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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입처를 6근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을 일반적으로 실유(實有)라고 합니다.
실유를 간단히 설명하면 안과 색이 실유한다는 겁니다.
그럴 경우 6입처는 6근경의 활동 장소로, 6입처는 6근경에서 생긴 게 됩니다.
그런데 안과 색이 심연생이라고 하는 경우는 오히려 6입처에서 6근경이 생겼다고 하게 되니..
심연생과 실유는 분명히 다르다 하겠습니다.//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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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경에서 6입처라는 활동이 나온다는 세간의 상식이 불교를 지배하고 있습니다.//효진
저는 위와 같이 보지 않습니다.
6입처가 6근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6入은 그냥 6根이라고 봅니다. 같은 것에 달리 부름이지요.
6根으로 일으킨 것은 6識입니다.
6根이 6境을 상대하여 6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범부중생의 전부이고 중생이 느끼는 실제(실유)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요, 이것은 실제(실유)가 아니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시려는 것이지요.
우리 중생은 6근 6경이 실제하다고 여기며, 6식을 일으켜 몸과 입과 뜻의 업(業)을 지어, 그 업의 왕환(往還. 가고 옴)으로 생사(生死)등 여의치 않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지요.
6식을 일으키는 것은 중생의 마음인 의근(意根)입니다.
의근이 몸에 있는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을 통하여 색·성·향·미·촉을 상대하여 안·이·비·설·신식을 일으키고,
의근(意根)이 법경(法境. 경험. 상상. 짐작 등 마음의 경계)을 생각하여 의식(意識)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되풀이 하며 여의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중생의 현실(실제)입니다.
그럼 왜 여의치 않은 생활이 될 수밖에 없는가하면, 모두가 다른 6근으로 다른 6식의 번뇌를 일으키기에 원하는 것이 다르겠지요.
원하는 것이 다르기에 이룸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룸이 뜻대로 안되니 자연 괴로움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과연 이렇게 만 살아야 되는가...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들이 실제(실유)라고 여기고 있는 그 현실은 무상(無常. 항상 함이 없이 변한다)하다. 무상하기에 여의치 않은 고(苦. 생노병사우비고뇌)가 있게 된다. 무상하기에 무아(無我. 非我)다. 라고 일러주시고,
다시 당신의 이룬 경지(涅槃)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일러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생들로 하여금 당신과 같은 경지(열반)를 얻어서, 당신과 같은 상락(常樂)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 상락(常樂)을 이루고 보니, 6근 6경은 본래 있지 아니한 것이요, 이 열반을 모르는 무명(無明)의 마음으로 본래 있지도 않는 것에,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꿈을 깨고 보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꿈속에서는 분명한 실제(실유)라고 여기는 것처럼.
열반의 경지에는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열반을 모르는 무명(無明)으로는 분명히 6근 6경을 실제(실유)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모두가 마음의 조작’이라는 말이 이런 것입니다.
좀 어렵고 위험한 생각이지만, 내가 잠시 잠을 자면서 현실처럼 느끼고 있었던 꿈속과, 꿈을 깬 현실이 다르지만, 다른 이의 것은 아니듯이,
중생의 무상 고 무아였던 무명(無明)의 일들이, 결국 열반(涅槃)의 마음바탕위에서 이루어졌던 착각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열반을 이루고도 다시 무명의 착각을 이루지 않겠느냐고 힐난(詰難)할 수 있기에 어렵고 위험한 생각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를 때는 모름이 있지만, 알고 나면 모름이 없는 것처럼. 중생인 때는 중생과 열반을 생각하지만, 열반을 이루고 보면 중생은 본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열반의 경지라는 것이지요. ㅎㅎㅎ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첫댓글 길어서 끝가지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말인지는 아직 파악못했지만, 육근 육경이 있은 다음에 의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욕탐이 마음의 백그라운드에 있어서 육근 육경 육입 육입처의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재래시장같은데는 음식파는가게들 옷파는가게들 온갖종류의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재래시장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가게들이 다보이지 않습니다. 음식을 찾아 재래시장에 간사람에게는 구두닦이나 농기구나 종자판매하는 가게는 안보입니다. 어떤 장소에 다녀온 여행객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다보고 오지는 못합니다. 육근 육식 육입처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육근 육경이 있은 다음에 의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현불..
끝까지 읽어 보셨으면 좋았을 건데요... 의근은 6근중의 의근입니다. 그러니 6근 6경이 일으킨 것이 아니지요.
@나를 찾아서 욕탐이 마음의 백그라운드에 있어서 육근 육경 육입 육입처의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현불..
무명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미리무명(迷理無明) - 이치에 미혹하여 참인 열반의 존재를 모르고, 거짓인 현상이 참이라 고 여기는 것.
미사무명(迷事無明) - 현상에 미혹하여 옳고 그름을 분간 못하는 것. 이 있습니다.
@나를 찾아서 욕탐은 어리석음(迷事無明)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니 욕탐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육근 육경이 있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럼 6근 6경은 언제부터 있게 되었는가. 바로 미리무명(迷理無明)으로 본래 있지 않는 것에 있다고 보는 착각이라고 합니다.
위의 내용은 이런 말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6입, 6근, 6입처는 다 같은 뜻이고, 달리 부른 이름일뿐이라고 봅니다.
다만, 6경은 ‘나’ 아닌 외부의 보이고, 들리는 등 경계들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나를 찾아서 의식은 욕탐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육근 육경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의식이 책상을 눈으로 본 후에 앉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까? 재가 앞에서한 재래시장의 예를 이번에는 책상을 재래시장이라고 바꾸면, 앉는 용도라는 가게, 무엇으로 만들진 재료라는 가게, 어떤공장에서 만들어져서 그자리까지 왔는지 라는 역사의 가게등이 있다고 볼수있습니다. 책상을 눈으로 본때(오온)는 용도,재료,역사가 다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잠을 못잔 사람은 책상을 보고 침대로 자고, 책상을 밥상으로 쓸때도 있습니다. 해골물을 생각해보세요. 해골물이 미리무명일까요?
@현불사신도회 너무 복잡하게 물으시니, 복잡한 것은 본인이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책상을 눈으로 볼 때 일어나는 식은 안식(眼識)입니다.
어디서 만들어져서 여기까지 왔을까 밥상으로 사용할까 등등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근(意根)의 일입니다.
눈은 비추어(觸) 느끼기(受)만 할뿐, 의근(意根)이 인식(認識)하고 생각(想)하는 것이지요.
@나를 찾아서 의근(意根)이 눈을 통하여 색경(色境)을 상대하였으니,
눈에 보이는 것을 대하여(觸), 대하였다(受)는 것을 느낄 때,
눈을 통한 의근(意根)의 작용으로 무엇이라고 인식(認識)하고,
어떻게 할까하는 등의 생각(想)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본인의 말대로 밥상으로 쓸까 책상으로 쓸까 등등...
이 모두를 의식(意識)이라하지 않고 눈을 통하여 하였으니, 안식(眼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서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으로 법경(法境)을 상대(觸)할 때 일어나는 수(受. 느낌),식(識. 인식), 상(想. 분별)입니다.
법경(法境)은 과거에 5根을 통하여 경험하였던 것이거나, 유추하여 상상하고 짐작되는 것 등등의 물질이 아닌 마음의 경계이지요.
@나를 찾아서 우리나라 불교는 인식(認識)은 (觸), (受) (意根)이 연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있으나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인식론이나 다른 나라들에게서 일반적인 불교상식과 동떨어진 관념에 사로잡혀서 과학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다면 기독교의 창조론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물론 (受)에 의하여 (意根)가 연기하여 발생하지만 정확한 것은 (意根)은 육근, 색, 수, 상, 행, 식에 모두 작용하는 것입니다.
@현불사신도회 안`이`비`설`신은 몸이요, 의근은 마음입니다.
수에 의하여 의근이 연기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근에 의해서 수(느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서 육근은 시각,청각,기타의체감각으로 신경신호인 뉴런입니다, 마음역시 뉴런의 시냅스의 작용입니다. 특히 시각의 경우 뇌의 전체 뉴런의 70% 이상이고 오온중 안근이 70%이고 전체 신체의 모든 신경세포를 다 합해도 30%입니다. 눈은 뇌와 직접 붙어있어서 눈은 사실상 뇌의 일부분입니다.
@현불사신도회 ㅎㅎ..과학을 잘아시는 모양이군요.
기본적으로 중생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있다고 보고 있고요.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잘못된 것이기에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여바르게 일러주시려는 것이고요..
하여튼 눈은 몸에 있는 감각기관이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이,비,설,신이고요. 그리고 마음은 의근입니다.
본인도 몸과 마음이 있잖아요... 6근은 그냥 그렇게 감각기관으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나를 찾아서 과학과 동떨어지면 기독교 창조론 신세됩니다. 그렇게 보면 붓다께서 2500년전에 밝혀놓으신 진리가 현대과학으로도 전혀 잘못을 발혀내지 못하는걸 보면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현불사신도회 과학으로 불교의 바름이 증명은 되겠지만, 불교를 과학화 시키지는 마십시요. 과학은 인간의 학문입니다...
과학적인 불교를 하지마시고, 불교적인 불교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단적으로, 과학은 천상이나 지옥 아귀등은 말을 못합니다. 현상적으로 증명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즉 과학은 현상의 학문이라는 말입니다.
천상이 없다, 지옥 아귀가 없다고 한다면 불교적인 견해는 아니겠지요...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이란 창조주 절대자가 사는 곳은 아니라는 것은 아시지요...?
@나를 찾아서 붓다께서 천상을 말하셨나요?
@현불사신도회 몰라서 묻는 것입니까. 자꾸 그러면 의심합니다....
복을 지으면 죽어서 욕계 여섯하늘 가운데 태어나고,
선정을 이루면 죽어서 색계 무색계천에 태어난다고 안하던가요.
인간으로 계정혜를 닦아 아나함을 이루면, 색계 4선천에 태어나 아라한을 이룬다고 하지 않던가요.
니까야에 있는데 왜그러세요 . 혹시 진짜 모르는 것 아닙니까...
@나를 찾아서 뭘 자꾸 그렀다는건지 모르겠지만 불교는 과학과 모순이 없다는 말에 지나치게 예민하시군요. 불교를 나쁘게 예기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삼법인만 알지 다른건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유한한 토론이었습니다. 그럼 즐거운 추석연휴되십시요.
@현불사신도회 삼법인은 삼계와 열반을 이해하여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니 삼계를 이해하고서야 열반의 이해와 향함이 바르게 이루어질수 있겠지요..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해골물은 일체유심조라고해서 불자님들한테 중요한 건데 착각이라고 해버리십니까? 그럼 어려우니까 해골물은 패스하고 책상을 밥상으로 쓰는 사람도 착각입니까?
@새벽산사 해골물은 역시 패스하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ㅎㅎ 책상도 패스하고 요강으로 해봅시다.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요강을 가져다가 동양에서 가져온 귀한 도자기라고 하면서 한국사람을 초대해서 요강에다 음식을 담아서 음식대접을 했다면 한국사람에게 요강에 음식담아준것이 의도일까요?
@새벽산사 색안경은 눈앞에다 쓰는것이지 눈뒤에다 쓰지않습니다. 욕탐은 색안경처럼 육근의 작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새벽산사 해골물은 어려우니까 패스하자고 제가 부탁드렸었습니다.
@새벽산사 ㅎㅎ 잘 다녀오십시요. 추석명절에 병원 휴무라서 오늘 안가면 잘못하면 고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