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메네스 왕조에서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나 법률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때 독특한 규칙이 있었다
왕과 귀족들이 모여 일부러 술에 만취한 상태로 안건을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고 다음 날 아침 모두가 맨정신으로 다시 모여 어제 취중에 내린 결정을 다시 검토해서 취했을 때와 맨정신일 때 두 번 모두 결과가 같으면 최종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ㅡ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은 하루에 약 4~5리터의 맥주를 배급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맥주와 마늘 배급이 늦어졌다 라며 연장을 내려놓는 인류 최초의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ㅡ 그리스
와인과 물을 1: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마셨다 맨정신과 취한 상태의 중간인 기분 좋은 이성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지적인 그리스인의 미덕이라 믿었기 때문 철학적인 토론을 나누는 자리를 심포지엄이라 불렀는데 이는 원래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라는 뜻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놈들은 야만인이다
ㅡ 로마
로마의 귀족들과 지식인은 제국 전역에서 올라오는 와인의 품질을 품평하고 순위를 매겼다 당시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에서 생산된 팔레르누스 와인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다
ㅡ 상나라
제사 지낼 때 엄청난 양의 술을 사용했다 마지막 왕인 주왕은 아예 연못에 술을 채우고 고기를 나무에 걸어두며 놀았다는 주지육림의 일화를 남겼을 정도로 술에 광적이었다 청동기 유물의 대부분이 술잔과 술항아리일 정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술부심이 조선까지 이어지다가 끊어졌다
고구려시대에는 중국인들이 집집마다 맛 좋은 술을 스스로 빚는다고 감탄했고 백제는 일본에 누룩 양조법을 전파해 수수보리의 기술력을 보여줬고 신라는 술이 취하는 도구가 아닌 예술과 교양의 매개체로 만들었다
일제는 세금을 걷고 민족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가양주 제조를 전면 금지했다 이로 인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수많은 비밀 레시피와 누룩 기술이 끊겼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희석식 소주와 막걸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술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술맛이 변하거나 전과 다르게 나오는 것은 가문의 운명이 걸린 대단히 불길하고 큰 사건으로 여겼다 단순히 이번 술은 맛이 없네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집안에 재앙이 닥칠 징조로 보아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제사상에도 올라가는 술이라 조상님이 노하셔서 집안에 우환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술맛은 가문의 품격이다 당시 사대부들은 사랑방에 손님이 오면 집에서 빚은 명주를 내놓으며 학문과 정치를 논했다 손님에게 쉰 술이나 맛이 변한 술을 대접하는 것은 그 가문의 가도가 무너졌음을 광고하는 꼴이였다 사대부 사회에서 소문이 나면 가문의 체면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통 발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환경의 조화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를 과학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집안의 기운으로 해석했다
술맛이 변하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조선 시대 여성들은 술을 빚을 때 목욕재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엄격한 금기를 지켰다
술을 발효시키는 방에는 잡귀나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족 외의 타인 특히 상주나 임산부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
술을 빚는 동안에는 험담이나 불평을해서는 안되며 오직 경건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 했다
술을 빚기 며칠 전부터는 부부간의 잠자리 금지
술을 빚는 당일 아침에는 반드시 목욕을하고 가장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머리를 단정히 빗고 시작했다
궁궐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대한 일이였다 왕실에서 술맛이 변한다는 것은 반역에 준하는 불충으로 다스려졌다 술이 취하기 위함도 있지만 제사상에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술이 상했거나 맛이 이상하면 조상을 능멸한 죄로 의금부로 직송
만약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시어버리면 이를 버리지 않고 부엌 한구석에 오래 묵혀 씨식초(초를 만드는 종균)로 재탄생시켰다 가문의 술부심이 실패했을 때 오히려 조선 시대 최고급 요리에 쓰이는 명품 천연 식초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셈
식초의 시초가 된 국가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문명인 바빌로니아(메소포타미아 문명)
식초는 인간이 일부러 발효 공식을 개발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남겨둔 술이 우연히 상하면서 탄생한 인류 최초의 천연 조미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