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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독일의 판화가 마테우스 메리안이 그린 양이 열리는 나무 삽화. 아래에 있는 풀에 닿지 못하는 양이라는 신화를 담고 있는 당황스러운 그림이다(춤추는 식물 188쪽)
이런 이야기의 기원은 1357년 존 맨더빌이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여행기에 담았다는 맨더빌여행기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에는 목이 없는 사람, 한 발만 있는 사람, 여자들만의 전사집단 아마조네스, 개머리를 한 사람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 있었을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아모조네스의 경우) 아주 엉터리 같은 중국의 산해경 같은 류의 내용도 많다. 귀족인 맨더빌 경이 직접 썼다기 보다 어떤 수사가 맨더빌경의 이름을 도용해 썼다는 의견이 많다.
여기에 나오는 양이 열리는 나무에 대해 알아보면 당시에는 동물과 사람 또는 식물과 동물의 잡종 즉 키메라가 있을것이라고 상상한듯 하다
위의 내용을 보면 키타이란 몽고와 같은 유목민이 지배한 초원지대를 말하는것으로 초원지대를 지나면 신기한 존재들이 많이 있다는 상상력의 결과물인듯 하다.
양이 열리는 나무에 착안해 1605년 프랑스 식물학자인 클로드 뒤레는 자신의 책에 이를 창조시에 이미 있었고 고대 히브리어 문서에서 아드네이 하세뎃 즉 "밭의 제왕"이라고 하였다. 양의 형상을 하고 배꼽에서 나온 줄기로 땅에 뿌리를 내렸다. 양은 이 몸통 줄기 또는 줄기의 길이가 허락하는 반경 내의 모든 목초를 뜯어 먹을수 있었고 그런 뒤 죽는다고 주장했다.
1578년 프랑스 작가 기욤 드살루트는 이를 아담이 에덴동산을 거닐때 있던 식물이라고 하며 "이것은 앞뒤로 몸을 돌릴 수 있는 날렵한 식물이고
이것은 움직이지도 앞으로 가지도 못하는 둔한 짐승이며
이것은 잎이나 가지도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이고
이것은 욕망이나 성욕도 없거니와 말을 할 수도 없는 짐승이라네
이것은 식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식물이고
이것은 가느다란 씨앗으로 뿌려지는 경탄할 만한 짐승이라네"라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일부 자료에서는 유럽인들이 목화를 직접 보지 못해서 들려오는 소문을 듣고 목화를 상상하다보니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목화는 기원전 3000년전부터 인도지방에서 재배되었고 중국에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재배되었고 페르시아를 통해 전달되어
유럽남부와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시기부터 목화를 재배해 옷감을 만들었다는것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이미 목화를 재배해 옷감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목화를 몰랐다고 할수 있을까?이집트의 목화는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최고급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목화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서 재배되어왔다. 품질과 생산량의 문제이지 유럽에서 재배 되었었다. 목화는 서리가 내리는 지역에서도 품종에 따라 재배할수 있다.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좀더 본격적으로 목화를 통해 섬유를 생산했다는 것이지 그전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건 유럽인들이 좀더 나은 양털과 좀더 나은 목화종에 대한 욕망에 의한 상상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의사인 캄프퍼르가 기록한 것에" 풀을 먹고사는 식충식물에 대한 조사는 성과가 없지만 대신 카스피해 근처에서 유난히 가죽이 부드럽고 털이 고운 양 품종을 발견했다"는 걸로 봐서 알수 있을듯 하다.
자기네들이 사는 유럽에는 양이 열리는 나무는 없지만 새가 열리는 나무가 있다는 내용은 자기들이 잘 가보지 못한 스코틀랜드 북부의 기후가 험하고 살기 어려워 쉽게 접근키 어려운 어떤 바닷가에 갈매기가 열리는 나무가 있을것이라는 상상력의 결과물인듯 한다.
맨더빌 여행기는 자신이 직접 본것을 적었다고 했지만 대부분이 원거리를 이동하는 무역상들의 허풍이나 항간에서 떠도는 막연한 환타지를 기록한듯 하다.
중세 유럽인들의 모험심과 상상력과 그들의 허풍은 대단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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