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해 미라리해수욕장으로 나온 고건(11·왼쪽)·추연재(9) 어린이가 태극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소안도에 사는 아이들에게 태극기는 길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항상 볼 수 있는 익숙한 물건이다.
항일의 섬, 소안도를 가다
친일파에게 넘어간 토지 반환소송
일제의 사립학교 폐쇄 반대운동 등 다양한 투쟁기록 기념관 세워 보존
도로·마을입구·민가 모든 곳에 항일정신 기리려 태극기 걸어놔
미라리해수욕장·가학산 등 천혜의 자연풍경도 볼 만
해마다 돌아오는 휴가철, ‘어디로 갈까?’ 고민도 해마다 반복된다. 산·강·바다, 안 가본 데가 없어서 결정하기 힘들다면 올해는 ‘우리 역사가 깃든 산·강·바다’로 가보자. 아프고 감동적이고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풍성한 곳이 전국에 허다하다. 마침 얼마 후면 8·15 광복절이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까지 조상들의 항일투쟁으로 점철된 곳, 역사학자들이 항일운동의 성지로 꼽는 곳, 소안도가 그 중 제격이다.
소안도는 전남 완도군에 속한 섬이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한시간가량 더 가면 도착한다.
가운데가 잘록한, 숫자 ‘8’ 모양으로 생긴 이곳은 면적 23㎢, 해안선 길이 42㎞의 작은 섬이다. 소안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가 곳곳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이다.
비단 항구 근처뿐만이 아니다. 도로변, 마을 입구, 심지어 마을 안 집집마다 빠짐없이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래서일까, ‘태극기 마을’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단다. 어떤 항일운동 역사가 깃든 곳이기에 지금도 섬 전체가 태극기로 덮여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해소해줄 장소는 소안면 가학리에 있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내내 이루어진 소안도 주민들의 항일투쟁 역사를 기록·보존하고 있는 장소다.
1905년 일제가 소안도 주민의 토지 전체를 몰수해 사도세자의 5대손이며 일제로부터 자작 칭호를 받은 이기용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자 이에 대항해 일제를 상대로 소송, 무려 13년 만에 승소를 이끌어낸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송’ 기록이 대표적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보름 만에, 그리고 유관순이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던 4월1일보다 보름 앞서, 3월15일에 벌인 완도만세시위운동. ‘배워야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이 모은 돈으로 ‘사립 소안학교’를 설립했지만, 일제가 ‘항일운동의 배후지’라는 명목으로 강제 폐쇄하자 극렬하게 반대운동을 펼치다 6000여명 1000여가구 중 800명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일 등. 이 모든 항일투쟁이 이 작은 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크지 않은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소안도 항일투쟁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다 채워지지 않는다면 기념관 직원에게 관련 영상물 상영을 부탁해보자. 인원이 몇명이든, 시간이 언제든 상관없이 흔쾌히 틀어준다.
기념관 맞은편에 보이는 한옥 건물은 사립 소안학교를 복원해 놓은 것이다. 지금은 주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으로 사용되고, 작은도서관도 들어서 있으니 부담없이 둘러봐도 된다.
역사 이야기로 가슴을 채웠다면 이번에는 수려한 자연을 즐길 순서다. 섬인 만큼 소안도 어디에 멈춰서도 눈이 시리게 파란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그중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변이 섬 동쪽 미라리에 있는 미라리해수욕장이다.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과 투명한 바닷물,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그리고 대자연이 만드는 평화로움까지 어우러진 해수욕장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기도 전에 더위를 잊게 해준다. 항아리처럼 안쪽으로 움푹 파인 지형 덕분에 파도가 세지 않아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을뿐더러 낚시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게다가 아직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덕에 휴가 극성수기라는 8월초에도 해수욕장은 주민들 외에는 찾는 이가 별로 없을 만큼 한가롭다. 북적이는 피서지가 싫은 사람에게는 딱인 장소다. 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천연기념물 상록수림을 즐기는 것은 덤이다.
탁 트인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가학산이 좋다. 미라리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2~3분 거리에 가학산 입구가 있다. 해발 350m의 야트막한 산이라 오르는 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정상에 오르면 소안도 전체가 어느 한 방향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오니 꼭 한번 올라가보자.
바다와 산을 즐기고도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섬 북쪽 이월리쪽으로 가보자. 중간중간 나오는 포구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깃배가 만들어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무궁화도 볼거리다.
특히 이월리 중간쯤, 개매기마을에 가까워지면 노란색 무궁화가 나온다. 이곳이 자생지인 노란색 무궁화는 멸종위기 식물로 쉽게 보기 힘든 꽃이다. 가다가 차 세우기 좋은 곳이 나오면 잠시 멈춰서서 사진 한장 찍어도 좋을 일이다.
완도=이상희,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소안도 가는 방법
소안도행 배는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화흥포항에서 출발한다. 한시간에 한번꼴로 운행되며 동천항(노화도·보길도)를 거쳐 소안도까지 가는 데 한시간 가량 걸린다. 배삯은 7700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목포나 광주에서 완도행 버스를 타면 된다. 완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항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서 운행된다. 요금은 500원이다.
첫댓글 요금은 500원. 정겹네요.
과자 한 봉지 값도 안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