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上弦)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신(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 중 76
part 4 그대의 귀에 바다가 들어오리
채빈 엮음
[작가소개]
나희덕 Ra Heeduk시인, 대학교수
출생 : 1966. 충청남도 논산
소속 : 서울과학기술대학교(교수)
학력 :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데뷔 : 1989년 중앙문예 '뿌리에게' 등단
수상 : 2019년 제21회 백석문학상
경력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정보 : 네이버[지식백과] - 마른 물고기처럼
작품 : 도서, 공연
<약력>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창작과비평》,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998년 제17회〈김수영문학상〉, 2001년 제12회 〈김달진문학상〉, 제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 부문, 2003년 제48회〈현대문학상〉, 2005년 제17회〈이산문학상〉, 2007년 제22회〈소월시문학상〉, 2010년 제10회 〈지훈상〉 문학 부문, 2014년 제6회 〈임화문학예술상〉, 제14회 미당문학상, 2019년 제21회 백석문학상[1]을 수상했다.
<저서>
-시집
《뿌리에게》(창작과비평사, 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어두워진다는 것》(창작과비평사, 2001)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야생사과》(창비, 2009) ISBN 978-89-364-2301-8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ISBN 978-89-320-2530-8
《그녀에게》(예경, 2015)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
<시인의 말>
-《뿌리에게》
꽃의 향기에 비해 과일의 향기는 육화된 것 같아서 믿음직스럽다. 나의 시가 그리 향기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는 이유는, 시란 내 삶이 진솔하게 육화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삶과 시에 대한 이 미더움을 버리지 않고 천천히 익어가고 싶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삶의 깊이를 헤아리고 담아내는 일이란 결국 그것의 비참함과 쓸쓸함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걸 이제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비참함과 쓸쓸함이 또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면, 느릿느릿, 그러나 쉬임없이 그리로 갈 것이다. 매순간 환절기와도 같을 세월 속으로.
-《그곳이 멀지 않다》
고통을 발음하는 것조차 소란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이 안으로 안으로 타올라 한 줌의 재로 남겨지는 순간을 기다려 시를 쓰고는 했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은 침묵의 순연한 재가 아니었다. 끝내 절규도 침묵도 되지 못한 언어들을 여기 묶는다. 이 잔해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의 소음 속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두워진다는 것》
언제부턴가 내 눈은 빛보다는 어둠에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둠도 시에 들어오면 어둠만은 아닌 게 되는지, 때로 눈부시고 때로 감미롭기도 했다. 그런 암전(暗電)에 대한 갈망이 이 저물녘의 시들을 낳았다. 어두워진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밝히려는 내 나름의 방식이자 안간힘이었던 셈이다.
-《사라진 손바닥》
'도덕적인 갑각류'라는 말이
뢴트겐 광선처럼 나를 뚫고 지나갔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던,
살의 일부가 되어버린 갑각의 관념들이여,
이제 나를 놓아다오.
- 시
나희덕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땅끝, 배추의 마음, 뿌리에게, 푸른밤이있다
-<배추의마음> :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가치를 주제로 한다. 배추를 사람처럼 대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교감을 나누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으며, 독백체의 어투로 생명존중이라는 마음을 고백한 작품이다.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말(馬)과 말의 이중의미를 한데 어우르며 표현하였으며, 지식인의 언어 또는 시인의 말이 땅끝에서 퍼져나가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진중하게 고백하고 있는 작품이다.
-<땅 끝> :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시작되어, 힘든 삶에서 느끼는 것을 표현했으며, 또한, 절망의 끝에서 다시 찾은 희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말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산문집
《반 통의 물》(창비, 1999), 《저 불빛들을 기억해》(하늘바람별, 2012)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 2003), 《한 접시의 시》(창비, 2012)
-편저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삼인, 2008), 《나희덕의 유리병 편지》(나라말, 2013),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도서출판b, 2012)
첫댓글 능선을 넘는 상현달
그녀가 남긴 엉덩이의 흔적에서
환한 상처를 기억한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