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조금 깁니다. 그래도 아주 길지는 않아요.
오늘은 오후 늦게야 학교에 갔습니다. 오전수업이 휴강을 해서(이번 사건과 관련없이 수업 일정에 있던 휴강이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수업 하나 밖에 없었거든요.
오후 수업은 <공자와 노자 그리고 칼라일>이라는 수업인데 이번 학기부터 인문학공부를 하고 싶어서 듣게 된 수업입니다.
노어노문과의 교수님이 하시는 수업인데 수업을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깊이 존경하게 된 교수님입니다.
비록 노어노문과 교수님이지만 인문학과 관련해서 열리는 교내 세미나에 많이 참석하실정도로 인문학 전체에 굉장히 정통하신 분입니다. 수업 중에도 동서양을 가리지 않은 인문학에 대한 엄청난 식견을 자랑하십니다.
현 정부나 과거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하시는 분이시고 4.19와 5.18 같은 역사적인 날에 수업을 들어오시면 빠지지 않고 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시고 넘어가는 분이신지라 오늘도 한편으로는 기대를 가지고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수업 시작 10분전에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과목 이름이 동양 사상과 관련이 있다보니 같이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명예학생..이라고 하죠.)이 꽤나 많습니다. 한 25~30명정도 수업을 듣는데 젊은 축에 속하는 학생들이 저를 포함해서 고작 10명 정도밖에 안됩니다. 아무튼 강의실에 들어가니 젊은이는 저 혼자밖에 없고 다들 어르신들이시더군요.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뒤에서 어르신들끼리 나누시는 이야기를 몰래 들었습니다. 분통이 터지더군요. 굳이 여러분께 다 얘기하면 저나 여러분이나 기분만 안좋아질 것 같아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안하겠으나 대충 이야기를 하자면 '노무현은 어차피 대통령 마친 사람인데 자살이든 타살이든 상관없지 않느냐'하는 별 희한한 이야기와 어제 경찰들의 강제 진압에 대해 한 어르신이 비판하자 '불법이라는데 그렇게라도 해야지. 공권력의 남용은 뭔소리야' 하는 어르신들도 계셨습니다.
어쨌든.
수업 시간이 되고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굉장히 어두운 얼굴을 하신채 "오늘은 수업 안하고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노무현 이야기를 하시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수업 자체를 안할줄은 예상 못했던 터라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차라리 잘됐다며 팬을 놓고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2002년에 노사모에 가입하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2002년 초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어떤 정치인을 지지해야하나 하면서 여러 후보들을 보셨는데 그때 노무현을 보고 '아, 이사람'이라고 하셨다더군요. 교수님 본인은 개인적으로 김근태를 존경하고 좋아했지만(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는 상당히 복잡하다면서 이야기를 생략하셨습니다.)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가 안타까워 그를 제외한 뒤 노무현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주당 경선이 끝나고 2002년 7월, 총선 완패 등 여러가지 이유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노무현 후보의 행보를 걱정하는 전국 120명의 교수가 참석한 부산 모임에 가셨다고 합니다. 거기서 문재인 씨를 처음 만났다고 하셨고요.교수님은 스스로 어느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은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문재인 씨를 보고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선이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 2003년 2월 즈음 대구의 한 호텔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에 기여한 사람들을 초청한 자리에 참석해서 노무현 당선자를 처음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얼굴을 마주보고 악수를 했는데 두가지를 느꼈다고 합니다.
'참으로 못생겼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구나.'
그리고 그의 임기 기간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어느새 反노가 되어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무한 경쟁체제가 결국 빈부격차를 벌리고 대한민국의 자살율을 높이는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교수님은 한미 FTA협정과 같은 일들에 완강히 반대했고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시절에 많은 집회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회상을 끝내시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4300여년이 넘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주류,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 혹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이사람은.."
무슨 이유이신지 교수님이 갑자기 고개를 칠판 쪽으로 돌리고 혼자서 머리를 긁적이셨습니다.
사실은 교수님이 왜 그러시는지 저는 이해가 갔지만요. 아마 목이 메이셔서 말을 못하시는 것이었겟죠. 두달넘게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수님이 말문이 막힌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노무현 이사람은 비주류로서 정권을 잡은 최초의 인물이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수차례 낙선할때부터 국민 탓을 한 적이 절대로 없는 사람이다. 왜 정치인들 보면 백성 수준이 낮다며 이야기하는 인간들 아니 쓰레기들 많잖아. 그런데 노무현은 절대로 그런적 없었어. 자기가 대통령일 때도 무슨 일이 생기면 국민들보다는 되도록 자신을 포함한 정치인들 탓으로 돌리는 그런 사람이었어.
나는 항상 가진 자들보다는 못 가진자들, 비주류에 신경을 쓴다. 아침에 차를 타고 출근할 때도 화려하고 이쁘게 치장한 여자들보다는 휴지 줍고 폐지 모으시는 할머니들.. 100만명이 넘게 들어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도망안가요라고 이야기하며 농촌에 와 있는 동남아 여인들.. 그런데 여태까지 우리 정치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쓴 자가 있긴 있었나? 아니 없었어. 노무현 밖에는. 물론 나는 그의 재임기간동안 그의 정책과 불일치한 생각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우리 역사상 비주류, 약자들을 위해 노력했고 그들을 세상에 내세우려한 최초의 정치인이었어.
그런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시청을 둘러친 버스들을 봤니? 또 거기 서있는 전경들은 무슨 죄야? 걔들도 다 너희랑 똑같은 20대들이야. 무슨 죄가 있냐구.
생각해봐라. 권위라는 것은 국민들이 인정하고 존경하고 받들 때 생기는 거야. 너희들이 진정으로 너희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면 자연스럽게 너희 아버지에게 권위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지. 근데 지금 정권을 잡은 그 쓰레기들, 나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그래 그 쓰레기들은 짓밟고 금지하고 막아서면 권위가 생기는 건 줄 알아.
나는 내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장례전날에 펑펑 울고 다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좀 오래 슬퍼할 것 같다. 이만 마치자. 혹시 질문있나?"
그때 한 어르신이 "그렇다면 이번에 노무현이 죽은 원인은 어디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교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노무현의 죽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봅니다. 한나라당과 검찰들이 박연차를 수도 없이 압박해서 만들어낸 비극입니다...중략... 다시는 이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겠어요? 지금의 권력층은 앞으로도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할 겁니다. 그들은 소위 잃어버린 10년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동안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정권을 시작해서 앞으로 한 세대동안은 절대로 정권을 내주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겁니다. 앞으로 노무현 같은 비주류 정치인이 지금 권력을 잡은 인간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으려면 100년은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애석합니다."
여기서 수업이 끝났습니다.
갑자기 울컥하면서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지더군요.
아무튼 대학교에 와서 1시간 넘게 제대로 된 정치 이야기, 사회 이야기를 들은 건 이 수업,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요즘 주위 학생들은 취업 때문에 혹은 노느라 정치에 관심없는 친구들이 많거든요.(결코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을 비꼬는 건 아닙니다. 저도 똑같은 입장이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 눈물나네요... 저희 교수님은 이분처럼 멋지게 말씀은 못하셨지만... 금요일에 수업 못하겠다고 하시더군요...그리고 다들 영결식에 참석하라고... 하지만 친구들은... 허허..
불필요할 것 같아 생략한 이야기도 마저 해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2002년이 세 가지 사건 때문에 4000여년이 넘는 우리 역사에서 분기점이 될만한 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첫번째, 월드컵 4강. 두번째 미선이,효순이 사건. 세번째, 대선
첫번째 월드컵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환호를 했는데 이런 일은 대한민국 역사상 한번도 없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점령'했을 때,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을 때,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한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1945년 8월에는 환호한 사람보다 뒤에서 아쉬워한 친일파들이 더 많았으며 1987년 민주화 운동 때 많은 사름들이 모인 것은 이한열 씨의 죽음에 슬퍼서 거리로 모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번째로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일어난 반미 시위는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이후 두번째로 생긴 자발적 반미 시위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작년에 일어난 수입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도 2002년의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촛불시위는 아줌마 부대 그리고 30대 넥타이 부대가 주도했다면서 50대 60대 70대와 함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세번째, 대선은 위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비주류가 정권을 잡은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좋은 글이라서 그러는대.. 개인 홈페이지에 퍼가도 되겠습니까?
저도 개인 메일로 담아갈게요...
퍼가셔도 되요~^^
저도 개인적으로 퍼가도 괜찮을까요? 글쓴분은 꿈쟁이 님이시라고 명시하겠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제 친구에게 덕수궁 가고 싶다라고 하니까 "거길 왜? 귀찮게, 그 사람이 깨끗해? 돈받았잖아, 왜 죽고 난리야? 떳떳하면 살아서 사과하든가," 순간 아, 뭐라고 해야하나, 답답하더라구요, 나름대로 논리 펼치며 친구 설득하는데 "모르겠다 나도 거기 가면 군중심리에 휩쓸려 불쌍하게 여길진.." 입이 다물어지더이다.. ㅎㅎㅎㅎ
그 친구 가까이 하시면 많이 힘드실것 같아요. 신무도 읽게하고 난독증도 고쳐줘야 하잖아요... 하지만 포기하진 마세요...ㅋ친구욕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는 하나라도 더 아는 사람한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저 신자 아님)
허허.........................그저 쓴웃음만 나오네요. 친구분을 대할 님을 생각하니 입이 마르네요.ㅠㅠ
저도 개인홈피로 퍼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