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치악산 해발 600m 산자락에 어느 중독자가 산다. 고판화에 중독된 한선학 관장이다. 고판화, 목판, 고서 등 6000여 점 유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미친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출생
1956년 4월 5일, 경상북도 청송
소속
고판화박물관(관장), 치악산 명주사(주지)
약력
2016년~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 회장
2011년~ 한국고판화학회 회장
2003년 고판화박물관 개관
1998년 치악산 명주사 창건
우연에서 시작된 운명적인 만남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물안길, 외딴 산길을 따라 오르면 오색빛깔 단풍을 머금은 너른 잔디밭이 나타난다. 뒤로는 해발 1288m의 치악산이 안고 있고, 앞으로는 해발 945m의 감악산을 비롯한 여러 산세가 차례로 포개어졌다.
“하루 한 번 치악산 상원사에서 감악산의 천년고찰 백련사까지 천마가 난다고 해요. 요새는 공해로 천마가 잠시 명주사에서 쉬었다 가요.”
이곳 명주사의 주지 스님이자 고판화박물관장인 한선학 씨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지장보살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한 감악산을 바라보고 소원을 빌면 하늘에서 기운을 내려줘요.”
그 기운이 통한 모양이다. 명주사와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이 애정하는 삶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그에겐 운명이 된 두 번의 우연이 있었다.
치악산 해발 600m 산자락에 자리한 명주사와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의 손가락을 따라 저 멀리 지장보살의 형상을 한 감악산이 보인다.
첫 번째 우연은 입영통지서를 받은 시점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하던 한선학 관장은 3수 끝에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에서 조각을 전공한다. 그런데 신입생이 되어 캠퍼스 생활을 누리려는 찰나, 입영통지서가 날아든다. 한 학기라도 마치고 입대할 요량으로 본 군종 장교 시험에서의 합격을 계기로 종교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한 관장은 양양 낙산사에서 출가를 해 승려가 됐다.
하지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한 관장은 흔히 알고 있는 승려의 모습과 달리 머리를 기른다. 군종 장교 시절부터 기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머리뿐만이 아니다.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다. 군 생활 중 결혼을 했는데 당시 조계종에선 군승의 결혼을 허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계종단에 남으려면 제대를 하고 이혼을 해야 했다. 차마 그럴 수 없었던 한 관장은 제대 후 대처승을 인정하는 태고종 승려가 된다.
불교미술과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승려가 된 한선학 관장
명주사 법당의 불상은 한 관장이 직접 조각한 것이다.
두 번째 우연은 국방부 법당 주지 시절, 중국 안후이성 구화산으로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이다. 인근 항저우 야시장에 갔다가 법당에 놓을 도자기 불상을 3만5000원에 구입했는데 서울에 돌아와 보니 비슷한 불상이 무려 1,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고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리고 그 무렵 인사동에서 구입한 지장보살 목판을 시작으로 수집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불경을 외는 미술학도에게 지장보살 목판은 종교의 진리이자 눈부신 예술작품이었으리라.
“모든 일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과연 한선학 관장의 말대로다. 종교인이 되어서도 전공을 살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연에서 시작된 목판과의 만남은 판화, 판화 도구 등의 세계로 넓어지며 그에게 운명이 되었다.
판화 관련 6000여 점의 유물을 모은 고판화박물관
미쳐야 미친다
“알코올 중독보다 심한 게 마약 중독, 마약 중독보다 심한 게 바로 이 수집벽이에요.”
한선학 관장에 의하면 수집은 중독 중에서도 가장 강한 중독이다. 인사동에서 구입한 목판 하나가 오늘날 고판화박물관을 이루었으니 그의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 그의 수집 행위 역시 수집벽을 넘어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원하는 게 있으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등 어디든지 찾아갔다. 그가 수집한 목판, 고서, 판화, 판화 도구 등은 무려 6000여 점이나 된다.
고판화박물관의 시작은 판화 보관을 위한 땅을 찾던 것에서부터였다. 그러던 중 지금의 명주사 터를 발견했다. 군 제대 후 공사를 시작해 1998년 명주사, 2003년 고판화박물관 개관을 거쳐 2017년 작은 도서관까지 현재 총 7개 건물이 치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과정을 알았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미쳤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한선학 관장은 강조한다. “미쳐야(狂) 미친다(及)”라고. 때론 무언가에 미친 한 사람이 국가도 못하는 일을 이루어낸다고.
명주사 주변을 돌며 각 건물을 안내하는 한 관장
한 관장이 수집한 판화 한 점을 들어 보인다.
판화는 인간의 소망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부처의 얼굴을 도장으로 찍는 데에서 시작해 부적, 불경 속의 삽화로 발전했다. 고판화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컬러 인쇄물과 만화책을 소장한다. 지금의 그림책, 만화, 컬러 인쇄, 심지어 사진까지 그 본질에 판화가 있다고 하니 우리에게 판화는 문명의 기원과도 같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조선 후기에 왕명으로 편찬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와 문화재로 지정된 7점의 유물이다.
“이 판화들을 그저 소유만 한다면 사욕이죠.”
‘1사찰 1박물관’을 외치는 한선학 관장은 이곳에서 진행되는 판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에게 판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보람을 느낀다. 판화라는 문화적 매개체를 통해 포교하는 법사(法師)이자 문화 리더인 셈이다.
한선학 관장의 안내로 고판화박물관 관람이 진행된다.
문양 인출 체험이 진행 중인 숲속 판화학교
한선학 관장의 열정과 애정이 통한 것일까? 명주사와 고판화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템플스테이 사찰, 서울시교육청 학습교육기관 선정에 이어 문화재청 생생문화재에 9년째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그는 “이 모든 건 유물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유물은 의미가 미약하다. 지금의 명주사와 고판화박물관이 있기까지는 판화를 비롯해 6000여 점의 유물을 찾아 헤맨 어느 수집가의 ‘미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선학 관장의 지도로 체험자의 목판 제작이 한창이다.
직접 만든 목판, 전통책, 문양 에코백에 뿌듯해하는 체험자들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한선학 명사의 숲속 판화여행
고판화박물관 관람
한선학 관장 또는 직원의 안내로 고판화박물관 관람이 가능하다. 박물관은 <오륜행실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인도 등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유물 6000여 점을 소장한다. 상시 전시하는 유물과 주기적으로 주제가 바뀌는 안쪽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어 때마다 다른 판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박물관 관람 후에는 판화 체험이 이어진다. 체험비는 박물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숲속 판화여행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1박 2일 숲속 판화여행은 여느 사찰 템플스테이와 달리 고인쇄 체험이 주를 이루어 자연과 문화, 명상이 어우러진 차별화된 ‘문화 템플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다. 첫날에는 목판 제작 체험을 하고 해설을 들으며 고판화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주요 일정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발우공양을 시작으로 명상 체험, 계곡 산책, 전통책 만들기 순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숲속 판화학교
숙박을 하지 않고도 숲속 판화여행에서 열리는 프로그램들을 각각 따로 신청해 당일 체험을 할 수 있다. 목판 제작, 전통책 만들기, 문양 인출 체험과 같은 판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º 장소 : 고판화박물관(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물안길 62)
º 문의 : 033-761-7885
º 참가방법 : 전화 문의
º 기간 : 상시(월요일 휴무), 예약제
º 박물관 이용료 :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어린이 3000원(판화 체험비 포함)
º 체험비 : 숲속 판화여행(목판화 제작, 전통책 만들기, 명상 체험, 다도 체험, 아침 산행, 1박 3식 제공) - 6만~7만 원(인원수와 계절에 따라 비용 다름)
숲속 판화학교 - 목판 제작 25,000원, 전통책 만들기 20,000원, 문양 인출 체험 15,000원
º 홈페이지 : www.gopanhwa.com
Travel +
미로예술원주중앙시장 홈페이지 보기
1층은 전통시장이고 2층은 식당과 카페, 공방, 잡화점 등이 미로 같은 골목에 자리한 젊은 시장이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로이 녹아든 매력적인 뉴트로(Newtro: New와 Retro의 합성어) 시장이다. 2층은 가, 나, 다, 라 4개 동에 얽히고설킨 복잡한 구조를 따라 벽화, 설치미술 등이 가게들과 어울려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9년 1월, 시장을 덮친 화재로 침체기를 겪었으나 시장 내 부리토 식당과 칼국수집 등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되며 다시금 급부상하고 있다.
º 주소: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길 6
º 문의: 033-743-2570
º 이용시간: 상점마다 다름
원주의 젊은 전통시장인 미로예술원주중앙시장
최근 방송을 탄 칼국수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원주 용소막성당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풍수원성당, 원주성당에 이어 강원도에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초대 주임신부로 프와요 베다스토가 부임하였고 3대 주임신부 시잘레가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915년에 현재의 벽돌 건물을 완공했다. 서양의 고딕 양식을 변형한 용소막성당은 훗날 일본군에 의해 종이 공출되었으며 6·25전쟁 때는 북한군 창고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성당 앞 단풍 든 나무가 시골 성당의 목가적인 정취를 더한다.
º 주소: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
º 문의: 033-763-2343
º 이용시간: 09:00~17:00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원주 용소막성당
언덕 아래 성모마리아상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행정보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원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91회(06:00~24:00) 운행, 약 1시간 30분 소요.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www.exterminal.co.kr
[기차] 서울-만종, KTX 하루 13회(05:11~22:01) 운행, 약 1시간 1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정보
중부고속도로→제2중부고속도로→광주원주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춘천-금호)→신림황둔로 주천·영월 방면 우회전→물안길 좌회전 후 130m→물안길 우회전 후 560m→고판화박물관
숙박 정보
호텔K : 한국관광품질인증 / 강원도 원주시 시청로 29-3 / 033-812-3000 www.hotelk.modoo.at
치악산호텔 : 한국관광품질인증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치악로 3371-3 / 033-731-7931 www.chiaksanhotel.co.kr
베니키아호텔비즈인 : 강원도 원주시 만대로 7-1 / 033-748-0100 www.benikea.com
식당 정보
어머니손칼국수 : 칼국수 /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중앙시장길 6 (2층 라동) / 033-742-6989
보릿고개 : 보리밥 정식 / 강원도 원주시 양지로 16 / 033-747-8289
박순례 손말이고기 산정집 : 말이고기 / 강원도 원주시 천사로 203-15 / 033-742-8556
글 : 최재원 (여행작가)
사진 : 장명확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