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아미타불
강 문 석
세상인심이 어떻게 변했는지 감방에 갇힌 전직대통령을 동정하거나 가슴 아파하는 국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엎어진 사람을 짓밟는 글들이 SNS에 차고 넘쳐난다. 조어력이 빼어난 어느 인사는 <수형자 신상명세>란 기지가 번득이는 글을 올렸다. ‘이름은 명박, 별명은 땅박, 관상은 쥐박, 생각은 천박, 정신은 띨박, 철학은 척박, 언행은 경박, 인심은 야박, 의리는 깜박, 다스는 독박, 사찰은 해박, 뇌물엔 함박, 변명은 또박, 진실은 핍박, 법원엔 협박, 결국엔 포박, 여생은 궁박…’이라 했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처신했기에 이런 조롱섞인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가 대선 출마를 위해 당내 경선이 붙었을 때다. 경남지역 명문으로 꼽히는 J고 동창회에서 그를 초청하여 특강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연장인 국제신문 대강당은 ‘부산파워 리더스’란 컬러 현수막이 벽에 촘촘히 내걸렸고 어떻게 사람을 끌어 모았는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날 강사로 나온 후보자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질의응답시간에 당시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고 머리를 빡빡 깎은 의사협회 회장이 투사처럼 먼저 입을 열었다. “당선되면 의사들 처우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후보자가 냉철하게 판단하여 적절한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는 미리 겁부터 먹었는지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신만 또렷하게 밝히면 끝날 것을 알맹이 없는 말로 얼버무리고 끝나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사를 마치고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지만 주최 측에 이끌려 후보자가 찾아간 식당을 따라 들어섰다. 후보자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2장을 꺼내어 흔들면서 선거법 때문에 여러분도 돈을 내야한다며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순간 거금 천만 원이나 들여 행사를 마련한 단체는 선거법을 몰라서 그런 바보짓을 했단 말인가 묻고 싶었다. 야박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후보자는 표를 의식해서 챙겨주지도 않을 사진을 찍느라 밥먹을 사람들을 불러내어 카메라 앞에 서는 짓만 계속해댔으니 너무나 속보이는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1970년대 중반. 그는 당시 우리나라 원전1호기 도급을 맡은 건설사 사장이었다. 그랬던 만큼 그의 이름으로 된 문서가 전력회사에 수시로 날라들었다. 우리 사업장에서 공사장 전기를 공급했고 문서의 사장은 서른 중반으로 젊다는 말이 들렸다. 그렇다면 나이는 서너 살 차이나지만 그가 대기업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공기업에 입사했던 것이다. 학창시절 엿장수와 뻥튀기, 과일장수로 노점상을 전전하던 그가 직장에서 20대에 이사,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을 두루 맡은 걸 두고 그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샐러리맨 성공신화'라고 했다.
부산사람들은 그가 내건 4대강 사업을 의식해서 ‘낙동강 새물결’이란 조직을 만들어 후보자를 도왔다. 부경대학 강당에서는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열띤 공방을 벌이는 토론회도 가졌다. 선거전이 과열되고는 속리산에서 전국규모 선거캠프가 1박2일로 열렸지만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후보자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나라 안에서 특히 모임이 잘되는 단체가 셋 있다고 한다. 바로 해병전우회와 호남향우회 그리고 고대동문회다. 선거기간에 경남 고성에서 주유소를 찾았을 때 계산을 마치자 잠시 좀 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노숙자 차림의 할머니가 주유하는 것도 이상했는데 왜 그러나싶어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사무실 안쪽 창고에서 가수 김상희의 ‘데킬라 블루스’가 든 음악테이프를 여러 개 꺼내어 봉투에 넣더니 내밀었다. 며칠 전 후보자와 김상희도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고려대 동문 단합대회를 가졌다면서 본인이 그들과 대학동기라고 했다. 테이프에는 후보자를 찬양하는 곡도 서너 곡 들어 있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도운 동창들은 지금 감방에 갇힌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마음이 짠하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자유논객'이라 밝힌 L씨는 “이 멍청한 사람아, 왜 후임을 탄핵시켰어?”라고 그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다른 논객들처럼 박근혜 탄핵에 이명박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발렸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 L씨도 “문재인과 한 통속이 되어 박근혜를 끌어내리는데 이명박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거기에다 이명박 재임기간에 저지른 수많은 부정부패에 문재인도 매번 숟가락을 얹었던 터라 과연 이명박을 구속 수감할 수 있을지 설왕설래가 많았다. 하지만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호언 속에, 1년이 지나도록 권력형 범죄나 금전적 범죄를 단 한 건도 밝혀내지 못한 박근혜와는 달리 털면 터는 대로 비리가 터져 나오는 이명박은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았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 수사에 허탕만 친 김일성 장학생들로서는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넣어야 할 처지라 구속은 불가피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라꼴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외국 기업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정치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보복정치 일색이고 경제는 토지 공개념 도입 등으로 북한 경제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차기 정권은 내 손에 달렸다고 기염을 토하던 이명박도 결국 구속수감을 면치 못했다. 굴지의 기업 현대건설을 망가뜨린 것은 물론 제1당이던 한나라당을 지지율 10%대의 자유한국당으로 전락시키고 나라를 풍비박산시킨 끝에 자기 집안까지 망가뜨린 이명박의 업보는 모두가 악마적인 욕심과 술수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의 가장 큰 죄는 박근혜 탄핵을 함께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종북 좌파와 결탁해서 대권을 날치기한 죄로 반드시 전말을 밝히고 처벌을 받아야 할 무거운 죄다. 작은 죄를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연쇄적으로 저질러 온 이명박이야말로 귀태 중의 귀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증거가 넘친다는 검찰의 발표로 볼 때 이명박의 인생여정도 여기서 끝이지만 그가 저지른 일련의 범죄와 권모술수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박근혜와 국민을 생각하면 거열형에 처해도 분이 안 풀릴 일이다. 문재인이 역모공동체이자 부패공동체 이명박에게 솜방망이를 때릴지 아니면 박근혜에게서 아무 증거도 못 찾은 분풀이로 중형을 때릴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명박에게 가해질 단죄는 절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문재인이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준다 해도 종북 세력을 도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불법 파면시킨 죄와 재임 시에 저지른 수많은 부패행각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명박 구속을 두고 헌정사상 네 번째로 구속되는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이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김정은의 목이 떨어지고 문재인과 종북이 박멸될 것이다. 그런 후 촛불로 대권을 찬탈한 문재인과 남의 지지율을 날치기해서 대권을 차지했던 이명박이 나란히 국가반역죄로 재판받는 광경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명박 집권 당시 어지러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보수논객 김동길 교수는 매일 대통령에게 한마디씩 하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다 썼다. 그 글들을 접하면서 문학박사 안용환은 김동길을 토머스 페인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올린 글이나 장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성경'이라고 한 사상과 철학의 논조가 유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시대의 경구를 일부 사이버 상에서 제한된 사람들만 접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안용환은 대중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책으로 묶었다. 바로 3백쪽에 가까운 <MB, 이게 뭡니까>였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에도 촛불세력들이 등장했었다. 그땐 세월호가 아닌 멀쩡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광우병 사태였고 촛불을 주동한 세력은 여기서 밝히지 않더라도 다들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성난 데모대가 함성을 지르며 청와대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대통령은 혼비백산하여 뒷산으로 숨었다. 데모대는 운동권 노래로 변질된 ‘아침이슬’을 합창했고 피신한 대통령은 그 노래를 듣고 눈가가 촉촉해졌다는 감회를 뒤에 밝힌 적이 있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허깨비에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회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뽑는데 일조한 꼴이니 때늦은 후회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