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20〉
■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 1917~1945)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詩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오늘은 제78주년 광복절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을 겪지 않고 순탄하게 성장한 우리들에게 광복절은, 그 의미가 대체적으로 무미건조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해방 직전 차디찬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의 詩 한 편을 다시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면 늘 비장하고 불행하게, 또 만 28세로 짧게 살다간 그의 삶이 참 애닯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지금도 그의 詩들을 즐겨 읽고, 그를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으니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그의 사후 발행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초판 형태로 복간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더군요.
그가 25세 때 쓴 이 詩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하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詩를 읽다 보면, 식민지 조국에서 부모가 땀방울 흘려 보내주신 학비로 너무 쉽게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시대처럼 올 아침(독립)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고 비장하게 고백하는 구절을 통해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당시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와 절망적인 삶이 어떠한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동주의 작품은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어둡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데, 광복절 아침 이를 읽는 우리들의 마음도 함께 비장해지는 것 같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