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6: 26. 내 몸이라 - 마 26: 28. 언약의 피
마 26: 26. 내 몸이라 -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
그날 밤에 사용된 빵은 큰 한 덩어리의 빵이었던 것 같다.
가룟 유다는 마지막 유월절 식탁, 곧 최초의 성찬식에 참여했다. (눅 22: 21. 요 13: 26-27).
비록 그가 그 성찬식에 참여하였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이었다. 성찬의 떡과 포도즙은 그 자체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떡을 가지사 이것은 예수의 몸이라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하셨다.
1] 그들이 먹을 때에
본 절 이하 사건의 시간적 위치를 말해 주는 기록이다(21절).
이때는 유월절 본 식사가 끝나기 전, 곧 '축복의 잔'인 셋째 잔이 비워지기 전으로 추정된다(17절 참조).
2]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사용된 빵은 큰 한 덩어리의 빵이었던 것 같다. '떡'은 무교병 큰 덩이일 것이다.
* 출 12: 15 -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 출 13: 3, 7 –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축복하였다'는 것은 마치 '오병 이어'에서처럼 감사와 찬양의 평범한 식기도가 아니라 유대인의 유월절 식탁의 전통적 관례에 따라 감사를 드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떡이라는 단어는
(1) '들어'(took),
(2) '축사하시고'(blessed),
(3) '떼어'(broke),
(4) '주셨다'(gave)는
네 동사와 연결되는데 본래 이 동사들은 유대인들이 식탁에서 감사드릴 때 하는 동작을 나타내 주는 일반적인 표현이었다(17절).
이때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공식 문구인 '우리 주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땅에서 떡을 내신 당신께 영광이 있기를'과 같은 말로 축사하셨을 것이다.
3] 떼어
떡을 떼는 행위는 공동식사에서 흔히 있는 일로 식탁의 주체자의 고유한 일이다. 여기서 떼는 행위는 단순히 먹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구약 시대는 떼어 내어진 떡은 곧 선민 이스라엘의 뼈아픈 과거의 고통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새 시대의 문을 여선 예수께서 친히 떡을 떼시며 당신과 연관시킴으로써 장차 고난받아 찢기실 당신의 몸을 예시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4]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떡을 떼어 건네는 것은 상호 간의 신뢰와 두터운 관계성을 의미한다.
'받아먹으라.'는 명령 문구는 예수의 죽음과 그 죽음이 가져다주는 죄로부터의 해방(解放)과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라는 축복의 말씀으로 간주할 수 있다.
5]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바울과 누가는 여기에 '너희를 위한'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이것을 행하며 나를 기념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 눅 22: 19 -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고전 11: 24 -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는 당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육체로는 더 이상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을 자신을 기억하며 또 그들을 위해 대속의 희생양이 되신 예수를 기념하도록 가르치신다.
이에 비해 마가와 마태는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만 말하여 '떡'을 죽게 될 예수의 몸과 연관시키고 있다. 앞에서 암시했듯이(19절) 예수께서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어 그들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새로운 구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즉 떡이 여러 조각으로 떼어진 것처럼 예수의 몸도 찢어질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의 구원을 하나님이 정하신 유월절 식사와 관련시키듯이, 메시아의 백성들도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을 그분의 권위로 제정된 성례와 연결시킬 것이다.
본문에 제시된 '...이니라'(*, 에스티)는 말은 주어진 술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계사(繫辭, 영어의 is에 해당)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진정 실제적 동질성을 언급한 것인지, 상징적인 대비에 불과한 것인지, 성령에 의한 결과론적인 임재를 뜻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예수께서는 친히 육체를 입으신 분으로 당신의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르치신 성체(聖體, 살과 피)를 근거한 성만찬을 통해 당신이 주시고자 하시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전달하셨다.
이에 대해 주의 말씀에 경청했던 당시 제자들은 이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예수께서 주신 이 거룩한 성체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능히 알았을 것이다.
* 요 6: 5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따라서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은 단순히 기념 예식일 수 없으며, 또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하나의 절차일 수도 없다. 그것은 예수의 희생과 주권적인 은혜에 의해 그들이 과거에 얻지 못했던 것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순하고도 순수한 열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예식에 참여하여 성체를 기념하기만 한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크나큰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the Pulilit Commentary).
마 26: 27. 이것을 마시라 -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주께서 떡을 ‘내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즙을 ‘내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징적 표현이라고 본다.
떡과 포도즙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상징적 일치가 있다. 즉 그 떡은 예수님의 몸과 같고 그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와 같다. 주께서는 이 엄숙한 의식에서 그의 신성(神性)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 27은 사람이 주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경고하였다.
1]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이 '잔'은 세 번째 '축복의 잔'이었을 것이다(17절 참조).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다시 축사하시고 '오 우리 주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 포도의 열매를 창조하신 당신에게 영광 돌리렵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사례하다'는 뜻인 원어 '유카리스테사스'(*)는 '감사'를 뜻하는 '유카리스테오'(*)의분사이다. 여기서 '성만찬'을 뜻하는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2]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여기 '주시며'에 해당하는 원어 '에도켄'(*)은 부정 과거형으로 단 1회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즉 예수께서는 사례하신 후 단 한번만 잔을 주셨을 것이다. 따라서 잔을 받은 제자들은 그 잔을 받고 차례로 돌려가며 마셨을 것이다.
3]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가는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이 본문을 '너희가 다 이것을 먹으라.'고 명령한 것과 일치시킴으로써 더욱 이 장면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다.
* 막 14: 23 -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여기서 '다'라는 말이 강조된 것은 떡을 먹은 사람이면 '모두' 잔을 마시는 일에 참여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
결국 이 말씀은 사제들만을 잔 마시는 행사에 참여시키고 있는 로마 가톨릭의 예전(禮典)의 그릇됨을 분명히 지적해 주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돌려진 잔은 오직 사제들만이 계승한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일반 신도들의 성찬 예식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 살과 마찬가지로 주의 피는 모든 성도들의 신령한 음식이요 음료가 되어야 한다.
가룟 유다는 마지막 유월절 식탁, 곧 최초의 성찬식에 참여하였다.
* 눅 22: 21 -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 요 13: 26-27 –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비록 그가 그 성찬식에 참여하였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였다.
성찬식은 그 자체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떡을 ‘내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즙을 ‘내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징적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즙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상징적 일치가 있다. 주께서는 그 엄숙한 의식에서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 27은 사람이 주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엄숙히 경고하였다.
마 26: 28. 언약의 피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맺으신 구원의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택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의 수는 매우 많다. 요한계시록 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또 성경은 피가 생명이며 속죄의 피가 죄를 씻음을 증언한다.
레위기 17: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중요하며 우리에게 있어서 속죄 신앙이 가장 중요하다.
요한복음 6: 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죄인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속죄 신앙은 기본적인 구원 신앙이다. 그것은 구원의 생명이다.
1]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구약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체(要諦)는 짐승의 피로서는 대속 제물은 임시적이요, 단편적이며, 불완전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인간을 죄악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주께서는 그 대속제물의 궁극적 완성자요 영원한 표상으로서 친히 십자가 제단에 오르시려 하신 것이다. 정녕 예수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근거이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대속 제물의 '피'였다. 피 없이는 하나님께 속죄 받을 수 없다.
* 히 9: 22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요일 1: 7 -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히브리 관용구에 의하면 '많은 사람'은 '모든 사람'을 뜻한다.
예수께서 어떤 특정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으며,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죽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죽음은 본질적으로 세상 모두를 위해서 죽었다는 의미이다.
이 죽음의 선한 영향력이 각자의 믿음 여하에 달려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마 20: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흘리는바'에 해당하는 원어 '에크퀸노메논'(*)은 현재수동태 분사를 취한 단어이다. 당신의 대속적 죽음이 확정적 사실이며, 지금부터 영원토록 흘려질(상징적임) 당신의 피 흘림으로 인해 그 대속의 효력이 영속할 것임을 드러내고 계신다.
3]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의 선언은 구약의 출 24: 8. 렘 31: 31-34. 슥 9: 11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 출 24: 8 -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 렘 31: 31-34 –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슥 9: 11 -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바울과 누가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렘 31:31-34의 내용과 긴밀히 연관시키고 있다.
* 눅 22: 19-20 –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고전 11: 25 -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본문에 언급된 '언약'(*, 테스디아데케스)이란 말은 '둘'(*, 디아) 사이에 무엇을 '세우는 것'(*, 티데미), 곧 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뜻한다. 유대인들의 개념에 있어서 이 언약(계약)은 피 흘린 생명을 근거로 맺는 그야말로 전존재론적 약속을 의미한다.
* 창 24: 5-8 – 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 히 8: 6-13 –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당신의 피, 곧 십자가 회생을 담보로 한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 계신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직후 '시내 산'에서 짐승의 피로 맺었던 '옛 언약'의 시대를 마감하셨다. (출 24: 5-8. 히 8: 6-13).
다시 말하면 옛 언약이 상징하는바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당신의 피 흘림을 통해 온 인류와 교회 앞에 본질적으로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셨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여 이 예수의 흘린 피를 마시는 자는 개별적으로 내밀(內密)하게 이 새 언약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언약의 피’라는 말은 전통 사본에는 ‘새 언약의 피’라고 되어 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택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의 수는 매우 많다.
* 계 7: 9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피는 생명이며 속죄의 피가 죄를 씻는다. 그러므로 속죄의 피가 중요하며 속죄 신앙이 중요하다.
* 레 17: 11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히 9: 22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요 6: 53-55 –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속죄가 없었다면,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도 없었을 것이다. 속죄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구원 신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