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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출발점
1장 복구는 영혼의 자양분
2장 그럭저럭 괜찮게
3장 엉망이어도 괜찮다는 느낌
4장 비난 게임은 이제 그만
5장 회복 탄력성 다시 생각하기
6장 게임으로 소속감을 배우다
7장 테크놀로지와 무표정 패러다임
8장 의미가 왜곡될 때
9장 수많은 순간들로 만들어가는 치유의 모자이크
10장 불확실성에서 희망 찾기
11장 불화를 통과해 연결과 소속으로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문제 행동에 관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아이의 행동이 서투른 양육의 결과가 아닐까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더 건설적인 접근법은 관계가 휘청이면 그 관계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좀처럼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알리야처럼 아이에게 특정한 문제가 있다 해도, 그 문제에 대한 양육자의 반응 역시 관계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된다. 어느 관계에서나 사람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릴 때만이 아니라 평생 어느 시기든,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관계의 맥락에서 문제를 살피는 일은 상호 연결과 성공적인 관계를 꾸려나가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된다.
--- p.23~24
당시 전문가들은 엄마가 아기를 완전히 통제하며 아기와의 상호작용에서 결정권을 갖는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엄마라는 능동적 행위자를 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그러면 아기는 어떻게 반응할까? 무표정 실험 영상이 보여주었듯이, 첫 번째 실험을 통해 나는 유아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아주 충격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 p.42
무표정 연구는 인간의 생애 전반에 나타나는 행동과 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항들을 설명해주는 폭넓은 이론으로 발전했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에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 첫 순간들이 이후 모든 관계의 형태를 만든다는 점을 밝혀냈을 뿐 아니라, 관계에서 순간순간 생겨나는 작은 균열들을 수리하는 능력이 경험의 질과 구조를 형성하며 개인의 성격은 물론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을 구축한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의 무표정 연구 및 그 실험 방식을 활용한 이후 수십 년의 연구가 우리 각자에게 불만스럽거나 괴로운 관계를 벗어나 친밀하고 잘 연결된 관계로 나아갈 방법에 대해 통찰을 준다는 점일 것이다.
--- p.45
꼬여서 뒤죽박죽된 일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유아기 초기부터 전 생애에 걸쳐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방식이다. 직관에 어긋나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보통 건강한 관계에는 불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은 항상 잘 지내야 마땅하다고들 생각하니까.
--- p.60~61
수년 전 당신을 괴롭혔던 옛 상사를 우연히 만나면 어떨까? 비록 의식은 그 불쾌한 경험을 저 멀리 치워뒀다 하더라도, 당신의 심장은 놀라서 쿵쾅거리고 손은 덜덜 떨리며 도무지 침착하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지지 않겠는가. 선천적으로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많은 어린이에게 엄격한 학교 규율을 강요할 경우, 아이가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이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면역계가 그 경험을 처리하기 힘들어하면서 아이의 몸에 갑자기 습진이 확 번질지도 모른다.
--- p.94
그만하면 괜찮은 엄마라는 개념은 양육자들에게 실수해도 괜찮다는 쉽고 즉각적인 확신을 주는 개념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사실은 더 심오한 진실, 즉 건강한 발달을 위해서는 불완전함이 필수적이라는 진실이 반영되어 있다. 위니콧이 현명하게 파악했듯이 실패―호킹의 언어로는 착오―는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다. 엄마는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그만하면 괜찮은 엄마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 p.111
완벽을 향한 이러한 집착이 이후 성인기에 이르러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힘겹게 지낼 한 세대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완벽주의 척도를 만든 이들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완벽주의가 우울증, 불안, 식사장애 및 기타 정서 문제들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조언과 즉각적 해결책으로 가득한 실용서, 잡지, 블로그 포스트 들은 정답만 알면 모든 게 완벽해지리라는 생각을 더욱 부추긴다.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는 블로그 게시물의 제목은 또 어떤가, ‘완벽한 결혼으로 가는 여섯 단계’나 ‘회복 탄력성이 강한 아이로 키우는 열 가지 팁’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성공을 이루는 올바른 방법이 있다는 기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할 일을 가르쳐줄 전문가가 있다는 기대는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혼란스러움도 피해갈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 p.125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연결과 상호작용의 객관적 수준이며, 외로움은 고립에 대한 주관적 지각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교 행사에서 주변 사람들이 웃으며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 혼자 단절된 외부자 같은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한 적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에는 미묘한 고통이 따른다.
--- p.140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에 자신을 열어두려면 자기 조절을 위한 견고한 자기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자기 조절은 강렬한 감정의 억제를 암시하는 비교적 차가운 자기통제 개념과는 다르다. 자기 조절이란 세계에 참여해 모든 범위의 감정을 경험하고 감당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애도와 깊은 슬픔의 감정을 느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사람으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와 유사하게 분노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건강한 감정이지만, 격분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놓쳐버리는 것은 문제가 된다. 또한 우리는 강렬한 쾌락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 p.168
회복 탄력성은 타고나는 자질이 아니며, 재앙에 맞닥뜨려 획득하는 자질도 아니다. 그보다는 유년기 초기부터 시작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가피한 수많은 불일치들을 헤쳐나가는 동안 발달하는 것이다. (¼) 복잡한 사회적 환경을 헤쳐나가며 순간순간의 미세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크고 작은 모든 역경을 딛고 훨씬 더 큰 힘과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의 알맹이를 지니게 된다. 자신에게 불일치를 헤쳐나갈 능력이 있음을 깨달을 때 회복 탄력성이 자라난다. 회복 탄력성이란 최초의 관계에서 시작해 평생 이어지는 불일치를 복구해가는 동안 점점 커지는 일종의 근육 같은 것이다.
--- p.205~206
문제는 기기 자체가 아니라 관계들에 만연한 스트레스다. (¼) 스마트폰 사용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복구되지 않은 불일치의 상호작용들이 순간순간 쌓여온 역사의 결과인 셈이다.
--- p.226
특정 증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증상만 제거해서는 증상의 기저에 깔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테크놀로지와 소셜 미디어의 지나친 사용을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한다면 사용 시간을 줄이고 좋은 콘텐츠를 찾아보라는 단순한 훈계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크놀로지와 소셜 미디어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습관은 인간관계의 혼란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사회·문화적 움직임의 징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것뿐이다.
--- p.281
감정적 고통에 낙인을 찍어야만 그 복잡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달과 관계의 맥락을 인정하는 것이 수치심을 안기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일치와 복구의 기회를 놓친다.
--- p.292
생애 초기에 불일치와 복구 과정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으면 신체의 스트레스 시스템에도 교란이 생긴다. 이러한 교란은 우리의 몸속에 남아 있어서, 성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초기 경험에 의해 형성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려면 마음과 몸 모두를 사용해야 한다. 언어와 의식적 사고에만 의존해서는 언어 발달 이전에 형성된 의미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불건전한 패턴을 깨줄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면, 울퍼트가 입증했듯이 새롭게 호흡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 p.335~336
“감정이입에는 상상력 못지않게 탐구도 필요하다. 감정이입을 위해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감정이입이란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곳에 무한한 맥락의 지평이 펼쳐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이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을 목표로 하되 그 사람의 경험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할 때, 우리는 상대와 함께할 수 있다.
--- p.358
사람들이 점점 더 단절되어가는 이 시점에, 무표정 패러다임은 우리가 연결을 재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엄마와 아기는 각자의 의미와 의도와 동기를 지닌 채 불일치에서 복구로 나아가려 노력하며 함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연결은 더욱 강해지고 깊어진다. 우리도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처럼 할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의도와 동기와 의미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반대쪽으로 달아날 것이 아니라 아기와 엄마처럼 함께 복구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p.382
접어보기
출판사 리뷰
무표정 실험,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무력한 아기’를 둘러싼 뜻밖의 반전
인간에 대한 관점을 뒤집은 무표정 실험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다
무표정 실험을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는 만족스럽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영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절감과 외로움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차이는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왜 누군가는 늘 슬픔에 빠져 있고 위축되어 있으며 자존감이 부족한 반면, 누군가는 번번이 분노에 차 있고 산만하고 성마를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하며, 또 누군가는 행복하고 호기심 많고 다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 자기감각을 발달시키는 방식은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능력과 연관이 있을까? 저자 중 한 사람인 에드 트로닉은 이런 궁금증들에 대한 대답이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하기 마련인 외로움과 상실감의 순간에 연결과 친밀감을 찾도록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가지 실험을 설계한다.
실험은 젊은 엄마와 11개월 된 아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어느 방 안에서 엄마는 딸과 마주 앉아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웃는다. “까꿍, 아이 예뻐.” “까르르르.” 아기와 함께 소통이라는 다정한 춤을 추던 엄마, 문득 표정을 멈추고 아무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다. 아기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다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미소도 짓고 손짓도 해보지만 엄마의 표정은 납처럼 무겁기만 하다. 엄마가 반응을 멈춘 지 16초, 아기가 이번에는 손뼉을 쳐본다. 엄마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36초, 50초, 그리고 1분 18초. 엄마가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자 이제 아기는 불안해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그리고 마침내 포기하고 울어버린다. 이때, 엄마의 얼굴이 다시 생기를 띤다. “엄마 여기 있네, 우리 아가!” 사랑이 가득 담긴 표정이다. 아기는 잠시 망설이며 불안한 미소를 짓다 손을 뻗는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아준다. 아기도 함께 환하게 웃는다. 이제 엄마와 아기는 다시 하나가 된다. 1분 하고도 30초가 지난 시점이다. 1972년 하버드대학에서 이 실험을 하기 전까지 심리학자들은 아기를 엄마(1차 양육자)가 이끄는 대로 그저 이끌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 실험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바라고 요구하도록 배선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 가설을 최초로 생각해내고 실험을 통해 증명해 학계를 뒤흔들었던 심리학자 에드 트로닉은 이후 이 무표정 실험을 성인에게도 적용했다. 단절과 연결에 대한 감각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지 밝히고자 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고, 무표정 연구는 아기에 대한 통찰을 전해준 것은 물론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대단한 분기점을 만들어냈다. 사회적 연결이 그저 윤택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 인간이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린 시절에도 타인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과 관계 맺는 첫 순간들이 이후 모든 관계의 형태를 만든다는 것, 하지만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며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경험의 질과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관계에서 순간순간 생겨나는 작은 균열들을 수리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또한 개인의 성격,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을 구축한다. 나아가 우리 각자에게 불만스럽거나 괴로운 관계를 벗어나 친밀하고 잘 연결된 관계로 나아갈 방법에 대해 통찰을 던져준다.
심리학자들, 지저분하고 엉망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집중하다
“더 나은 삶의 열쇠는 관계의 불안과 불화의 과정에 있다”
https://youtu.be/3JZV5ts2mhY
이 책은 무표정 실험에서 시작된 50년간의 관계 심리학 연구 결과를 일반 독자들에게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다. 두 저자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이들은 관계에서 불화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정상’이며, 자기감각 및 타인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갈등과 불확실성을 기꺼이 맞이함으로써 높아질 수 있는 심리적 힘이라고 주장한다. 불일치라는 혼돈의 상태를 지나 복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에너지는 정서적 성장의 연료가 되어준다. 따라서 우리에게 불화, 갈등, 부조화, 불일치, 혼란, 불확실성은 피해야 하는 걸림돌이 아닌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디딤돌이다. 엉망과 혼란에 대한 심리학적 예찬이라고 보아도 좋겠다.
두 저자는 궁극적으로 깊고 오래 지속되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자신을 믿고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의 비밀을 속삭여준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다루어나간 이야기, 회복 탄력성 개념의 재정립,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속 자신에 대한 분명한 감각까지 다루는 사례들도 세세하고 품이 넓다. 부모(1차 양육자)-자녀 관계로 시작해 파트너, 가족, 친구, 동료와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열어젖히는, 인간 생애 주기에 기초한 전개는 합리적이면서도 다정하다. 만약 당신이 안전함을 위해 접촉을 멀리하고 있다면, 자신을 갉아먹는 외로움에도 성가심과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은 변화의 첫 과정이 될 수 있다. 물론 간단명료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이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나 자신’과 ‘인간관계’에 대한 그 무엇을 과학(심리학, 정신의학, 생물학)의 언어로 확인시켜주며 경험으로 나아갈 직관을 끌어들일 것이다. 불화를 기꺼이 맞아들이고 연결에 손을 뻗어야 성장하고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접어들며, 무엇보다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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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로 사용한 르네 마그리트의 1964년 회화 작품 [스핑크스의 합창]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거진 숲 위로 커다란 나뭇잎이 한 장 떠 있고, 나뭇잎 안에는 다시 숲이 촘촘히 담겨 있다. 잎이 숲이 되고 숲이 다시 잎이 되는 순환의 구도는 사람과 사람이 엮어나가는 관계를 숲의 풍경으로 요약하고, 인간은 갈등과 조율을 통해 성장한다는 이 책의 주제를 하나의 상징으로 훌륭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