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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권고함과 블레셋에 대한 심판
습 2:1-7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4 가사는 버림을 당하며 아스글론은 폐허가 되며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나며 에그론은 뽑히리라
5 해변 주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6 해변은 풀밭이 되어 목자의 움막과 양 떼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며
7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사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라
습 2:1-7 / [돌아서거라] 너희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자들아, 흉악한 폭행도 두려운 줄 모르고 감행하는 모든 자들아, 이제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굴복하여라! 2) 주께서 자신의 판결을 집행하시기 전에, 때를 놓치지 말고 돌아서거라. 하루라는 시간은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처럼 가볍게 흘러 간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주께서 심판을 시작하시는 날, 주께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자신의 분노를 너희에게 쏟아 부으시는 그날이 오기 전에, 너희는 돌이켜라! 3) 이미 주께 복종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온 사람들이여, 주님 앞에서 올바른 일을 계속하고 항상 겸손하게 사시오! 그러면 주께서 진노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날, 혹시 주님의 보호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4) [서쪽의 적인 블레셋] 가사 성읍은 주민들이 모두 피난하여 아주 버림받은 마을이 될 것이며 아스글론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아스돗 주민들은 백주에 기습을 받아 쫓겨날 것이며 에그론은 언제 그런 성읍이 있었느냐는 듯이 사라질 것이다. 5) 너희 해안에 거주하는 자들아, 너희 그렛 섬에서 침투해 들어온 자들아, 너희가 멸망할 날이 가까이 왔다. 주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같이 결정을 내리셨다. `블레셋 족속들이 사는 땅아, 내가 너를 쳐서 더 이상 네 땅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하겠다.' 6) 그 해안 지역은 초원지대가 되어 목자들이 양 떼를 몰고 돌아다닐 것이며 밤에 양이 자는 우리들을 지어 놓을 것이다. 7) 해안 지역 전체가 유다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유다 지파에서 살아 남은 소수가 거기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의 버려진 집들에 들어가 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친절하게 찾아가 그들을 다시 번영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회개하라고 요청하시며 블레셋을 향하여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회개에 대한 권고(1-3) 하나님께서는 양심이 무디어져 우상을 섬기는 유다 백성들이 죄악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먼저 수치를 모르는 자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수치를 모르는 자들은 자신의 죄악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렘 6:15) 양심이 무뎌져 아무런 감각이 없는 가증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유다 백성을 의미합니다(시 135:15-18). 그래서 이들을 향해 '모일지어다'라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그 수치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겸손한 자들에게도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주의 율법을 따랐던 겸손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회개의 열매를 계속 맺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서 피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사 26:20; 암 5:15).
블레셋에 대한 두 가지 예언(4-7) 블레셋은 유다 서쪽에 위치한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가드 이렇게 5개의 성읍들이 동맹을 이루고 있었습니다(수 13:3).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며 우상 숭배를 행하였던 이들을 향하여 예언합니다. 가사는 버림받았고 아스글론은 폐허가 되었으며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나며 에그론은 뿌리 채 뽑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또한 그렛 족속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라고 말하며, 다시는 회복 할 수 없도록 그 땅 거민이 끊어지도록 멸망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겔 25:15-17). 유다는 블레셋이 멸망 된지 40년 후에 멸망했으며, 70년의 포로기간이 지난 후 1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살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멸망을 당하는 중에 가드가 그 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주전 627-626)는 이미 가드가 없어진 후이기 때문입니다(암 6:2). 또한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이었던 해변은 목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초장이 되어 목자들의 움막과 양 때의 우리가 될 것이며 그 땅에는 포로에서 돌아올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훈련시키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당신은 하나님의 어떤 징계와 훈련을 받고 있습니까?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25)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8)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 설 교 >
여호와를 찾으라
습 2:1-3 / 이삼규 목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 55:6-7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 있고 가까이 계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만나주실 까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돌아올 때 만나주십니다. 다시 말씀드려 회개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스바냐 선지자는 회개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합니까?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권고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정치하는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심지어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감 선거마저 부정으로 얼룩져 제주도에서는 당선자와 출마자 모두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빚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수치스러운 그런 모습을 감추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수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아직도 양심과 도덕성이 그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한번씩 엄청나게 큰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뻔뻔스러운 모습들을 봅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도 없고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단순 범죄자들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오히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큰 사건의 주인공들은 검찰청에 출두를 한다던지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당당하고 너무나 뻔뻔스러운 그런 모습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당당하게 포토라인에 서서 사방을 한번 둘러보고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이 과연 양심이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은 항상 윗물이 맑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도 맑지 못하고 더럽고 추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항변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이 수치를 모르는 것이 큰일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스바냐 선지자의 권고를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1절).
1절에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스뱌냐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워 왔음을 말씀하면서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장에 들어와서도 1절에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라는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유다나라를 향해서 하나님의 선지자 스바냐가 2600년 전에 외쳤던 외침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을 섬겼고 그들은 자기들의 정욕대로 마음대로 살았던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이 스뱌냐 선지자의 이런 외침을 통해서 이 유다나라에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가 되는 아주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 유다 백성들은 선지자가 외치고 부르짖어도 그들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그들 패역한 심령들, 완악한 유다 인들은 오히려 더 하나님 앞에 패역한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죄에 대해서 너무나 무감각한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2600년 전 스바냐라는 선지자가 외쳤던 시대에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철면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철면피(鐵面皮)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십니까? 옛날 중국에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었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주 파렴치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거짓말도 하고 모함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했답니다. 또 그렇게 살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두들겨 맞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옛날 버릇을 못 고치고 계속 그런 행실을 하고 다녔기에 주변의 사람들은 이 광원의 얼굴은 가죽의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과 같다고 말한 데서 바로 철면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사회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인정받으려고 하면 철면피적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TV에 자주 나오는 정치가들이나 이 사회에 지도자들을 보면 뻔뻔스럽기가 짝이 없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양심을 가진 사람,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가? 자기 죄가 다 노출되고 다 드러났는데도 오리발 내밀고 뻔뻔스럽게 변명하고 말을 바꾸고 남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더 큰소리치고, 수 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망하게 만들어 놓고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그런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왔습니다. 소위 사회적으로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런 참 기가 막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2절에 보면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우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성리 학자였던 이이와 이황은 각기 ‘사단 칠정론’에서 인간에게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수치지심’(羞恥之心)이라고 합니다. 수치지심이 없다면 그야말로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은 ‘원치 않는 백성’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수치’라는 말은 원어 성경에 ‘카사프’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간절히 바라다, 열망하다, 사모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치를 모른다는 말은 ‘원치 않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이름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나 호의를 도무지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모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결코 사랑스럽지 못한, 그들에게 친밀감이라고는 가질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본래는 그런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단 11: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나 지금은 호감이 가지 않고 바람직하지 못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자고로 자기 자신의 적나라한 부조리와 부패성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한 후 자신의 이 같은 행위에 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나이다.’(시69:7)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가장 사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의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사람입니다.
유 1: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모이라고 하십니까? 모여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2. 언제 모여야 합니까?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 계실 때가 있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언제 모여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1.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모여야 합니다.
어떤 명령입니까? 유다 백성들이 지은 죄 때문에 멸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말합니다. 그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성취됩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모여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가서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왕으로부터 백성들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모여야 합니다. 긴급한 상황입니다.
2. 광음이 겨 같이 날아가기 전에 모여야 합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고 말합니다. 광음은 지나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갑니까? 겨 같이 날아간다고 말씀합니다. 방아를 찧을 때 알곡은 남고 겨는 날아갑니다. 이와 같이 시간은 날아갑니다.
모세의 시편을 보면,
시 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10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연세가 많으신 성도님들이 계셔서 죄송하지만 요즘은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지금은 회개를 뒤로 미룰 때가 아닙니다. 지나가는 세월을 결코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광음이 겨같이 날아가기 전에 모여야 합니다.
3. 여호와의 진노(=분노)가 임하기 전(=이르기 전)에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계는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멸망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임하기 전에 모여서 회개해야 합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십니까?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모이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모여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까?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1.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부끄러움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자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개혁을 시도하게 된 것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거부하고 어떤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은연중에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베드로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면서 철저하게 깨달은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선행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이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우리 민족의 살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살길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십시오. 그분을 부르십시오.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분이 분명히 용서하실 것입니다.
2. 공의를 구해야 합니다.
호 12: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찌니라
암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암 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당연히 공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공의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3. 겸손을 구해야 합니다.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겸손을 구하는 것은 곧 바로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십니다.
성 어거스틴에게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그러면 두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시 세 번째로 기독교의 큰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 번째도 역시 겸손이라 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에 반대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악덕 가운데 제일 근본 되는 덕목입니다. 교만은 악덕의 어미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근원이 됩니다. 기독교의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비굴하거나 굽실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오히려 이 우주에서 가장 자유인의 사람이며 왕자이며 공주 같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신사도와 숙녀도는 기독교 신앙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특별한 영적인 왕족이고 귀족입니다. 참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지어 주신 대로의 자기 자신을 알고 하나님이 지어 주신 대로의 자기 자신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가 그대로 하나님의 저울에 자기를 달아보고 하나님의 평가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부르짖었듯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회개하고 부르짖었듯이 지금은 모여서 회개할 때입니다. 여호와를 찾을 때입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고 겸손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셔서 어떤 분노에서도 숨김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스바냐 2장 1-3절 / 이한규 목사
< 미리 힘써 대비하라 >
스바냐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에게 선포했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2절).” 이 구절에 여러 번 나오는 ‘전에’라는 표현은 때와 시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때와 시간의 가치를 높이려면 땀 흘려 준비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간과 세월을 아끼는 것이 지혜다. 특히 시대가 악하게 느껴지고 불안감이 클수록 시간을 아끼라.
누구에게나 여러 번 오는 축복 기회를 누가 붙잡는가? 소리 없이 준비하는 사람이다. 준비가 없어서 찾아온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매우 아쉽게 된다. 더 늙기 전에,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부족한 현실 중에도 새롭게 출발하라. 내 나머지 삶에서 가장 빠른 시간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을 낭비하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바닷가로 낚시하러 갔다. 아들을 바위에 앉혀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낚시하는데 고기가 잘 잡혔다. 너무 신나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신없이 낚시하는데 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때서야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급히 아들을 앉혀 놓은 바위로 달려와 보자 바위는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때 아들은 애타게 아빠를 불렀을 것이다.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한다면 인생 낭비가 된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더 늙기 전에 해야 할 일, 그리고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축복 전이나 심판 전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잠깐의 시간 차이가 생사의 차이로 연결될 수 있다. 암도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시킬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만약 해야 할 일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현실 속에서 소리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마주친 현실을 잘 극복할 수 있다.
<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스바냐는 계속 선포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3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왜 시련이 생기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짐으로 더욱 큰 축복을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서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예외 없이 생긴다. 더 나아가 시련에서 제외되지 않는 삶을 예상하고 살리.
시련은 다가올 불행의 예고도 아니고 현재의 불행의 증거도 아니다. 시련은 ‘축복이 변장한 것’이거나 ‘축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어진 것’이다. 사람은 시련 중에 겸손해지고 진지해지고 내가 최고라는 치명적인 생각을 버린다. 그 자체가 큰 축복이다. 성도에게도 시련은 꼭 필요하다. 시련이 없으면 믿음과 삶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성도가 시련에 처하면 하나님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자신의 신앙도 점검해 보면서 때로는 질문한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의 땀과 눈물과 정성은 헛된 것입니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이 있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진지한 진국 대화가 오가는 과정을 거쳐 점차 진국 성도가 되어 간다.
고독과 시련 중에 진지해지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면 늘 감사와 감동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시련을 허용하고 그 시련을 통해 성도를 빚어 가신다. 사람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진지해지고 겸손해진다. 그것이 시련과 고독의 계절이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련 중에도 겸손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앞세워 살면 조금 더 성숙해지고 성공과 성취의 때도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하나님께 숨김을 받는 자
습 2:1-3 / 김홍도 목사
새해에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 위에 지난 해보다 갑절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스바냐 선지는 유대왕 요시아 때의 예언자로서 선한 왕이었던 히스기야 왕이 죽은 후 므낫세, 암몬, 두 왕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대단히 타락하고 문란했던 때의 선지자입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부패했기 때문에 만일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바벨론 나라가 들어와 이스라엘을 치는 무서운 재앙과 심판이 임하게 되리라고 하면서 이 무서운 심판과 재앙의 날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전(前)"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오는데, 저는 이 "전에"라는 말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혜로운 자식은 부모가 화가 나서 벌을 주려고 하면 미리 눈치채고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고백하고 빕니다. 그러면 벌을 주려 하다가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식은 끝까지 버티다 결국에는 벌을 받게 됩니다.
여기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심판이 이르기 전에 어서 속히 회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각성하고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두번째의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에"라는 말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때, 구원의 때가 바람에 겨가 날아가듯이 지나가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이고,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하기 전"이란 말도 같은 말인 것입니다. 미리 미리 각성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숨김을 받고 보장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스바냐"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 숨김을 얻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스바냐의 축복이 금년에 여러분께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숨김을 얻는다고 하면 그 이상의 축복이 없습니다.
지난 해는 호랑이의 해라서 그랬는지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부인의 죽음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기도 했습니다. 석유파동 및 그에 따르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 등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75년은 토끼 해인데, 토끼와 같이 평화롭고 맑고 깨끗했으면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벌써부터 서광이 비치기보다는 태평을 짊어진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심한 경제적인 불황을 예측하고들 있고, 식량과 연료가 모자랄 것이라고도 하며, 정치적으로도 불안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 종교와 언론의 자유도 위협을 받고 있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쟁취한다고 하면서 실은 공산당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선동과 혼란을 일삼는 무리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 앞 길이 퍽 어두운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북괴의 붉은 마수는 전쟁할 준비를 다 갖추어 놓고 남침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만이라도 정신차리고 기도해야 되겠는데 세상의 정치인 못지 않게 금력과 권모술수만 일삼고 분열을 초래하니 종교적으로도 부패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토끼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울 것만 같아 염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다 베이루트의 한 점장이까지 민심을 소란케 합니다. 금년에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다느니, 큰 지진으로 호주가 지표에서 없어진다느니, 포드(Ford), 모택동, 월슨(Wilson) 등 많은 지도자가 죽는다느니 하여 민심을 더욱 소란하게 합니다.
실상은 성경 말씀에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와 오면 무서운 환난과 재앙이 있겠다고 예언되어 있는데 모든 면으로 볼 때에 말세의 징조가 보이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에게는 "스바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숨김을 받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한 긍정뿐이지, 부정적인 삶을 살지 말고,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면서 더욱 경건하며 깨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날, 곧 본문에 기록된 말씀대로 진노의 날, 재앙의 날이 임하기 전에 우리 성도들은 경성하고 회개하며 또 하나님께 간절힌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도 실망을 주고 낙심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여러분을 더 가까이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도 이 말씀을 한 것이 낙심시키고 절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기 위함이며, 두려워 떨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들의 죄를 두려워하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경고의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 스바냐 선지를 통해 하나님께 숨기움을 받고 보호받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해야 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의 규례를 특별히 지키라고 한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장을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혼탁하고 어두운 세상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꽉 붙잡고 지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믿고 지켜 나가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계명 가운데에 많은 말씀이 있지만 중요한 계명을 두 가지로 추린다면 다음 말씀으로 대신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있는 모든 계명을 줄이고 줄이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첫째 계명에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마음을 다하여"라는 말은 중심을 다 기우려서 사랑하라는 것을 뜻하고, "목숨을 다하여"라 함은 생명 전체를 다해서 사랑하라는 말이고, "뜻을 다하여"라는 말은 생각과 지식, 지력을 총동원하라는 말이고, "힘을 다하라"는 말은 육체와 영혼과 물질의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육체와 영혼의 힘과 아울러 지(知) 정(情) 의(意)의 인격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도 사랑해야 되지만 하나님을 이들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고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보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실제로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는다"라고 했고, 요한복음 14장 15절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한 까닭입니다.
둘째 계명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 말씀 중의 "이웃"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다 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웃이 부유한 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다 사랑해야 할 것이고, 어떤 일에 실패했거나 성공했거나 또 사업의 경쟁자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내게 손해를 주고 나를 핍박하는 원수일지라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사랑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패터슨(C.H. Paterson)이라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당면한 큰 문제를 4p로 표현했는데, 그 첫째가 빈곤(Poverty)이고, 둘째가 공해(Pollution), 셋째가 인구(Population), 넷째가 대인관계(Personal relation)라고 했습니다.
빈곤해지고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사랑이 식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서로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살고 복받는 길은 위의 명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2.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을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 겸비하고 낮아져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교만하면 환난을 당하고 멸망합니다. 잠언 l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5장 5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인들 중에도 가난하다가 돈을 좀 벌거나, 명예가 생기거나, 혹은 기도 좀 하게 되고 믿음이 생기면 교만해져서 실패하게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겸손이라 함은 나의 부족과 결핍, 무가치함,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못 산다는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의지하고 사는 가운데 임마누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고, 6절에도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명예나 물질이나 쾌락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찾으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구하라는 말도 되고, 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앙모하고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에스겔 22장 30절에 보면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불로 그 백성들을 멸하려고 했을 때 그것을 가로막아 하나님 앞에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여 주려고 했으나 아무도 없었기에 멸망시키고 말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이 백성이 타락하고 부패했다 할지라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막아 서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공산당의 남침의 위협도, 재난도 막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이야말로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고,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할 해인 줄로 생각합니다.
<4. 공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5:14-15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생활을 하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부터 좀 더 바르고 진실하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10명이 없기 때문에 멸망했는데, 이 땅 위에 의인이 많으면 많을 수록 아무리 죄악이 많다 해도 그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노아는 그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외국에 종으로 팔려가고 노예 생활도 하고 감옥에 들어갔었고 또 이성의 유혹도 받았지만 의롭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활을 했고 자기 민족도 구원하게끔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정한 일을 하고 죄를 범할지라도 우리 성도들만은 좀더 진실하고 바른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안창호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꿈속에서라도 진실을 버리지 말라. 꿈에라도 거짓했거든 애통하며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간디(Gandy) 옹은 말하기를 "나라를 유익하게 한다 할지라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익하게 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라를 팔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할 때는 예 할 수 있고, "아니요" 할 때는 아니요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예, 아니요를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신령한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좀더 바르고 진실하고 의롭게 살아서 이 나라가 부패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소금과 빛의 직분을 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할 때에 좋은 믿음을 지닌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1975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찾으며, 또 겸손과 공의를 구하여서 하나님께 숨김을 받는 축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늦기 전에 기도하라
스바냐 2:1-3 / 김홍도 목사
지옥을 본 사람들의 간증을 듣거나 책을 읽어 보면 울부짖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 고통의 신음소리 등, 비참한 모든 소리들 가운데 공통되는 점은 후회하는 소리들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수님 믿어둘걸, 이런 고통의 장소가 있는 줄 알았더면 미리 회개할걸, 이럴 줄 알았더면 있는 재산 하나님께 바치고 선한 사업에 써두기나 할걸, 이런 죄의 심판이 있는 줄 알았더면 죄를 짓지 말걸” 등등, 기회가 다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말들뿐이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아무리 만능의 열쇠라고 해도 기회가 지난 다음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본문 말씀에 자세히 보면 “전” 즉, “늦기 전에”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두려운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1. 늦기 전에 회개하라.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죄를 짓고도 양심이 마비되어 뻔뻔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어서 늦기 전에 모여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이란 하나님의 심판의 명령이 시행되어 큰 불행과 고통의 날이 오기 전에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광음이 겨같이 날아가기 전”이란 말씀은 세월이 다 지나기 전에 시간이 겨같이 날아가기 전에 빨리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은 빨리빨리 지나갑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기회가 다 지나기 전에 어서 모여와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기 전”이란 말씀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는 해도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전에 어서 가증한 죄, 거역한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땅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가정에 병든 것도 치료받고 사업에 병든 것도 치료받고 사회가 병들고 나라가 병든 것도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이사야 55장 6~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때가 늦기 전에 어서 죄의 길에서 돌이켜 불의한 사람은 그 악한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못 받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김정일을 원망하기 전에, 핵폭탄을 원망하기 전에 이 민족이 우상숭배의 죄, 온갖 간음죄, 교만죄 등,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면 김정일 아니라, 핵폭탄 아니라, 그 어떤 위험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이 민족의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2. 늦기 전에 기도하라.
3절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했는데 여기서 “여호와의 규례”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생활법규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날에 육신의 쾌락을 위하여 놀러다니며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우리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거룩히 구별해 바치는 일입니다. 물질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인격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만물의 주인이신데 우리의 헌금 행위를 얼마나 중요시했으면 성전의 헌금궤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 헌금 행위를 지켜보시고, 오늘 이 과부가 가장 정성을 많이 바친 사람이다라고 칭찬했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성도들이 정확하게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지켜주시고, 김정일의 핵폭탄도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모든 재난과 사고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습니까?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아까워하지 말고 정확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하나님의 분노가 임하고 무서운 심판의 명령이 시행되려고 할 때에 목숨 걸고 기도하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목숨 걸고 나라 위해 기도했고 통곡하며 기도했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기도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라크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세계에 두 악의 축이 있는데 그 하나는 사담 후세인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김정일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보다 더 무섭고 잔인한 독재자입니다. 북한에 교회가 있고 신자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죽이거나 옥에 가두거나 아오지 탄광에 보내고 맙니다.
지난번 3.1절 때에도 북한에서 왔던 목사, 신부, 크리스찬이란 자들은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배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배우들이 목사로도 나오고 신부로도 나오고 중으로도 나오고 제법 기도도 하고 설교도 하지만 배우들이 하는 것은 다 가짜입니다. 북한에 있는 목사, 신부, 중, 신자란 사람들도 앵무새처럼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남한의 목사, 교인들이 달러를 뭉테기로 싸다줍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좋지만 돈을 갖다주면 그것으로 핵무기와 살상무기를 만들어 우리에게 퍼부으려고 합니다. 사탄을 돕고 마귀를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착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여호사밧 왕이 가장 악한 사탄의 사람 아합 왕을 도와 전쟁하러 갔다가 죽을 뻔하고 돌아왔을 때 선지자가 책망하기를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역대하 19장 2절)라고 했습니다. 그후 무서운 진노를 받았습니다.
지금 남한에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좌익단체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키고 주체사상으로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좌익사상을 가진 전교조는 9만여 명이나 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버젓이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된 것부터 잘못된 것이고 김일성이 남북한의 통일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적어도 500만 명이 친북 세력이고 김정일보다 부시 대통령이 더 나쁜 사람, 흡혈귀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빨갱이들 중에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들이 현정부의 권력을 잡고 김정일과 내통하여 적화통일을 하려고 합니다.
반미감정을 확산시켜서 미군이 철수하게 만들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데, 미군만 철수하면 자연스럽게 이 나라는 적화통일 되고 말 것이고 공산화 통일되기 전에 남한의 밥그릇이 다 깨어지고 맙니다. 만 불 소득이라고 하지만 이천 불, 삼백 불로 떨어지고 북한과 같이 거지나라가 되고 맙니다. 그뿐 아니라 적어도 천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여중생 두 명 죽은 것으로 몇 달 동안 촛불시위 한 것도 반미감정을 확산시켜서 미군을 철수시키자는 것이고, 지금 이라크 전쟁을 기회로 또 반미감정을 확산시켜 미군을 철수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신문 몇 가지 빼놓고는 모든 언론을 좌경세력이 잡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는데도 온갖 공갈 협박을 다하면서 데모하며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것도 주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절대다수가 이라크 파병을 지지하면서도 입다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교회가 이라크 파병을 지지하면, 어떻게 평화를 추구해야할 교회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지지하느냐고 덤벼듭니다. 그러니까 모든 교회들이 할 말을 못하고 잠잠하고 있습니다. “때가 늦으면” 교회도 살아남지 못하고 우리 크리스찬들의 생명도 싹쓸이 당하고 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통탄스럽습니다.
① 사탄과 타협하고 사탄을 도와주며 화평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평화의 왕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복음 10장 34절)고 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 사탄의 세력과 충돌될 때에는 무릎꿇고 타협하며 화평하려 들지 말고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②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입니다. 지금도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6.25때처럼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또 현재 미항공모함이 한반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전쟁을 치룰 때에는 한국군이 도와주어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6.25때 미국의 4만 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의무대, 공병대 몇백 명 파병하는 것마저 반대한다면 공산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③ 한국은 지금 한미공조로 자유민주국가를 유지하느냐, 공산화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고 선택도 없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민족공조”, “민족화합”은 미군을 몰아내고 이 나라를 공산화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있으며 몸만 사릴 때입니까?
④ 50만 명이나 죽게 될 전쟁에 교회가 어떻게 지지하느냐고 하는데 사담 후세인이나 김정일을 제거하지 않으면 50만이 아니라 500만, 5000만도 죽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R. Neibuhr의 말대로 전쟁이 나쁘지만 “최소악”(less evil)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좌경분자들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⑤ 주한미군은 한강 이남으로 이동배치 하거나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이라크 파병입니다. 어떤 면에서, 파병이냐 공산화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익 진영에서는 잠잠하고 있으니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싶습니다.
공산화되어 무참히 살육을 당하고 거지 나라가 되기 전에 회개하고 할 말을 해야합니다. 바로 이 때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장 13~14절)한 말씀입니다.
보잘것없는 고아 출신이요, 다른 민족인데 대제국의 왕후가 된 것은 바로 이 때에 멸절당할 민족을 구원키 위해서 축복하신 것인데 자기 혼자 평안히 있겠다고 입다물고 잠잠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너 아니고 다른 사람 통해서 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고,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할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듣고 에스더가 “예, 알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금식기도를 부탁하고 자기도 시녀들과 함께 기도하고나서 자기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늦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미적거리다간 망하고 맙니다.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가증한 죄를 지은 것을 보고 하나님이 몹시 분노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애굽기 32장 10절) 하실 때 웬만하면 “잘 되었습니다. 목이 곧고 패역한 백성이라 무지무지하게 속을 썩히는데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또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면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꼼짝 못하시고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애굽기 32장 11~14절) 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던지고 하는 기도가 그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민수기 14장에도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말을 듣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우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진노하여 진멸하겠다고 하실 때에 모세가 또 그와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늦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스바냐 2:1-18
스바냐는 앞장에서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특별히 유다에 대한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모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인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했습니다(1-3). 스바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장차 블레셋과 암몬 모암 족속들의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자치하게 된다는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4-10). 또한 하나님께서 교만한 앗수르를 심판하시고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배하게 되리나는 종말론적인 비전을 심어주었습니다(11-15). 오늘 말씀을 통하여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1-3)
1절을 보십시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수치를 모르는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모이라’는 말은 찾으라, 굴복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죄 가운데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게 사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모여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굴복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시는 심판에 대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면 날이 겨같이 지나가버립니다. 겨같이 지나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로 모든 것이 불살라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이 겨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모여서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기 전에 모여야 한다는 것을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1절에 말씀하신 대로 당시 유다 백성은 수치를 모르는 백성이었습니다. 수치를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요? 뻔뻔스러움입니다. 죄에 연단되어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입니다. 처음에 죄를 지을 때는 심히 부끄럽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누가 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죄를 반복하여 짓게 되면 점차 부끄러움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담대해집니다. 요즘 동성애자들을 보십시오. 십 년 전만 해도 부끄러워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럽게 시위를 합니다. 이처럼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의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뻔뻔스럽습니다. 자기가 최고로 잘난 줄 압니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기전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고 돌이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세상을 향하여 살던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여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돌이키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는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는 해도 심판의 때가 임박하였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용납하시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기 전에 어서 수치를 모르는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뻔뻔스러운 죄, 하나님을 거역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쳐주십니다. 역대하 7장 14절은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 땅을 치료해 주십니다. 죄로 병든 가정을 치료해 주십니다. 죄로 병든 사회를 치료해주시고, 죄로 병든 나라도 고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날, 진노의 날이 임하기 전에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모여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늦기 전에 회개하며 기도한다면, 주님께서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죄로 병든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풍성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회개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피일차일 미루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이키고, 지금 하나님 앞에 모이라고 호소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사람을 겸손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겸손한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곧 법입니다. 자기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지켜 행합니다. 이들은 유대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는 세상 모든 경건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겸손한 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외쳤습니까?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공의와 겸손을 구하라.”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모든 겸손한 자들에게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한 사람도 가리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날에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겸손한 사람들도,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명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규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자신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이 규례만 지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러운 자가 되어버립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었을까요? 끊임없이 여호와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우리는 끊임없이 공의와 겸손을 구해야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변명하며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를 구하시는 왕이십니다.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렘 22:3) 우리는 이 땅위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가는 자들입니다. 흑암을 밝히는 빛이요,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까지 불의와 타협하며 “공의”를 저버리면, 하나님의 분노가 이 땅위에 임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는 자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심판의 천사들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성을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공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회복을 기다리십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시기 직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김진태라는 37살 된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살인을 하고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10년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형집행이 점점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후 그는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까지 교도소에서 굳은 일은 혼자 다 맡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왕 죽을 몸 아끼지 말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누가 영치금을 넣어 주면 죽을 몸이 돈을 써서 뭐하느냐고 하며, 헌금하고 이웃을 돕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3개월마다 방이 바뀌는 데 바뀔 때마다 그 안에 있는 죄수들을 다 전도하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그의 전도를 받은 사람이 600명 가량 되었습니다. 장기도 모두 기증하였습니다. 사형당하는 순간 각막, 간 등 장기를 모조리 떼어 가라고 사인을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김대중 대통령에 보고되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퇴임하기 직전에 이 사형수에게 사면권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감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돌이켜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그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그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그 한 교회가 우리 한마음교회이기를 바랍니다.
II.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얻으리라(4-15)
첫째, 블레셋에 대한 심판(4-7)
4절을 보십시오. 가사와 아스글론과 아드돗과 에그론은 블레셋의 네 성읍입니다. 그런데 가사는 버림을 당하고, 에그론은 뽑힌다고 했습니다. 이는 파멸의 필연성과 심각성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아스돗은 대낮에 쫓겨납니다. 중동지방에서 대낮은 낮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대낮에 쫓겨난다는 것은 잠결에 예상치 못한 때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할 것을 말해 줍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해변 주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그렛 주민은 지중해 바닷가에 살던 족속인데 그레데 섬에서 이주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렘 47:4; 암 9:7). 그런데 그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또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를 치나니 내가 너를 멸하여 주민이 없이 하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또 6절을 보십시오. “해변은 풀밭이 되어 목자의 움막과 양 떼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며”해변이 풀밭이 된다는 말은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잡초만 무성한 땅이 된다는 말입니다. 목자의 움막과 양 떼의 거주지로 변해 버립니다. 이는 블레셋 도시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철저히 파괴되고, 백성들은 방방곡곡으로 흩어질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그 땅을 결국 누가 차지하게 됩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사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라”그 블레셋 사람들의 땅, 양들의 목초지로 변해버린 해변을 유다 백성, 곧 남은 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유다 족속의 남은 자는 장차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암시합니다. 유다 족속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회복될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실제로 유다 마카비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을 책망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사른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고 많은 환난도 당합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원수들을 통해서 징계하시지만 그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결국은 그 언약대로 구원에 참여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뒤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은 죄가 있다고 심판하시지 않고 징계하신 후에 구원해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징계를 통해서 정결하게 되고 마침내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모압에 대한 심판(8-11)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롯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갈 때에 이스라엘을 뒤에서 공격하였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다를 침략하여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의 조롱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높은 존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심판의 확실성을 확증해 줍니다.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심판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방해할 수 없고, 반드시 그 계획대로 실현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심판하십니까?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이 될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살아난 롯과 그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족속들입니다(창 19:30-38).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황무한 땅을 누가 차지합니까?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더 이상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소유는 유다의 남은 자들이 소유가 됩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온전히 회복되어 자신들을 괴롭힌 자들의 땅과 소유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민족들의 땅이 결국 유대 민족의 기업이 됩니다. 이상에서 불레셋이나 모압이나 암몬의 멸망에 대한 말씀은 독립적 예언이라기보다 환난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날에 그 원수들은 다 망하지만 택한 백성은 마침내 승리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모압과 암몬이 그런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음이라”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하게 되는 이유는 교만이었습니다(사 16:6; 렘 48:26).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압 땅이 어떻게 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십니다. 유다를 대적하였던 주변 국가들이 다 파멸당하고 열국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을 파멸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으나 그들의 신이 파멸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어리석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됩니다. 스바냐는 성전을 벗어나서 이방의 모든 곳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될 것을 내다보았습니다(말 1:11).
셋째, 구스 사람들에 대한 심판(12-15)
12절을 보십시오. “구스 사람들아 너희도 내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구스 사람아, 너희도 내 칼에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의 남쪽에 있는 구스에 대한 심판입니다(사 18:1; 겔 38:5). ‘너희도’라고 한 것을 보면 구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 내린 것과 동일한 것임을 말해 줍니다. 구스도 예외 없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펴십니다. 앗수르를 멸하시고,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같이 메마르게 하십니다. 니느웨는 당시 최강대국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니느웨의 관개 시설은 너무나 잘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가믐에도 절대로 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완벽한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앗수르를 향하여 손을 펴시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하여 손을 펴시니 그곳이 사막처럼 메마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관개 시설은 다 말라버리고 물을 찾을 수 없는 사막처럼 되어 버립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각양 짐승이 그 가운데 떼로 누울 것입니다.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기둥 꼭대기에 깃들입니다. 당아는 올빼미를 가리킵니다(시 102:6; 사 34:11). 그것들이 창에서 울 것입니다. 문턱이 적막할 것입니다. 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벗겨져 버렸습니다. 앗수르와 니느웨는 최상의 문명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곳은 사람이 거할 수 없는, 야생 짐승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렸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앗수르는 희락의 성이었습니다. 아무 염려가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얼마나 교만한 말입니까?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하고 통치하에 되자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교만을 떨었습니다.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잠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막대기로 사용했을 뿐인데 교만하여져서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우쭐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멸망하여 황폐하여 들짐승들이 엎드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비웃으로 손을 흔들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의 거처가 되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앗수르 같은 강대국도 하루아침에 멸망할 수 있습니다. 개인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적으로 인간이 망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교만에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8)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약 4:6) 모든 죄악의 뿌리를 찾아올라가 보면 그 마지막에 있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죄악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을 구해야 합니다. 잠시만 방심하면 마귀가 우리 마음에 교만을 심어놓습니다. 교만은 오뚜기 같습니다. 정욕이나 도둑질이나 다른 범죄는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교만은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겸손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간 스바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수치를 모르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모이라고 하십니다.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모압이나 암몬같이, 앗수르같이 교만한 자들은 반드시 멸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교만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러운 죄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