 월지 호반”을 이윽히 바라보면서 유유자적 서라벌 밤의 풍류를 즐기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고 옛사람의 자취는 희미한데 처용랑도 월명 스님도 아닌 시의 화자는 또 다른 감회에 젖는다. 혼자서 어둠 속에서 새로운 춤사위를 밤하늘 달에게 보여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산공원에서 박재삼 선생을 그리며,「천년의 바람」은 시작된다. “천년의 바람결과 이끼 낀 시간들이/ 목섬 바위틈에서 속앓이 하고 있을 때// 삼천포, 유년 추억을/ 그 분 불러 들었”다. “…어물전 간 어매를 문지방에서 기다린 밤/ 토닥이던 누이 두 눈 눈물방울 굵어지면/ 비릿한 울 어매 체온 헌 양철문 밀쳤”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문설주에 기대인 채 울다 잠든 동생 얼굴/ 달그림자 등지고서 타인처럼 내려 보며/ 말 없던, 어매 속마음은 참말로 어땠을”까도 생각해 본다.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부뚜막에 놓으시고/ 고기 눈처럼…에서, 말을 잇지 못했던 그”는 “까만 밤, 시인별 되어/ 어두운 밤길 밝”힐 것이라고 상상한다. 또한 “태곳적 밤물결은 자맥질을 아직 하고/ 어시장 좌판 위 썰어지는 천년 시간”을 떠올리면서 “천년을 시에 찍었던 그가 지금 그리운 밤”을 보내며 시의 화자는 박재삼 선생의 일생과 그가 남긴 명편들을 기억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시인은 가도 그의 시는 남아 불후한다. 불멸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일상이 힘에 겨워 벽이라 느껴질 땐
시간을 쉬게 하고 가파도행 배를 타자
윤사월 햇살이 걸린
뱃머리에 몸을 싣자
가고파 가고파서 찾아온 섬 가파도
수많은 인파들 속 나만 홀로 뒤처져도
선선히 길 내어주며
맞아주는 작은 섬
가파서 가파른 삶 쟁여둔 상처까지
봄 바다가 전해주는 해풍에 씻기는 곳
바다향 오롯이 스민
밭머리도 내어준 섬
연둣빛 청보리밭 넘실대는 일렁임
홀로 꼿꼿해지며 함께 성숙할 당신
속부터 누렇게 익는
청보리를 닮는다
-「가파도 청보리밭」전문
수평선 위 긴 햇살 여정을 풀어내면
이제는 정녕 그대, 침묵이 필요한 시간
버얼건 항아리 하나
출렁출렁 눕는다
풀지 못한 사연도 묵은 애련도 이젠
가만히 감싸안고 떠나보내야 할 때
두둥실, 낙조를 품고
저 너머로 스러진 너
한담해변 향하던 길손도 끊어진 밤
시간을 삭혀내는 밤바다의 숨결 소리
곽지리, 밤 유채꽃도
절대 고독 배운다
-「곽지리 낙조, 그리고 밤바다」전문
인고의 긴 시간을 삭혀내지 못하여
돌아온 달빛 바다 애월리의 밤바다
넉넉히 어둠에 젖는
사랑을 품은 바다
달빛은 달빛대로 날빛은 날빛대로
간간히 찾아든 비바람에 해일까지
한없이, 품고 또 품은
관용을 아는 바다
한바탕 가면극에 가슴 졸인 거리두기
마음조차 얼어붙어 등을 돌린 군상까지
가만히, 다독여 주는
연민을 아는 바다
일상에 휘둘리고 세파에 밀려온 날
내밀한 속내까지 눈감아 준 밤바다
조용히 바다를 안고
애월리에 눕는 밤
-「애월리 밤바다」전문
이제 그의 시선은 바다 건너로 가 있다.「가파도 청보리밭」이다. “일상이 힘에 겨워 벽이라 느껴질 땐/ 시간을 쉬게 하고 가파도행 배를 타자”라면서 “윤사월 햇살이 걸린/ 뱃머리에 몸을 싣자”고 한다. 그곳은 “가고파 가고파서 찾아온 섬 가파도”여서, “수많은 인파들 속 나만 홀로 뒤처져도/ 선선히 길 내어주며/ 맞아주는 작은 섬”이어서 좋은 곳이다. 그리고 “가파서 가파른 삶 쟁여둔 상처까지/ 봄 바다가 전해주는 해풍에 씻기는 곳”이자 “바다향 오롯이 스민/ 밭머리도 내어준 섬”이다. “연둣빛 청보리밭 넘실대는 일렁임”은 가슴을 무장 뛰게 하고 “홀로 꼿꼿해지며 함께 성숙할 당신”이 있어 “속부터 누렇게 익는/ 청보리를 닮는” 섬이다. 시인은 현실의 힘겨움을 달래줄 장소로 제주도 가파도를 설정하였다. ‘홀로 꼿꼿해지며 누렇게 성숙할 당신’이라는 말을 통해 독자를 위로하고 있다. 가파도 역시 정서적 공간으로서 현실의 힘겨움을 극복하게 하는 곳이 된다.
「애월리 밤바다」는 또 다른 감회를 노래하고 있다. “인고의 긴 시간을 삭혀내지 못하여/ 돌아온 달빛 바다 애월리의 밤바다”는 “넉넉히 어둠에 젖는/ 사랑을 품은 바다”라고 보고 있다. 제주 바다 중에 특히 애월 바다는 아름다워서 많은 시인들이 시로 읊었다. 그곳은 “달빛은 달빛대로 날빛은 날빛대로/ 간간히 찾아든 비바람에 해일까지/ 한없이, 품고 또 품은/ 관용을 아는 바다”여서 그럴까? 코로나19와 같은 힘겨움조차도 애월리 바다가 다독여 줄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 “한바탕 가면극에 가슴 졸인 거리두기/ 마음조차 얼어붙어 등을 돌린 군상까지/ 가만히, 다독여 주는/ 연민을 아는 바다”여서 그럴까? 실로 “일상에 휘둘리고 세파에 밀려온 날/ 내밀한 속내까지 눈감아 준 밤바다”여서 화자는 “조용히 바다를 안고/ 애월리에 눕는”다. 어쩌면 그 밤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황홀한 밤이었을 것이다.
3.
이상으로 김덕현 시인의 첫 시조집『한티재, 꽃 피다』를 살폈다.『동국여지승람』같은 그의 시 세계는 특별한 이야기이자 소중한 개인 창작 기록물로서 우리의 보편적인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정황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향수에 근원을 둔 향토적 상상력의 보고”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든든한 토양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예전처럼 지금도 싱그러운 바람은 불고 있다. 솔향기, 풀냄새, 벌레울음, 새소리, 물소리도 들려온다. 세월 따라 사람이 바뀌거나 달라졌을 뿐 원초적인 분위기는 옛날 그대로다. 교통이 더 편리해지고 길이 잘 닦이고 사는 집들이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묵은 돌담과 더불어 고향 정취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는 내밀한 경험과 갖가지 다채로운 스토리를 바탕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잔잔히 펼치면서 토포필리아와 바이오필리아의 세계가 여전히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을 실증해 보였다. 그리고 책 끝에 마련된 작품 이해를 돕는 “창작 배경 스케치”라는 제목의 산문을 읽는 재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감칠맛 나는 흥미진진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단단한 축성을 바탕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시 세계를 활짝 여는 귀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바라건대 부단한 궁구와 천착으로 큰 성취 있기를 소망하며, 첫 시조집『한티재, 꽃 피다』의 상재를 경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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