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우리가 같은 영원 속에서 산다고 상상하는 것은 아름답다”
책은 한 권의 귀한 타인이다
섬세한 인문주의자의 책-사람 읽기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의 신작 산문 『살아가는 책』이 출간되었다. 출판과 편집에 대한 고민을 풍부한 경험으로 써 내려간 『읽는 직업』 이후 3년 만이다. 작가와 독자를 잇는 매개로서의 편집자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자는 『살아가는 책』에서도 중간자로서의 감각을 여실히 발휘해낸다. 책과 현실을 부드럽게 연결 짓고 확장하는 방식의 읽기와 쓰기를 통해서다.
서보 머그더의 『도어』에서 에메렌츠라는 인물은 실제로 저자의 집안 살림을 엄격한 태도로 돌보아준 서씨 아주머니와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에서 언급되는 방황과 탐색의 여정은 저자와 동명인 친구의 자유로운 삶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책과 현실이 맞물리며 읽는 경험이 확대되는 순간을 저자는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글로 적는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쓰이는 과정이었다”는 말처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고 삶의 지평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책』은 글을 읽다가 문득 잊었던 기억들이 떠올라 책장을 덮고 한참을 서성였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이 친밀한 타인처럼 말을 걸어오고 활자 밖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준 경험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저자 소개
이은혜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3년 6개월간 학술 기자로 근무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전 2권),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전 2권), 『한국의 美를 다시 읽는다』 등을 기획했다. 글항아리 창립 멤버로 인문학·사회과학·과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며, [교수신문] 기자를 거쳐 15년여간 기획과 편집을 해왔다.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을 받았고, [서울신문]과 [한겨레21]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자들의 탄생, 발전, 만개, 죽음을 모두 지켜본 최초의 목격자이자 조력자이다. 앞으로도 책을 써나갈 그들을 더 잘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목차
머리말 책, 한 권의 버겁지만 귀한 타인
1 사랑의 기억
고슴도치의 증오와 사랑·서보 머그더, 『도어』
희망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시어도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몸속 깊숙이 침투한 에로틱한 사랑이 공적 감정이 되기까지·마사 C. 누스바움, 『감정의 격동: 사랑의 등정』
겉돌지 않고 낙관 혹은 비관 쪽으로·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핏빛 모국어를 버리기·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2 시간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우리는 풍경 속에 위치하고 시간 속에 놓인다·캐슬린 제이미, 『시선들』
너희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해·리처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어떤 몸과 돌이 될 것인가·리처드 세넷, 『살과 돌』
산책하는 걸음 하나하나가 시 쓰기·한정원, 『시와 산책』
인간을 부러뜨려 공동묘지로 돌려보내는 전쟁의 시간들·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판자를 붙잡은 난파자, 물속으로 한발 들어가는 구경꾼·한스 블루멘베르크, 『난파선과 구경꾼』
3 타자와 기억
먼지나 공기처럼 부유하는 아름다운 소우주들·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작은 우주들』
얕은 관계가 망치는 삶과 기억·윌리엄 트레버, 『펠리시아의 여정』
자기 비하에 빠지는 책 읽기·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여행에서 모은 잡동사니, 천 조각, 폐지·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4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질서와 이름 속에 포함되지 않는 빛나는 존재·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잃으면 넓어진다·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내게 없는 몸을 향한 읽기와 동경·얀 그루에, 『우리의 사이와 차이』
짐을 꾸려 우리 최악의 자아를 떠나·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
자아를 치유하는 형식 되찾기·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자기 자신에서 가장 멀어지고 타자화되는 질병·앤 보이어, 『언다잉』
5 늙어간다
당신도 나도 바스러진다·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더 이상 젊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시대와 엇박자를 낼 것·에드워드 W.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차가운 현재와 미래보다는 과거로·존 밴빌, 『바다』
맺음말 낭비하고 우회하기
참고 문헌
📖 책 속으로
독자라는 존재는 늘 책에서 얻은 메시지 혹은 진실처럼 느껴지는 것을 책 바깥인 ‘실생활’에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빗자루질을 하고 식당 설거지를 하며, 몸져누운 이들에게 죽을 먹이고 용변을 받아내는, 문자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 p.19
생을 얼마간 앞질러 산 사람들을 보면 내 미래의 한 조각을 엿보는 듯 그를 향한 질문이 떠오른다.
--- p.25
어떤 아름다움은 ‘아름답지 못한 것’들과 기필코 결별하도록 이끈다. 그것들까지 붙들고 있노라면 마음을 열어젖힐 단어도, 문장도 제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 pp.47~48
파편은 귀하다. 모여서 언젠가 덩어리나 형태를 이룰 테니까. 그것은 시원을 담은 하나의 조각들인데, 나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면 그의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진다.
--- p.78
삶에 햇볕만 있는 줄 알고 열렬히 좋은 것만 바라다가 늙음도 죽음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빗대는 소설의 여러 장면은 마치 나를 향해 겨누는 화살 같다.
--- p.88
우리는 아프고 부서진 다음에 경계 없는 세계로, 흑백의 구분이 없는 세계로, 계급이 별것 아닌 세계로 들어선다.
--- p.134
불편감은 망각과 같은 방법으로 해소되어서는 안 되며, 그 고통이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버텨야 한다. 즉 그것이 자신의 언어가 될 때까지.
--- p.152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햇볕에 명징한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며, ‘예’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행위다.
--- p.155
🖋 출판사 서평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책 읽기
『살아가는 책』에서 저자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예기치 못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책상에 앉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모래바람을 맞으며 달을 보았고, 말 울음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오랜 편집자 생활로 진중한 읽기가 몸에 밴 만큼 책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낯선 세계를 기꺼이 헤매고 다니며 타자들과 조우한다. 생경한 삶과 이야기를 제 것처럼 느끼며 익숙한 자신과 조금씩 멀어지기를 시도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히 장소성을 의미해 내가 있는 이곳의 바깥을 탐험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처음 만난 타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심신을 걸쳐볼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잃는 것은 ‘과거의 나’다. 길을 잃으면 나를 잃고 (그런 두려운 처벌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길을 잃으면 들어갔던 입구로 도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구로 빠져나오게 된다. _140쪽
저자는 기존의 ‘나’를 벗어나 새로이 자신을 발명해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글 속에서 마주치는 인물과 상황에 오래 머물며 섣불리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좋은 것은 기존의 것이 부서질 때 얻어질 수 있다”는 말을 심도 있는 독서로 실천하는 것이다.
작품과 현실을 잇는 중간자로서의 글쓰기
『살아가는 책』에서 언급되는 책 속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사연들을 불러일으킨다. 데버라 리비의 『살림 비용』에서 쉰이 넘는 나이에 결혼을 끝내고 홀로 서기를 시작한 화자를 보며 저자는 이혼한 지인들이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겪는 다사다난한 부침을 상기한다.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에서 친족 성폭력에 노출된 아이를 보면서는 “23년간 하루도 예외 없이 지옥에서 살았어요”라고 고백하던 스물네 살의 예원을 떠올린다. 이렇듯 저자는 책을 읽는 도중에 끊임없이 현실의 문제들이 문장 사이로 틈입해오는 경험을 한다. 자신의 고통을 책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처럼, 그들의 생을 경유한 감각으로 섬세한 문장들을 써 내려간다.
나는 오랫동안 읽기만 하던 독자에서 최근 쓰는 쪽으로 조금씩 건너왔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허물어뜨렸다가 재구축하는 과정이다. 허물다 보면 스스로가 한심해지지만, 구축하다 보면 못생기고 헐거운 자신도 견딜 만해진다. (…) 읽는 데서 나아가 필연적으로 나의 삶이 될 글쓰기를 향해 한발 한발 같이 내디뎠으면 좋겠다. _8~9쪽
읽었던 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먼 곳의 이야기들을 제 안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일 것이다. 타자와 텍스트로 촘촘히 결속되는 과정이자 잇대어지고 확장되는 체험일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책』은 열성적 읽기와 곡진한 쓰기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책과 더불어 살아갈 때에만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생의 경이로운 장면들을 선사한다.
이은혜(지은이)의 말
나는 오랫동안 읽기만 하던 독자에서 최근 쓰는 쪽으로 조금씩 건너왔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허물어뜨렸다가 재구축하는 과정이다. 허물다 보면 스스로가 한심해지지만, 구축하다 보면 못생기고 헐거운 자신도 견딜 만해진다. 그건 좋은 면모를 가진 타인들이 내 속에 들어와 계속 뒤엉키기 때문인데,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쓰이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