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맘스버리(Malmesbury)란 소도시에 있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차로 1시간 30분 떨어진, 인구 5000여명의 중세풍 도시다. 이곳에는 7세기 처음 세워진 맘스버리 성당과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올드 벨’(1220년 건축) 말고도 명물이 하나 더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비틀스만큼 유명한 가전회사 다이슨(Dyson)이다.
2001년 엘리자베스 여왕도 다녀갔다는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리셉션 데스크에 앉은 여직원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은 청바지나 면바지 차림이다. 벽에는 미술 작품 대신 가로 2m, 세로 1.5m 크기의 대형 설계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그 유명한‘날개 없는 선풍기(제품명 에어멀티플라이어)’의 설계도였다. 2009년 타임(Time)이‘올해의 발명품’가운데 하나로 꼽은 선풍기이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동그라미 안에서 마치 마술처럼 바람이 나오는 모습은 직접 봐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사무실 출입문에는 보라색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 중 하나에 이렇게 쓰여 있다. “ 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선풍기는 1882년 발명됐다. 날개를 이용한 그 방식은 127년간 변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63·Dyson)은 선풍기에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선풍기는 꼭 날개를 써야 하지? 돌아가는 날개 때문에 바람이 중간중간 끊기고 날개를 청소하기도 어렵잖아. 더구나 아이들은 늘 손가락을 넣고 싶어해 위험하잖아.”
▲ 제임스 다이슨과‘날개 없는 선풍기(에어멀티플라이어)’. 이 제품은 2009년 미국의 시사 잡지‘타임’이 선정한‘올해 가장 혁신적인 제품 톱10’에 뽑혔다. /AP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선풍기의 틀이 깨지는 데는 4년이 걸렸다. 높이 50㎝ 크기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시작으로 개발을 거듭한 결과였다. 작년 10월 영국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제품은 겨울에도 구하기 어려운 초인기 상품이다. 한국에는 이르면 올겨울에나 들어올 예정이다.
영국 산업계의 이단아,‘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제임스 다이슨은 요즘 전 세계 기업가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을 단 청소기는 비싼 가격(국내 판매가 65만~100만원)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북미시장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 그가 히트시킨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덕분이다.
최초의 현대적 진공청소기는 1901년 영국 발명가 부스(Booth)가 개발했다. 그 뒤 일렉트로룩스나 후버 같은 대형 가전회사들이 100년 가까이 전 세계 가정에 수억 대의 진공청소기를 팔았다.
▲ 다이슨사가 제작한 첫 진공청소기 모델인 DC-01. /다이슨 제공
하지만 그 10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먼지봉투다.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돼온 진공청소기는 먼지봉투로 공기에서 먼지를 거른 뒤 봉투째 버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먼지가 봉투의 작은 구멍을 막기 때문에 금세 청소기의 흡입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분노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다이슨이다.
그는 1979년 집에 딸린 낡은 창고에 들어가 5년간 5127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마침내 세계 최초의 먼지봉투가 필요 없는 청소기를 개발했다. 원심분리기처럼 공기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먼지를 분리해 내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특허를 팔고 원래 직업인 디자이너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시제품을 들고 2년간 미국과 유럽의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당시 세계 1위 업체였던 후버를 비롯해 일렉트로룩스, 블랙앤데커 등 세계적 기업들은 기존 제품을 지키는 데 급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왜 사람들이 먼지봉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죠? 사람들은 먼지봉투 방식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는 안 팝니다. 먼지봉투 판매는 우리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결국 남자는 자기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워 직접 제품을 만들었고 2002년 미국 시장 진출 이후 3년 만에 후버를 제쳤다. 비틀스 이후에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영국산(産) 제품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직원들이“JD”라고 부르는 제임스 다이슨의 사무실은 2층에 있었다. 다이슨은 개인 기업인 이 회사의 오너이지만, 지난 3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지금은 수석엔지니어 직함만 가지고 있다. 일이 더 재미있다는 이유에서다.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 직원들이 실패하게 하라"
인터뷰는 12시 30분 시작됐다. 그의 오전 일정이 밀리면서 인터뷰는 1시간 늦춰진 상태였다. 다이슨은 점심도 건너뛴 채 질문에 답했다. 얼마 전 무릎 관절 수술을 해서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새로운 기술 이야기가 나올 때면 마치 소년처럼 눈이 반짝였다. 그는 처음 보는 것, 다른 것,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기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꺼내 들자 "어디 제품이냐" "기종은 뭐냐"며 꼼꼼히 물었다. 인터뷰 내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공격적인 질문에는 지기 싫어하는 고집이 느껴졌다.
■우리는 경험이 없는 직원을 원한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다른(different)'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예전과 다른 환경에서 남과는 다른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하길 원합니다(We want to do something different, do it differently, in a different environment)."
다름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직원 채용에도 적용된다.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 해당 분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 제임스 다이슨과 그가 직접 개발을 지휘한 다이슨의 소형 진공청소기. ‘흡입력은 같으면서 크기는 작은 청소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5년간 48명의 엔지니어가 뛰어들어 모든 부품을 새로 만들었다. /다이슨 제공
―직원 교육 비용이 커지지 않나요?
"우리가 원하는 마케팅 직원은 경험이 부족한 마케팅 직원입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에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선입견이 없고, 맡은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마치 탐험(pioneering)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우리 회사 청소기의 경우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고객서비스센터 번호를 붙여놓습니다. 15년 전에 우리가 처음 이 일을 했을 때 경쟁사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당신네 청소기는 쉽게 고장 나니까 그런 일을 하는 거지'라고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언제든 쉽게 답을 들어야 합니다. 그 아이디어는 제가 낸 게 아니고, 우리 고객 상담 직원 중 한 사람이 낸 것입니다. 그도 신참 직원이었죠."
그러고 보니 기자를 안내한 한국 판매 담당 매니저는 외교관 출신이었다. 직원들에 따르면 이 회사 연봉은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서울을 좋아하듯 갓 대학을 졸업한 영국 젊은이라면 런던을 선호하는 게 당연한데, 젊은 인력들이 이 시골까지 내려온다. 직원 마리오씨는 "다이슨에 없는 단어가 있는데 '불가능(impossible)'"이라며 "이런 분위기의 회사는 영국에서 여기뿐이고 다이슨에서 일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경력"이라고 말한다.
▲ 다이슨 본사 건물 문 손잡이에 붙어 있는 홍보 문구. 1882년 최초의 전기 선풍기가 나온 이후 127년간 전기 모터로 날개를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에 변화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박수찬 기자
■직원들이 실패하게 하라. 빨리 배울지니
숱한 실패 끝에 성공을 이룬 그의 지론은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뤄진다"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수하게 하면 일을 빨리 배운다"며 실패를 장려한다. 그래서일까? 다이슨이 내놓는 제품들은 개발 기간이 길다. 청소기가 5년, 날개 없는 선풍기는 4년이 걸렸다. 1999년 첫 시제품을 공개했던 로봇청소기의 경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발 중이다. '완벽한 제품'을 위해 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진공청소기 개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이었죠. 빚은 계속 늘어가고 대기업들에는 문전박대를 당하셨는데 포기하고 싶단 생각은 안 들었나요?
"제 성격이 원래 포기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제가 올해 63세인데, 그 중 40여년간 실패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실패에 익숙해요. 엔지니어나 과학자의 삶에 실패는 늘 따라다닙니다. 성공이 오히려 드물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원들이 개발 스케줄을 맞추지 못하고 계속 실패만 하고 있으면?
"물론 프로젝트를 제때 끝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는 일입니다. 저는 직원들이 어떤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문책하지 않아요. 전혀요."
―하지만 그 모든 게 비용과 직결됩니다. 화가 나실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전혀 화가 안 납니다. 물론 일이 제시간에 끝나지 않는 경우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데 당사자들은 또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그래도 직원들이 새로운 실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하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거니까요."
그는 혁신이란 반복되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술도, 시장 상황도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지 않나?
"기술의 발전이 욕조에 있다가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 가지요. 물론 지적하신 것도 맞습니다. 세상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분석·예측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결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제품을 개선해 가는 '에디슨 방식'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간을 아껴줄 뿐이죠. 컴퓨터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직접 시도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죠."
그의 말은 이 회사 연구센터를 살펴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R&D센터라기보다 일종의 공방(工房) 같은 모습이었다.
이 회사의 개발 방식은 이렇다. 가령 어느 직원이 진공청소기를 개선할 아이디어를 낸다. 컴퓨터로 부품 설계도를 그려 'EOSINT 700'이라는 기계에 입력한다. 이 기계는 밤새 미세한 나일론 입자를 설계도에 맞게 눈처럼 뿌려 하루 안에 부품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다음날 출근한 연구원들은 새로 만든 부품 프로토타입을 기존 제품에 끼워보고 실제 성능이 좋아지는지를 테스트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도 그런 테스트가 한창이었는데, 초당 6만장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로 새로 만든 청소기 기어가 잘 돌아가는지 살피고 있었다. 성능 개선에 실패하면 연구원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4~5일 주기로 반복한다.
직원 샘 버나드씨는 "다이슨의 특징은 직접 만들어가며 개선한다는 데 있다"며 "큰 혁신은 이런 작은 개선들이 모여 이뤄진다"고 말했다.
다이슨사는 영국에서 롤스로이스 다음으로 많은 특허를 가진 기업이다. 청소기와 관련해 소유·출원 중인 특허가 1100개다. 동시에 이 회사는 외부 용역을 주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디자인이든 기술 개발이든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오픈소스와 협업의 시대가 아닌가?
"물론 저희도 외부와 공동 개발을 합니다. 특히 대학들과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이에요. 5년, 10년, 혹은 15년 이상이 걸릴 프로젝트들입니다."
■"돈에 맞추기 위해 기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이슨은 내놓는 제품마다 "혁신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을 받는다. 청소기는 삼성·LG 등 국내 제품보다 2~3배 비싸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199.99파운드(약 36만원), 손 건조기는 600파운드(약110만원)나 한다. 높은 가격 때문인지 시장 공략 역시 유럽, 일본·미국 등 선진국 시장부터 서서히 확장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단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네. 비싸죠. 하지만 우리는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씁니다. (소형 다이슨 청소기를 들어 보이며) 여기 들어가는 새로운 모터를 개발하는 데는 돈이 듭니다. 배터리 역시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돈에 맞추기 위해 기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도 목표 가격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싸게 만드는 것보다 믿을 수 있고, 내구성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낮은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그냥 싼 물건을 사면 되죠."
시장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선진국에 집중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다이슨의 매출은 전년 대비 23% 늘었다.,
―자서전 <제임스 다이슨: 역경을 이기고·James Dyson: Against odds 국내 미출간>를 보면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원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2중 드럼을 채택한 세탁기는 호응을 얻지 못해 2005년 판매가 중단됐죠. 실패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어제 어느 파티에서 다이슨 세탁기를 쓰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는 다이슨이 세탁기를 만들지 않아서 아쉽네요. 다른 회사 제품을 사야 한다니 유감이에요.'
멋지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세탁기를 산 소비자들의 만족과 사랑이 성공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다만 문제는 제품 생산단가가 너무 높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영국에는 제대로 된 부품 업체도 없다는 점도 문제였어요. 그 때문에 판매 가격이 비쌌고(799파운드·약 146만원), 소비자 잡지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기능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말이죠."
■"전문가의 말을 듣지 마라"
다이슨은 '기술 지상주의자'다. 스트립 앤드 빌드(Strip and Build)라는 행사가 그의 취향을 잘 보여준다. 신입사원들이 출근 첫날 다이슨 청소기를 손수 분해·조립하는 행사다. 해외 판매업체 직원들 역시 맘스버리 본사를 방문하면 이 행사를 치른다. 기술에 대한 그의 욕심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내 기술 인력을 350명에서 700명으로 두 배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더 많은 프로젝트를 위해서"라고 했다.
―연구 인력을 늘릴 계획인데,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나요?
"더 효율적인 모터, 로봇 기술 같은 분야가 예가 될 테고, 이 외에도 아주 많은 분야가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앞으로 꼭 만들고 싶은 발명품이 있다면.
"우선 태양광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태양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를 좌절시키는 문제 가운데 하나예요. 저를 좌절케 하는 다른 문제는 소재입니다. 지난 50년간 탄소섬유나 티타늄을 제외하면 소재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전이 없었습니다. 이 문제가 공학 발전을 가로막고 있죠."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저는 조언을 아주 싫어합니다. 제가 남 이야기를 듣는 걸 싫어하거든요.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네요. '공학을 선택한 건 아주 현명한 결정입니다. 아주 멋진 미래가 있거든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세계가 처한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차를 예로 들면 빠르고 외양이 멋지게 만들면 그만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다 적은 에너지를 쓰고, 더 오래가는 제품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엔지니어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고, 엔지니어가 되기에 이보다 좋은 시절이 없다고 봅니다."
―평소 "전문가(expert)들의 말을 듣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럼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누구의 말도 듣지 마세요. 다만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세요. 그렇다고 고객을 찾아가 '어떤 제품을 원하세요?'라고 물으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소비자들도 자신이 다음에 원하는 걸 스스로 알지 못하거든요. 그들의 습관을 읽고 그들이 깜짝 놀랄 만한 걸 내놓아야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걸 발명하는 건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걸 좋아하도록 이끌어야(lead) 합니다."
―상장 계획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증시에 상장된 많은 영국 기업들은 정말 눈앞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10~15년씩 긴 프로젝트를 합니다. 그래서 증시와 어울리지 않아요."
인터뷰가 끝나자 다이슨은 다리를 쩔뚝이며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그는 환히 웃으며 '만나서 기뻤고 토론 즐거웠습니다. 제임스'라고 사인한 자서전을 한 권 선물했다. 호텔에 돌아와 책을 뒤적이다가 출장 전에 읽었을 때는 흘려 넘겼던 서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이슨은 이렇게 썼다.
"내 성공은 다이슨에 있는 모든 사람의 독창적인 정신과 비범한 노력 덕분입니다. 우리의 모험이 신나는 이유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297~300쪽을 보세요)." 그 마지막 네 페이지에는 다이슨 직원들의 이름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영(英) 산업계 이단아' 다이슨은 세계 최초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개발… 기사 작위 받아
다이슨사(社) 주차장. 바닥에 JD라고 쓰인 자리에 회색 페라리 한 대가 서 있다. 63세인 제임스 다이슨은 이 스포츠카를 몰고 출퇴근한다.
그는 1947년 영국 노퍽(Norfolk)에서 중산층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다. 9세 때 교사인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건 큰 충격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주변엔 나처럼 아버지 없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뭐든 또래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그는 16세 때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어렵고,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았던 바순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왕립예술대학(RCA)을 졸업하고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했다. 차량 운반선인 시트럭(Sea Truck)이란 배를 디자인했고, 이집트·리비아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직접 배를 팔았다. 하지만 회사 차까지 주는 그 자리를 4년 만에 박차고 나왔다. "바퀴 이래 가장 멋진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듣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혼자서 볼베로(Ballbarrow)라는 정원용 수레를 만들었다. 당시 정원용 수레는 폭이 좁은 바퀴를 썼기 때문에 땅에 깊은 홈을 남겼다. 넘어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다이슨은 플라스틱으로 된 공을 바퀴로 하고 여기에 물을 채워 안정감을 더하는 제품을 만들었고 디자인상을 받았다.
▲ 다이슨이 만든 정원용 수레 볼베로. /다이슨 제공
그는 다른 투자자들과 동업해 볼베로를 본격 생산하기 위한 회사(커크-다이슨·Kirk-Dyson)를 차렸다. 제품은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했지만, 한 미국 기업이 똑같은 제품을 베껴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회사에 제안한 것은 그 무렵(1979년)이었다. 하지만 동업자들은 "하지만, 제임스…. 그런 아이디어가 있다면 후버(미국 청소기회사)가 개발했겠죠"라며 거부했다. 결국 그해 동업자들과 불화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와 판박이다. 다이슨이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말은 "하지만, 제임스…"다.
1979년 그는 마차 보관소로 쓰이던 집 뒤 낡은 창고로 들어가 혼자서 진공청소기 프로토타입(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보는 것·시제품보다 더 원초적이며 미완성 형태이다)을 만들기 시작한다. 첫 프로토타입은 시리얼 상자와 테이프로 만든 엉성한 형태였고, 이후 5년간 5127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생활비는 아내가 미술 교실에서 강사를 하고 잡지에 그림을 팔아서 댔다.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역경은 계속됐다. 대기업들은 그의 제품 생산을 거절하는 한편, 싼값에 특허를 가져가기 위한 방해 공작을 벌였다. 결국 1985년 한 일본 회사에 제품당 로열티 10% 지급 조건으로 특허를 팔아 '지포스(G-Force)' 청소기가 일본에 팔리기 시작했다. 다시 7년간 개발에 매달려 1992년에는 업그레이드된 청소기로 지금의 '다이슨'사를 세웠다.
"자기 본능을 믿어라. 전문가를 믿지 마라"는 그의 신념은 이런 경험이 쌓인 결과다. 다이슨 청소기의 먼지통은 투명하다. 당시 마케팅 전문가들은 "더러운 먼지통을 보는 일은 불쾌하며 제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력 반대했다. 하지만 다이슨은 "직접 눈으로 성능을 보게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는 영국 제조업에 만연한 '할 수 없다(can't do)'는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02년 재단을 세워 젊은 산업 디자이너들에게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수여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영국 바스(Bath)에 디자인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노동당 정책 자문을 거쳐 현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보수당)의 자문을 맡고 있다. 올 3월에는 캐머런 당시 보수당 당수의 부탁으로 '영국을 유럽의 하이테크 수출국으로 만들자'는 제목의 60쪽 짜리 보고서를 만들었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장(1999~2004), 런던 디자인 협회 회장(2007)을 지냈으며, 2007년 대영제국 기사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