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사건 당시 교신록에 따른 시간대별 정리.
타임로드 (yh99****)
세월호사건 시간대별 정리
사고 시점은 논란이 많으니 생략.
이견을 막기위해 현재 기사로써 밝혀진 것만 가지고 논함.
해경은 사고가 나고 무려 한달만에 교신록을 일부 공개했다.
(일각에는 이 마저도 시간 조작이 있었다고 문제제기 중...
이유는 읽다보면 나옴.)
-8시 52분:탑승학생신고.(정부주장)
-8시 55분:세월호, 해수부 제주vts교신 사고 신고.(정부주장)
-9시 07분 해경 진도 vts, 세월호와 교신.(정부주장)
...
<교신>
-8시 52분: 단원고 학생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살려주세요” 침몰 첫 신고
-8시 55분: 세월호에서 해상교통관제(VTS)센터에 “배 넘어간다” 조난 신고
-8시 58분: 목포 해경 상황실로 탑승객이 “세월호 침수” 신고
-9시 05분: 목포 해경, 해양경찰청에 ‘상황보고서’ 팩스로 전송
[인터뷰: 구조 선박 교신록]9시 14분 "탈출하면 저희가 구조하겠습니다"
http://news.ichannela.com/society/3/03/20140424/63031718/1
(하지만 해경에 의한 탈출지시는 없었다.)
-9시 25분: 강병규 안행부장관 충남 아산 행사장에서 ‘세월호 사고’ 전달 받음.
-9시 30분 해경헬기 511호(7인승) 도착.
진도VTS와의 교신록을 보면 세월호는 헬기 도착 3분전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되겠느냐"며 물었고, 진도VTS는"세월호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인명 탈출시키세요"라고 대답했다.
-9시 30분: 해경, 청와대(사회안전비서관실 등)에 ‘세월호 사고’ 상황 보고.
-9시 31분: 안행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상황 전달.
-9시 30분~40분: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 전원 해경 도움으로 탈출
경비정은 전속력(25노트·46.3㎞)으로 내달려 9시40분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이 때 배안에선?
사람들이 구조대가 도착함을 알고 큰 동요없이 안심하고 있다.(밑에 배 각도와 비교 바람..)
-9시 40분: 해경, 해양사고 ‘심각’ 경보 발령
-오전 9시40분 123정은 "승객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다"
-오전 9시44분쯤 "현재 여객선에 접안해 밖에 나온 승객 한 명씩 지금 구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오전 9시47분 123정은 다시 한번 "승객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다"
-48분엔 "경사가 너무 심해 사람이 지금 하강을 못하고 있다. 잠시 후에 침몰할 상황"이라고 재차 보고했다.
그러나 이때 상황실은 40분에 내렸다는 "심각경보"라는 말이 무색하게
"123 직원들이 안전장구를 갖추고 여객선 올라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람"이라고 명령했다.
<이를 보면... 탈출 명령을 안한 것은 해경도 선장과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이른다.>
또 해경 상황실은
오전 9시48분 123정에 "너무 과승(過乘)으로 하지 말고 안전하게 서거차도로 편승조치 바란다"고
지시했다.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던 경비정에 구조자를 너무 많이 태우지 말고
침몰 현장을 이탈해 인근의 섬인 서거차도로 옮기라고 한 것이다.
123정은 "(세월호가) 침몰할 상황"이라고 급박하게 상황을 전했다.
(오전 9시49분에는 한 대원이 밧줄을 잡고 조타실로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승객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는 시도는 없었다.)
다시 5분여가 흐르고...
상황실은 오전 9시54분 이후에야 "상황을 봐가면서 최대한도로 승선원을 구조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조치바람"이라고 지시했다.
6분이 지나서야 최대한으로 태우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탈출 지시는 오전 9시57분 이후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의 TRS를 통해 이뤄졌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서장은 "현장, 여기 서장. 근처에 어선들이 많고 하니까 마이크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 반대 방향으로… 우리가 당황하지 말고 우리 직원도 올라가서 (구조) 하고"라고 말했다.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지 30분가량 지난 뒤였다.
(이때도 탈출방송은 없었음.)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시간 조작설이 나오는 상황.
이유는 123정의 오전 9시53분 "(배가 많이 기울어) 경사가 너무 심해가지고 올라갈 길이 없다"는 말과 달리
이로부터 16분이 지나 배가 더 기운 오전 10시9분 현장에 도착한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승무원들은 밧줄을 들고 배 제일 뒤쪽으로 올라가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을 구했다.
(밑에 사진.-해경이 국회에 제출한 사진임.)
-10시 00분: 박 대통령,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도록 하라”고 지시(정부 주장)
(9시 32분 ~ 10시 00분: 대통령에게 어떻게 상황 전달했는지 미공개)
-10시 00분: 중앙재안안전대책본부(안행부), 110여명 구조 발표
-10시9분 현장에 도착한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승무원들은 밧줄을 들고 배 제일 뒤쪽으로 올라가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을 구했다.
-10시 10분: 해군 고속함, 고속정, 해상초계 링스헬기 도착
(뛰어내리면 구조도 가능했던 시점. 이때는 주변에 선박들이 많이 있었음.)
...다시 20분이 지나고...
-10시 30분: 청와대 첫 브리핑 “대통령이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
....다시 40분후....
-11시 10분: 세월호 60도 기울며 완전 침몰 시작
-11시 10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
(해경 말 인용해 단원고와 경기교육청이 발표)
다시 5분후....
-11시 15분: 중대본, “구조인원 161명”이라고 발표
다시 5분후....
-11시 20분: 세월호 사실상 완전 침몰(사고 신고 2시간 20분, 현장도착 1시간 40분 경과)
...1시간 30분이 흐르고...
-12시 50분: 최초 사망자 확인
여기서 위에 11시부터 12시 공백까지의 시간동안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새로운 사실
통영함의 구조현장 투입을 지시한 문서와 이에 따른 해군-방사청-대우조선해양의 합의 각서. (자료=김광진 의원실)
해군 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해군, 방사청, 대우조선해양 대리인은 같은 날 청해진함과 통영함을 세월호 구조 현장에 투입하는 내용의 합의각서에 서명.(제조사가 자신감 없는데 싸인?)
각서에 지원 일시는 지난달 16일 낮 12시부터 '별도 협의시까지'로 돼 있다.
또한 선박구조 참가로 인해 발생하는 경비는 정산 후 다시 계약하기로 했다. 현재 건조 중인 관계로 대우조선해양에 속한 함정 조정권리(조함권)는 해군이 인수하고 사고 수습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업체에 인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통영함을 투입하지 않았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사고 이틀 후인 지난달 18일 "통영함에 탑재돼 시운전 중인 음파탐지기, 수중로봇 장비 등 구조 관련 장비들이 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 측에서 아직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제조사와 각서까지 써 놓고?
해군의 청해진함이 현장에 도착한 건 사고 다음날 새벽 1시.
이 배엔 바닷물의 높은 압력에 몸을 적응시키는 이송용 캡슐이 있음. 또 수심 500m까지 내려가 16명을 구조할 수 있는 심해잠수구조정 등 최첨단 장비도 갖췄음.
하지만 이번 구조에 투입 배제됨.
김민석/국방부 대변인(지난달 28일) : 해군에서는 당장 조류 때문에 쓰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구난함을 조류 때문에 못 쓴다고?ㅎㅎㅎ, 그럼 뭣하러 만들었을까?)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20140516222111300
(기사에 따르면 두배의 보관을 대우해양조선이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두배는 거제조선소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또다른 함은 없었을까?
<<아시아 최대 수중발굴 전용 인양선 '누리안호' 취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14일 전남 목포항에서 취항식 개최
누리안호는 총톤수 290톤으로 길이 36.4m, 폭 9m, 깊이 4m이며, 최대 14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다. 20여 명의 조사원이 20일간 체류하면서 발굴조사를 수행할 수 있다.
잠수 통제실에는 최대 8명의 수중 잠수 조사원과 시행한 통신을 주고받으며 수중조사의 전 과정을 기록할 수 있는 영상처리장치가 갖춰져 있어 유물의 매장상태를 기록하는 등 학술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 또 감압챔버를 설치하여 조사원의 갑작스러운 잠수사고에 응급조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사고지점과 제일 가까운 목포..)
하지만 어쩐일인지 이 배 역시도 구조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이 상황은 천안함 때도 동일했다. 당시에도 구난함으로 쓰일 수 있는 저 배들은 마침(?) 고장 수리중이라며 아무것도 투입되지 않았다. - 이와 관련된 기사는 너무도 많아 따로 쓰지 않겠다.)
어쨌든...
정부는
-14시 00분: 중대본, “탑승객 477명 중 368명 구조됐다”고 발표
-14시 40분: 해군 구조대(SSU), 특수전단(UDT), 육군특전사 현장도착 (즉각투입 안됨)
-16시 12분: 해난구조대 첫 입수(사고 신고 후 7시간 17분 경과)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519020404658
세월호 174명 구조자 중 해경이 헬기와 경비정으로 93명을 구할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다.
구조자 81명은 해경의 123 경비정이 구해냈다.
하지만 정부는 대통령 퇴진의 구호가 걸리자 이들을 꼬리자르기이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초동대처 미흡의 핑계로 넘기려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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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일어나고 근 한달이 지난 현재까지 세월호에서 산채로 구조된 실종자는 “0명”이다.
첫댓글 이기 도대체 무슨 글입니까 해경을 더 교육을 시켜야되겠구만은 해체를 한 것슨 또 무슨 짓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