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얼마 전 아내와 봄무씨를 뿌렸다.
나는 쇠스랑으로 골을 만들었고
아내는 정성스레 무씨를 골마다 고루 뿌렸다.
반 응달된 곳이라서 매우 건강하게 자랐다.
벌레약도 풀약도 주지 않고 호미로 밭을 매었다.
시장에 나올 정도 자랐을 때
달팽이가, 민달팽이가 조금씩 잎을 갈굴즈음에
우리는 무를 뽑아서 물김치를 담갔다.
물풀을 한 솥단지 끓여 식히고
마른고추를 배따서 물에 불려 곱게 갈았다.
마늘을 다지고 양파를 잘게 썰고 부추를 섞었다.
간을 보아가며 약간 절인 무를 넣고 휘 저었다.
모든 것이 자연산이라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다섯 그릇에 담았다.
공평하기 이를 데 없다.
한 밤을 새워 익혀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한다.
이번 기차 여행은
아내의 첫 번째 경로 우대를 받는 기차표다.
나는 장애인 카드가 있고
아내는 5월부터 경로에 해당된다.
기차표를 싸게 구입하였다.
수원역은 우리 가족의 아지트다.
방실이가 건이를 달고 오고,
은실이가 찬이를 달고 오고,
보라가 주헌이를 달고 오고,
초롱이가 진표를 달고 온다.
우리 딸들은 공평하게 아들 하나씩 달고 온다.
재헌이는 태권도장에서 소풍을 간다고 오지 못했다.
백화점 식당에서 두 시간 먹으며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실컷 이야기 하였다.
막내 진표의 목에 살이 빠지고 두 눈이 들어갔다.
볼거리를 앓고 허약해진 것이다.
엄마가 간호사인데 아이는 아프기를 자주한다.
맘속으로 진표 아프지 말라고 기도했는데,
진표가 내 의자로 와서 무릎에 앉는다.
내 기도소리를 들은 것 같아 꼭 껴안아 주었다.
두 시간 지내고 우리는 헤어진다.
우리는 녹익은 촉색의 들판을 기차를 타고 오고
아이들은 자기 차를 타고 자기 집으로 헤어진다.
처음 시도해보는 수원의 만남이 즐겁다.
앞으로도 계속 나눔을 하고픈 마음이다.
‘희미한 별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마이클 캐리의 ‘지루함’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버트 엘리엇의 이야기였다.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에코도르에서 죽은 지 50년 뒤 안 이야기였다.
1949년 어느 날 페루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가 버트 엘리엇과 그의 아내를 초대하여 함께 사역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 부부는 2012년 버트가 여든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페루에 머물며 사역했다.
페루에 17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다.
버트 엘리엇은 유명한 작가이자 선교사 짐 엘리엇의 친형이다.
사람들이 버트에게 동생 짐 엘리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을 때 그가 한 대담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내 동생 짐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어요.”
“그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줄무늬를 놓는 큰 유성이었습니다..”
버트는 큰 유성은 아니었다.
하늘에 줄무늬도 그리지 못했다.
버트의 삶을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우주 저 먼 곳에서
밤이면 밤마다 어김없이 착실하게 뜨는 희미하게 뜨는 희미한 별이었다.
그는 똑같은 지루한 일을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했다.
우리에겐 하늘을 가로지르며 줄무늬를 놓는 유성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런 유성이 되지 못한다.
희미한 별들이 될 것이다.
아빠와 엄마, 남편과 아내, 사무원, 교사, 사업가, 학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제나 내일과 똑같은 일을 매일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신실하게 행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일어나 서 있어라!
그리고 내일이 오면 다시 그렇게 하라!
어제 경북의 봉화군의 청량산을 올랐다.
청량사의 아름다움도 즐거움이고
여름 더위에 흘리는 땀도 즐거움이 되었다.
하늘 구름다리는 출렁이며 휘소리를 연발하여도
시원하고 달콤하고 즐거웠다.
친구들에게 사진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6월의 시작이었다.
첫댓글 첫 시도 가족 모임이 대 성공이었군요. 자연산 엄마표 물김치를 먹는 자녀들도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겠구요. 일상 속에서 행복함을 영위해 가는 두 분 모습 부럽습니다. 근데 경로우대받는 사모님이 더 젊어보여유. ㅋㅋㅋ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가족을 행복하게 잘 이끌어 가십니다. 딸 넷 ! 고이 키워 이렇게 즐거움을 만끽 하는군요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