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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여기-가톨릭인터넷언론 원문보기 글쓴이: 김정식
김정식(로제리오)의 삶과 노래
영국아! 너를 내 아우로 접수 한다. -변영국의 글 「미국은 일단 망해가고 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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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9.29. 김정식 http://cafe.daum.net/cchereandnow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
영국아. 나 오늘 웃다가 죽는 줄 알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웃어보기는 또 처음이다. 너무 웃다보니 눈물이 나오더구나. 이토록 이 형을 웃게 만든 너를 오늘부로 기꺼이 내 아우로 접수한다. 몹시 기뻐해야 돼. 내가 아무나 아우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이 형 아우 먹자고 했을 때도, 안된다고 튕기다가 못 이기는 척 동의해 주었거든. 사실 너를 딱 두 번 보았지. 한 번은 가톨릭 인터넷언론 <지금여기> 필진들의 만남의 자리에서였고, 또 한 번은 올봄에 강남의 한 극장에서 네가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탑 바벨>이라는 연극을 보러가서였어. 제대로 되먹은 좋은 아우 하나를 소개시켜준다는 박영대의 말에 끌리어 일정상 무리였지만 가슴 설레는 기쁨으로 기꺼이 따라나섰다. 오후에 예정되어 있는 지방강의 준비까지 한 채로 갔었기에, 처음부터 연극보다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그날 너는 형을 두 번 실망시켰어. 연극을 보면서 작품성을 잘 살리려면 돈을 좀 더 많이 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아팠다. 바벨탑을 통해 물신주의와 출세지향주의의 갈 길을 보여주고,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천박한 상업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연출기획의도가, 오브제를 통해 무대에서 잘 표현되지 않아 형을 졸게 한 것은 가볍게 넘어가 줄 수 있다. 다음에 더 나은 조건에서 얼마든지 잘 표현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연극이 끝난 후 뒤풀이를 겸해 간 당구장에서 너보다 한참 못 치는 형을 모질게 이겨버렸잖아. 그날따라 왜 그리 잘 안되는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가능하면 얼른 끝내고 시간에 대어가서 우등이 아닌 일반고속을 타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다. 단 한 경기에 녹초가 돼버린 나를 고속터미널까지 태워다 준 고마움도 뒤로 한 채, 다시는 너랑 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사흘도 못 갈 오십 대 남자들의 허풍스러운 결심이란 거 잘 알지?
그 후로 가끔씩 너의 글을 보면서 참 재미있게 잘 쓴다고 생각해왔다. 그 재미 속에 사회정의에 대한 통찰력과 복음적인 시선이 늘 담겨있었던 것은 덤이었고. 어제도 그랬다. 시장경제의 절대성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이 결국에 미국의 필연적인 붕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 사람들은 그들이 버린 쓰레기도 아닌 쓰레기수집 통 같은 것들을 주워들고 와서 함께 망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너의 통렬하고 거침없는 토로에 가슴이 다 후련해졌다. 너의 글을 잠시 옮겨본다.
이탈리아 발음으로 내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런데 내 색시 카타리나를 어떤 신부님이 ‘캐서린’이라고 부르자 주변의 많은 이들이 ‘어머 너무 듣기 좋아요’ 어쩌구 하는 것을 보면서 목구멍에 건더기가 치미는 경험을 한 일이 있다. 주로 가난하지 않은,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많았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천주교회의 주류가 된 인간들의 모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수작들이다. 미카엘은 마이클, 안드레아는 앤드류, 심지어 나보고 ‘토미’라고 부르는 인간도 있었는데 한껏 꼬부려 붙이는 그 발언은 정말이지 점입가경이었다. (확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었는데 그냥 ‘별 미친 놈 다 있다’는 눈빛을 던져 주는 것으로 내 기분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영어가 좋을까? 세상에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중국) 이 나라들 밖에 없다는 걸까? 에라. 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속들이여... 아 친구들아! 지금 미국이 망해가고 있단 말이다. 이러다 말겠지 하지 말라. 올 한 해 태풍이 안 불었다고 지구 온난화가 멈추고 기상 이변이 사라진 걸로 착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돔은 미국 이상으로 흥청대던 곳이었고 폼페이의 문화는 참으로 기름진 것 아니더냐. 로마는 어떠냐. 과연 지금의 미국이 ‘모든 길이 그리로 통한다’던 당시의 로마에 비견될 수 있더란 말이냐?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에 실린 변영국의 글 「미국은 일단 망해가고 있다」중에서)
우리말로도 소통이 잘 안되는 판에 영어가 뭐 그리 대수냐? 십수 년 전 가톨릭 신자가 된 이유를 꼽으라는 설문에 ‘서양 이름을 하나 갖고 싶어서’라는 란에 상당수가 표를 던졌다는 웃지 못 할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같은 신자들끼리도 아닌 동네모임에서 서양식 세례명을 부르는 것을 보고 ‘혓바닥을 뽑아주고 싶었다’는 너와 비슷한 심정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그렇지. 토미가 뭐냐? 카타리나를 캐서린이라고 한다거나 안드레아를 앤드류라고 해도 듣기에 따라서는 비위가 상할 수 있는데, 미쉘(미카엘)도 앙드레(안드레아)도 아닌 토미(토마스)는 네 말대로 점입가경 그 자체로구나. 누가 노래했던가?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라고. 정말 갈수록 태산을 넘어서서 혀무덤 산이로구나. 영어를 잘 발음해 보려고 부러 혀를 꼬부리는 작태 또한 가관이다. 좋은 영어발음을 위해 두 세살짜리 아이들의 혀 수술도 불사하는 그들은, 만약에 혀를 파마해서 발음이 굴러갈 수만 있다면 어떤 값을 내고서라도 매주 혀 파마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호 통재라! 발음은 혀보다도 치조골과 머쓸(Muscle)이라 부르는 구강근육에서 대부분 결정된다지 않더냐. 일부러 혀를 꼬부려대면 스스로는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듣는 쪽에서는 정도에 따라 역겨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 좋을텐데.
<우리신학연구소>에서 가을강좌로 진행되는 「울림」에 가기위해 차를 탔다. FM가요프로그램에서 70년대 포크송이 흘러나오는데 윤O주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였다. ‘롸일롹(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놜~’이라고 한껏 혀를 꼬부려 발음하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토미’생각이 날 건 또 뭐냐? 내면에 담긴 부드러움이나 섬세함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운 우직한 너의 얼굴과 ‘토미’라는(어쩌면 ‘터미’일수도) 혀 꼬부라진 발음이 교차되는 순간, 나 쓰러졌다. 핸들로 엎어졌다가 경적소리에 스스로 놀라 일어나니 난데없이 앞 유리에 뭐가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정신을 차린 다음, 차를 오른쪽으로 옮기고 쓸데없이 작동된 와이퍼를 멈추고 나서도 한참을 웃었다. 아니 너무 웃다가 울었다. 에어백이 안 터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지나가는 다른 차 운전자들의 시선집중은 물론이고, 행인이 다가와 괜찮으냐고 묻는데도 계속 웃었다니까. 나 완존 새됐어.
오래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민O경이라는 가수가 ‘이줴는 쥐(지)나간 휠(일)이야~’라고 열창하는 것을 TV로 보다가 또 쓰러졌구나. 멀쩡한 우리말을 영어식으로 혀를 꼬부려 부르다 보니 이런 웃지 못 할 발음이 나오는구나. 이 가을에 빠질 수 없는 양O은의 노래도 그렇다. ‘도무쥐 알 수 없는 한 가쥐~ 솨뢈을 솨뢍한다는 그 일. 촴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조금 과장되게 적어본 것은 솨실(?)이지만, 세심하게 들어보면 혀를 굴리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그 혀구름에 따라 적어보면 꼭 위와 같이 되고 만다. 우리는 참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시류에 영합할 수 없어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는 애저녁에 글러먹은 너나 나같은 사람들은 돈이 아니라 황금을 준다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아니 스스로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 일들이 세상에서는 매일 매순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고백할 것이 있다. 초청강의 차 외국에 갔을 때 서양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물으면, ‘로제(Roger)’라고 말하지 않고 ‘롸저’라고 혀를 꼬부렸던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언젠가 후배네 집에 갔을 때, 딸에게 본명을 물었는데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이 없었다. ‘말가리다인데 말대가리라고 놀려서 성당에도 잘 안 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원래 영어식 발음으로는 ‘마아가렛’이라고 했더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더구나. 이렇게 딱 두 번인데, 어떻게 용서 안 되겠니? 설마 그만한 일에 이 형의 혀를 뽑겠다고 덤비지는 않겠지?
그래도 아우야. 우린 예술가임에 틀림이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선물해 주셨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재능도 주셨지 않느냐. 우리가 하는 일이 돈 되는 일은 아니어서 대중의 시선을 받기보다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고, 그래서 우리가 가난을 굴레처럼 안고살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시선과 표현을 바꿀 수는 없지. 그러니 우리는 부지런히 글을 쓰자. 전문 글쟁이가 아니어서 좋은 글을 쓸 자신은 처음부터 없지만, 부족하나마 글을 통해 아직은 웃음과 눈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복음적인 시선을 나누자. 너는 연극쟁이고 나는 노래쟁이지만 사실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우리는 이미 한 형제였구나. 그러니 좀 늦은 감이 있다만 너를 내 아우로 접수할 수밖에. 언젠가 캐나다의 한인성당 강의에서 ‘저는 광산김씨 38대손으로써「수」자 항렬을 쓰고 있기에 예수와 같은 항렬이고, 그분은 나으 형님이십니다.’라고 하여 모두를 웃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말하는데 오늘부로 나는 너으 형님이시다. 그리고 이런 웃음과 기쁨을 선물한 아우에게, 이 형님께서 기똥찬 선물을 하고 싶다.
재작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2020년 안에 미 제국주의 필연적인 붕괴’라는 강의를 한 노르웨이 출신 미국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 박사의 말에 따르면,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망하게 되어있단다. 원래는 2025년이었는데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하는 바람에 5년이 앞당겨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물론 미국의 일반 시민들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미국 사람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미합중국이 소련처럼 붕괴하는 것이지. 많은 미국인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보복이 예상되기보다는 오히려 그로인해 평화가 찾아오고, 미국 또한 혜택을 볼 거라면서 이런 사실을 인터넷 싸이트를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 시민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미합중국이라는 거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벌인 전쟁이 240번, 지구촌에 그들의 군사기지가 있는 곳이 140개국이라는 구나. 그것도 부족해서 욕심 없이 평화롭게 농사짓고 사는 대한민국의 평택 대추리 도두리 노인네들을 하루아침에 몰아내고, 자기네들 맘대로 동남아 장악용 군사기지 철조망을 쳤고, 그런 일에 반대는 못 할망정 앞장서서 앞잡이 노릇을 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더구나.
어젯밤 EBS교육방송에서 미국이 중동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인권을 유린했는지를 담은 기록영화 'Taxi to the dark side'를 보여주었어. 이라크전쟁에 참여하여 상부의 지시대로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 상부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았거나 실형을 살았던 군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낱낱이 보여주었다. 정말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만행이었다. 아우야. 11년만 잘 기다리면 ‘미합중국이라는 거대국가 유지’라는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는 그들의 만행이 필연적으로 끝이 난다고 한다. 그때 우리 ‘강 건너 불구경’ 아닌 ‘바다 건너 평화 구경’을 하자꾸나. 그 때에 구경 잘 하려면 가슴을 잘 닦아서 마음의 시력을 잃지 않도록 하여라.
김정식 로제리오 : 가수 겸 작곡가 사진 - 고태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