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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굴절되는가?
뤼시앵 페브르의 명저, 아날학파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본 ‘인간 루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격동의 역사를 성찰하다
“어떤 깊은 확신이 마음속에 끊임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루터에게 그런 확신을 정당하게 부여해줄 수 있는 이는,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67쪽)
“그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은
한 편의 시였지 행동계획은 아니었다.”(226쪽)
“루터가 보지 못한 것이 있다. 그의 이상주의가 사람들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예전의 자신을 얼마나 보수적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267쪽)
“그는 상황을 장악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상황 가운데 살아갔다. 그의 영혼은 그 안에서 무사태평하고 초연할 뿐이었다.”(293쪽)
운명을 주도하는 진정 자유로운 한 인간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은 20세기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던 프랑스 아날 학파의 창시자 뤼시앵 페브르의 ‘루터’ 연구이다. 하지만 페브르는 “일반인들을 겨냥한 대중화 작업이면서 동시에 성찰 작업”이라고 말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에 의해 익히 그 명성이 알려진 이 책은, 16세기 독일 종교개혁가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신성로마제국 아래 정치적·사회적으로 복잡하게 맞물리는 격동의 유럽 역사를 성찰한다. 브로델은 『역사학 논고』에서 페브르의 저작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꼽았고, ‘자신의 운명과 역사의 운명을 주도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고 평했다. 페브르 생전에 영어권 독자들에게 알려진 그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며, 1951년에 제3판 서문을 다시 쓸 정도로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혔던 명저이다.
https://youtu.be/8r_wNzVSpyI
계시 받은 예언자의 역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따라서 지난 세기 1917년은 종교개혁 400주년이었으며, 바로 그 10년 뒤인 1927년에 페브르는 이 책의 집필을 완성했다. 「참고문헌 노트」에 밝힌 것처럼 이미 당시에도 루터 관련 문헌은 ‘바다’와 같았다(1906년 신학자 하인리히 뵈머는 논문과 소책자를 제외하고도 2,000여 권으로 추산했다). 그 문헌의 대양(大洋) 속에서 페브르는 어떤 루터의 초상을 건져 올리려 했는가. 페브르는 개혁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충일했던 30~40대 장년기의 루터를 조명한다. 즉 1517년부터 1525년까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계시를 받은 예언자의 영웅적인 역할을 역동적으로 수행하는” 루터이다. 이 시기가 “루터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보았다. 그 이전 청년기의 불확실한 루터나, 그 이후 1525년부터 1545년까지의 쇠잔해가는 지치고 환멸에 찬 루터는 대상이 아니다. 훗날 “과거를 돌이켜보면서는 루터를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으며 이해시키지도 못한다.” 말년에 그를 따르는 청년들이 받아 적은 이른바 『탁상담화』은 마음대로 고치고 개정한 말들에 근거해 빈번히 출판되곤 했다(루터 역시 먼 과거를 선의로 곧잘 소설화하곤 했다). “아무리 경건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역사가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아날학파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에서 본 ‘인간 루터’
그 시기의 루터는 말하고 쓰고 설교하고 공격하고 자신을 옹호한다. 그렇기에 그의 열정적인 행동과 발언에서 신학자들은 교리를 찾고 역사학자들은 한 인간을 찾는다. 루터에 대해 페브르는 당연히 신학자나 호교론자 또는 비방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이다. 그것도 실증주의에 토대를 둔 19세기 독일의 랑케 역사학을 비판하며, 사회, 집단, 구조 중심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강조하는 아날 학파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루터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으로 “단순하지만 비극적이었던 한 운명곡선을 보여주는 것”에 목표를 둔다. 한 인간의 생애가 사회나 국가와 맞물려 집단 속에서 어떻게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그리는지 중요한 몇몇 지점을 찾아내 짚어본다.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인 한 개인과 공동체 또는 개인 주도와 사회적 필연과의 관계 문제를 놀라운 활력을 가진 한 인간에게 적용하여 제기해보는 것. 바로 그 시도가 우리의 계획이었다.”
1517년의 독일과 루터, 그리고 굴절된 그의 운명
흔한 말로 루터는 세상을 바꿀 혁명적 개혁을 꿈꾸었는가? 애초에 그런 목적은 없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을 때, 루터는 자기 개인의 신앙과 구원에 더 관심이 많았고, 가톨릭교회와 대화하고 토론하기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교회는 루터를 포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거기에 답을 해온 것은 ‘독일’이었다. “외쳐대는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메아리를 불러올지 알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이 잘 말하지 않는 ‘1517년의 독일’에 대해 페브르는 별도의 장을 할애하며 주목한다. 왕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독일은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가 없었다. “이름뿐인 황제, 하나의 액자일 뿐인 (신성로마) 제국이었다.” 각 영지를 다스리는 제후들이 훨씬 막강했다. 분열되고 불안한 독일은 자신의 처지를 바꿔줄 “하나의 신호, 한 사람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이른바 루터는 ‘구원’을 말했으나 독일인들은 그것을 로마(교황청)로부터의 해방으로 들었고, 루터는 ‘양심의 자유’(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의 ‘위대한 거부’)를 말했으나 독일인들은 그것을 외적인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로 들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품안에 머물고 싶었으나 교회는 이단으로 내쫓았다. 독일은 그를 종교적 루터가 아니라 사회적 루터, 정치적 루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루터의 운명은 굴절된다.
통념을 뒤집는 비판적 역사학의 진수
페브르는 서문에서 이 책을 한 사람의 전기(傳記)도 아니요, 평가는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애를 다루며 그 양쪽을 비켜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저술 관점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인 표현일 리도 없다. 결론에서 그 의도를 확인한다. “루터를 판단하지 않는다. (…) 차분히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는 그저 마지막까지 판단을 미룰 따름이다.” 그러나 이는 유보나 자신 없음의 표현이 아니라 단순화에 대한 경계이다. 페브르는 역사가로서 시종일관 한 인간의 운명을 치열하게 사유하고 판단한다. 대표작 『16세기의 무신앙 문제』에서 인문주의자 프랑수아 라블레를 무신론자로 단정한 문학가 아벨 르프랑을 비판하면서, 16세기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구조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라블레처럼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논박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뛰어난 가톨릭사가 데니플레 신부가 ‘루터의 명성을 깎아내릴’ 의도로 촉발한 논쟁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며,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한 통념을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페브르는 데니플레가 개신교 전기 작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쌓아올린 칭송 일색의 루터 상을 철저히 뒤엎은 데 환영하면서도, 그가 루터의 육욕과 사욕(私慾)만을 강조함으로써 전(前) 프로이트적인 소설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물론 루터의 순결에 경의를 표하거나 변호할 마음이 없다는 점도 페브르는 잊지 않는다.
루터 사상의 깊고 변함없는 통일성
이처럼 페브르는 한 인물을 빈약하게 만드는 모든 판단과 해석에 저항한다. 그래서 이 책은 루터에 대한 전적인 호평이나 맹목적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쪽과 저쪽을 도우러 달려가다가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는 그에게 농담이 아니다. 그는 사실과 원본들 위에 꼿꼿이 서 있고자 한다. 그런 페브르에게 시기마다 분열되거나 단절된 루터는 없다. 1517년 이전의 수도원의 루터,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던 루터, 1520년의 그 위대한 논문들을 비롯해 그 후 수많은 글과 말을 통해 독일인들에게 호소하던 루터,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을 미친개 취급하던 그 루터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이며 모순된다고 말하는 루터의 행동과 발언 속에서도, 페브르는 “루터 사상의 깊고 변함없는 통일성을 입증”하려 노력한다. 한편, 페브르는 루터가 “근대사회와 근대정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게르만 사회와 독일정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1933년 권력을 잡은 히틀러가 루터의 초상이 새겨진 주화를 발행한 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변화를 바라는 오늘도 역사를 바꿀 한 사람을 열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혁명보다도 어렵다는 개혁, 과연 실패냐 성공이냐는 무엇에 달려 있고 무엇을 근거로 말할 수 있는가. 역사의 큰 흐름과 한 개인의 운명에 대한 관계를 깊고 넓게 응시하는 페브르의 통찰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의 사상과 개혁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