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은 평생 박정희 콤플렉스가 있었던 인간!
대통령이 되자마자 오직 박정희에 대한 열등감을 만회하고자 박정희가 이루어놓은 모든것을 뒤집어 엎기에 혈안이 되었었다.
한때 5·16광장으로 불리웠다는 이유로 여의도 광장을 파헤치고 "시민의 품에 돌려준다."는 구실로 공원을 만들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수도에 제대로된 광장하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워싱턴 광장, 크레믈린 광장, 천안문 광장... 심지어 북한도 김일성광장을 가지고 있는데....
서울시광장? 광화문광장? 그게 광장이냐?
이 나라 발전의 정신적 초석이 되왔던 국민교육헌장을 폐기하고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조치들을 취하더니
이명박, 이재오, 김문수, 유승민, 김무성 등 똑같은 바퀴벌레 같은 것들만 양성하여 이 나라 파괴의 주역들로 만들었다.
급기야 박정희가 이루어놓은 경제의 기틀마저 모조리 망가뜨리고 IMF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박정희가 살아있던 개발시대, 우리는 눈만 뜨면 XX공장이 준공을 했네, 무슨무슨 시설이 기공식을 가졌네 하는 뉴스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김영삼이 정권을 잡은 이후엔 눈만 뜨면 XX가 망했네, 00가 부도났네 하는 소리 뿐이었다.
박정희의 유일한 흠결이라면 김영삼, 김대중을 인간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나라를 망치게 하려고 악마가 씌워져 태어난 말종이자 귀태요.
암세포로 일찍이 그 더러운 목숨을 남겨놓았다는 것이 치명적인 잘못이다.
IMF일지
- 1997년 1월 23일 : 한보철강 부도
- 1997년 3 ~ 6월 :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 대기업 연쇄 부도
- 1997년 7월 2일 : 타이 밧 화 폭락
- 1997년 7월 15일 : 기아 협조융자 신청, 사실상 부도
- 1997년 8월 14일 : 인도네시아 루피아 화 폭락
- 1997년 9월 29일 :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인 964원까지 상승, 사실상 거래 중단
- 1997년 10월 22일 : 쌍방울, 태일정밀 부도
- 19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 1997년 10월 28일 : 주가지수 500선 붕괴, 미국 투자기관 모건스탠리, '아시아를 떠나라' 라는 보고서를 띄우다. 주가 500선 붕괴
- 1997년 10월 30일 : 외환시장 개장 8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또다시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
- 1997년 11월 1일 : 해태 부도
- 1997년 11월 4일 : 뉴코아 부도
- 1997년 11월 9일 : 정부가 종금사 달러를 지원 검토
- 1997년 11월 10일 : 김영삼 대통령, 외환위기 심각성 인지
- 1997년 11월 14일 : 강경식 부총리, 청와대 보고에서 "미국 등 우방으로부터 돈을 빌려 보겠으나 여의치 않으면 IMF로 가야 한다"고 설명. 김영삼 대통령, IMF로 갈 것을 지시.
- 1997년 11월 16일 : 미셸 캉드쉬 IMF 총재 극비 방한, 협상.
- 1997년 11월 19일 :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수석 경질
- 1997년 11월 19일 : 임창렬 부총리,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 IMF 언급 없음. IMF와의 이후 협상에 난행 요소가 됨.
- 1997년 11월 20일 : 1일 환율변동폭이 2.25%에서 10%로 확대됨, 그러나 환율은 다시 확대된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됨
- 1997년 11월 21일 : 김영삼 대통령,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조순 총재와 회담.
- 1997년 11월 21일 :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를 공식 신청 발표
- 1997년 11월 22일 :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를 신청 요청 발표
- 1997년 11월 23일 : 재정경제원, IMF 협의단(단장 강만수 차관) 편성, IMF 실무협의단 1진 도착
- 1997년 11월 28일 : 임창렬 부총리, 일본 방문. 미쓰즈카 대장상과 원조회담에 들어갔으나 "IMF로 가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라는 대답만 돌아옴.
- 1997년 12월 3일 : 임창렬 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 공식적인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 대기성 차관 제공해 관한 양해각서 채결
- 1997년 12월 5일 : 한라그룹과 고려증권 부도, MF 1차 지원금 56억 달러 제공.
- 1997년 12월 10일 : 환율이 3일 연속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하여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거래중단, 기업어음(CP) 금리가 6일째 법정 상한선까지 치솟음,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법정 발행금리 상한선인 연 25%를 초과함. 금융시장 전반이 마비됨.
- 1997년 12월 31일 : 부실 종금사 처리를 위한 가교종금사(한아름종금) 설립
- 1998년 1월 5일 : 노사정위원회 발족
- 1998년 1월 16일 : 단기외채 만기 연장을 위한 뉴욕협상 발표
- 1998년 1월 30일 : 재경원, 종금사 1차 폐쇄 대상 10개사 명단 발표(한화, 쌍용, 경남, 고려, 삼삼, 항도, 청솔, 신세계, 경일, 신한종금)
- 1998년 2월 3일 : S&P, 국가신용등급 3단계 상향조정
- 1998년 2월 15일 : 외국인에 대한 인수, 합병 제한 완화
- 1998년 2월 19일 : BIS 8%미달 12개 은행 경영 개선 조치
- 1998년 3월 12일 : 단기외채 2백 18억달러 만기 연장
- 1998년 3월 24일 : 세계은행 1차 국조 조정차관 20억달러 승인
- 1998년 3월 26일 : 무디스, 한국 장기신용등급 전망 상향조정
- 1998년 4월 1일 : 금융감독위원회 공식 출범
- 1998년 4월 3일 : 외평채 40억달러 발행
- 1998년 4월 27일 : 외국인 투자유치 종합대책 발표
- 1998년 5월 3일 : 외국인 투자업종개방 추가확대
- 1998년 5월 12일 : 거평그룹 부도
- 1998년 5월 14일 : 중기대출만기 연말까지 연장
- 1998년 5월 16일 :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폐지
- 1998년 5월 20일 : 64조원 규모의 금융 구조조정 재원(1차 공적자금) 조달 방안 마련
- 1998년 6월 18일 : 금감위, 퇴출 대상 55개 기업 발표(5대 그룹 20개사, 6∼64대 그룹의 32개사, 비재벌 계열 3개사)
- 1998년 6월 29일 : 금감위, 금융기관 구조개혁 조처(동화, 동남, 대동, 경기, 충청 등 5개 시중은행 폐쇄 발표), 퇴출은행, 조건부 승인은행 발표
- 1998년 6월 30일 : 금융경색완화대책 발표
- 1998년 7월 1일 : 공기업 1차 민영화방안 발표
- 1998년 7월 3일 : 외환매입제한 폐지
- 1998년 7월 10일 : 개정 예금자보호법 시행
- 1998년 7월 11일 : 상업,한일은행 합병 발표
- 1998년 8월 12일 : 금감위, 20개 보험회사에 대해 경영 개선 조처
- 1998년 8월 17일 : 공기업 2차 민영화방안 발표
- 1998년 8월 19일 : 4개 보험사 영업정지
- 1998년 8월 25일 : 정부출연, 위탁기관 경영혁신 계획 발표
- 1998년 8월 28일 : 재경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및 기업교환(빅딜)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 마련
- 1998년 9월 7일 : 재계, 사업구조조정 방안 발표
- 1998년 9월 10일 : 하나, 보람은행 합병 발표
- 1998년 9월 11일 : 국민, 장기신용은행 합병 발표
- 1998년 9월 20일 : 장은, 동방페레그린 증권 퇴출
- 1998년 10월 19일 : 5대 재벌 계열 사업 구조조정 방안 발표
- 1998년 11월 5일 : :기아자동차, 현대에 낙찰
- 1998년 12월 7일 : 정부·재계, 5대 재벌 구조조정안 합의
- 1999년 1월 1일 : 제일은행,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지분 51%)하기로 합의
- 1999년 1월 25일 : 영국 피치,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한국 장기외화채권 등급을 BB+에서 BBB로)
- 1999년 2월 12일 : 미국 무디스, 한국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장기외화채권 등급을 Ba1에서 Baa3으로)
- 1999년 4월 19일 : 대우그룹 구조조정 계획 발표(대우중공업 조선 부문 매각, 김우중 회장 보유 주식 매각대금 3천억원 출연 등 구조혁신 방안)
- 1999년 4월 21일 : 부실 5개 생보사(동아, 태평양, 한덕, 조선, 두원) 공개 매각 절차 개시
- 1999년 4월 23일 : 현대그룹 구조조정 계획 발표
- 1999년 6월 30일 :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으로 삼성자동차·대우전자 빅딜 무산
- 1999년 8월 6일 : 대우그룹·GM 자동차 부문 전략적 제휴 양해각서 체결
- 1999년 8월 12일 :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 대책 마련(대우 구조조정 추진에 따른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에 대한 대응 방안 강구해 8월13일 시행)
- 1999년 8월 26일 : 대우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결과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돌입
- 1999년 9월 17일 : 제일은행, 뉴브리지캐피털과 매각을 위한 주요 조건에 합의하고 투자약정서(TOI) 체결
- 1999년 10월 30일~12월 1일 :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계획 확정
- 2000년 11월 3일 : 2차 29개 퇴출 대상 기업 발표, 삼성 자동차, 진로종합유통, 우성건설 등
- 2001년 8월 23일 : IMF 관리 체제 졸업(IMF 구제금융 195억달러 전액 상환)
사실은 정상적으로 돈을 잘 벌어 전액 상환한게 아니고 우량기업을 깡그리 헐값에 팔아먹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팔려나간 우량기업 자산은 30대 그룹의 절반, 10대 시중은행의 80%에 이른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조 2천억달러에 달한다.
이중에 외국인 보유객은 약 40%, 4천8백억 달러에 달한다.
그렇다면 언뜻봐도 195억달러 갚기위해 4천8백억달러의 주식을 팔아먹었다고?
약 25분의 1이라는 헐값에 팔아먹은 것 아냐?
즉 만원짜리 400원에 팔아먹고 IMF극복했다고 큰소리 치는거다.
이게 바로 김영삼, 김대중 떨거지들이 저지른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