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辱說)로 풀어 본 한국인의 자화상(自畵像)
질병ㆍ형벌ㆍ생활은 물론 역사까지 시대상 반영
외세ㆍ권위주의ㆍ차별 등 억압적 일상을 담아내는 욕설
화냥(환향) 년과 호로 상 놈의 시대는 가버렸다.
당연히 유전적 의미에서 후레자식도 사라졌다.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제 나라에서도 청(淸)은 힘을 잃어버렸다.
다만 욕은 왕이 무릎 꿇은 치욕적인 삼전도(三田渡) 굴욕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환향(還鄕) 녀와 호로(胡虜) 자식이 호란(胡亂)이 남긴 유산이라는 건 널리 아는 대로다.
욕설은 단지 상스럽고 천박한 비어(卑語)가 아니다.
욕설은 사회를 민중 언어로 반영한다.
압축적으로 격변해온 한국 근대사는 욕 또한 창조를 거듭했다.
이마에 먹물 새기는 경칠 놈, 다섯 토막 낼 오살(五殺) 할 놈 등은
1894년 갑오 경장 무렵 욕의 구체성이 소멸해 긴장감이 한결 떨어지게 되었다.
주리를 틀 놈은 비공식적으로 유지되어 1980년대까지 인권을 말살하는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명예 형(刑)인 '조리 돌릴 놈'은 5•16 쿠데타 직후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띠를 두르고
현수막 아래를 행진 한 ‘동카포네’ 이 정재 무리를 마지막으로 더는 선보이지 않았다.
오랏 줄을 질 오라 질은 포승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다 형벌에서 비롯된 욕설이다. "사지(四肢)를 찢을 육시(肉弑)할(럴) 놈,"
질병 또한 욕으로 몸을 바꿔 활개를 쳤다.
마마(천연두)는 떠났지만 ‘염병할’은 일상적으로 위력적이다.
마마와 달리 호열자(虎列刺)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낙네들이 모여 시끄럽게 굴던 바가지 긁는 일은 여전하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는 듯한 고통을 주는 병’ 호열자는 1821년 처음 발병한 콜레라를 이른다.
‘엿 먹어라’는 남사당 패들 사이의 비역질 은어다.
비역이란 궁둥이 쪽 사타구니 살이다. 엿이란 남자 성기다.
뺄 수 없는 욕은 성기를 넘어 근친상간에 관한 것이다.
가장 모욕적이면서 가장 널리 흔히 퍼붓고 있는 욕설이다.
욕먹는 사람만이 아니라 혈족 성분 자체를 능멸하여 가족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효율 좋은’ 욕이라고 하겠다.
가족 중심 사회라서 욕스러움은 그만큼 더했다.
유월에 담아 육젖[白蝦]이라 부르는 새우를 오월 사리에 잡다 보니 섞인 잡것이라는 오 사리 잡 놈,
팥을 넣고 지지는 부꾸미에서 나온 젬병(전병)[煎餠],
개가 먹는 밥 개 차반[茶盤],바(밥)보의 경우처럼 생활에서 나온 욕은 차라리 건강하다.
얼어 죽을, 굶어 죽을, 맞아 죽을, 쪽박 찰,빌어먹을 놈 따위는 운명에 재앙과 불행이 일어나기를 비는 욕이다.
인도에서 건너와 욕 말이 된 경우도 있다.
기악을 연주하고 향만 먹고 날아다니는 향신 건달파(香神 乾婆)에서 온 건달,
어리석게도 석가모니를 놀렸다는 조달(調達)이가 어원인 '쪼다'는 제법 유식한 축에 낀다고 하겠다.
20세기 욕설은 이들 중세 사회상을 담은 욕보다 더욱 생생하게 한국인의 삶을 되 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후레자식이 떠난 자리에 미군 튀기와 와이 캡(Y-cab)이 들어섰다.
와이 캡이란 한국 여자와 택시는 부르면 온다는 데서 나왔다.
미국에서 택시는 노란색(yellow cab)이다.
양 공주는 양 놈 공주라는 자기모멸적 비아냥이다.
월남에서 미군은 젊은 베트남 여자를 ‘사이공 티(Tea)’라 불렀다. 슬픈 이름이다.
꾹으로 눌러 있으라는 말은 미군이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 월남에서까지 사용했다.
쿡은 한국의 줄임이다. 참견이나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아부하는 일을 속 되게 짜웅이라 하는데 이 또한 월남 사람들이 손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말 짜오 옹을
파병 군인들이 듣고 와 자리 잡았다.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20세기 한국에는 주변 4대 강국 관련 욕이 제법 있다.
짱 꼴라• 쪽 발이• 로스케• 양코 쟁이 따위는 상대를 어떻게든 깎아내려 자기 존재를 증명코자 한 한국인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욕설은 언제든 논리보다 생동 감이 있었다.
정작 그 말은 일본이 청일전쟁 뒤 중국 사람을 낮잡아 짱꼴라로, 로스케 또한 러일전쟁 무렵 그들이 만들어냈다.
북방에서는 러시아 사람을 마우재[毛子]라 했는데 이용악의 시에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주셨지’라고 동경 어린 언어로 숨 쉬고 있다.
유라지오는 블라디보스토크다.
얼마 우재는 이윽고 서양 사람을 흉내 내며 경망스럽게 구는 이를 일컫게 되었다.
미군을 양키라고 한 건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였다.
일본인을 얕잡는 쪽 발 인(人)은 그네들이 두 갈래로 된 나막 신을 즐겨 신는 데서 연유하고 있다.
친일 밀정은 왜 놈 개라 했다. 역으로 일본에 규정당한 게 조센징 등이다.
고문관이란 미군 고문관들이 한국 실정에 어두워 실수를 많이 한 데서 생겨 어수룩한 이를 뜻하게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진주한 미국 사람 이름을 개에게 붙여 쓴 일을 한국인의 놀라운 언어 규정력이라고 해야 할까.
메리• 케리• 쫑(John)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개를 사람 부르듯 하는 데서 배운 바도 있었겠다.
공무원을 정부 미, 군인을 군 바리, 경찰을 짭새로 일컬은 건 권위주의 권력이 낳은 산물이다.
정부 미는 양질이 아닌 묵은쌀을, 바리는 바리데기에서 보듯 ‘버리다’에서,
짭새는 보통 새 사이에 섞여 있는 잡스러운 새(사복 경찰)라고 하는데 유신 시대 이전부터 짜부라고 불렀다.
이들과 가까웠던 깡패는 갱(gang)과 패의 합성어다.
아무래도 가장 무서운 욕은 ‘빨갱이 새끼’이겠다.
이는 욕을 뛰어넘어 살벌함을 품고 있다.
욕설은 지역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갯가에 산다는 뜻으로 호남 인을 개땅 쇠, 발음에서 깽깽이라 했다.
강원도를 감자 바위, 충청도를 핫바지라 한 건 세련되지 못하다는 데서 왔다.
‘서울내기 다마 내기, 맛 좋은 고래 고기’라는 어린이들 놀림에도 나오듯 서울을 뺀질이라 했다.
경상도 보리 문둥이는 대체로 보리 먹으면서 남들에게 업신여겨지고
문둥이라면 경상도 사람이나 한센병 환자를 두루 깔보는 말이다.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개똥 녀, 된장 녀 따위는 모던 걸에서 보듯 여성 비하와 소비 책임을 전가하는 남성 중심적
욕설의 전형이다.
근래 나온 ‘강북스럽다’는 소수가 다수를 업신여기는 일을 온당화 하려는 그릇된 발상에 말미암고 있다.
욕설의 목적은 상대를 비하 저주하고,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지배자를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일상적 언어 투쟁이다.
신성함을 해체해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도전이다.
20세기 한국 욕설은 외세•권위주의•차별 등 억압적 일상을 반영한다.
욕이 그저 상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욕설은 이렇듯 한국 사회와 사람의 역동성을 방증하고 있다.
<받은 메일에서 옮긴 글>
첫댓글 욕설은 대략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특징과 의의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에 따른 차이를 크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욕은 개인의 의사전달 능력이자 표현 능력이며 공격 능력이기도 하며 이러한 점으로 하여 욕은 개인에 따른 차이를 크게 나타내며, 그에 따른 창의성과 표현성을 풍부하게 보여주게 되고 때문에 욕을 통하여 우리는 개인의 입말에의한 수사능력과 입심의 다양한 모습을 대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른 수사와 싸움의 흥미를 생동감있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상 언어이면서도 욕이 지니는 언어적 힘의 유다른 점을 여기에서 대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욕의 언어민속 또는 언어인류학적 대상으로서의 집단성입니다 욕은 욕설을 하는 상황에 보면 개인적 능력의 실현 양상과 기능이 중요할 수 있지만, 욕설의 종목이나 그것의 표현 방식, 또는 욕설을 하는 사람의 특성은 그대로 민속문화적 일반성을 드러내 보이게 되며 인류학적 또는 민속학적으로 강한 유형성을 띠게 되는 것이고 이런 측면으로 하여 욕설은 언어민속의 민족성이나 인류학적 특성의 이해라는 중요한 근거를 마련해줍니다
욕! 한마디로 말하면 "욕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하면 안 된다"이겠지요.
그러나 그 욕에 담아 있는 속 뜻이 주는 말만 보면 그렇게 꼭 나쁜 것이 아니라 가르침도 있다 봅니다.
어떻게 어디에서 어떤 감정으로 표출하느냐 에 따라 그 욕 말이 남기는 여운은 다르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