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eD9Ry6LA0s
* 찬송 364장 249장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을 사흘째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하루에 한절씩 밖에 진행이 안되고 있네요. 오늘은 3절과 4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3절을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말하지요. 하나님의 장막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신 그 장막에 사람들도 함께 있다는 거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 따로 인간 따로 일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려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천국이 천국일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천국에서 하나님을 빼면 더 이상 천국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은 당연한 거죠.
여러 성도님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담스럽거나 꺼려지는 적은 없으신가요? 찬양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우십니까? 내 죄악된 욕망을 즐기고 싶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려 할 때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불편하겠지요. 내 감정과 내 기분과 내 생각대로 살고 싶을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은 탐탁치 않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내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복종시키는 경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기쁘고 감사하고 평안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되게 하는 훈련을 행해야 하는 겁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지금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노력하지만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 가사대로 그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평화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류와 소통이 회복되는 것과 같지요. 하나님과 함께 시간들이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4절 말씀을 보지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났음이러라.’ 이 말씀은 장례식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특히 돌아가신 분이 세상을 정말 눈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고통과 아픔으로 사셨던 분들일수록 이 말씀은 더 큰 위로가 되지요.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손길이 직접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접촉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의 눈물을 씻으시고 나의 손을 잡아주시고, 나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나를 안아주시는 그 손길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요? 궁금하고 많이 기대 됩니다.
최후의 심판을 통해 사탄의 세력들이 괴롭혔던 사망과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이제 다시 있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과연 이렇게 아프고 슬픈 것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잘 상상이 안 갑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픔과 슬픔이 늘 일상적이기 때문이지요. 요한도 그런 세상이 잘 표현할 수 없었는지 4절 마지막에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는 말을 1절에 이어서 한번 더 반복합니다.
다 지나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를 판단하는 모든 판단 기준은 다 무의미해진다는 것이지요. 잘났다 못났다, 능력 있다 없다, 앞섰다 뒤쳐졌다, 잘한다 못한다, 부자다 가난하다, 사실 세상에서 받는 이런 판단에 우리가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아갑니까? 조금만 잘났다고 평가받아도 교만해지고, 조금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상처 받았다고 난리고, 조금만 부자가 되면 마치 세상이 내 것인처럼 행세하고 좀 가난해지면 인생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기도 하지요. 다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다 지나간다는 말은 시간의 한계 속에 갇힌 이 세상의 것들은 알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라는 의미인 거죠.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렇게 시간의 한계 속에 있는 이런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곳입니다. 오직 영원함이 있고, 늘 새로워지는 곳이고, 늘 이전에 없었던 완전한 평화와 안식과 기쁨과 따뜻함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곳이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