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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파리 루브르, 뉴욕 모마(MoMA), 런던 내셔널갤러리, 마드리드 프라도 등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순간을 고증하다!
막강한 군사력만 갖추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벌어진 전쟁사를 살펴보면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군사력만 강하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사실!
제 아무리 유능하고 용맹스런 전략가를 우두머리에 두고 수십만 정예군과 함께 가공할 무기를 보유했다 한들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형편없이 약한 상대에게 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이유도 참 각양각색이다. 전쟁과는 무관한 사소한 물건 하나 때문에, 남녀 간의 치정으로, 또는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 탓 등 전쟁사에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이 책은 전쟁사를 뒤흔든 결정적 장면들을 미술작품에서 포착해냈다. 그림 한 폭의 구석구석에는 말과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단서들이 담겨 있다.
다빈치, 뒤러, 루벤스, 앵그르, 렘브란트, 제리코에서 김홍도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붓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 세계 미술관이 전쟁터가 된다.
다빈치, 뒤러, 루벤스, 앵그르, 렘브란트, 제리코에서
김홍도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붓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전 세계 유명 미술관이 전쟁터가 된다!
이 책은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에서 셀 수 없이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들의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을 미술작품들을 통해 풀어냈다. 사학도 출신의 역사전문기자인 저자는 뜻밖에도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만난 미술작품 속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장면들을 고증했다. 저자는 데스크에 앉아 자료와 검색에만 의존해 이 책을 집필하지 않았다. 그는 휴가철에는 파리 루브르, 뉴욕 모마(MoMA), 런던 내셔널갤러리 등 전 세계 미술관 탐방과 유적지 답사를 위해 비행기를 타야 했고, 주말에는 전국 동서남북을 돌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한 부분은, 대부분의 전쟁들이 군사력만 강하다고 무조건 이길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제 아무리 유능하고 용맹스런 전략가를 우두머리에 두고 수십만 정예군과 함께 가공할 무기를 보유했다 한들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형편없이 약한 상대에게 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전쟁과는 무관한 사소한 물건 하나 때문에, 남녀 간의 치정으로, 또는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 탓 등 전쟁사에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들이 그림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담겨 있음을, 저자는 미술관에서 수많은 작품들과 조우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골리앗을 쓰러트린 ‘리썰 웨폰’
이를테면, 양치기 소년 다윗이 짱돌 하나로 백전노장의 전사 골리앗을 쓰러트렸다는 구약성경의 구절에,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고대 전쟁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이탈리아 출신 바로크 조각가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가 만든 석상 <다윗>(15쪽)을 들고 있다. 1623년에 제작된 이 조각상은 ‘투석구’라는 도구를 이용해 돌팔매를 하는 다윗의 역동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투석구는 80cm에서 180cm 정도 길이의 줄, 천, 끈 등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질로 만들 수 있는 사냥도구이자 무기로, 140km 구속의 돌을 유효 사거리 300m까지 날릴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녔다.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정통으로 맞으면 투구가 쪼개지고 돌은 그대로 두개골을 깨트리고 들어가 골리앗처럼 즉사시킬 수 있었다. 베르니니의 조각상을 보면, 투석구를 들고 상체를 크게 뒤로 젖혀 원심력을 극대화하는 다윗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형상화 됐다. 양치기 소년이 든 짱돌 하나가 ‘강자를 이기는 약자’라는 반전의 대명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https://youtu.be/RLd1O97_4LE
여성 속옷 코르셋의 효시가 된 갑옷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기병의 초상화>(21쪽)에 나오는 전사가 착용한 흉갑이 여성의 필수 속옷이었던 코르셋의 효시가 됐다는 이야기도 퍽 흥미롭다. 여성 속옷 코르셋이 전사들이 착용했던 갑옷 중 가슴과 배를 보호하는 흉갑의 원리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가녀린 여성의 속옷과 강건한 전사의 갑옷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코르셋이 흉갑에서 비롯됐음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게 이 책은 미술작품을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끄집어내 교양의 지평을 넓힌다.
코르셋은 20세기 중반까지 여성의 몸을 보호해온 반면, 흉갑은 총기류의 보급으로 근대를 거치면서 그 효용성이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건, 흉갑은 군사적 효용가치 대신 전사들의 어깨를 벌어져 보이게 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만드는 이른바 ‘역삼각형 몸매’를 유지시키는 새로운 효용성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고대부터 전사들이 역삼각형 몸매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나태한 군인이란 이미지로 여겨졌고, 그만큼 죄악시 되었다고 한다. 허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늘어 보이게 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코르셋을 조였던 여성들과 동병상련이 아니었을까. 이 대목에서 제리코의 <기병의 초상화>는 꽉 조인 코르셋을 입은 여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거울 앞에서>(23쪽)란 그림과 겹쳐진다.
군복이 화려할수록 전쟁에서 진다?!
영국 출신 화가 토머스 로렌스 경이 그린 초상화 <경기병 유니폼을 입은 찰스 스튜어트 중위>(45쪽)의 그림을 보면, 피 튀기는 전쟁터에 서야 할 군인의 복장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 이런 옷을 입고 야전에 서는 것은 그야말로 나를 좀 과녁으로 맞춰 쏴달라는 얘기나 진배없다. 은폐와 엄폐를 위해 위장색 도료를 칠하는 현대 군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러한 근대 초기 군복의 아이러니를 수긍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시대에 주로 쓰였던 ‘플린트락 머스킷’이라는 총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여 격발하는 플린트락 머스킷은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엄청난 화약 연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 정도가 피아 식별이 어려울 정도다. 결국 검은 화약 연기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군복이 강한 원색이어야만 했다. 군복이 화려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던 당시 군대에 젊은이들의 입대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한 조처였다는 사실이다. 토머스 로렌스 경이 그린 초상화 속 인물의 수려한 복장은, 그 시절 서민층 소년들에게 군인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를 불러일으켰다.
군복의 화려한(!) 전성기를 끝장낸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기관총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호화찬란한 군복을 입고 밀집대형으로 있다간 그대로 떼죽음 당하기 십상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에서 군복 멋있는 쪽이 진다”는 속설까지 돌 정도였으니, 결국 초상화 속 찰스 스튜어트 중위의 화려한 군복은 전쟁터가 아닌 군사박물관으로 옮겨져 박제될 수밖에 없었다.
잔다르크는 정말 갑옷 원피스를 입었을까?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는 <샤를 7세 대관식에서의 잔다르크>(249쪽)라는 그림에서 철갑으로 된 원피스를 입고 도끼와 긴 칼로 무장한 잔다르크를 묘사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15세기 프랑스 시골 마을의 열일곱 살 소녀의 평균 키는 150cm가 안 됐고, 몸무게도 40kg을 넘지 않았다. 이처럼 여린 소녀가 30kg이 넘는 철갑 원피스를 입고 거대한 기병용 창과 살상용 도끼를 들고 적진을 향해 돌격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는 나폴레옹시대부터 영국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애국심 고취를 위한 일종의 국가주의적 산물로서 잔다르크라는 ‘구국의 성녀’ 캐릭터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화가 앵그르는 그러한 시대적 요구를 화폭에 충실하게 담아냈던 것이다.
폴란드 군인들은 왜 두 손가락으로 경례를 할까?
폴란드 극작가이자 화가 겸 시인 스타니슬라브 비스피안스키가 그린 두 손가락 경례 일러스트(177쪽)에 얽힌 뒷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대부분 국가의 군인들이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편 채 거수경례를 하는 것과 달리 폴란드 군인이 두 손가락으로 경례를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폴란드 독립전쟁 당시 주요 전투였던 ‘오르신카 그로호프스카 전투’에서 대포에 손가락 세 개를 잃은 폴란드 병사가 남은 두 손가락으로 했던 경례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데, 여기서 두 손가락의 의미는 ‘조국’과 ‘명예’라고 한다.
물론 모든 거수경례가 폴란드 군인의 두 손가락 경례처럼 늘 충성스럽진 않다. 이 책 175쪽에 수록된 영국 출신 화가 존 캘코트 호슬리가 그린 그림의 원제는 ‘unwilling salute’인데 우리말로 ‘마지못해 하는 경례’이다. 그림에서 경례를 하는 병사가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 흠모하는 여인 및 그녀의 어린 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우연히 그의 상관이 나타나 여인에게 말을 건다. 모처럼 사랑하는 여인에게 점수를 따고 있는 데 상관이 나타나 수작을 부리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쌍한 병사는 상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물론 병사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역사적 진실은 냉혹하다!
수천, 수만 권의 장황한 사서에서 모두 다루지 못한 전쟁사의 뒷이야기들을 미술관에 걸린 그림에서 포착해 고증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이 책만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는 한가로운 지적 유희에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저자는 미술작품의 구석구석을 역사적 시선으로 세심하게 탐사하면서 전쟁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탐욕의 실상과 비극적인 참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모나리자>와 함께 파리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밀로의 비너스>(124쪽)에 담긴 속내는, 예술과 전쟁의 씁쓸한 조우를 되새기게 한다. <밀로의 비너스>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두 팔이 없어 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이색적인 찬사마저 끊이지 않는 작품이지만, 정작 프랑스정부는 이 조각상이 왜 두 팔을 잃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술은 아름답지만 역사적 진실은 냉혹하다. 역사와 예술이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는 곳, 그곳은 뜻밖에도 루브르와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들임을 이 책은 50가지 주제를 다루는 내내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