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일하러 나가자 나 혼자 또 천자암으로 간다.
송광사로 가 주차비와 입장료를 내고 불일암부터 느리게 오를까 했는데
어느새 차는 천자암 비탈을 오르고 있다.
한 시간 가량 내려가 침계루만 보고 바로 비림을 본다.
커다란 이 비들은 돈과 기술과 예술의 경지가 다 있는 듯한데
지나는 이들은 그저 돌덩이 서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성보박물관에 들러 빙 둘러보며 땀을 식힌다.
구산선문 탑전을 찾는데 바로 아래다.
편백숲 입구에 불일암 안내판이 보인다.
구산당 비와 부도를 보고 내려와 불일암으로 올라간다.
차가 다니는 길보다 호젓하다.
여성 둘이 내려오고 더 가니 두 여성이 느릿하게 올라간다.
대숲 오르막에서 앞질러 가니 또 사람들이 내려온다.
불일암은 여전히 꺠끗하다.
텃밭에 심어진 작물을 보며 나의 작은 텃밭을 생각한다.
자정국사부도르르 보고 내려와 감로암쪽으로 걷는다.
숲길은 잠깐 오르막이다가 시멘트 길을 만난다.
가파른 시멘트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네개의 검은 비석이 나타난다.
하나하나 앞뒤를 직어본다.
월정 정주상의 글씨가 단아하다.
(못 들은 이름인데 찾아보니 서예를 독학하였고, 초중고에서 쓰는
붓글씨 교본을 만든 분이다. 경남 함양 생)
공사 중인 감로암을 거쳐 율원 옆의 부도전에 들어간다.
나무 막대기 걸린 문을 풀고 들어가 보조국사비와 사적비를 대충 본다.
아랫쪽은 마모가 되었다.
걸은 지 채 두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힘들다.
송광사 경내는 들어가지 않고 일반인출입금지 후원 앞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목우정과 수석정을 본다.
수석정 아래로 옹색하게 내려가 계곡을 따라 쉴 곳을 찾는다.
어느 새 12시가 넘었다.
12시 반에 계곡 물 아래 탈썩 배낭을 벗는다.
양말을 벗고 물에 담그니 물집이 아문 곳이 시원하다.
붉어지긴 했으나 일주일만에 무등산 둘렛길의 후유증이 멀어져 간다.
아니 몸음 지쳐 보리밥집에 가 먹으려던 점심을 포기한다.
캔맥 하나에 감자 세알, 오이와 수박 몇조각으로 점심을 먹는다.
가끔 등산로에 사람들이 지나간다.
1시가 다 되어서야 챙겨 일어난다.
굴목재까지 오르는 길이 힘들다.
끼니를 해결했으니 힘이 나야 할텐데, 술 캔맥 하나로는 부족했던가?
감자도 세알이나 먹었는데.
굴목재에 오니 1시 50분이 다 되어간다.
20분 정도 내려가면 보리밥집인데 포기하고 천자암봉으로 올라간다.
천자암봉에서 산너울들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천자암의 쌍향수를 지나 차로 오니 14시 50분이다.
바보에게 수육 삶았느냐고 물으니 이제 막 와 전화 중이었다고 한다.
감자를 더 먹고 수육을 삶으라 해 야영을 준비하려는데,
집 수리를 할 사람들이 6시에 보러 온다 하여 성질을 누르고 잠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