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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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사(牛舍)에 들러 녀석들에게 사료를 챙겨준 뒤 논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방의 산과 들에서는 매미들이 극성스럽게 울어댔고, 또한 내 작업복 주머니에서는 휴대폰이 고함을 내질렀다. 무더위에 짜증을 내며 거칠게 폴더를 열었더니 읍내에 있는 수의사였다. 그는 대뜸 하는 말이,
“원석아, 지금 12년 동창생인 ‘박찬’이 와 있다. 너를 만나고 싶어서 환장하는데, 네가 올래? 내가 데리고 갈까?”
그러나 나는 ‘박찬’이라는 동창생이 퍼뜩 떠오르지도 않았거니와, 또한 들판에 농약 치는 기계를 펼쳐놓고 있었던 터라, 당장 어디로 움직일 계제가 못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곧 벼논에 농약을 치던 중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에야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농약 다 치고 너한테 연락하려던 참이었다. 낼모레 출산할 녀석이 공연히 날뛰고 지랄이네. 주사를 맞고 싶어 환장한 녀석 같은데…. 5시 반쯤에 와라.”
점심을 먹고 난 후 사료를 챙겨 주려고 우사에 들렀더니, 배가 남산만 한 녀석이 아침에 준 사료를 절반이나 남긴 채 폴짝폴짝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침나절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증세가 없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농약을 다 친 후에도 계속 날뛰면 천생 수의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수의사로부터 연락이 온 김에 녀석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논길을 거닐면서 나는 입으로 ‘박찬’을 되뇌며 22년 세월 저편으로 거슬러 올라 머릿속을 헤집어 보았다. 그를 떠올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찬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2년간 급장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을 뿐더러, 최고 학년 때마다 전교 학생회장도 놓친 적이 없었다.
그가 최고 대학인 S대학 법학과에 합격했을 땐, 읍내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버스터미널 앞 삼거리와, 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도로 곳곳에 합격을 축하하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도로를 가로질러 전봇대 사이에서 근 달포씩이나 나부꼈다.
고교 졸업식 땐, 군수를 비롯해 지역의 유지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그가 교문을 나설 땐, 교정을 가득 메운 까까머리 전교생들과 학부모들이 기립한 채로 우레 같은 박수로 배웅하기까지 했다. 이곳에 고등학교가 생긴 이래로 그때까지 36년 동안 S대학에 합격한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의 꿈은 판사였다. 급우들은 물론 대다수의 선생들도 그라면 능히 판사가 되고도 남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우측 눈의 시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외관상으로는 말짱했기에 본인이 먼저 말을 하지 않는 한, 타인은 알 길이 묘연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동창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학창시절의 그는 누구보다도 활달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그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해마다 교정이나 군의 종합 운동장에서 동문 체육대회가 열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동창들 중에도 누구 하나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농약을 다 치고 우사로 돌아왔을 땐, 이글거리던 태양은 기운을 잃은 채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아까 날뛰었던 녀석은 여전히 사료를 마다한 채, 간간이 날뛰었다. 새끼를 배어서 그런지, 은근히 측은한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한편으론 혹시라도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닐까 싶어 무리에서 떼어내어 따로 분리해두었다.
6시쯤 되자, 수의사는 자신의 오토바이에 낯선 사내를 태우고 나타났다. 아마도 ‘박찬’인 듯싶었다. 그는 중복도 되기 전에 벌써 피서를 다녀온 듯 피부가 온통 새까맸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비쩍 말라 있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더라면 그냥 지나쳤겠구나 싶을 정도로 바짝 말라서 흡사 댓개비 같았다. 은근히 예상하고 있었던 판사의 몰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단순히 티셔츠에 면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어서가 아니라, 왠지 전체적으로 그런 뉘앙스가 짙게 풍겼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수의사는 그를 데리고 내 앞으로 바투 다가오더니, 그를 가리키며 12년 동창생인 ‘찬’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청력이 많이 나쁜 듯하니, 크게 말하라고 했다. 박찬은 짙푸른 색의 안경알 너머로 나를 훑어보더니, 입을 쩍 벌리며 놀라는 기색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내 몸무게가 세 자리 수였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우측 동공이 내 눈을 응시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한참 치우쳐져 있었다.
“나, 찬이야.”
박찬이 먼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얼떨결에 그와 손을 맞잡긴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나는 퍼뜩 고교 시절의 그를 불러내어 실물 곁에 나란히 세워 놓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근차근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일치하는 데라곤 없었다. 불과 22년의 간극에 이렇게까지 허물어질 수가 있을까.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일을 겪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나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의사는 어느새 무리에서 따로 격리시켜 둔 녀석 앞에 쪼그려 앉아 외관을 요모조모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찬을 컨테이너로 데려가서 선풍기를 틀어주곤 수의사 곁으로 다가갔다. 수의사는 ‘구제역(口蹄疫)은 아니네.’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녀석이 더위를 먹은 것 같다면서 가방에서 주사침을 빼들더니, 나더러 녀석이 날뛰지 못하게끔 꼭 붙들어 달라고 했다. 주사를 놓은 수의사는 비닐장갑을 낀 손을 녀석의 자궁에 집어넣어 무언가를 더듬는 듯했다. 잠시 후 손을 빼낸 수의사는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으나,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는 기왕 온 김에 다른 녀석들도 점검해 봐야겠다면서 저만치에 있는 무리 쪽으로 재게 걸어갔다.
나는 컨테이너로 돌아와 까무잡잡한 찬의 팔을 쓸어내리다가 팔꿈치쯤에서 살짝 힘줘 보았다. 꼭 자라 등 껍데기를 만지는 듯 딱딱한 느낌만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원석아! 너 언제부터 한우 사육했냐? 십여 년 전에 얼핏 듣기로는 공단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더니….”
찬이 반바지 밖으로 비어져 나온 알통 박힌 내 종아리를 쿡쿡 눌러보더니 물었다.
“고향 산천이 그리워서 이태 전에 가족을 데리고 아주 들어왔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십수 년 동안 공업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IMF 때문이었다. 시퍼런 칼날에 제대로 한번 맞서 보지도 못한 채 맥없이 목이 잘렸다. 새 일자리를 구할 양으로 한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매번 허방 치기 일쑤였다. 먹고살기 힘들면 시골로 들어오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슬쩍 귀농했다. 그러고는 개울가의 논 한 켠에 우사를 지었고, 약간의 논과 한우를 사들여 사육을 시작했다.
“원석아! 나는 지금 산골 동네에 가봐야 하니까 느그 둘이서 그간 밀린 얘기를 실컷 나눠 봐라. 학창시절에 단짝이 해후했으니 할 얘기가 좀 많겠어. 글구, 나중에 밤늦게라도 소주 한 잔 하자.”
제 할 말을 마친 수의사는 헬멧을 뒤집어쓰더니 이내 시동을 걸었다. 그는 뿌연 매연 한 자락을 내뿜어놓곤 쏜살같이 사라졌다. 수의사는 산골마을에 출장이 잦아 근무 중에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수의사 또한 12년 동창이며, 그의 가축병원 사무실은 동창 연락사무소를 겸하고 있었다.
“생전 안 오더니, 어찌 왔냐? 하다못해 편지라도 좀 하지?”
나는 짐짓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안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 게. 오늘 이렇게 온 건, ‘청덕면 덕곡리’에 사는 누굴 꼭 좀 만나기 위해서다.”
나는 책장에서 이곳의 지도가 자세히 나와 있는 다이어리를 꺼내와 펼쳐놓곤 ‘청덕면 덕곡리’를 찾아보았다. 찬은 피폭자의 2세를 만나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지도를 보니 도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산골마을이었다. 그는 내가 묻어보기도 전에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너, 아버지 심부름 온 거로군. 참, 네 아버지는 어디가 아프신 거냐?”
초중고교 시절, 찬의 아버지는 읍내 저잣거리에서 시계방을 했다. 피폭자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가게 유리창 너머로 찬의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다.
“아버지의 심부름은 아니고…, 아버지는 폐가 안 좋으시다. 예전엔 각혈도 하셨어."
“…….”
서로의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은 뒤 궁금한 것을 몇 가지 물었더니, 예상했던 대로 그는 백수였으며, 결혼은 계획에 없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언뜻 밖을 내다보니, 산그늘이 우사를 뒤덮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볏짚을 가득 담아줄 양으로 밖으로 나왔다. 아까 주사를 맞은 녀석은 더 이상 날뛰지는 않았으나, 구시 가득 담아놓은 사료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녁도 먹을 겸 또 그동안 찬이 지내온 과정도 캐물어 볼 참으로, 나는 트럭 조수석에 찬를 태우고 7㎞쯤 떨어진 읍내로 나왔다. 갈비집이 즐비한 골목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가게마다 손님들로 북적댔다. 왁자지껄한 소음 탓에 찬과 말을 섞기에는 불편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읍내의 중심가를 뒤로한 채 강변 쪽으로 나왔다. 도중에 찬은 몰라보게 달라진 이곳저곳을 흘끔흘끔 기웃거렸다. 그는 입을 쩍 벌리면서 연신 우와! 우와! 탄성을 자아냈다. 규모가 제법 그럴싸한 아파트 단지 내에 드문드문 켜진 불빛을 올려다보더니 저긴 옛날에 뭐가 있었던 자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황무지’였다고 말해 주었다.
대형음식점이 띄엄띄엄 늘어선 강변도로에 도착하자, 강바람이 쏴 불어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끈적거리던 땀을 말끔히 닦기라도 한듯 상쾌했다. 우리는 광고치레로 색색의 조명등이 점멸하는 갈비 집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겉치레가 유달리 화려한 걸로 미루어 실속이 없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여졌다. 얼핏 전면 유리창 너머로 안을 엿보았더니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내들이 걸신들린 듯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미심쩍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우리는 찬바람을 내뿜는 에어컨과 최적의 거리에 자리를 잡아 마주앉았다.
“찬아! 소주 마실래, 맥주 마실래?”
“술은 안 마신다.”
찬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쇠고기 안심 5인분 하고, 소주 세 병에 사이다 하나요. 글구, 상추하고 파저리게는 접시마다 수북이….”
메뉴판을 들고 쪼르르 따라온 여종업원에게 주문을 한 후,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수의사의 번호를 눌렀다, 아직도 산중에 있는지, 연결은커녕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그의 집으로 전화해서 아내에게 위치를 알려주곤 들어오는 대로 연락하라고 했다.
“찬아, 내일 ‘청덕면 덕곡리’에는 내 트럭으로 가자. 이렇게 더운 날씨에 차도 없는 널 혼자 가게 내버려두면 경우가 아닌 것 같다.”
“네가 함께 가 준다면 나야 편하지만, 네가 일을 못할 탠데?”
“걱정 마. 22년 만에 만난 동창인데, 그 정도도 안 하면 내가 죽일 놈이지….”
여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을 잔뜩 들고 왔다. 나는 사이다를 따서 찬에게 따랐다. 찬도 소주를 따서 내게 그득 따랐다. 활활 타오르는 잉걸불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여종업원은 이쪽저쪽으로 잘도 구워댔다. 우리는 잔의 크기와 모양과 내용물은 각기 달랐지만, 한목소리로 “동창”이라고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소주와 사이다가 수차례 비워지고 분위기가 웬만큼 무르익었을 때, 내가 말했다.
"찬아! 귀는 언제, 어쩌다가 나빠진 거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봐.”
술이 몇 잔 들어간 탓에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아까부터 저만치 옆에서 걸신들린 듯 먹어대던 예닐곱 명의 사내들과 주인인 듯한 대머리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는 그들에게 싸우는 게 아니라, 친구가 귀가 어두워서 목청을 돋웠을 뿐이라고, 갖가지 제스처를 취해 가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곧바로 무리 중의 하나가 큼지막한 엉덩이를 뭉그적거리면서 일어났다. 사내는 얼굴을 한껏 구겨 볼썽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잔뜩 노려보더니,
“야 이 양반아, 우리도 어렵사리 마련한 자린데, 당신이 소리를 빽빽 질러대면 소통이 안 되지….” 했다. 나는 사내의 반말지거리 투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지만 참았다. 아니, 참았다기보다는 꼭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험상궂은 생김새며, 싸움에 정신을 팔린 듯한 태도, 그리고 나보다 한 뼘은 더 가로퍼진 어께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말대꾸를 하지 않자, 사내는 이내 되앉았다. 홀의 분위기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
대학 3학년 때의 여름이었다. 방학 중이라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하루는 점심결에 졸음에 겨워 나도 모르게 책상에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내이(內耳)의 감각이 내 것이 아닌 양 생경했다. 여느 때처럼 일상의 톤으로 내뱉는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내 귀로 전달되는 소리가 상대방이 내뱉은 말과는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했다. 직접 당해 보지 않고서는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받고, 보청기도 껴보았지만 별무효과였다. 의사는 이비인후과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면서 신경외과로 가 보라더군. 종합병원 신경외과에서 C/T 검사를 받았더니, 머릿속 청신경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병명에 관해서는 함구한 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더군. 답답했다. 한동안은 식구든, 친구든, 살아있는 생명체와는 마주대하기가 싫었다. 난생 처음으로 술과 담배를 입에 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주정을 부릴 땐, 언뜻언뜻 내면에서 나를 비웃는 영혼을 만나곤 했어. 어떤 환영을 본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자신이 애비노릇을 잘 못해서 그렇다고 자책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신경외과 분야에서 최고의 명의를 수소문하느라고 분주히 뛰어다니셨다. 머지않아 아버지는 의술의 경지에 든, 명의를 찾아냈다며 좋아하셨다. 명의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안광만은 환갑의 나이를 무색케 할 만큼 형형하고 날카로웠다. 알고 보니 예전에 꽤 유명한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교수 출신이더군.
나는 뇌와 중추신경 전반에 걸쳐 MRI 등 각종 정밀검사를 받았다. 뇌 속의 시신경과 청신경 그리고 경추에서 큼지막한 종양이 다량 발견되었다. 명의, 아니 지금부터는 주치의라고 부르마. 주치의는 시신경에서 발견된 종양은 태아 때부터 발생된 것으로 간주했다. 그 종양으로 인해 우측 시력을 잃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동공은 점점 바깥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묘하게도 주치의의 말은 딱 맞아떨어졌어. 서른 초반부터 우측 동공이 점점 바깥으로 치우치더니 지금은 볼썽사납게 쏠려버렸다. 지금 끼고 있는 이 안경은 볼썽사나운 눈을 감추기 위해서다.
청신경에 있는 종양은 최근에 발생했으나, 이 또한 점점 커지면서 결국은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더군. 그 시기는 쉰 살쯤이고. 주치의는 신경을 누르고 있는 종양들을 제거하더라도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더군. 술과 담배를 입에 대고부터 몸이 야위어졌는데, 주치의는 그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척수 전반에 난 종양이 계속 자라면서 혈관 협착증을 유발시킨 게 더 큰 요인이라더군.
“제 병명은 뭡니까?”
내가 주치의에게 물자,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종양의 발생 부위와 증세로 보아 ’중추신경형 신경섬유종증 Ⅱ종‘입니다. 이 병은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선천성 질환이며, 대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유전되는 질병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자식 중 반은 부모의 유전자로 비롯됐어요.”
주치의의 말에 나는 금세 얼굴색이 파리해지고, 또한 전신이 마구 떨려왔다. 주치의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러나 환자의 심리 따윈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는 듯이 더욱 소름 끼치는 예후를 늘어놓았다.
“‘신경섬유종증(Neurofibromatosis) Ⅰ종’ 환자는 국내에서도 이따금씩 발견되지만, ‘Ⅱ종’은 6~7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 아주 희귀 질환입니다 아직 정확한 발생 원인조차도 규명되지 않은 난치성 질환이죠. 운이 나빴던 때문이라고….”
주치의로부터 병명을 듣고 난 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전예후가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왜냐면 우리 양가에서는 ‘신경섬유종증’을 앓은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최, 최근의 3대 동안 우, 우리 집안과 외가에서는 시, 신경섬유종증을 앓은 분이 어, 없었어요. 다, 다만, 아, 아버지가 히로시마 피폭자입니다.”
주치의가 회진 때, 나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치의의 얼굴에서 까닭모를 수심이 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날 초저녁에 레지던트가 찾아와 눈여겨보라면서 일본어판 의학 잡지 한 권을 건네주었다.
검사가 완료된 후, 주치의는 경추에 난 종양으로 인해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다면서 은근히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척추에서는 아무런 증세도 느끼지 못했던 터라, 수술을 포기한 채 퇴원했다. 이후 나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까먹으며 10여 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30대 중반에 아버지에게 이끌려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의 모 단체에서 한국의 ‘피폭자협회’(이하 협회) 회원들에게 건강 검진을 받게 할 양으로 해마다 초청하는 자리에 나도 묻어가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요량도 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는 나를 측은히 여겨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하는 일부 회원들의 불만을 가까스로 무마시킨 후 데려갔던 것이다.
일본에 도착한 후, 정해진 일정에 따라 ‘히로시마’에 있는 피폭자 전용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 많아야 내 또래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환자복 차림으로 떼를 지어 거닐고 있는 게 아닌가. 문득 뭔가 괴이쩍다는 생각이 일어 우리 일행을 인솔하고 있는 안내원에게 물었다.
“저분들은 전후 세대인 것 같은데, 왜 피폭자 전용병원에 입원해 있나요?”
안내원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피폭자의 2세들인데, 선천적으로 질병을 지닌 채 태어난 이들이죠. 이 병원에는 피폭자의 2세들도 함께 입원해 있습니다. 저들은 그나마 경증 환자라 저렇듯 산책이라도 하지만, 병세가 심해 옴짝달싹 못하는 이들도 많아요.”
불현듯 십여 년 전, 레지던트로부터 건네받은 의학 잡지가 번뜩 떠올랐다. 레지던트가 눈여겨보라며 건네준 잡지의 표지에는 손때가 시커멓게 타 있었다. 책의 뒷부분에 피폭자에 관한 내용이 몇 쪽 나와 있었는데, 개중에 넉 줄짜리 박스 글이 내 동공을 오랫동안 잡아끌었다.
피폭자의 2,3세가 정상인에 비해 많이 발생하는 질병 : 빈혈 88배, 심근경색 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정신분열증 23배, 천식 16배, 갑상선 질환 14배, 위궤양 10배, 간암 13배, 백혈병 13배, 위암 17, 신경교종 13배, 척추 척수 종양 17배, 시신경과 청신경 종양 15배 등. 임상 실험 결과, 선천적으로 유전자의 면역체계가 교란된 것으로 확인됨. |
사실, 그때는 통 믿기지가 않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그러나 입원한 피폭자의 2세들이 선천적으로 질병을 지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에 사무치는 의문의 농도는 처음 잡지를 접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렇다면 내 질병의 근원 또한…. 에이, 설마! 아닐 거야….’ 그렇게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환자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상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나의 질병은 ‘신경섬유종증’이 아니라, 방사능으로 인해 면역체계가 교란된 유전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병세가 심각한 피폭자의 2세들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니 금방이라도 단말마의 비명을 남긴 채 절명할 것만 같았다.
일본을 다녀온 후, 나는 아버지에게 ‘협회’를 통해 선천적으로 병치레를 하고 있는 2세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협회’에 다녀온 아버지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의구심은 되레 드세게 뇌리를 감돌았다. 광복 후,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귀국한 피폭자가 무려 수만 명에 달하거늘, 정녕코 없단 말인가. 그때까지 건강 검진 차 일본의 피폭자 전용병원에 다녀온 ‘협회’의 회원만도 수백 명에 달했다. 시각 중증장애인이 아닌 이상 입원해 있는 젊은이들을 쉽게 목격했을 터인데, 아무런 의구심이 일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술, 담배와 단절했다. 피폭과 관련하여 일본의 의대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과 저서 등 자료를 수집하여 세밀히 훑었다. 2년이 지나자, 그동안 확신이 서지 않았던 피폭자의 2세와 관련된 질병들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손에 잡혔다.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질병은 단연코 ‘신경섬유종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피폭자의 2세들을 만나보기 위해 그들의 부모가 사는 곳을 아버지에게 여쭤보았다. 물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아버지는 모른다고 일갈하며 된통 나무랐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협회’로 찾아가서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제야 푸념을 늘어놓듯 탄식하며 알려주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니, 건강하지 못한 피폭자의 2세들의 삶은 그야말로 황폐했다. 그들은 내륙 깊숙한 오지에서 병고와 생활고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었다. 저 지경이 이를 정도면 일선 공무원들은 충분히 감지했을 터인데, 왜 그냥 방치했을까. 일선 공무원들이 타성에 감염되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들을 만나본 후, 나는 장고 끝에 피폭자의 몸이 성치 않은 2세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를 설립해 모양새를 갖추어야 했고, 회원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러나 회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계획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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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숯불갈비 집 벽면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홀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우리 말고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대머리 남자가 아까부터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끔흘끔 곁눈질했던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이야기를 서둘러 갈무리한 걸로 미루어, 찬도 대머리 남자의 곱지 않은 시선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계산대에서 셈을 치르고 막 출입문을 나서려는데, 가게로 들어서는 수의사와 마주쳤다. 찬과 나는 수의사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단출하게 차려진 소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새벽 2시가 지나자, 아까 갈비 집에서부터 술을 어찌 마셔댔던지 내뱉는 말마다 취기가 어린 게 느껴졌다. 나는 정신이 맑아지면 트럭을 몰고 집으로 갈 참으로 소파위에 드러누웠으나, 그예 하염없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청덕면 덕곡리’ 마을은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세상과는 단절된 듯 적막했다. 다 합쳐 봐야 채 서른 가구도 안 되었고, 전부 낡은 기와집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대문이 반쯤 열려 있는 집이 나오자, 찬이 척 들어섰다. 집 안에는 백고머리에 눈이 움푹 꺼진 노인 하나가 곰방대를 물고서 청마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찬이 다가가 ‘이호철 씨’ 댁이 어디냐고 정중히 묻자, 노인이 찬의 행색을 내리훑더니 곧바로 대문 밖으로 이끌었다. 노인은 검지로 까마득히 먼 산기슭을 가리키며 저기에 산다고 했다. 노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움막 같은 게 하나 보이는 듯도 했다.
“논둑길에 독새가 만으니 조심하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서너 걸음쯤 떼었을 때, 등 뒤에서 노인의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와 순간 뜨악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논둑길밖에 없었는데, 작은 물고랑을 끼고 있었다. 물고랑과 논둑길 사이에는 내 어깨까지 웃자란 거친 들풀이 무성했다. 방금 노인의 말을 들은 터라, 머리칼이 꼿꼿하게 곤두서는 것 같았다. 조심조심 걷다가 무심코 눈길이 바로 옆에 있는 침침한 산기슭을 향했는데, 돌무더기가 여럿 보였다. 자꾸만 돌무덤이 연상되어 등골이 오싹했다.
한참을 걷고서야 도착해보니 대문도, 돌담도, 뭣도 없었다. 하다못해 탱자나무 울타리조차도 없었다. 가파른 산비탈을 지고 앉은 초막집이었다. 황토로 미장을 한 외벽은 세월의 더께가 묻어났고, 굵은 금과 잔금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반쯤 열려있는 방문으로 다가가자, 역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방 안을 엿보았더니 쉰은 지났을 법한 남자가 누워 있었고, 여든 안팎의 노파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남자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남자는 한눈에 척 봐도 병세가 완연했다. 노파는 얼굴에 깊은 골이 여럿 잡혀 있었고, 또한 시력과 청력도 나빴다. 알고 보니 둘은 모자간이었고, 병세가 짙은 남자가 ‘이호철’이었다
찬이 노파의 귓가에 대고, 자신은 피폭자의 2세 환우이고, 지금 2세 환우를 규합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노파는 말귀를 못 알아들은 듯, 머여? 머?… 하며 계속 되묻었다. 찬은 가방에서 회원 가입서와 인주를 꺼내들었다. 찬은 한손에 볼펜을 쥔 채로 노파에게 아들의 나이와 생년월일을 물었다. 노파는 머여? 머? 하며 계속 되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마흔 중반쯤의 사내가 지게작대기를 들고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사내는 숨이 찬지 거푸 숨을 몰아쉬었는데, 몹시 성난 표정이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구레나룻이 얼굴을 뒤덮고 있어 험상궂기까지 했다. 그는 얼굴을 심하게 구겨서 찬과 나를 번갈아가며 째려봤다. 나는 사내의 까닭 모를 거친 행동이 의아했지만, 겁결에 서너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찬은 미동조차 없었다. 갑자기 사내가 찬에게 와락 달려들어 두 손으로 멱살을 움켜쥐곤 뒤흔들더니,
“몇 년 전부터 비쩍 마른 놈 하나가 피폭자의 병약한 2세들을 찾아다니면서 선동한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네놈이군. 너 이 새끼, 오늘 잘 만났다” 하며 대뜸 윽박질렀다. 찬은 마치 발돋움을 한 것처럼 반쯤 쳐들린 채 버둥거렸다.
“다, 당신은 누구세요?” 찬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찬의 멱살을 드세게 움켜쥐며, “이호철 씨 동생이다. 너, 정체가 뭐야?” 하면서 우악스레 닦달했다. “피폭자 2세입니다.” 라고 하자, 사내가 피식 조소를 흘리더니 “지랄.” 하며 비아냥거리고는 힘껏 밀쳤다. 그 바람에 찬이 뒤로 훌러덩 자빠졌다. 사내는 다시 작대기를 주워들었다. 사내가 찬의 머리 위로 작대기를 높이 쳐들자, 찬은 눈동자를 바르르 떨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험악한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참다못해 사내를 향해 돌진했다. 사내를 번쩍 들어 땅바닥에 패대기친 후, 배를 깔고 앉아 작대기를 빼앗으려하자, 사내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얼마 못가 사내는 손을 스르르 놓았다. 사내의 표정이 금세 하얗게 질렸다. 언제 왔는지, 찬이 내 곁에 서 있었다. 찬이 사내 옆에 바짝 쪼그려 앉아 차분히 설명하자, 사내는 고개를 외로 틀었다. 찬은 계속 시도했고, 그럴 때마다 사내는 흘끔흘끔 내 눈치를 보며 뿌리쳤다. 찬은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사내는 좀처럼 수긍하지 않았다. 결국 찬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호철 씨 동생이라는 저 치 말야, 제대로 듣지도 않고…, 나 참!’
조붓한 논둑길을 걸어 나오면서, 푸념조로 혼잣말을 내뱉었더니, 앞서 걷던 찬이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은 채로 의외의 말을 던졌다.
“원석아, 요 근래에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어.”
생각지도 못했던 찬의 말에 나는 의아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부지기수였다니….
“그래, 지금까지 가입한 회원은 모두 몇이냐?”
내 질문에 한동안 머뭇머뭇 망설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3명.”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는 흘끔흘끔 찬의 표정을 살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평온해 보였다. 나는 아까 논둑길에서 나에게 툭 던졌던 말에 대해 물어 보았다.
“찬아, 아까와 같은 그런 끔찍한 일이 부지기수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찬은 내 질문에 긴 한숨만 내쉴 뿐, 대답이 없었다. 나는 대답을 채근할까 하다가 말하기 어려운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싶어 관두었다. 신호 대기 중에, 찬이 ‘D시 22km’라고 쓰인 도로 표지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서울로 가야겠다며 곧장 ‘D시’로 가주기를 바랐다.
찬이 탄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와 대로에서 빠르게 미끄러지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트럭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찬에게서 ‘부지기수’에 대해 못다 들은 채, 떠나보낸 게 못내 아쉬웠다. 1시간쯤 지나자, 셔츠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슬픈 곡조를 토해냈다. 찬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회원을 모집할 양으로 지난 5년여 동안 2세 환우를 찾아다녔다. 대부분이 병고에 시달린 채 건강한 형제들과 한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들을 만나 회원가입서를 꺼낼라치면 건강한 형제들이 불쑥 나타나 내 멱살을 잡고 흔들기 일쑤였다. 작년에는 그동안 모집한 60여 장의 회원가입서를 환우의 형제들이 집으로 몰려와 찢어발기었다.
내 형제들 또한 여느 건강한 2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5년여 전, 2세 환우들을 규합한 후 우리의 정체를 커밍아웃 하겠다고 했더니, 기를 쓰고 반대했다.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해서 자신의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면, 형제간의 의마저도 끊어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찬이 보낸 문지메시지를 눈에 담곤 폴더를 닫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24시간 동안 찬과 말을 많이 섞은 건 아니지만, 말을 할 때마다 고함을 내지른 통에 목구멍이 욱신거렸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문득, 어제 녀석의 자궁에 손을 넣었던 수의사의 어두운 표정이 떠올라 곧장 우사로 향했다. 봉긋한 녀석의 배에 가만히 귀를 대어 새끼의 숨결을 느끼려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었다. 녀석이 화들짝 놀라 배를 출렁이며 날뛴다. 찬이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원석아! 만약 네가 피폭자의 건강한 2세이고, 피폭의 유전으로 인해 희귀병을 앓는 형제가 자신의 정체를 커밍아웃 하겠다면, 너는 어떡하겠어?> -끝-
첫댓글 한니발님, 정말 오랜만에 작품을 올리셨군요. 자전적 소설인가요. 감동입니다.
앗, 감사합니다, 행전 선생님.
소와 관련된 부분만 자전적이고, 다른 부분은 공상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피폭'의 유전은 일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