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건 듯 부는 바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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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백련암으로
아비라 기도를 떠나는 날이면
낡은 시집을 꺼내 옛이야기를 보네
맑은 선율처럼 흐르는
사랑과 그리움!
슬픔은 슬픔으로, 기쁨은 기쁨으로
한 동안 나부끼곤 하는데
현실과 추억의 괴리 사이에 서 있는 나는
건 듯 부는 바람에도 낯이 간지러워
가만 눈을 감네
어느새 고희의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디에서도 푸른빛 찾을 수 없네
다시 만날 일 없는 짝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멈추지 않는 애모!
낡은 시집 사이에 끼어 두었던
미완성의 습작품들이
주르르 흩날리는 낙화처럼
하늘거릴 때
나는 그만 서러워
홀로 남은 밤
눈물 지어 보네
*김선우님은 경기도 오산 출생으로 경기도 문학상 수상, 문예사조 문학상 수상, 후백 황금찬 시문학상 수상, 한국 글자랑문학대상을 수상한 시인으로 시집으로 ‘들판을 적시는 단비처럼’, 문집으로 ‘이 세상에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시선집으로 ‘길에서 화두를 줍다’ 등이 있습니다.
*위 시는 월간 국보문학 동인문집 제23호 ‘내 마음의 숲’에 실려 있고, 아비라는 중국 당대의 총림 수행법을 성철 큰스님이 우리들에게 일러주신 기도법이라고 하는데, 그리움과 추억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느낌이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