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한국 해군의 명예로운 과거를 반추해본다.
1997년 환태평양훈련(RIMPAC) 당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 해군의 209급(1200t) 디젤 잠수함이 미국 해군의 두터운 다중 방어망을 13번이나 뚫고 최종 목표물인 미 항공모함에 모의 어뢰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훈련이니까 진행은 여기까지였다. 실전이라면 이 어뢰는 미 항모를 격침했을 것이다.
훈련 상황이기에 망정이지, 실전 상황이었으면 미 해군은 항공모함을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다. 항모 1척의 손실은 단순히 큰 군함 1척을 잃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수십 대의 항공기와 수천 명의 정예 인력이 함께 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전술적으로 1개 함대의 항공전력 거의 전부를 상실하게 된다. 웬만한 국가의 전체 항공 전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심리적, 정치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미 해군은 놀랐다. 그 전까지 한국 해군을 별로 평가하지 않았던 그들은 이때부터 한국 잠수함과 연합훈련을 해마다 요청해 오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잠수함이 크기는 작지만 전략적인 능력이 뛰어난 무기임을 입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잠수함은 한국 해군이 처음으로 보유한 제대로 된 잠수함이다.
◇209급 잠수함
독일 HDW(Howaldtswerke Deutsche Werft)사가 개발했다. 한국 해군은 동급 1번함의 이름을 따 장보고급으로 부르며, 현재 9대를 보유하고 있다. 길이 55.9m, 폭 6.3m, 높이 5.5m. 최고속도는 수상에선 11노트, 잠항 중엔 21.5노트다. 수심 500m까지 잠수할 수 있으며, 이론상 50일간 잠항이 가능하다. 8기의 어뢰 발사관을 갖췄으며 14기의 어뢰를 장착할 수 있다. 하푼 함대함 미사일 발사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33명이 탄다.
▶미 해군의 항모 표적 실제로 격침하기도
1999년 3월25일에는 더욱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한국 해군의 209급(1200t) 디젤 잠수함인 이천함의 함장인 이동진 중령은 조용히 함내 수화기를 들었다.
상대는 미 해군 7함대 사령관.
이 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제독."
통화가 끝나자 조용하던 이천함에서는 환호로 물결쳤다.
이날은 한국 해군에겐 위대한 승리의 날의 하나로 기억된다. 1200t급 디젤 잠수함이 미 해군과의 연합훈련에서 미 해군 7함대의 호위를 받던 항공모함 표적을 격침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작은 잠수함이 훈련 상황에서 7함대 호위 구축함들의 겹겹 방어망을 뚫고 항공모함을 수장한 것이다.
당시 미 구축함들은 선체 아래쪽에 튀어나온 소나(음향탐지기)로 작은 소리라도 놓칠세라 바다 속을 열심히 감시했으며, 하늘에는 대잠 초계기 P-3C와 링스 헬기가 자기장을 이용하여 바다 속에 금속물질이 있는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잠수함처럼 금속으로 이뤄져 큰 중력을 가진 대형 금속물체가 물속에 있으면 대잠초계기의 감시 장비에 금세 발각된다.
당시 이천함은 표적에서 8km 떨어진 수중으로 접근했지만 미 해군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 함장의 조용한 명령에 따라 이천함에선 어뢰가 발사됐다. 독일 STN사가 제작한 어뢰는 몇 분 뒤 항모 표적으로 사용되던 미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의 선체에 정확히 명중했다. 실전이라면 미 해군 항모에 이 어뢰가 명중했을 것이다. 정확하게 27분 후 오클라호마시티, 그러니까 미 해군 항모 표적은 태평양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훈련은 그 해 3월22일부터 나흘간 한국.미국.호주.캐나다.싱가포르 등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진 다국적 해군의 서태평양 합동훈련이었다. 훈련에서 우리 해군은 미 7함대의 철통 방어를 뚫고 제일 먼저 미 항모를 격침했다.
사실 209급은 성능이나 규모로 보면 결코 내세울 무기체계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해군은 이를 가공할 무기로 만들었다. 크기가 비교적 작아서 상대에게 발각되기 힘든 측면도 있지만, 이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우리 해군의 훈련과 전술개발 노력이 더욱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이다.
우리 해군이 그만큼 실력 있다는 이야기다. 충무공의 과거의 영광이라면, 우리 해군 잠수함 전력은 현재의 자랑이자 나라의 실질적인 힘이다. 이젠 무기체계도 214급 잠수함에 이지스 구축함까지 갖춰가고 있다.
▶해군력이 말하는 시대
21세기, 세계가 한 마을이라지만 자원이다, 통상로 확보다 하면서 바다를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하기만 하다. 이젠 해군력이 없으면 국력도 없다.
해군은 이동 미사일 전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바다만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육군.공군과 합동 작전을 펼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글로벌 기동 전력의 핵심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영국이 막대한 돈을 들여 신형 애스튜트급 공격형 핵잠수함을 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90년대 중반 내륙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당시 내륙인 발칸지역에 적극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나, 99년 코소보 전쟁 때 내륙국인 세르비아를 마음놓고 공격할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해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젠 해군력이 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