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에 떨어지던 동백꽃
조윤희
복중의 한 여름 동백을 보겠다고 그곳에 갔던가
무작정 내닫던 걸음이 그곳에 머물렀을 때
너무 일찍 와서 동백꽃을 볼 수 없었노라던 시인은 이미 돌아가시고
너무 늦게 가서 동백꽃을 볼 수 없었던 나는 동백꽃이 진 빈자리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빈 자리에 나를 우두커니 세워놓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들여다 보는 대웅전의 웅숭깊은 속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못하고
미처 열리지도 못한 눈이 뒷걸음질로 물러나와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변산으로 향한다
해변가에 즐비한 상점들, 쾅쾅 울려대는 음악소리들
정작 바다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파도소리 들리지 않았다
민박집의 호객꾼들만 나를 붙들고 있었다
변산은 내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땀 한 방울 식히지도 못하고
들끓는 지열의 野馬가 되어 격포로 내달린다
방파제를 거닐면서 채석강의 일부만을 본다
칠천만 년 전의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단애를 읽어내기에
나의 행보는 너무 짧았고, 내 마음이 벼랑이었다
조급증인가 조금때인가 고둥의 알맹이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빈껍데기들을 바다에 다시 집어던지며 그곳을 떠나
다시 격포 우체국 앞에 한 꾸러미의 소포로 퍼질러 앉아버린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수취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모항 가는 길을 물어본다
모항,
모항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어머니 모자냐고 묻기도 하고 아무개 모자냐고 묻고
모색할 모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한다
나는 나름대로 모항을 생각하기로 한다
모호해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곳 모항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여장을 푼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가 없어지고 있었다
이제 내가 사라질 차례다
나는 고창에서부터 끌고 온 술을
친구삼아 마시기 시작한다
동백꽃으로 빚은 술은 아니었지만
빛깔은 아주 붉었다
동백꽃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발목 한 번 담궈보지도 못한 바다가
내 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비린내 나는 서러움들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내가 외면했던 길들이, 나를 외면했던 길들이
만장기를 나부끼며 노제를 지내고 있었다
모항,.
그곳은 또 하나의 다른 모서리의 항구 였나보다
떠나오던 날 모항엔 “선창”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