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
뒤돌아보면 지난 겨울엔 눈다운 눈을 단 한 번이라도 밟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서울에선 그랬다.
예년과는 판이했다.
이상 기후가 계속 이어졌던 특이한 겨울이었다.
그런데 '백두대간'엔 심심찮게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뉴스시간에 가끔씩 그런 소식이 들렸다.
3월초에도 엄청난 눈이 내렸다고 했다.
심각한 역설이지만, 서울에 눈이 내리지 않자 함박눈이 더욱 그리웠다.
주말 새벽에 완벽한 눈의 세상, 온전한 겨울왕국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차를 몰았다.
천혜의 '안반데기'로.
본격적으로 '안반데기' 얘기를 하기 전에 잠간 그곳을 설명하고 넘어가자.
내가 소싯적에 시골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직접 떡을 만들어 먹었다.
뜨거운 수증기로 알맞게 익힌 떡쌀을 놓고 떡매로 내려쳐 부드럽고 찰진 '인절미'를 비롯해 각종 떡을 빚었다.
그때 떡쌀 밑에 받치는 평평한 목재기구가 있었는데, 이를 '안반'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떡을 만들어 먹던 시절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물건이 바로 '안반'이었다.
'안반데기'란 지명도 바로 이 기구에서 나온 말이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보릿고개'를 넘던 그 한 많은 시절에 사람들은 순전히 생존을 위해 험준한 산을 개간하고
일구며 목숨을 부지했다.
눈물겨운 사투였다.
높고 험한 '백두대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그곳이 조금씩 조금씩 평평한 농토로 변모해 갔다.
거의 맨주먹이었다.
기껏해야 소와 쟁기가 유일한 조력자였다.
헤일 수 없는 눈물과 땀을 쏟았고, 천금같은 시간을 투자했다.
어느새 세상은 돌변했다.
기적이 찾아온 것이다.
해발 1,100 미터 이상의 '백두대간' 고지대에 어마어마한 '고랭지 농장'이 태어난 것이다.
과연, 어느 누가 이런 험준한 곳에 끝없이 펼쳐진 옥토가 존재하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가보면 알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대지다.
'안반데기'는 그렇게 온갖 신산과 죽음 같은 고초를 탯줄로 삼아 태어났다.
필설로 형용키 어러운 난산이었다.
경험 많고 파워풀한 '트레커'일지라도 하루 종일 빠르게 걸어야만 겨우 그 끝을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광대한 땅이다.
마치 맹금류의 제왕, 독수리가 큰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창공을 비상하는 듯한 형상이다.
지세가 그렇게 생겼다.
북쪽으로는 '고루포기산'(1238M)에서부터 남쪽으로는 대기리 '옥녀봉'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속
최대의 '고랭지 농장'이다.
1965년부터 가난한 백성들이 맨주먹 하나로 나무를 베고 돌을 캐내며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정말로 절절한 애환이 녹아 흐르는 도전이었다.
지금은 최종적으로 28개 농가가 그곳에 정착했고, 전국 최고의 부유한 농촌이 되었지만 그 고초와 희생은
어떠한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안반데기'는 그런 곳이었다.
질경이처럼 질기고 강인한 한국인의 DNA가 굽이굽이 녹아 흐르는 역사의 땅이었다.
3월 초순.
폭설이 그리웠다.
몹시도 보고팠다.
역시 '안반데기'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완벽한 '겨울왕국'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안반데기'는 그곳만의 고유한 풍광과 멋을 보듬은 채 트레커의 가슴을 사정없이 쿵당쿵당 뛰게 만들었다.
약 8킬로 정도의 '도암호' 둘레길 트레킹을 마치고, 폭설로 차량통행을 막아버린 그 눈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힘들게 올라갔다.
드디어 능선을 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파노라마.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우리 앞에 가득했다.
그것만으로도 새벽에 일어나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려온 값지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극적인 장면마다 내 시신경을 가득 채운 기막힌 영상들, 강렬한 아름다움에 우리 부부는 환호했고 전율했다.
어떤 비용이나 시간투자도 이 스펙터클한 경관 앞에서 이보다 더 값지고 소중할 순 없었다.
내가 늘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생각 한 줄기가 있다.
나만의 짧은 기도문이다.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면 자신의 존재와 영혼이 헷갈리며 불안해 진다.
내 눈으로 보고 두 다리로 직접 걸어가야 한다.
드넓은 세상을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로 해석할 수 있어야만 존재가 단단해 지는 법이다.
그래야 제대로 사는 것이며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건강할 때 부지런히 다니고 하나라도 더 보며 열심히 사유하자.
나의 오감과 맑은 영혼으로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할 때 열정적으로 감동하고 삼라만상과 적극 소통하자.
내게 머뭇거릴 시간따윈 아예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동의하든 안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각자에겐 자신만의 철학과 고유한 삶의 패턴이 있을 테니까.
피곤에 지친 일상속에서 우리의 미소가 엷어지고 어깻죽지 사이로 공허함과 대간함이 슬슬 밀려들 때면
주저하지 말고 배낭을 싸자.
인생이란 '즉시성'과 '현재성'의 점철 아니던가.
노력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딱 하나, 나이를 먹는 것뿐이다.
이것을 제외하곤 모두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
우리네 삶이 마지막 무대를 향해 치닫기 전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더 자주 공감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매일 새벽 큐티시간마다 그리 기도하고 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웅대한 백두대간.
땀과 눈물로 일궈낸 풍요의 땅, '안반데기'.
그 이름 영원하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